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64
제 463화
진천희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우선 천우부터 봐줄게. 검으로 할 거니, 권으로 할 거니?”
“검으로 하겠습니다.”
독안철권(獨眼鐵拳)이라는 별호와는 달리 천우는 검도 곧잘 쓴다.
별호에 권(拳)이 붙은 이유는 무당권제님의 영향일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주먹으로 패다 보니 그리된 것일 수도 있다.
천우는 비무장에 꽂혀 있는 날 없는 철검을 들었다.
‘하다못해 무당철권이라는 별호면 괜찮았을 텐데…….’
이래서야 완전히 사파의 별호 아닌가.
“천우야. 무당의 기상을 보여 줘! 누구라도 무당파라는 걸 멀리서도 알 수 있게 태극의 묘리를 보여 주는 거야.”
“알겠습니다. 형.”
천우의 눈이 자못 진지해졌다.
그는 초식 자세를 취하고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눈앞의 형은 검조차 뽑지 않았다.
양손을 소매에 넣고 일부러 허점투성이의 자세로 천우를 보며 웃고 있다.
‘얼마나 여유로운 거지?’
팔 척 거구의 사내를 앞에 두고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자는 흔치 않다.
“부담 갖지 말고 들어와.”
형의 눈이 푸른빛이다.
그것만은 다행이다. 완전히 얕보인 것은 아니니까.
천우의 검 끝에 강기가 향불처럼 피어오른다.
기이하게도 무당의 강기는 단단한 형태가 아니었다. 물론 필요하다면 그리하겠으나, 유능제강이기 때문일까?
수없이 많은 검사(劍絲)들이 모여 하나의 강기를 만든 형태다.
그렇기에 완성된 검강은 흡사 낮게 깔리는 연기처럼 출렁인다.
“전보다 더 유연해졌는걸?”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목검이 아닌 철검으로 해도 괜찮은 거예요?”
“날도 무디게 만들었고. 어차피 강기를 볼 거면 목검이 무슨 의미겠어? 힘을 이기지 못하고 터지거나, 맞아도 어차피 치명상인데.”
그건 그렇다.
그 순간, 천우의 거체가 형을 향해 덤벼든다.
진천희는 깊게 심호흡을 한다.
한 호흡.
카앙-
언제 검을 뽑은 건가. 보이지 않는다.
형의 검이 천우의 일검을 받아친다. 놀랍게도 형이 발현한 것은 완벽한 태극혜검.
형의 검로를 따라 서리가 공기에 맺혔다.
천우 역시 태극혜검으로 검로를 바꾼다.
“호오?”
사마현이 흥미가 돋았는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거울의 양면처럼, 허나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태극을 열어젖힌다.
천우는 어느 순간 더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검을 보며 형이 자신을 봐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거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그는 이다음 곧바로 검을 손에서 놓았다.
기습적으로 태청산수와 십단금을 한 번에 날리기 시작했다.
“와아, 천우야. 정말 날카로운데?”
태청산수는 신공절학의 수공. 거기에 십단금은 장법이다.
어찌 보면 둘 다 손으로 하는 거니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 하겠으나,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깊이 기초를 파고, 파내려간 후에 응용으로 넘어가야 했다.
단순히 기초만 파는 게 아니다.
이것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하체가 필요하다.
즉, 수공이나 장법도 결국 힘은 발경에서 나온다.
흡사 화경의 경지에 오른 지 수십 년은 지난 노강호와 같이 천우는 자연스럽게 두 절기를 펼쳐냈다.
“좋다. 이건. 잘 썼다.”
그리 말하며 진천희는 검을 고쳐 쥔다.
웃기게도 검을 쥐는 법이 아니라 몽둥이를 쥐는 방식이다.
‘십단금?’
콰광!
검면으로 십단금을 날려 천우의 주먹을 상쇄하는 게 아닌가.
태극이 닿을 때마다 형은 어김없이 검면으로 마주 때린다.
쾅, 콰콱, 쾅, 쾅, 콰쾅, 쾅, 쾅!
