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68
제 467화
진천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 건에 관해서는 주왕님께 따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공손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은 이미 영이를 통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공손영은 전시 상황에도 인맥을 엄청나게 만들어 놨다.
타고난 성격 덕일까.
주왕님과도 곧잘 이야기를 나누게 된 모양이다.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자금의 출자도 문제지만, 인력 또한 필요하겠군요. 군부에 군마 납품을 할 수만 있다면, 박리다매 형태라고는 해도 단순 상행으로는 벌 수 없는 금액이 될 터이니 말이죠.”
“네. 역시 계산이 빠르시군요.”
이쪽이 할 소리.
진천희가 촉금 비단을 파는 활로를 생각했다면, 공손영은 말을 칠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저희 백린의각은 거기에 껴서 의약품을 판매해 볼까 합니다.”
“호오?”
“단순 금창약뿐만 아니라, 동물에도 듣는 약을 좀 만들어 두었거든요.”
“그렇다면 목장에도 사용할 수 있겠군요.”
당연한 말이지만, 제약이라는 게 항상 처음 정한 표적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용 약을 갖고 시행착오를 하다 보면 자연히 동물용 약도 발견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 시대의 군마는 비싸지.’
보통 말은 달리지 못하면 목을 친다.
이 시대에 걷지 못하는 가축은 쓸모가 없으니 육용으로 가는 게 당연한 섭리이기 때문이다.
허나, 조금 치료한 정도로 군마를 건질 수 있다면 그 약을 사지 않을 세가가 있을까?
“이리되면, 백린의각과 공손상단, 그리고 거래를 트게 될 부족까지 셋 모두 득을 보는 구조가 되는 거죠.”
공손현의 눈이 커졌다.
‘과연 백린의각이로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아주 잘 알고 있어.’
과거 제갈린만이 있던 백린의각은 시한부인 가주가 있는 곳이었다.
건드리면 엿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확장하여 나설 이유도, 그럴 기력도 없었다.
어차피 끝이 정해진 곳이었으니까.
백린의선이라는 신경질적인 천재가 죽기만을 많은 이들이 기다렸다.
그러나 어린 소가주가 들어가는 순간 백린의선은 점차 변했다.
그가 드디어 미래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병이 나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제자에게 전해 주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부분이야 여전하지만, 그래도 흐뭇한 표정으로 제자 관람을 하고 있는 수준까지는 오지 않았나.
마음을 정한 공손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소각주님도 나이가 찼으니 저희 영이와 결혼은 어떠신지?”
“푸흡!”
그 말을 듣자마자 먹던 차를 뱉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한참 기침을 내뱉는 게 이런 얘기는 상상도 못 한 모양이다. 이 사내는.
공손영도 어이가 없는지 소리 질렀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얘랑 나랑 어떻게……. 나이 차가 얼만데…….”
“영아. 여기는 가주로서 온 자리란다. 조용히 하렴.”
공손영이 언니의 말에 얼굴이 시뻘게져서 입을 꾹 다문다.
그때 웃음소리가 울렸다.
“하하하하.”
제갈린이었다.
그가 부채를 탁, 접으며 말을 이었다.
“말씀은 감사하나,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아이이고, 제 제자가 그런 것에 마음이 동하지 않아 서두르진 않고 있습니다.”
진천희도 잽싸게 덧붙였다.
“예에, 지금은 의술 연구하기도 바쁜 상황이라…… 결혼은커녕 남녀지사 같은 것은 전혀…….”
‘내가 공손영이랑 결혼을 하면 내가 도둑놈인가, 공손영이 도둑놈인가.’
아니, 어쩌면 그 ‘자라지 않는’ 능력 때문에 이 육체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진맥을 해보면 딱 그 나이대의 육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자라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시간을 멈춘 게 아닌가 싶을 지경.
왕야와의 잔치 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은왕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금왕야만이 기묘한 눈으로 진천희를 한참 내려다보았을 뿐.
‘솔직히 말하자. 아직 진실에 다가갈 용기가 없는 거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일상이 부서져 버릴까 봐 그게 두려웠다.
그렇기에 진천희는 힘껏 의원 진천희를 끌어안고 있을 뿐.
‘종편 방송이 멀리 있는 게 아니구먼.’
뭐 출생의 비밀, 아기 바꿔치기, 그런 건 종편에서나 볼 줄 알았는데 이리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혼사로 더욱 상황을 막장으로 만드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
‘뭐, 다른 일에 눈 돌릴 여유도 없고.’
공손현이 말했다.
“그나저나…… 이권을 만들면서도 꽤 큰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군요, 소각주. 거기다가 온 힘을 다해 의술을 이끄는 그 마음도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고… 고맙습니다.”
방금 뱉은 찻물을 수건으로 주섬주섬 닦으며 진천희가 답했다.
그런 진천희를 왕각연이 떫은 눈으로 바라본다.
공손현이 태연히 말했다.
“그러면 공손세가와 백린의각은 전보다 더 끈끈히 연수해 나가도록 하지요.”
드디어 한 걸음 걸었는가.
진천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 * *
선목에서 군이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도 잔병 소탕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싹 다 죽일 겁니다. 숙신족은 한 놈도 안 남기고 뒤져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놈들 때문에 잃은 전우가 얼마이고, 그 가족이 몇입니까.”
한쪽 팔을 잃은 병사가 분에 차서 말했다.
그의 동공은 공허한 색으로 텅 비어 있었다.
전쟁터에서 보는 눈이었다.
왜인지 지금이 아닌 먼 곳을 보는 눈.
공허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눈이었다.
진천희는 온 김에 그렇게 병사들과 걸인들을 치료했다.
