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43
제 442화
진천희는 깊게 궐련을 들이켰다.
연기를 삼키며 약성이 머리를 휘돈다. 스승님 판단이 옳았다.
이 미쳐 가는 전쟁터 속에서 전쟁 PTSD 환자를 억지로 살리려면 이 수밖에 없으니까.
‘일단 경공은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유지력도 중요하지.’
투괴 어르신이 괜히 강호 최고의 신투인 게 아니다.
아픈 손녀를 업고 십만대산에서부터 쭉 달려올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나.
그건 내공의 양과 효율성이 극한에 이르렀기 때문이겠지.
자동차로 치면 기름 양이 많고, 연비까지 좋은 거다.
그게 아니었으면 진즉에 잡혀서 마교 잔당이나 천마님 손에 죽었다.
‘자, 그러면 내 내공과 연비는 어느 정도인가.’
일단 기연을 밥 먹듯이 차지해서 내공 양 자체는 동년배 중에서 자신을 이길 놈이 없다.
효율?
현원전단신공을 대성한 자신보다 진기 운용 좋은 놈이 있나?
“왕야.”
“말하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모양이로군. 그래, 그런 자가 있나?”
“제가 가장 연비가 좋은 것 같습니다.”
“연비?”
“그러니까 저라고요. 저요.”
“음?”
“그러니까……. 바로 한번 시험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건 허락을 맡거나 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의표도 찔러야 하니, 직접 하는 쪽이 더 낫다.
‘거기다가 계속 생각했던 것을 실험해 볼 수도 있지. 과연 한 사람의 무력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가. 적어도 희생자를 덜 낼 수는 있는가.’
“잠깐, 무엇을 시…….”
은왕야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곧바로 성벽에서 뛰어내린다.
성벽의 높이는 무려 십 장.
현대로 치면 약 30미터!
대충 꼬마 빌딩 하나 정도의 높이일 거다.
그런데도 무섭지가 않다.
궐련 때문일까? 아니면 정신 한구석이 결국 망가져 버린 걸까.
사람들의 비명과 악다구니, 분노의 고함 소리가 뒤섞인다.
그 속에서 ‘형? 미쳤어?!’라는 낯익은 목소리와. ‘진 의원, 네 녀석 뭐 하는 짓이냐!’와 ‘형, 저도 같이 갈게요. 놔요!’라는 목소리가 함께 들린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해답을 찾고 싶었을 뿐이야.’
찰나라고 불리는 시간을 조각내며 청안이 푸른 선을 그려 나간다.
무게중심을 바꿔 고양이처럼 가볍게 낙법을 취하고.
탕-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내달리고, 또 내달리며.
‘……간다!’
용천혈로 진기가 뻗어 나갔다.
대지를 박차는 순간 몸은 깃털보다 가벼워져 흡사 로켓이 된 듯 공간을 가른다.
천리신보(千里神步).
황궁 비고에서 습득했던 신공절학급의 경공신법이 극성으로 발휘되자, 천리마가 아니라면 따라오기 버거울 정도의 속도가 나왔다.
지금 속도를 잰다면, 풀 액셀을 밟은 스포츠카만큼이나 빠르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빠르면 그만이다. 그렇게 진천희의 신형이 순식간에 숙신족의 전열에 와 닿았다.
숙신족들의 놀란 얼굴이 보인다.
하긴, 미친놈이지.
화경의 고수라도 보통은 이렇게 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묘한 기마술도 겁 없는 강호의 무인들을 도륙할 정도는 되니까.
그래도 괜찮다.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뇌가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두 손에서 뻗어져 나온 화극기의 열양장력이 그대로 대포를 향해 날아갔다.
콰과과광!
장력이 격중하는 것은 보지 않았다.
그저 다음 대포를 향해 내달렸다.
그제야 월도와 창을 내찌르는 숙신족들이 보인다.
화살을 시위에 메기는 놈들도 있다.
채찍은…… 채찍은 괜찮다.
당아 덕분에 막는 것만큼은 꽤 고수가 되었거든.
