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71
제 470화
“나는 네 판단을 믿는단다, 희야. 흐음, 허나. 이는 단순히 본각의 세력을 넓히려는 이유만은 아니란다.”
“……무엇이죠?”
제자의 질문에 스승은 왠지 흐뭇해졌다.
머리가 다 찬 제자이건만 아직도 가르칠 게 남았다는 것은 스승으로서 기꺼운 일.
“그건 희, 네가 하고자 하는 일 때문이지.”
“엥? 저요?”
놀라서 눈을 홉뜬다.
그 모습이 자못 귀여워 스승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맛에 다들 늘그막에 제자를 키우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본각이 자리한 이 강소성은 위생이 개선되고, 백린의각 분타의 수가 증가했으며, 백린 편의점이 공격적으로 만들어졌고, 물류 유통이 정리되며 사람들의 삶이 크게 개선되었단다.”
“네. 네. 그랬지요.”
“그 결과 신생아의 사망률이 줄어들고, 환자들의 치료 및 생환율도 증가했지. 그러나 이 강소성만 그러하지 않았느냐?”
스승님은 부채를 자르륵 펼치며 말을 이었다.
“다른 지역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의방들이 난립하고, 비누가 팔리고는 있다 하나 위생은 나아졌다 할 뿐,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치안 역시 마찬가지이지.”
“아……. 네. 그렇지요.”
“절강성에 진출해서 정리한다면 좋은 일이겠지.”
“오오!”
스승님이 흔들고 있는 게 미끼라는 것은 알고 있다. 허나, 거부할 수 없는 미끼였다.
‘인류의 진보와 사람 살리는 데에 미쳐 있는 제자라면 틀림없이 물겠지.’
아니나 다를까.
진천희는 흡사 강아지풀 보는 고양이처럼 푸른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동공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절강성……. 좋죠.”
홀린 듯한 저 눈을 보라.
“허나, 명심하거라. 희야. 대다수는 탐욕 때문에 권세를 탐하지만, 때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권세가 필요한 경우도 있단다.”
탁!
“아얏!”
스승님의 부채가 진천희의 정수리를 가볍게 때렸다.
정신이 돌아온 제자에게 그는 말했다.
“사실. 권세가 있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할 수 있겠지만. 종교를 만들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제갈린은 현실주의자다.
제자의 목표가 돈도 권세도 없이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예. 스승님. 잊지 않을게요.”
제갈린이 무엇을 상기시켜 주고자 하는지 알고 있다.
절대로 현실을 무시한 채로 이상만 보고 달려가면 안 된다는 것이겠지.
무월이 말했다.
“그러면 계획을 세워 보고서를 따로 작성해 오겠습니다.”
“그렇게 부탁하네.”
“예. 각주님.”
그때 제갈린이 말했다.
“이리 와서 진맥도 받고 가게.”
“네?”
무월의 눈이 커졌다.
‘내가 드디어 의각주님께 인정을 받은 건가!’
그 모습에 유호와 진천희는 생각했다.
‘소에게 여물을 주시려는 거군.’
인정이 맞다고는 할 수 있으나… 사실 앞으로 더 부려 먹기 위한 단초.
진천희가 말했다.
“보약도 챙겨 드릴게요.”
“세상에, 부각주님께서 직접…….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먹여야지.
잘 먹어야 일도 잘하지.
* * *
거간(居間)꾼이란 중개업자를 뜻한다.
보통은 상단 휘하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지금 진천희를 상대하는 자는 항주에서 가장 큰 상단인 보타상단의 사람들이었다.
“여기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대로에 위치해 있어 물류 이동이 편하고, 유동 인구가 많아서 상권으로서도 훌륭합니다. 이 건물도 지어진 지 이제 겨우 십 년밖에 되지 않아…….”
보타상단의 거간꾼이 진천희에게 무어라 설명을 이어나간다.
진천희는 지금 스승님의 명을 받아 절강성의 최대 핫 플레이스, 항주에 와있다.
현대로 치면 부동산 과밀 투기 지역!
이 미친 집값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1. 절강성의 성도임.
2. 그런데 항구도시이기까지 함.
3. 향락과 사치의 도시라고 알려질 만큼 물류가 풍부함.
중원 모든 유흥지의 알파요, 오메가인 이곳은 당연하게도 집값도, 물가도 비싸기 그지없다.
