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63
제 462화
백린의각 마차가 그렇게 출발하고 이런저런 경유지에서 아는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만난 건 아니나 다를까 당아를 비롯한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사천으로 돌아가기 전에 황궁을 경유하고 들어가는 루트다.
중간에 소가주로서 당문에 필요한 이런저런 교섭을 하느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백린의각 행차를 보자마자 그녀는 기쁜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거대한 채찍을 휘두르는데, 지축이 흔들릴 지경.
진천희는 구르듯 튀어나가 그녀를 막았다.
그렇게 몇 합을 주고받으니 만족했는지 그녀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고.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흐음, 그렇군. 촉금 비단은 예로부터 본가의 부를 책임져 왔지. 교역하는 상인들은 많으나 이번에는 아예 서역에 본격적으로 팔아 보겠다?”
“네. 이미 서역에 원하는 이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하긴 하나, 아예 백린의각이 관청의 허락을 받아 중간 교류를 하겠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
“돈 냄새 많이 나지 않나요?”
“흐음…….”
그녀는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반짝였다.
“아버님께 말 잘 전해 주겠네. 대신 서역에 판다면 우리도 그쪽 물건을 살 수 있겠지?”
“무엇을 원하는데요?”
“그쪽 기관진식을 대표하는 장난감이나 총기를 조금 받아 보고 싶은데. 무기류는 어려우려나.”
“일단 교섭을 해 봐야 해서 확정해 드리긴 어렵습니다. 총기는…… 이해가 가지만 기관진식은 어째서죠?”
“요즘 기관진식과 암기를 결합하면 어떤가 생각하고 있거든. 칼과는 달리 당문의 주력은 암기술이고, 쏘는 것만은 기관진식의 도움을 받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해서 말이야. 이번 전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
과연 빠르다.
보통은 거기까지 가기 어려운데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가능하다면 구해 오도록 하지요. 혈편왕.”
“크하하하, 마음에 드는군.”
그리 말하더니 자신은 마차 지붕 위에 올라타고 싶다며 달리는 마차 지붕에 올라갔다.
그 모습이 퍽 우스울 법도 하건만.
이쯤 되니 동경하는 사람들도 생기는지 몇몇 무인들이 몽롱한 눈으로 혈편왕을 보았다.
“크하하핫! 본좌가 곧 천하이니라!”
[당아는 여전히 건강하구나.] [다행이죠. 구김살도 안 보이고.]사제는 전음을 나누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사마현과 권제님과 천우.
마지막으로 왕각연과 공손현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의원들과 무인들을 돌려보내서 빈자리가 허했는데 황도에 도착할 즈음이 되니 대행렬이 되고 말았다.
‘여하륜도 같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렵겠지.’
비록 역사의 뒤편에서 몸을 가리고 있으나 여하륜도 함께 싸웠다.
그래 놓고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이…… 주인공답게 좀…… 많이…… 멋있었으나 그래도 이런 뒤풀이는 같이 하고 싶은 게 형의 마음이다.
‘나중에 따로 차 한잔 해야겠는걸.’
이겼다는 것보다 생존했다는 게 기쁜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궁으로 이어지는 대로에는 붉은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었다.
마침 도착한 시간이 저녁때여서인 건지 연등의 빛이 별처럼 깜빡였다.
“전사자의 넋을 위로하고, 승전을 축복하는 행사구나.”
“색이나 모양이 조금씩 다른 건 전사자의 가족이 단 것이겠군요.”
“그런 것들은 보통 이름이 적혀 있단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지.”
아니나 다를까.
연등 밑에 꽃을 놓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합장을 하고, 다시 합장을 했다.
어린아이가 할머니의 치마를 잡아당겼다. 전사자의 손녀인 걸까.
아이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왜 이곳에 꽃을 놓는지, 어디를 향해 합장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백 밤 더 자서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저희가 뒷정리하는 동안 황도도 난리였겠네요.”
