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46
제 445화
등의 상처가 낫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빠르다.
아마 보옥의 효과겠지.
피로 회복을 탈인간급으로 빠르게 해 주고, 마찬가지로 내공 회복도 탈인간급으로 빠르게 만들어 주는 보옥.
상처 회복 효과도 발군이라서, 등 쪽의 상처가 U튜브 스트리밍처럼 재생되는 게 느껴진다.
그래, 현경급 독을 상대로 목숨을 붙여 놓을 수준이니 등에 화살 박은 것 정도는 다시 복구시켜 줄 수 있지.
‘그런데 팔의 통증은 왜 안 낫지? 환지통 계열인가……?’
이것만은 스승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왼팔의 통증은 어떻게든 참으며 싸울 수준은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천막을 들추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차분한 걸음걸이.
발아래를 보니 황구는 이미 꼬리를 흔들고 있지만 짖지는 않았다.
그 이유야 뻔했다.
주변에 알려서는 안 되는 상대.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상대.
익숙한 체향과 기척에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대체 어떻게 온 거지?
“너,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 너는 징집이 안 되는 동네잖아.”
달칵-
뒤를 돌아보니 까만 미청년이 가면을 벗고 진천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붉었으나 살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천살성과 어느 정도 타협을 본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마공이 원인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여하륜.
그는 가만히 눈동자만 굴려서 형의 상처를 살폈다.
진천희 손에 들려 있는 커다란 죽통과, 거기에 달려 있는 대롱.
강하게 나는 탕약 냄새까지.
“형은 여전히 이상한 걸 발명해서 들고 다니는군.”
“탕약 아메리카노다. 스승님이 계속 마시라고 주시니 이렇게라도 빨고 있어야지.”
“쓰지 않나?”
“그 맛에 먹는 거야. 잠 깨는 데 좋거든.”
무슨 탕약으로 잠을 깨나…… 생각하다 각성 계열 탕약인 모양이라고 여하륜은 생각했다.
“미친 짓을 했다기에 들렀는데 다행히 무사한 모양이군. 형은.”
“내가 누군데? 네 형이다.”
“그래. 내 미친 형이지.”
여하륜은 저벅저벅 다가온다.
처음 일부러 기척을 낸 것과 달리, 이번에는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두 걸음.
진천희가 말했다.
“성취가 있었구나. 근골도 더 자랐고.”
“그런 셈이지.”
“좋겠다. 성장판이 안 닫혀서.”
“형은 더는 안 자라나?”
“……어, 유전적인 문제인 건지 텄다, 야.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보다는 큰 편이지.”
“그렇군.”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며 여하륜은 형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열은 없어 보이는군.”
“의원 앞에서 의원 놀이 하냐?”
그 말에 여하륜이 피식 웃고 말았다.
시종 무표정했던 얼굴에 드디어 금이 갔다.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본 여하륜은 전보다 더 혈향이 짙어져 있었다.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향이 있다. 인간의 혈액이 특히 그랬다.
모든 혈액은 자취를 남긴다.
모든 죽음이 자취를 남기듯이.
여하륜에게 다른 향도 나는 것을 보아하니, 향낭이라도 차서 향을 없앤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은신을 하면 감쪽같으니 기묘하군.’
천마님도 그러긴 했지.
그분은 기척이 없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만 마치 종이로 오려 붙인 것 같은 기묘한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분명 사람으로서 소리가 나고 향이 나고 기척이 있을진대 눈을 감으면 느껴지지 않는 그런 게 있었다.
여하륜도 그 경지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뜻.
그럼에도 빠르다.
이 속도는…… 정상이 아니었다.
“십만대산에서 여기까지 한참 걸렸을 텐데 용케도 왔다. 교의 명령이라도 하달된 거야?”
“그런 셈이지. 본교에서도 이번 전쟁은 주시하고 있으니. 정찰과 작전을 위해 온 것뿐.”
여상하고 평이한 목소리.
‘정찰과 작전이라……. 원작에서의 천마님 행보와는 다르군.’
