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44
제 443화
제갈린은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뭐……. 그래도 네가 선택할 변수 중에서 의외로 가장 안전한 걸 선택하긴 했구나. 미친 소리 같지만 말이다.”
현경의 고수한테 들이박는 것보다야 안전했다.
더 극단적으로는, 전열에 가서 적장을 상대로 직접 싸우거나 암살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암살을 시도하면서도 불살을 하겠다고 지 몸을 세 배로 갈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전선에서 쓰러진 환자를 걱정하며 직접 이송하겠다고 달려 내려가서 업어 올 수도 있었고.
웃기는 소리지만 자신의 제자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놈이었다.
수많은 돈과 수많은 명성과 수많은 지식과.
젊은 몸뚱이와 막대한 내공, 화경의 경지와 그 무학에.
심지어 아름다운 외모까지 가지고서도 여차하면 그걸 쓰레기처럼 다 던져 버릴 수 있는 놈이었다.
제갈린은 자기가 왜 이딴 놈에게 꽂혀서 제자로 삼게 되었는지 하늘을 원망했다.
‘역시 업보가 돌아온 것인가.’
이 미친놈은 지 스승 말도 잘 안 듣는 놈이었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조금 달랐다.
“너도 조금은 몸을 사렸구나.”
“……그…… 알아주셔서 고맙…….”
제갈린은 진천희의 말을 끊었다.
“허나, 더 사려라. 아직도 과하다.”
“……네.”
스승은 제자의 머리를 쓸었다.
‘그래. 오늘은 좀 나아졌으니 된 것인가.’
이러다 보면 한 번쯤은 이놈이 미친 현경의 고수를 상대로 몸을 사려 줄 수도 있지 않나.
나아졌다. 내 제자는 좀 나아졌어.
제갈린은 그렇게 스스로 자축했고, 진천희는 병상에 누워 있는 채로 그래도 이번에는 사지는 안 박살 냈다고 뿌듯해했다.
세상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미친 사제 관계였다.
“밖은 어떤가요?”
“네 활약 덕분인지 숙신족이 후퇴를 시작했단다. 아예 사거리 너머로 멀어진 상황이지. 정찰대를 보내도 찾기가 쉽지 않은 거리까지 갔다고 들었다.”
“……정말 빠르네요.”
“그래. 치고 빠지는 것은 유목민의 특기지. 어찌 보면 모든 병사들이 전부 경공을 익혔다고 봐야 한단다. 그래서 더 위력적인 셈이지.”
“아마…… 대포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스승님께서 전술을 도왔기 때문이겠지요.”
“…….”
대답 대신 제갈린은 진천희의 머리를 쓸었다.
제자는 무사하다. 얼마나 무사하냐면, 지 손으로 밀떡을 먹고 있을 정도로 무사했다.
이게 얼마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만약 제갈린이 현대에 있었다면 V앱이라도 틀어서 ‘여러분, 보십시오. 제 제자가 양손으로 밥을 먹고 있습니다.’라고 자랑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놈이 조금 다쳤다고는 해도 사지 온전하게 침대에만 그냥 누워 있는 상태가 얼마나 기적인지.
이놈을 제자로 들이고 제갈린은 자신이 혈린광살 때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천벌이 내린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리가. 우리 희 덕에 내가 목숨을 구명하고 사는 맛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거늘.’
기쁨을 알게 된 만큼 반대로 울화통과 슬픔과 무력감과 살의…… 같은 감정도 함께 밀려왔으나 어쩔 수 없다.
불가의 가르침이 그러하지 않나.
결국 인생사 희로애락으로 번뇌가 오는 것이라고.
기쁜 만큼 고통스러운 법이다.
그것이 삶이 즐거운 이유일 것이고.
진천희는 밀떡 안에 든 소를 굉장히 흐뭇하게 먹었다.
“역시 안에 해바라기 씨를 넣는 게 답이었어요, 스승님. 역시 나다. 크으…….”
어쩔 수 없다. 이 미친놈이 제자다.
“……반드시 구음절맥 완치를 해야겠구나.”
심장에 있는 스텐트 덕분에 급사할 확률은 줄었다.
허나, 대신 전투는 단기전만 하고 있다.
내단을 심장에 심는 셈이니 실수로라도 흡수를 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했다.
제갈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장기전으로 넘어갔을 때는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하니 진천희가 해바라기 씨가 든 밀떡을 양손으로 꼬옥 붙잡고 광기의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역근세수경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긴 했죠. 스승님! 혹시 역근세수경의 무학이 환골탈태의 기초 이론이 될 수 있을까요?”
“음…….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을 고민 중이란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좀 더 깊이 파 볼 생각이란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우물거리며 말하는 진천희에게 제갈린은 차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자기 손으로 찻잔을 받아서 먹는 모습을 보라.
제갈린은 다시 한번 감동했다.
그 표정은 혈린광살 때를 기억하던 숙적들이 보았다면 코스믹 호러를 느꼈을 모습이었다.
특히 당가주는 손가락 관절에 침을 꽂던 ‘그 새끼’와, 미친 제자 놈이 이번에는 덜 미친 짓을 했다고 감동하는 ‘이 새끼’는 무조건 다른 놈일 거라며 현실을 부정했을지도 모를 모습.
“차가 맛있어요. 스승님.”
“밀떡 더 먹겠느냐?”
“네!”
진천희가 밝게 웃었다.
세상 사람들, 보십시오. 제 제자가 오늘은 지 팔다리를 온전히 간수했습니다. 분질러 먹은 곳이 없어요.
혈린광살은 흐뭇해졌다.
* * *
며칠이 훌쩍 지났다.