역시 무술은 맞아 봐야 는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주변의 모든 정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현원전단신공 초월심무 인의.
시간이 지극히 느려지고, 현실의 1초가 진천희에게는 몇 배로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사이에서, 받아들인 정보는 직렬과 병렬을 오가며 진천희의 발걸음을 이끈다.
천기미리보(天機迷離步).
제갈세가의 신공절학 중 하나.
이것의 비전은 강호에도 퍼지지 않았기에 이 드넓은 강호에서 진천희와 제갈린, 단둘만이 사용하는 절세의 보법이 펼쳐진다.
모든 공격을 예측하며, 딱 한 치의 간격을 두고서 모든 것을 피해 내며 전진한다.
창칼이 비켜 지나가고, 채찍은 허공을 가르며, 화살은 그림자라는 허상만을 꿰뚫는다.
그건 마치 귀신같아서, 숙신족 모두가 경악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자고로 성능 앞에 장사 없는 법이지요. 암.
그때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
그대로 내달려 단번에 다른 대포를 지나쳤다.
지나치며 발출한 열양장력은 다시 화약통을 때리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광!
“미친 새끼, 막아라! 막아!”
“중원인이 결국 투괴를 불러왔다!”
투괴 공야건이 얼마나 유명한지 이놈들도 다 알아요.
아니 어쩌면 저쪽에서도 보물 좀 쓱싹하신 적 있으신가?
‘투괴 어르신 우리 집에서 택배업 하신다. 이놈들아.’
신속 배달! 안전제일!
무려 다섯 개의 대포와 화약통을 박살 내는 데 걸린 시간은 일각이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이윽고 숙신족 궁기병들이 아예 대오를 잡고 이쪽을 향해 화살 비를 준비하는 게 아닌가.
‘와, 저건 못 막는다.’
그런데 알 게 뭐냐. 튈 건데!
이미 진천희의 신형은 성을 향했다.
수를 세기 어려운 화살 비가 진천희의 진로 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 모든 것을 신이적인 감각으로 파악하며 피하고, 혹은 쳐 내거나 막으며 나아간다.
그러나. 하나의 화살만은 진천희가 고려한 경우의 수로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등짝에 화끈한 감각을 느끼며 화살 한 대를 허용하고 말았다.
‘크으……. 제법 아픈데! 근데 숙신족은 화살에 기도 실을 수 있는 건가? 보의를 뚫었네.’
역시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건 위험하다.
그래도 뭐, 성벽에 도착했으니 된 건가?
그대로 천리신보(千里神步)를 운용하며 성벽을 달려 올라간다.
탕!
흡사 체조 선수처럼 단번에 은왕야 앞에 선다.
다들 어이가 없어 말문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은왕야가 말했다.
“……두 번은 못 하겠구나. 기습이기에 가능한 일이니.”
“다음부터는 궁기병을 쫙 깔겠죠.”
“그 궐련 효과 중에 경공의 고수가 되는 게 있나?”
“스승님 말로는, 전쟁으로 인해 심신이 피로할 때 어쨌든 살아남을 수 있게는 해 준다고는 하시네요.”
“……거참.”
이윽고 정신을 차린 무인들이 일제히 흥분하여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일광! 일광!”
“무신 일광!”
성벽 전체에, 열광의 도가니가 펼쳐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일광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부끄러우니까 그만둬 줬으면 하는 바람을 삼키는 진천희였다.
은왕야가 말했다.
“두 번은 하지 말거라.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음……. 각을 잘 재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야 환자가 줄어들거든요.”
진천희는 여상한 어조로 자신의 등에 박힌 화살을 스스로 뽑아내면서 답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왕야는 진천희라는 인간의 단면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이놈은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이런 강함을 거머쥐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가 않지만, 여차하면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계산이 끝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후……. 백린의선이 왜 네 녀석을 그리 묶어 두지 못해서 안달인지 알 것 같구나.”
“과찬이십니다.”
“칭찬이 아니다. 쯧……. 그나저나…….”
은왕야가 시선을 돌려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숙신족의 군대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 * *
원천군이 혀를 차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기가 이토록 어두워졌음에도, 우리를 방해할 여력이 있다는 건가?
