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53
제 452화
“소수의 충신들에게만 전한 내용이었는데 세작이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런가? 허나, 진법을 맡은 군사는 거기까지도 대비했던 모양이더군. 생각보다 진법이 뚫리지 않으니 말이다.”
원래라면 일격에 진법 전체가 파훼됨이 옳았다.
승천을 하지 못한 용은 추락하며 피를 뿌린다.
엄청난 파국을 예상했으나, 처음부터 제갈린은 인간을 믿는 놈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약간의 여유를 남겨둔 게 지금 전선이 버티고 있는 이유라 할 수 있었고.
“하하하, 뭐 상관없지. 이 세상에 불로불사를 싫어하는 자가 있느냐?”
“없지.”
“그렇다. 풍주하. 비록 네가 지금은 젊다고 생각하겠으나, 너 역시 언젠가는 노쇠해지고 말 터. 내 아내가 되어라.”
“하지만 만 명의 사람의 피로 불로불사를 할 수 있다면 싫다는 사람은 많을 거다.”
“허어?”
“미친 새끼. 인간에게 왜 죄책감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녀는 장팔사모를 한 바퀴 핑그르르 휘두른다.
후우우웅!
중량을 조절하는 권능에 따라 들리는 소리가 남다르다.
“죄책감이 무슨 상관이냐, 풍주하. 설마하니 만 명을 죽여 젊음을 얻게 되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그런 유약한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너는 짐승과 인간이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그게 죄책감이라는 거냐? 웃기는 소리!”
“죄책감의 다른 말이 뭔 줄 아느냐?”
“뭐지?”
“영혼이다.”
콰과과광!
극양의 기운이 창끝으로 터져나간다. 흡사 작은 태양과 같다.
카후라이 칸은 그녀의 공세를 이겨내며 답했다.
“영혼? 그러면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이라는 거냐?”
“내 말하노니, 양심이 없는 새끼는 군왕이 결코 될 수 없다. 치국, 치세, 치정, 그 모든 게 주체가 인간이어야 성립하는 단어지. 내 너를 도살할 것이다.”
복잡한 수 싸움 속에서 두 초인은 서로를 향해 공격을 해나갔다.
“크하하하! 그러면 짐승의 지배를 받거라. 풍주하! 짐승의 치세를 받는 거다!”
“네놈에게는 백성들이 소나 양과 같겠지. 귀를 터뜨린 소들처럼 말이다!”
“그것이 나쁜가? 그것이 위정(爲政)이다! 그것을 모르면서 왜 군왕을 자처하는지 모르겠군.”
공방 한 번을 거칠 때마다 몸이 터지는 감각을 느낀다.
미처 다 회복되지 않은 상처 사이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래도 풍주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배신은 있었다 하더라도 제갈린의 마지막 수로 인해 숙신족 역시 제법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설령 승리한다 하더라도 놈들은 적어도 십만의 병력을 잃어야 할 터.
그러나.
‘이 전투 이후를 생각할 기력 따위 없다.’
그것은 카후라이 칸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숙신족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유목 부족도 제법 많았다.
이번 전투에서 대승하고 제국의 북부를 유린한다면, 그들을 끌어들여 진정한 칸이 되리라는 것은 주왕도 알고 있다.
‘……그러니 싸운다.’
생(生)은 저항의 과정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몸을 뒤집어 땅에서 저항하고, ‘좋아’보다는 ‘싫어’를 남발하며 부모에게 저항하며, 학관을 땡땡이를 쳐서 공부에 저항한다.
군왕 입장에서 저항이야 짜증이 나겠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그 저항이야말로 틀린 것을 틀리다 말할 수 있는 힘인 것을.
포로를 붙잡아 새로운 화살을 실험하는 데 쓰며, 위정자의 젊음을 위해 수많은 국민을 도살하는 상황에서 그 ‘저항’이란 어떤 생을 만들 것인가.