구휼미를 풀었고, 감자 밭을 함께 일굴 인부들을 모집했다.
지구식으로 하면 뉴딜 정책이었다.
그저 쌀을 푸는 것만으로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그럴 수는 없다.
그것만으로 경제 전체를 부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쌀은 소비되는 소비재이고, 그보다는 기반 사업이 조성되어야 했다.
“그걸……. 이 감자 셋이 해 줄 겁니다.”
“김감자, 이감자, 박감자 말이죠?”
“그렇죠.”
지구로 치면 북아메리카 원산지 김이박 감자가 이제 이 대륙을 점령하리라.
진천희는 값비싼 토분에서 감자 세 개를 꺼내서 밭에 심는다.
셋 모두 서로 다른 품종이다.
그것을 신호로, 선목의 걸인들이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선목에 사는 사람이라면 보통 소나 양을 치는 일이 기본이다.
이 중에 농업을 해 본 이는 많지 않았기에 처음 가르치는 걸 걱정했다.
허나, 감자밭의 난이도는 그래도 논농사 난이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진천희의 지시에 따라 감자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양하게 심는구나.”
스승님의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토질에 가장 맞는 게 무엇인지 알아봐야 하니까요. 실험이 우선되어야 해요.”
그리 말하더니 후다닥 밭고랑 어딘가로 달려가서 이렇게 심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다시 심고는 돌아온다.
“오늘 저녁은 뼈다귀 감자탕이겠고.”
“하하하……. 말고기를 사용해서 만들어 보려고요.”
그렇게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밤에는 객잔으로 돌아와 화선지만 한참 노려보았다.
‘황제에게 보낼 상소.’
황제 페하께 올리는 상소라고 말하고는 풍하은에게 보낼 생각이다.
겉으로는 풍하은은 왕야에 불과하니, 이 정도 부탁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
풍하은 자신이 보기만 해도 이득이고, 풍하금과 함께 봐도 이득이다.
자신이 그분들의 배다른 동생인지 아닌지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허나, 그쪽에서는 깊이 생각을 하긴…… 한 모양이고.
어찌 되었건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는 게 좋겠지.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소를 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
진천희의 눈이 푸른빛으로 한참을 물들다가 이윽고 그가 붓을 고쳐 쥐었다.
“후우, 해 보자.”
이윽고 그의 손은 반듯하게 상소문을 적어 나갔다.
거두절미하고 내용만 말하자면 이러했다.
[삼국시대에 손가의 오국이 산월족을 박해하며 거칠게 대하자, 그들이 들고 일어나 오국이 멸국하는 그날까지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그에 반하여 촉국은 남만을 정발하면서도 그 도량을 보이니, 그들이 절로 탄복하여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나이까?
황제 폐하의 은덕과 대자대비함은 이미 천하가 모두 아니, 이로써 저들을 감화한다면 제국과 저들 모두가 평안할 터이지만 저들을 크게 박해한다면 원수가 되어 대대손손 피를 흘릴 것이니 폐하의 대덕(大德)을 보여 주시옵소서.]
‘이 정도면…… 상소문 형식이 맞나?’
보고서 하나를 쓰더라도 양식을 찾아보는 지구 습관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이 내용을 적기 위해서 수많은 양식들을 섭렵했고, 덕분에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은왕야에게 보내기 전에 스승님께 보여 드리니 약간 놀란 눈치였다.
“분명 너는 과거를 준비한 일이 없거늘…….”
“고칠 부분이 있을까요? 스승님?”
그 말에 스승님은 담담히 답했다.
“옳게 썼다 할 수 있겠구나.”
그는 어디를 고쳐야 할지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일단 고사에 비유하여 황제께 권하는 것은 신하로서 옳은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참조를 많이 했습니다. 스승님.’
한국 조직 사회가 그렇다.
가장 기본은 이 조직이 어떤 양식으로 보고를 하고 건의를 하는지 읽어 보는 것.
어떠한 조직이든 그 고유의 룰이 있다.
사내 문화라고 해도 좋고, 상사의 취향이라고 해도 좋다.
진천희는 그 방식대로 ‘전년_상소문_양식.hwp’를 확인했을 뿐.
제갈린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이 바로 저 남만의 토벌을 한 것은 우리 제갈세가의 시조인 제갈량이시라는 거지. 마지막 생존자이자 가주인 나, 그리고 직전제자이며 후계자인 너. 이것은 일부러 노린 것이겠구나.”
“네. 어떠한 일이든 명분이 필요한 것이기에.”
스승님은 왜인지 난감한 표정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고쳐야 할 부분이 있나요?”
“없단다. 없어서 고민이란다. 아마, 이 상소라면 황제가 주관하는 정회(定會)까지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오오오오!”
“눈 빛내지 말거라. 상소가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반대로 말하면 은왕야께서 더욱 천거 욕심을 낼 터이니.”
‘헤헤헤, 사실 천거하려면 진즉에 하셨을걸요.’
왜인지 그는 진천희를 놔두고 있다.
‘이유를 따져 본다면 결국 권력의 속성 때문일까.’
드디어 단단하게 황권을 구축하였는데, 굳이 경기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백린의각 소각주에 대한 백성의 지지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저나 정회까지 갈 수 있을까요? 진짜 그러면 좋겠는데.”
스승님은 제자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너는 네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모르는구나.”
애초에 과거 시험을 공부한 적 없는 자가 다른 사람의 상소문을 좀 읽었다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양식에 맞춰 상소를 쓴다는 것 자체가 한없이 불가능한 일.
“최소 시경, 법가나 도덕경을 공부하는 유생도 아니고.”
제자가 가장 많이 보는 책은 만초보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