하긴 원작에서는 그야말로 혼세였으니 마교가 신경을 쓸 여력이 없긴 했겠지.
“제국군 다 죽여라…… 그런 건 아니지? 틈타서 왕야를…….”
진천희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제국에 피해는 없으니 형은 걱정할 거 없어. 이건, 다른 일이니까.”
“그으래? 그러면 안심이다.”
천살성 특유의 살기가 사람을 자꾸 긴장시킨다.
아니, 어쩌면 상대가 혈로를 걷는 중인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륜은 ‘주인공’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자신은 어떻게 보일까.
조연? 엑스트라?
주조연이라고 하기에는 만남의 횟수가 적지 않나.
그러니까…… 엑스트라 정도가 안전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형이니 조연 정도는 될 것 같다.
“음……. 확실히 상처 회복은 빠르군.”
“의원도 아닌데 네가 그런 걸 알아?”
“음.”
여하륜은 그렇게만 말하고 더는 답하지 않았다.
‘뭔가 아는 방법이 있는 거겠지. 여하륜은 주인공이니까.’
형은 모르는 무슨 무공이나 심안 같은 걸 익혔을 수도 있고, 약간의 의료 지식을 공부했을 수도 있고.
여하륜이 말했다.
“그래도 그런 미친 짓은 나도 안 해. 형.”
“……거 원조 미친놈인 천살성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뭔가 열 받는데?”
진천희는 투덜거리더니 허허롭게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때 각이 나오더라고. 그때가 아니면 안 되겠더라고.”
“각?”
“각도를 재 보니까 할 만하다고.”
“각도?”
이거, 약간 현대어인가.
여하륜은 앞뒤 문맥을 파악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하지만 하지 마. 형은 마교로 올 몸이니까 자신을 소중히 해야 해.”
이놈은 어릴 때부터 계속 그런 말을 한다.
마교로 올 거라는 둥, 자신이 정했다는 둥.
한창 소교주 싸움으로 혈투 벌이는 놈이 주변 정리는 하고 오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진천희가 말했다.
“흑전의각 쪽이랑 정식으로 지식 교류할 일 생기면 생각해 볼게. 어쨌든, 무슨 작전인데? 마교도 전쟁에 참여해?”
기밀이라 답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여하륜은 생각보다 쉽게 답했다.
“아니, 전쟁에도 참여하진 않아. 그저 관측을 할 뿐. 그게 교에서 하달된 명령이다.”
“관측?”
“음, 이 전쟁의 향방을 지켜보라고 천마께서 명을 내리셨어. 그리고…… 혈선교를 발견하면 즉살하라고 하더군.”
“항복하면 생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즉살? 투괴 때와는 다르구나.”
“음. 그렇지. 허나, 천마께서는 살아 있는 마(魔)로서 군림하는 존재이니, 그것을 결정한 이유가 있겠지.”
여하륜이 혈선교를 발견할지, 아니면 그 전에 이 전쟁이 끝날지의 시간 싸움인가.
“도와줄까?”
“아니, 형이 끼어들게 두지 않을 거다. 지난번 요천군처럼 흘러가게는 안 할 거니까.”
그때 미끼가 되었던 게 어지간히 한이 된 모양이다.
“아마 너만 온 건 아니겠구나.”
“다른 소교주들과 그의 추종 세력들이 함께 숨어 있지. 나 역시 내 사람들이 이곳에 섞여 있고.”
‘으음, ‘내 사람들’이라…….’
이 시기의 여하륜은 자신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이미 많이 죽은 뒤였던 걸로 기억한다.
‘단단하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구나.’
지존천마의 마교는 정치적이다.
강자존은 일순위이나 그 강함으로 어떠한 모략을 쓰는가가 중요하다.
현 천마님이 살아 있는 마(魔)로서 중원에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이유가 그거다.
그녀의 무서운 점은 그저 현경에 들어선 무력만이 아니다.
그 두뇌지.
사람의 인의도, 도덕도, 상식도 벗어난 방식으로 그녀는 천마가 되었고, 중원은 그런 그녀와 싸우기 위해 숱하게 부딪쳐야 했다.
