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48
제 447화
“형을 만나서 다행이지~ 다행이야~ 나는 덕분에 단련이 됐어.”
“항주 뒷골목이 무섭긴 하구나.”
“뭐, 나 한정이긴 해. 같은 뒷골목에서 자라도 혜아는 그러지 않으니까~”
그 말에 진천희는 툭 말을 던졌다.
“어째 너는 혜아는 너랑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음?”
“그러니까 동생으로서 목숨을 걸 만큼 잘해 주는데, 이상하게 기대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당연하지. 어떻게 기대? 그 아팠던 애한테.”
“흐음…….”
사마현과 사마혜가 어째서 황보 남매와는 다른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건강해지고, 밝아지고, 자신이 할 꿈이 생겼어도 사마현에게 있어 사마혜는 아픈 동생이다.
그런 시기를 겪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사마혜 입장에서는 서운할 일인 것도 사실.
“사마혜는 강해. 좀 믿어 봐라. 오빠인데.”
“나 믿고 있어. 걘 나보다 강해~”
‘말은 그렇게 해도 행동은 그렇지 않은걸.’
뭐, 이런 건 어쩔 수 없으려나.
괜히 또 잔소리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건 어른의 오지랖인 것이겠지.
‘참자, 참자.’
진천희는 억지로 내면의 꼰대를 억눌렀다.
이건 두 사람이 풀어야 할 문제다.
그냥 언젠가 사마현이 혜아를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로 보기를 바랄 뿐.
‘뭐, 안 되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린아이가 매일 아픈 동생의 병수발을 든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심지어 병마의 고통으로 이제 그만 죽여 달라는 동생에게 억지로 밥을 먹이고 아편을 구해 태워 준다는 것도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닐 거고.
만약 황보 남매보고 서로에게 기대라고 조언하면 띠꺼운 눈으로 ‘저 새끼한테 기댈 바에는 집에서 키우는 비단잉어한테 기대겠다’고 말할 거다.
‘이런 남매가 있다면 저런 남매가 있는 거니까.’
……으, 그래도 사마혜가 내심 서운해하고 있다는 건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잘 먹으니 됐다.”
“형은 무슨 생각해?”
“이 전쟁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으려나, 못 멈춘다면 적어도 아군의 사상자는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으려나……. 그런 거.”
“뭘 생각하든 몸 간수부터 해.”
“그래. 걱정하지 마.”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며 사마현은 생각했다.
‘저 형……. 저러다가 또 갖다 들이받는 거 아냐?’
* * *
담뱃대는 스승님이 몇 번 시험해 보더니 괜찮다고 해주었다.
“연기가 들어가는 속도도 괜찮고, 기물(奇物)답게 몸체가 어지간한 칼날보다 단단하니 이쪽이 낫겠구나. 거기다가 흡사 운기조식처럼 대롱을 통해 호흡하면서 내력이 쌓이는 구조이니, 준신물은 될 것 같은데.”
과연 마교다.
이런 물건을 오다 주웠다 하면서 던져주네.
‘그래도 궐련 쪽이 더 편하긴 더 편하겠다만…….’
멋은 이쪽이 있어서 세가의 장로 어르신들이 자주 뽐내듯 피우곤 한다.
‘음……. 무림 고수 티는 나겠군.’
무림 월드에서 수많은 고수들을 접한 진천희의 식견으로 보았을 때, 무림 고수는 가오가 반이다.
심지어 고수가 아니어도 다들 칼처럼 가오는 챙긴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게 그들이다 보니.
진짜로 폼이 안 나서 죽기도 한다.
쉽게 이기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첫수를 양보하고, 아니면 더 폼 내겠다고 다섯 수를 양보하셔서 의각에 실려 오시고.
‘나는 그 외상을 또 치료를 하고.’
폼이 안 난다고, 사문에 누가 되었다고 뜬금없이 혀를 깨물고 자결을 하려고 하시고.