고작 일 초 안에 수십 합이 오간다.
천우는 형에게 공격을 날리고, 형의 공격을 막아내며 깨달았다.
‘형은 지금 내 방식에 반보 더 나은 방식으로 임하고 있는 거군.’
지도 대련!
아득했다.
“형……. 너무 강한 거 아니에요?”
“그러게. 어쩌다 보니 강해져 버렸네.”
진천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거구 천우의 공격을 모두 흘려보냈다.
날 없는 검이 유려한 선을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타를 날리는 순간, 진천희도 말했다.
“끝낼게.”
콰과과광!
천우는 보았다. 형의 검이 천우의 거체에 닿는 순간, 형이 검을 뒤로 빼서 충격을 감쇄시키는 것을.
‘망할!’
천우의 거체가 날아가 바닥을 구른다.
진천희가 말했다.
“강해졌지만, 가다듬기가 부족한데. 천우야.”
천우는 신음도 내뱉지 않고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가다듬기요?”
“음. 아무래도 눈이 하나라서 그런가. 동체시력은 널 이길 자가 없을 거 같은데, 거리감이 조금 투박해. 이건 외안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겠지?”
이건 천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진천희는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걸 보충할 수 있는 건 기감이야. 기감을 더욱더 예리하게 가다듬고 반응해야 하는데……. 이건 참선의 영역이니 나랑 같이 하자.”
“크윽…….”
천우는 복잡한 표정이다.
형과 수련하는 건 좋지만, 그 지옥 훈련이 얼마나 끔찍한지 모두가 알고 있다.
인지능력을 올려야 하지 않겠냐며 했던 기묘한 조각 맞추기, 놀이인지…… 수수께끼인지 모를 이상한 것들.
사람의 형상이 아닌 목인 인형들까지…….
허나, 강해질 수 있다.
자신을 화경으로 만든 게 형이다.
그러니 더 도야해서 또 한 단계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게 분명했다.
천우가 결심했다.
“할게요. 형. 합니다!”
“좋은 자세다! 한번 죽어 봐라. 천우야! 내 동생인 만큼 특별 훈련을 시켜 줄게!”
형은 푸른 눈을 빛내며 각오를 다졌다.
* * *
다음 타자는 사마현.
사마현은 진천희 앞에 선다.
두드득-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사마현은 검을 쓰지 않는다. 허나, 형이 만들어 준 천잠사 장갑은 낄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이 장갑이 진검보다 더 뛰어났다.
‘형은 지치지도 않네~’
천우와 그렇게 격한 일전을 벌이고 나서 바로 다음 대련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매일 지독하게 훈련을 했겠지.
여기서 지독한 훈련이란 보통 세가에서 하는 그런 격한 훈련 강도를 넘어선 것을 뜻한다.
‘하루에 두 시진은 자겠지? 그래도.’
그래도 미친 생활 습관이긴 했다.
연구하고, 수련하고, 치료하고.
이 세 가지를 하면서도 소각주 일을 해낸다?
사람이 맞나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형은 어째서인지 무엇 하나 찌든 기색 없이 밝게 웃기만 한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형도 사람이니 흔들리고 위태로울 때가 있긴 했다.
‘빙정검이 없어도 빙한기를 자유롭게 쓰는군.’
신병이기는 어디까지나 신병이기일 뿐. 쓰는 사람의 무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가.
사마현은 이런저런 계산을 하다가 결국 때려치우기로 했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런 자다.
재능이 있으면서 쉬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마음을 허투루 먹지도 않는다.
한 점 망념 없이 나아가되 뒤돌아보는 법 없이 앞으로만 가는 자.
그게 진천희란 인간이었고.
그런 자를 상대로 얕은 수는 통하지 않는다.
“자아, 현아. 준비되었니?”
형은 사마현이 먼저 첫수를 날릴 때까지 기다려 줄 요량이다.
이래서야 셋째 형인 천우와 똑같지 않은가.
사마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갈게. 형~”
그 순간, 사마현의 손끝이 금빛으로 변한다.