“전후 뒤처리에 정신이 없었겠지. 그래도 무리해서라도 시신을 전부 수습한 덕에 민심은 덜 흉흉해졌을 거란다.”
돌아간다는 건 중요했다.
살아서 돌아오든, 다쳐서 돌아오든, 시신으로 돌아오든 어찌 되었든 돌아오면 그것으로 사람은 무언가를 끝낼 수 있다.
끝은 시작을 의미했고.
통증이 계속되는 한 삶은 이어지는 법이니까.
진천희는 멍하니 마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연등을 바라보았다.
“낮이었으면 축제를 보았을 텐데 아쉽구나.”
밤공기에 향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그것은 끝의 향이었고, 동시에 시작의 향이기도 했다.
마차 지붕 위로 당아와 친구 먹은 왕각연, 공손영이 그녀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무슨 생각인지 공손영이 벌게진 얼굴로 폭죽을 촉 없는 화살에 감았고, 왕각연은 그것을 쏘았다.
달인의 무학을 담은 화살은 어둠을 가르며 솟구치고, 또 솟구치다가…….
파앙!
마침내 어느 폭죽보다도 멀리 날아가 밝게 빛났다.
그게 뭐가 즐거운지 셋은 한참 깔깔 웃었다.
왕각연이 말했다.
“화살을 이렇게만 쓴다면 최고일 텐데 말이야.”
이윽고 공손영은 흐름을 탔는지 계속해서 폭죽을 촉 없는 화살에 감아서 주었고, 왕각연은 그게 재미있는지 계속 쏘았다.
싸구려 폭죽도 그녀의 손에서는 혜성이 되었다.
당아도 즐거운지 막 웃었다.
“역시 중원 놈들은 재미있어. 크하하핫!”
“나는 네가 더 재미있어. 인마.”
아이들이 마차를 쫓아서 달려왔다.
세 사람은 황궁에 도착할 때까지 밤하늘에 별을 만들었다.
그것은 퍽 멋진 그들만의 개선식이었다.
* * *
황궁에 도착하고 내관들의 안내를 받아 일행들은 황궁 별궁 쪽으로 향했다.
내관이 말했다.
“강호에는 은원이라는 게 있다고 하니, 서로 사이가 나쁜 문파끼리는 함께 배석을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저희 무식한 내관들도 꽤나 고생을 했습지요. 네에~”
구부정한 허리에 간드러지는 목소리.
허나, 진천희는 이미 제독태감 영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는 생각이라고는.
‘나이가 상당하시고, 내관 중에서도 품계가 높으시니……. 잘하면 동창 중의 누군가이실 수도 있겠구만.’
일단 권력의 중추인 황궁에서 저 나이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저 내관은 단순 내시가 아니라 노괴라는 뜻이다.
“우선 거처는 정파와 사파를 분리하였고……. 세 분은 이번에 각별히 공을 세우셨으니 별궁을 하나 내드렸습니다요.”
“스승님은요?”
“아, 백린의선께서도 같은 별궁이나, 주왕께서 각별히 하실 말씀이 있다 하여 짐은 저희가 대신 풀 터이니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음, 오자마자 스승님을 부른다라.’
제독태감에게 당한 게 있어서 그런가.
이것도 뭔가 꿍꿍이를 통한 포석 같아 보였다.
“야, 우린 같이 잔다.”
“잔다!”
“자는 것이다!”
공손영, 당아, 왕각연은 같은 정파 소속이니 별궁도 같은 곳으로 배정된 모양이다.
함께 전선을 넘었기 때문일까.
세 사람은 의기투합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연회는 저쪽이 자체적으로 먼저 시작할 것 같다.
“황궁에 괜찮은 술이 있나?”
“어이쿠, 내일 연회인데 벌써 드시려 하십니까?”
“없으면 알아서 조달하고.”
“에이~ 대령해 오겠습니다요.”
그렇게 각자 별궁에서 짐을 내리고 여독을 풀게 되었다.