숙신족 놈들의 흔적은 발견되었으나, 어디로 사라진 건지 찾을 수가 없는 상황.
그리고 결국 각지에서 끌어모은 제국의 사십만 대군이 도착했으며, 먼 곳에 위치해 있던 문파의 강호인들까지 도착했다.
단목성의 십오만 병력과 합쳐서 무려 오십오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 집결한 것이다.
그 수가 너무 많아 단목성 전체에 들어가지 못해 주변에 군막을 세울 정도!
그리고 이들 대군과 같이 온 강호인들 중에는 의외인 이들이 몇 섞여 있었다.
바로 투괴와 권제!
강호 십 대 고수 중에서도 오랜 시간 그 권좌를 지켜 온 두 명이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투괴가 온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내달려서 대포 부수는 짓을 하는 제자를 본 제갈린이 부른 것.
사실상 진천희의 주장대로 성벽 밖으로 뛰쳐나가 대포를 부수고 돌아오는 것은 현재 진천희 외에는 투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차라리 진천희가 그런 짓 하는 것을 말리고, 투괴를 쓰기 위해서 제갈린이 부른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도착했다.
사천당가, 황보세가, 곤륜파, 청성파, 기타 등등…….
이들이 지금 도착한 데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멀기 때문.
사천성과 산서성은 각각 제국의 남쪽과 북쪽의 끝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각 문파의 소가주나 소문주들도 도착했다.
* * *
“어이, 은인 꼬맹이! 무사했네?”
공손영이 와서 진천희를 꽈악 끌어안았다.
상처가 엄청나게 아팠다.
그걸 보고 스승님이 면회자를 엄히 가렸다.
그래도 투괴께서는 들어올 수 있었다.
투괴 공야건이 침상에 누워 있는 진천희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오……. 생각보다 멀쩡하구나?”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자가 또 미친 짓을 했다고 백린의선이 직접 불렀다. 상사가 분노에 차서 부르니 나라고 별수 있겠느냐.”
“…….”
진천희는 억지로 시선을 돌려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미친 짓 좀 그만하여라. 나도 죽을 것 같다.”
“그…… 투괴께서는 원하시면 안 하셔도 되지 않나요?”
“다녀오면 손녀 놈 교육에 일타강사를 붙여 주겠다잖느냐. 나는 가르치는 데 재능이 없지만 걔는 다를 수 있지.”
‘일타강사 과외를……?’
진천희는 그 바쁜 사람들 중에 시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손가락으로 꼽다가 그런 계산은 스승님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스타 강사라도 각주님이 시키면 가야지. 과외 해야지.’
스승님은 그렇게 당근과 채찍으로 한 방에 투괴를 구워삶으셨고.
투괴는 투덜거리면서 결국 왔다.
“내가 X발……. 강호에 간섭을 안 하려고 하는데 군문에 간섭을 하게 생겼잖느냐.”
“……죄송합니다.”
“죄송은 얼어 죽을 죄송. 이 악독한 것아.”
투괴는 한참을 투덜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일타강사는 네가 육성했다 들었는데, 잘 가르치느냐?”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곧잘 가르칩니다.”
“일타강사가 가르쳐주는 심법이 다른 무학과 충돌이 되지 않는 형태라고 들었다. 만약 내 손녀 녀석이 거기서 기초를 배우고, 후일 내 무학을 전수를 받는다면 혹여 주화입마가 올 수 있겠느냐?”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커진다.
“가르치시게요?”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이 녀석이 자기 몸을 건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역시 미련이 남으셨구나.
하긴, 그녀의 신법은 절세의 신법이다.
이 세상에 발로 그녀를 따라갈 자는 없다.
숙신족 칸의 말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직접 본 건 아니니 제외하고.
진천희가 답했다.
“뭐……. 그것 자체는 문제없을 겁니다. 오히려 기초적인 것을 미리 배우고 온다는 측면에서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원래 이런 건 기초가 중요한 거죠.”
“대답이 뭔가 이상하구나. 하긴 너는 늘 이상했지.”
그녀는 혀를 차더니 피식 웃었다.
“내가 올 만큼 상황이 심각하느냐?”
그 말에 진천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의 흐름을 알고 있다.
숙신족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이 죽고 노역당하고, 강제 징집을 당해 숙신족에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는 것도.
그것은 지구의 역사였고, 그곳과는 다르지만 큰 맥락은 비슷한 이곳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또한, 굳이 지존천마를 읽은 자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미래이기도 했다.
“이 전선이 뚫린다면 아마 돌이키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많은 이들이 와 있지 않나.
의원인 자신의 손으로 살린 이들이.
공야건은 손을 뻗어 진천희의 머리를 쓸었다.
“고민이 많은 얼굴이구나. 머리가 너무 무거워지면 발이 굼떠진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걸어라. 걷다 보면 고민은 날아갈 터이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타강사는 꼭 뛰어난 놈으로 붙여 줘야 한다. 내 손녀지만 걔가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투괴께서 너무 못 가르쳐서 그런 건 아닐까.
진천희는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조금 표정이 좋아졌구나. 속으로 나를 비웃고 있는 게야. 이놈의 속 검은 제갈가 놈이.”
그녀가 진천희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아야야야. 투괴 님, 아파요. 아야아아.”
“등에 화살도 박은 놈이 내 농은 아프냐? 하여간.”
투괴는 볼을 잡아당긴 손을 놓았다.
“고민이 될 때는 일단 발을 움직여라, 아기 제갈아. 그게 이 노괴가 오래 살아남은 비법이니라.”
그녀는 그리 말하며 후련한 표정으로 가 버렸다.
‘걷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건가.’
실로 투괴다운 조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