천변검만공 면면박피.
사람의 두개골이 문제가 아니라 강기 그 자체를 붙잡아 찌부러트리는 능력이다.
이러한 묘리로 거마의 다리를 뜯었고, 칸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었다.
“오, 거기에 황금왕의 황금수를 결합했구나?”
진천희는 눈을 빛내며 사마현의 첫 수를 태극혜검으로 흘려보냈다.
탕!
분명 손끝에 진천희의 강기가 느껴졌는데, 뜯어버리는 순간 흩어지듯 녹아내렸다.
흡사 내리는 눈을 손으로 쥔 것 같은 감촉.
사마현은 계속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그런 사마현의 공격을 피해 내기 시작했다.
형의 긴 소매가 부풀어 오르며 변초를 만들어 낸다.
탕, 타닥, 탕!
날 없는 공격이 사마현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흘려보내고, 흘려보낸다.
흡사 물을 쥔 것만 같다.
‘파고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걸~ 이거.’
검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사마현은 형의 변초로 이루어진 방어를 지켜보다가 빈틈을 발견한다.
그 사이로 파고들며 손을 뻗는 것이 일수(一手).
그리고 사마현이 깊이 들어오는 순간, 진천희는 기다렸다는 듯 다리를 움직였다.
진천희의 다리가 사마현의 종아리를 쳤다.
사마현의 몸이 뒤로 한순간 젖혀 넘어진다!
팍!
진천희가 사마현의 등을 붙잡아 주었다.
“하체 단련을 더 해야 했다. 현아.”
“그 타이밍에 발을 걸 수 있는 사람은 가가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오, ‘타이밍’이라는 말도 익혔어?”
진천희의 눈이 살짝 떠진다.
어찌 되었건 대련은 대련.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네 악력을 이길 사람은 없을 거야. 허나, 속도가 부족하고 하체를 더 단련해야겠다.”
우드득-
“흠, 내 악력이 그 정도야?”
“대단한 재능이지. 너는 못 느끼겠지만 아마 속도만 보강한다면 네 악력을 버틸 수 있는 자는 없을걸?”
사마현의 악력만큼은 칸에게 닿았다.
그건 귀중한 재능이다.
사마현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런 나를 상대로 지도 대련을 하는 걸 보면 형은 사람이 아니네.”
“헤헤헤. 그래?”
진천희는 푼수처럼 기뻐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때는 꼭 평범한 무인과 다름이 없는데 말이지.’
그때 내관이 달려왔다.
“대협, 대협님들! 다른 대협님께서 오셨습니다요~”
궁중 예법에서 벗어나 있는 게 강호인이건만,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런 내관의 뒤로 당아와 공손영, 그리고 왕각연이 걸어왔다.
“야! 왜 너희들은 안 마셔! 같이 마셔!”
세 사람은 각자 커다란 술병을 흔들었다.
* * *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셋 다 말술이다.
당아, 공소영, 왕각연은 동이째로 술을 마셔도 괜찮은 모양이다.
어디 아프면 금주하라고 잔소리라도 하련만.
진맥을 해보니 셋 다 아픈 곳도 없이 건강 체질 그 자체였고.
그렇게 같이 마신 아우들도 모두 뻗어 버렸다.
“너는 왜 안 마셔!”
“의원이라고 쩨쩨하게 안 마시냐?”
“아, 천희 붙잡아. 붙잡아!”
“먹여!”
그랬다.
“그만해. 그만해! 알코올이……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 난 애초에 술은 맛없다고! 그 쓴 걸 왜 마셔?!”
공손영과 당아가 진천희를 뒤에서 붙잡고 왕각연이 먹이는 지옥의 물귀신 작전이었다.
‘오? 황궁 술은 생각보다 맛있는데……?’
“야, 설마 멋없이 주독 제거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쫄리냐? 진천희.”
빌어먹을.
현대인의 자아 속에서 강호인의 자아가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해독을 포기하고 그녀들의 장난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옥의 승전식.
아니……. 강호인들의 술판.
그렇게 필름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