‘나는 그걸 또 붙잡아다가 말리고.’
그 폼이라는 게 어찌 보면 체면과 연관되다 보니 목숨보다 더 소중한 곳이 강호다.
핑그르르-
진천희는 담뱃대를 연필 돌리듯 돌렸다.
그걸 빤히 보고 있던 중의원이 말했다.
“그거 어디서 구합니까?”
“음? 담뱃대 말인가요?”
“네.”
“의각 내에서는 흡연 금지입니다. 저도 막사 근처에서는 안 피워요.”
“그건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죠. 하하하!”
‘저어도 전쟁터 나오면 끊을 겁니다요.’
궐련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역시 강호인의 멋인 것이겠지.
술과 담뱃대.
둘 다 건강에 안 좋다.
‘뭐, 사정은 모르시니.’
지금 성은 병력 출전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진천희의 몸도 상당히 나았고, 주왕 전하도…….
“상당한 장인이 만든 물건이로고. 이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이가 흔치 않은데 대단하구나.”
왕년에 풍류를 즐기신 주왕 전하께서는 한 번에 물건을 알아보셨다.
“잠시 약용으로 피우고 있는 것뿐입니다.”
“흐음, 심마 때문이냐?”
눈치 하나는 귀신이시다.
“그……. 비슷합니다.”
“아쉽구나. 꽤 어울리는데 말이다.”
옆에 있던 은왕야가 한마디 덧붙였다.
“간접흡연은 괜찮나?”
“안 괜찮습니다. 그런데 참으십시오. 전쟁이 더 건강에 안 좋습니다.”
진천희는 철판을 깔았다. 그 모습에 은왕야는 피식 웃었다.
“답지 않게 뻔뻔한 것을 보니 너도 어쩔 수 없는 문제 같구나. 그 심마라는 것.”
“…….”
살고 죽는 문제다.
진천희는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그냥, 스승님과 약속을 한 게 있습니다.”
주왕 전하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하긴 나도 이만큼 회복된 건 너의 의술과 주술 덕택이지.”
“주술은 회복력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방책일 뿐, 자주 쓸 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시간 안에 이만큼 회복된 것은 네 덕분 아니냐. 완농에서 익힌 게 내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구나.”
사방에는 북소리와 병장기 옮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 죽게 될까? 아마 그러진 않을 거라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손은……. 떨리지 않는군.’
스승님이 조제법을 바꾸신 것 같다.
앞으로의 전쟁이 제자의 마음을 크게 갉아먹으리라고 예상하신 걸까.
‘자기 몸도 못 챙기니 의원 실격이네.’
작게 조소하다가도 그래도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진천희의 눈은 다시 진지하게 돌아온다.
‘크게 다치지 않는다. 아니, 그게 힘들다면 살아서라도 돌아온다.’
스승님은 함께 나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셨다.
심장이 걱정되기에 진천희가 극구 말렸기도 하고, 지금 책략의 한 축을 스승님께서 맡고 있는 상황이니 움직일 수도 없다.
그래도.
‘으음,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는 것을 스승님은 모르시겠지.’
뒤에 자신을 지지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안정이 된다.
‘아, 그렇구나. 인간이란 이렇게 단순한 거였어.’
광야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 위로 보이는 검은 점은 적일까?
진천희는 특별 기동대가 아닌, 본대에 속한다.
은왕야를 호위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그림자는 최후의 최후에 쓰시는 걸까?’
당시 포탄이 날아왔을 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터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임무로 보낸 건지 진천희는 알 방도가 없다.
물론, 은왕야께서 그걸 가르쳐줄 사람도 아니고.
극성에 다다른 제갈가의 천기미리보를 이용해 최선을 다해 호위하며 그를 운송한다.
그것이 진천희의 가장 큰 임무.
물론 진천희 혼자는 아니다.
척!
황궁에서 파견 나온 동창 출신 고수 다섯이 더 따라붙었다.