‘주왕이 여즉 죽지 않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다 무당파의 독안철권(獨眼鐵拳). 하오문의 천면호리(千面狐狸). 저 둘도 가세하며 강해졌다라…….’
독안철권은 천우, 천면호리는 사마현을 뜻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천기가 뒤틀린 자들. 저 둘 때문에 더 틀어진 건가.’
원천군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크… 크크크크. 반선의 씨앗을 혈선께서 원하는 것도 저런 이유에서겠지.’
이만큼 세상을 뒤틀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제아무리 뛰어난 예언자라고 할지라도 보통 운명은 바꿀 수 없는 법이라고 주저앉기 마련이다.
그도 그랬다.
결국 큰 운명을 인간이 뒤트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강이 흐르는 곳을 어찌 인간이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허나, 청년은 흡사 둑을 쌓듯 인간의 힘으로 매일 모래 포대를 날랐다.
그러나 그것도 언제까지 계속될까.
결국 어느 날 밀려오는 홍수에 그 모든 것들이 끝나 버릴 것을.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고작해야 인간의 힘 하나.
강은 결국 본연의 길을 찾고, 또 찾아 흐르기를 반복한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
지금은 억지로 혼세를 틀어막고 있는 형국이나 결국 멸망은 오기 마련이니.
원천군은 부적을 접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놀랍게도 새 모양으로 접은 부적들이 스스로 날아가 어딘가로 향했다.
그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윽고 잔상을 남기며 흩어졌다.
* * *
다음 날.
진천희는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화살에 찔린 등을 치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 희야. 내가 방금 들은 말이 허언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상대 군영을 향해 어느 미친놈이 경공으로 달려가서 직접 대포를 부수고 귀환했다고 하더구나.”
“그렇군요. 스승님.”
“그 미친놈이 등짝에 화살 한 대를 맞았다지? 그러고는 남들 다 보는 성벽 위에서 혼자 화살을 뽑아내고는 웃었다지 않느냐? 참 누구네 제자인지 궁금할 따름이구나.”
“……그거 참 안타깝……. 으악, 아픕니다, 스승님!”
제갈린의 손이 아픈 부위를 꾸욱 누르고 있다.
제자에 대한 작은 징벌 겸 치료 행위다.
“그 미친놈이 신기하게도 궐련을 피우고 다녔다던데 어째 내가 내 제자에게 준 것과 똑같지 뭐니.”
“…….”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스승님도 어이가 없어서 물으시는 것일 테다.
아니면 제자를 족치려고 물으시는 것이거나.
“죄송합니다. 스승님.”
“네가 그 미친놈이었니? 희야, 말해 보렴.”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가장 합리적인 일이었어요.”
진천희는 그리 운을 떼더니 1) 그쪽과 이쪽의 거리, 2) 필요 경공과 내공의 양, 3) 성공 가능성과 리스크 관리 등을 열변했다.
종이만 있었으면 무당파에서 유언 세미나를 했던 것처럼 세미나까지 해 볼 자신이 있었다.
파워 포인트가 없는 게 진천희의 한이었다.
스승님은 그런 제자의 말을 한참 듣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분명 불안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맑게 하는 약을 조제해 주었단다, 희야. 이 조제법은 아무리 너라도 가르쳐 줄 수가 없지.”
‘그거야, 나는 진짜 피가 통하는 제갈가의 후계가 아니니…….’
진천희가 쉽게 납득하려 하자 제갈린이 빠르게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란다. 자칫 조제법을 네가 알게 되면 스스로 자의적으로 만들어서 피우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니면 네 손으로 약성을 높여서 사용할 수도 있지. ‘약간’의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중독성이 없지는 않단다. 대부분의 화병약이 그러하지. 여기에 제갈세가의 비전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네 체질에 맞춰서 가공했을 뿐이지.”
“그…….”
“다음번에 대포를 부술 때는 나를 부르렴. 하하하.”
스승님은 제자 척추를 반으로 꺾겠다는 말을 우아하게 표현하셨다.
진천희는 식은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