“나는 사람다운 삶을 용납지 않은 형제들을 모두 죽였다. 숙신족의 왕이여.”
주왕은 웃었다.
핏물로 치아가 시뻘겋게 물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혈로에 비한다면 네놈 새끼는 아무 것도 아니지.”
쿠그그그그-
주왕의 오른쪽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왼쪽은 혹한의 추위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녀를 제외한 제국군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고, 주변은 숙신족 일만 정예 기마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촉즉발의 포위 상황!
그 앞, 카후라이 칸이 자신의 거구만큼이나 웅장한 체구의 흑마를 탄 채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패배다. 내가 군마를 타고 있다는 것.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지?”
다각-
보통 제대로 된 군마(軍馬)는 준영물급으로 취급한다.
허나 칸이 타고 있는 말은 아마 그야말로 영물이겠지.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이제 나타난 걸 보면 저 말은 높은 확률로 혈선교에서 보낸 말일 가능성이 컸다.
거기다가 난전 속에서 사람 고기를 씹는 것을 보았으니 저놈이 제대로 된 말은 아니리라.
마령술.
그것은 말과 함께하면 더욱 강력해지는 무술.
당연히 영물급의 대흑마와 함께한다면 절정 고수 정도는 발굽으로 밟아 죽일 정도는 될 터.
그런 말 위에 올라탄 카후라이 칸은 일전에 싸웠을 때보다도 더욱 강력한 상대였다.
“내 신부가 되어라, 풍주하여. 마지막 권유이다. 만약 이번에도 저항한다면 반드시 죽이리라.”
“……크크큭.”
목에서 피가래가 끓는다.
참 불공평하다.
과거 그녀는 산을 옮겼다.
창으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을 하는 거냐며 다들 손가락질을 했으나 그래도 그녀는 했다.
산을 옮길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것을 하는 동안 내 자신이 포기하느냐 버티느냐의 문제였다.
결국 풍주하는 해냈고.
그때의 기억은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불공평하단 말이지. 재능과 노력이 함께했는데도 결국 사람 천 명 죽여서 얻는 게 더 효율적이라니 말이지.”
위정자에게 있어 혈선교는 참 달콤한 꿀과 같다.
제국에도 아마 몇인가는 변절해 있을 거다.
허나, 그게. 그게 어떻다는 거냐?
“사람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개놈아.”
그녀는 두 손을 늘어뜨리며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나. 못생긴 놈은 사절이라고!”
극음과 극양의 기운이 그녀의 머리 위로 더욱더 모여든다.
쿠구구궁-
황궁 비고는 황족의 힘의 원천.
집권한 황족은 거의 대다수 무림 문파의 무공을 배울 수 있는 특권이 생기는 바.
그녀의 능력에 가장 걸맞은 무공은 바로 무당파의 태극신공과 양의신공.
두 절대절학과 함께, 태양신공과 빙백신공을 보조로 익혔다.
그뿐이랴?
황보세가의 절학을 비롯해 온갖 것을 익혀 냈다.
그 결과.
권능에 무공이 더해지고.
그 결과.
초양강기와 초한강기가 허공에 현현(懸懸)한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자.
무공에 무공이 합해지기 시작했다.
두 개의 강대한 강기가 하나로 합쳐지고, 그것을 그야말로 극멸의 힘을 담은 무언가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태극신공 초월심무.
태극합벽(太極合闢)–!
그러나.
그것을 꺼내든 주왕 풍주하의 입가에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부릅뜬 두 눈에는 핏줄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은 양(量)이 있다. 이 세상에 무한한 것은 존재치 않았기에, 황가의 이능이라고 해서 무한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어떤 것을 태워야만 그 힘을 사용 가능했다.
거기에 단전에 들어 있는 내공도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최후의 힘을 짜내어 만든 기술이 이것이었다.
“후하하하하! 최후의 반항인가! 좋다! 나 카후라이 칸이 네놈의 힘을 정면으로 짓뭉개 주마! 가자!”