동창의 고수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고, 말이 없었다.
그때 보았던 그림자와는 기척이 조오금 다르다.
그저 조용하고 조용할 뿐. 그때 그림자들처럼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까지는 없다.
‘고도로 훈련이 된 걸까.’
은왕야가 태연히 말했다.
“한 명은 화경의 절대 고수, 남은 넷은 초절정의 고수이지. 그리 고생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이 사내는 흡사 놀러온 한량처럼 이 상황에서도 태연하기만 하다.
‘이런 놈이 황제가 되는 건가.’
평범한 진천희는 약 기운까지 빌어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데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부럽다.
우선 은왕야와 진천희는 각자 군마에 올랐다.
황구는 말 옆에서 같이 걷기로 했다.
만약 최악의 사태가 오면 은왕야를 황구 등에 올리고 진천희는 경공으로 달리거나, 아니면 반대로 진천희가 은왕야를 업고, 황구가 엄호해야 할 터.
둘 다 장단점이 있으니 그때그때 상황을 봐야겠지.
둥, 두둥, 둥-
북소리를 따라 전열이 나누어진다.
움직이는 전열을 보며 진천희는 곧바로 깨달았다.
‘아, 이거 팔진도군.’
제갈세가의 대표적인 진법 중 하나로, 사마의도 제갈량의 팔진도를 보고 크게 감탄한 일이 고서에 남아 있다.
팔진도를 완벽하게만 구축할 수 있다면 적은 병력으로도 상대 기병의 빈틈을 찌를 수 있다.
허나, 완벽이라는 뜻 자체가 정교함을 뜻하는 것이니 그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그동안 책사들이 몰라서 안 한 것은 아닐 터.
‘스승님께서 그것을 추천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우선 세 개의 병력으로 나뉜다.
그것을 보며 진천희는 스승님의 뜻을 간파했다.
‘이 정도 숫자가 뭉쳐 다니는 것은 오히려 전략 전술에 방해가 된다. 상대는 기병을 중심으로 한 궁병. 뭉칠수록 도리어 포위되어 섬멸당하기 좋아.’
그게 지금까지 제국군의 패인이다.
지금 스승님은 먼 곳에서 반상을 바라보고 계실 터였다.
허나, 왜인지 제자는 스승님께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 것 같았다.
‘우선 부채로 입을 가리고 계시겠지. 장난감을 쥔 아이처럼 어떤 포진을 할지 궁리하셨을 거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군사로서의 시간이다.
그는 병사의 목숨을 숫자로 바꾸는 자.
진천희 자신과는 다른, 진짜 제갈세가의 피를 이은 사람이니.
‘1군 15만, 2군 17만, 3군은 15만 정도일까? 가운데 17만이 중군이자 본대일 거고. 보급 부대는 약 5만 정도로 편성하는 게 최적이겠지. 단 최대한 멀리서 따라다니도록 하셨을 거야.’
후우-
담뱃대 위로 연기가 일사불란하게 올라간다.
움직이는 병력을 관찰하며, 생각을 타고, 제자는 스승의 심중을 읽는다.
‘의원도 부대에 소속은 되어 있으나 엄연히 말하면 보급 부대 소속이지. 2차 세계대전처럼 의무병이 근거리에서 따라다니는 시대가 아니니까. 그건 우선 도로가 뚫려야 가능한 일이니까.’
전투가 끝나야 치료가 시작된다.
‘나는 본대인 거고.’
군대가 출렁인다.
대장군 밑으로 수많은 장수들이, 천인장이, 백인장이, 십인장이 각자의 작전을 받아 진형을 따라 움직였다.
‘아, 팔진도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팔진도 그대로는 아니군요, 스승님……. 이건…….’
광야에 새벽이 푸르게 뜬다.
그건 제갈세가의 마지막, 그리고 유일한 후계자.
백린의선의 눈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