그녀를 상대로 계략으로 버틸 수 있는 자가 스승님을 제외한다면, 사파에서는 현 사도련주 술제(術帝) 귀혼마.
그리고 황금왕 묘이령.
정파에서는 허덕이고는 있지만 무림맹주 창왕 악진과 희한하게도 무당권제.
그리고 베일에 싸여 있는 선존.
중립 세력……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지 멋대로 살고 계시는 무영투괴와 혈생노괴 정도.
허나 혈생노괴 어르신은… 엄연히 말해 마교와 협력 관계이니 같이 넣기는 애매하려나.
뭐, 그래도 마교에서 원하는 놈이 나오면 잡아다가 강제로 치료(?)하실 테니 완전한 협력 관계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분은.
형은 푸른 눈으로 아우의 붉은 눈을 바라보았다.
“자기 사람도 잘 챙기고, 무학의 성취도 있어 보이고. 잘 컸구나. 역시 대단해.”
형의 솔직한 칭찬에 여하륜의 딱딱한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별걸 다 칭찬하는군, 형은. 죽을 뻔한 주제에.”
“하하하, 이런 형이긴 해도. 네가 힘껏 살아왔다는 건 알아.”
진천희가 손을 뻗어 여하륜의 머리를 쓸어 주려고 하자 여하륜이 알아서 고개를 낮추고 잠자코 형의 쓰다듬을 받았다.
“건강해라. 건강해야 한다.”
“형이야말로.”
“만약 다치게 되면 막사로 뛰어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숨겨줄 테니까.”
“응.”
“네 사람이 다쳐도 똑같이 해. 형이 어떻게든 해 줄게.”
“그래.”
여하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를 보면 영락없는 또래 애인데 말이지.’
기분 탓일까. 여하륜에게서 나는 혈향이 조금은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 * *
여하륜과는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사는 이야기와 여하륜이 보내주었던 비파를 잘 쓰고 있다는 이야기 정도.
물론 어떻게 썼는지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인사치레가 그런 거지, 뭘.
녀석은 여전히 형을 걱정하고 있었다.
“형, 그거 아나?”
“뭔데?”
“내가 형을 볼 때 멀쩡할 때보다 어딘가 다쳐 있거나, 다쳐 있기 직전이거나 다칠 계획을 하고 있거나 셋 중에 하나일 때가 더 많은 거.”
“으음……. 재회 시기가 늘 절묘하긴 했다. 그래.”
따로 초대할 때가 아니면 어째 공사가 다망할 때 만나곤 했네.
“이거.”
여하륜이 내민 것은 목갑이다.
뭔가 싶어서 열어 보니 흑룡 문양이 새겨진 담뱃대가 들어 있다.
이런 걸 어떻게 챙겨 온 거고, 여기서 쓰게 될 줄은 어떻게 안 걸까.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여하륜이 답했다.
“이 물건은 오는 길에 아는 소교주 놈의 목을 쳐서 얻은 기물 중의 하나야. 마침 이곳 정보를 들었는데 형이 궐련을 피웠다며?”
“아아, 습관은 아니고. 전쟁 한정으로만 피우게 되었어.”
여하륜은 그 말에 어째서 그것을 피운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담뱃대는 약을 태울 때 쓰더군. 그놈 천마신공을 잘못 익혀서 늘 약으로 심마를 눌러야 했거든. 딱 봐도 귀해 보이니 쓸 만하겠지.”
“음…….”
찝찝한 표정으로 담뱃대를 둘러보자 여하륜이 한숨을 쉬었다.
“피는 없어. 그리고 나름대로 기물(奇物)이니까 쓸 만할 거야.”
“너는 참 가지고 있는 것도 많다?”
“마교란 그런 거지. 신물도, 기물도 널려 있지만 사람 목숨만 없는 곳.”
여하륜은 냉소하듯 내뱉으며 진천희에게 말했다.
“쓰다가 별로면 버려.”
“야, 넌 뭘 그렇게 말하냐. 기물이라며?”
“말했잖아. 이 정도의 물건은 본교에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