이히히힝!
카후라이 칸의 대흑마가 울부짖는다.
어째서인지 평범한 말의 울음이 아니라 흡사 죽은 사람이 비웃는 소리 같았다.
그 말이 단번에 땅을 박차자, 흡사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그 거체가 나아갔다.
음양합벽의 힘의 결정을 향해 전차처럼 저돌맹진하며 카후라이 칸은 거대한 월도를 번쩍 들어 섬전처럼 내리친다.
콰-아-아–!
거대한 힘이 폭발하며 파장이 번져 나갔다.
그 위력이 경세적이기에, 주변의 것은 으스러지고 보통 사람의 고막이 터져 버릴 지경이었다.
진천희의 말처럼 흡사 작은 수소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위력에 주변이 휩쓸리는 것은 당연한 일.
시체들이 찢겨 나가며 흩어지고, 인근의 병력들이 폭발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참혹함을 논하기 이전에 압도적인 폭력이 태풍처럼 쓸고 지나가며 거대한 폭발 구름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쉬우우우우우-
카후라이 칸은 죽지 않았다.
전신에 피를 흘리고 피부 거의 대부분이 상처를 입은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고통 속에서 건재했으며, 그것은 그가 탄 대흑마 역시 마찬가지.
실제로 겉모습은 끔찍했으나 그의 활력은 쇠하지 않았다.
‘혈선교의 주술 의식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방금 풍주하의 일격은 전성기의 자신도 터져 죽을 만큼 강력했다.
허나, 혈선이 함께하는 한.
그가 제물을 바치는 한 가호는 계속되리라.
그는 연기를 걷고 대흑마와 함께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것이 카후라이 칸.
대초원을 지배하고 있는 왕이시다.
푸르르륵-
대흑마의 걸음에 맞춰 카후라이 칸이 다시 월도를 들었다.
“자, 끝을 낼 시간이다. 너도, 그리고 너희 제국도. 그걸 위해 나 역시 크나큰 피해를 감수했다. 나의 형제들도 함께 피를 흘렸지. 그러나, 사냥이란 본디 그런 법. 무언가를 잡기 위해 피를 흘릴 각오도 해야 하니까. 그러니…….”
거대한 월도에 마치 강기 같은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끝내도록 하자꾸나.”
“노옴……!”
주왕이 입가의 피를 닦으며 장팔사모를 고쳐 쥐었다.
그녀는 결코 짐승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니 결국 남은 건 인간의 마지막 본연의 본능을 따르는 것뿐이었다.
‘저항’이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주왕은 생의 끝, 그 한계까지 저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준비를 했다.
이 전장에서 죽는다면, 그렇다면 다음의 누군가가 그와 싸울 터였다.
인류는 늘 그랬다.
없는 듯하여도 늘 빈자리에 그를 대신할 자가 나온다.
혈선교의 사술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모르나, 그래도 이 창을 목숨과 함께 깊숙하게 찔러 넣는다면 놈들도 애 좀 먹겠지.
그때였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사각에서 한 줄기 뇌광이 내리쳐졌다.
콰릉!
“큭?!”
그것은 정확하게 대흑마와 카후라이 칸에게 격중했다.
그 찰나의 순간과 함께, 사방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맹한 위력의 화살들이 섬전처럼 날아들어 친위군 일각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폭발.
쾅! 콰광!
검고 메케한 연기가 일어나며 그 검은 구름에 노출된 이들이 사지가 뻣뻣해지며 쓰러져 버렸다.
칼도 사람도 전부 쓰러진 사이,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흉노 새끼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덤벼드는 거냐?!”
“감히 본가의 무공에 대항하는 거냐!”
“하하하! 본가의 독은 천하제일! 흑염의 독 앞에서 모조리 쓰러지리라!”
특별기동대, 그들이 무너진 부분을 비집고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