* * *
별궁에서 각자 짐을 풀고 나니 뭔가 드디어 황실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호화롭긴 하네.”
옛날에 왔을 때는 잠깐 인사하고 지하 서고에 처박혔기 때문일까, 뭘 그리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다.
아니, 볼 필요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얽히지 않으려고 최대한 안 보려고 했기 때문일까.
이제 다시 보니 무엇 하나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 없었고, 무엇 하나 싸구려인 게 없었다.
심지어 요강에서조차도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으면 말 다 했지.
“형, 하륜이 형 생각해?”
“응. 그 녀석도 여기 왔으면 좋았을 텐데.”
별궁에서 나는 은은한 향조차도 비싼 태가 났다.
천장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그려져 있었다.
아주 그냥 으리으리하다.
사마현이 말했다.
“마교도 이 정도는 할걸~?”
“대신 천장에 있는 새가 검은색이거나 황금색이거나 피 색이겠지. 그리고 향도 이런 향은 아닐 거 아니냐.”
“금혈방 와! 내가 진짜 사치가 뭔지 보여 줄게~”
천우가 답했다.
“큰형은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다 같이 싸운 승전식에 둘째 형만 빠진 게 아쉽다는 뜻이지.”
“그 승전식 금혈방에서도 해줄 수 있습니다. 가가~”
그 말에 천우가 어이가 없어 말했다.
“너는 하다하다 황궁 천장에다가 질투를 하는구나.”
허나, 사마현은 그런 천우의 말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형, 황궁에서 뭐가 가장 마음에 들어?”
“현아……. 혹시라도 똑같거나, 더 나은 것을 구해서 백린의각에 보내지는 말렴.”
진천희의 눈치에 사마현은 쳇, 하며 아쉬워했다.
그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나와 한참 웃었다.
“뭐가 그리 즐거우십니까. 가가~”
“아니, 너는 변한 게 없어서.”
그 악몽을 겪고도 사마현은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아니, 흔들렸다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해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그만큼 이 녀석이 살고 있는 세계가 남다르다는 것이겠지.
“나도 천우도 꽤나 고생했는데 말이야.”
참 이상했다.
다 끝났는데 끝났다는 기분이 안 든다.
왜인지 아침에 눈을 뜨면 야전 천막 안일 것 같고, 환자가 밀려올 것 같고. 달려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 ‘어, 방금 승전식은 뭐였지? 나 분명 연회에 초대되었는데?’라고 말하다가 상의원이 부르는 소리에 ‘아, 꿈이었구나.’ 하고 다시 달려 나가야 할 것 같다.
기이한 기분이다.
‘승전식을 하고 나면 끝나는 기분이 들까?’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어야 하며.
인간은 끝을 보아야 시작을 할 수 있다.
승전식은 그런 의미겠지. 음.
그 악몽이 끝이 났다는 의미.
“그래도 다들 강해졌네.”
“형도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것 같고요.”
“그러게. 세외라고는 하나 일세의 고수와 생사결을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다행이지.”
그때 천우가 몸을 일으켰다.
탕.
“비무 하죠. 형.”
“음?”
“복잡할 때는 뭐라도 하는 게 좋습니다. 형. 비무 해요.”
이건 무당권제님 닮았네.
‘하긴, 강호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필요하니…….’
비무는 꽤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비무는 엄연히 다르니까.
‘비무라……. 얼마 만에 하는 거지?’
일단 전선에서는 한 번도 못 했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 하였으나, 삼국통일은 결국 칼로 이루어졌다.
유비, 조조, 손권 중에서 칼 못 쓰는 자는 없다.
화 제국 역시 마찬가지.
화 제국은 검으로 일어나서 검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유학자들이 논평하고 사상을 설파하는 것 역시 중요하였으나, 결국 역사의 분기점은 언제나 칼을 쥔 자가 가르곤 했다.
그래서인지 황궁 내에는 연무장이 많았고, 역시나 별궁 뒤쪽에도 작은 연무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