“그러면 다음 장소를 보여 드리지요.”
이동하면서 진천희는 다시금 항주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동네는 심지어 물을 판다.
현대야 생수를 사 먹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보통 이 시대라면 강이나 우물에서 길어 오면 되는 물을 누가 사서 먹냐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항주는 물을 파는 사람이 있다니까?
물론 양심이 있어서인지 약초를 담근 물이기는 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그런 항주를 거간꾼과 다니면서 둘러보다 보니 추억도 하나둘 생각났다.
우선 사마현과 사마혜를 구했고, 이곳을 통해 보타문이 자리한 주산군도로 향했고.
“뇌진을 만났고.”
삐익-
뇌진은 아는 곳이 나오자 기쁜지 벌써 날개를 푸득였다.
“동파육도 맛있었고.”
컹!
동파육이라는 말에 황구가 꼬리를 격하게 흔든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컹, 컹, 컹!
동파육이라는 단어를 외운 게 틀림없다. 이 녀석!
진천희는 결국 동파육 대신 돼지고기 육포를 황구 님의 입에 물려 주었고, 왜 나는 안 주냐는 뇌진의 격한 항의에 뇌진도 주었다.
‘뇌진은 어째 살이 찐 것 같다?’
영물은 보통 비만까지는 잘 안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인지 뇌진의 뱃살과 다릿살이 오동통해 보인다.
‘아니야. 저건 다 털일 거야. 잘 나는데, 뭘.’
그때 동행하고 있던 보타상단 거간꾼이 말했다.
“다들 통통한 게 귀엽습니다.”
“으음……. 통통해 보이나요?”
“네. 복스러운 게 여간 귀여운 게 아닙지요.”
그래. 우리 애들은 복스러운 거지, 살찐 게 아니야.
이런 진천희가 보타상단의 거간꾼과 다니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스승님의 명 때문이었다.
-희야. 절강성 진출은 네가 해 보거라. 무월 외총관이 제출한 계획서가 제법 쓸 만하더구나. 그 계획을 네가 직접 실행해 보렴. 그러면서 배우는 것도 많을 터.
환자들은요?
그 질문에 스승님은 고개를 저었다.
-환자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상의원들의 실력도 일취월장해서, 이제 어지간한 부술은 전부 사용할 수 있으니까.
상의원들을 너무 키워 놨나.
과연 스승님 말대로였다.
기본적으로 백린의각의 의원들은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강해지려고 무공을 익힌 게 아니라, 강호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오행신공을 익힌 자들.
그들은 어찌 보면 현대 지구 의사들보다 손끝이 뛰어났다.
현대 의료 기계가 없는 대신 진맥이 있었고, 현대인이라고 해도 하기 어려운 봉합이나 절제도 가능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더 나은 부분이 있다는 거지. 의료 기계와 항생제가 발달한 현대랑 여길 바꾸겠냐고 하면 당연히 바꾸겠다만.’
그래도 부술 실력은 무척이나 대단한 것이었다.
거기에 진천희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신의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백린의선 제갈린.
그는 내과의이자 외과의이기도 하니 어지간한 환자는 모두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스승님의 말에 제자는 알았다고 답하고 계획서를 받은 후, 절강성 항주로 오게 된 것이다.
‘뭐어… 왠지 내가 있는 동안 스승님이 몇 놈 목 좀 치실 것 같다만…….’
유약한 제자가 스승님의 본모습에 기겁하여 쓰러질까 걱정하시는 모양이나, 실제 진천희는 별생각이 없다.
그것이 무서웠다면 여하륜이나 사마현을 의동생으로 두지 않았을 터이니.
‘나는 부동산이나 알아보자.’
그리하여 계획서를 받은 후, 절강성 항주로 오게 된 것.
부동산을 알아보는 이유야 간단하다.
‘아예 기반부터 직접 해보는 연습인 거지. 이건.’
단순히 전쟁 이후 선목성에서 땅 사는 것과는 난이도가 차원이 다르다.
그때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땅이 더 많았고. 서로 앞다투어서 땅을 팔려고 했다.
전쟁 이후 풍경은 늘 똑같다.
제아무리 대단한 공훈과 훈장, 황금보다도 먹을 게 더 귀했다.
그에 비해 항주는 이미 땅값이 금값이다.
‘거기다가 여차하면 눈탱이 맞기도 좋고.’
공인중개사도 없는 이 세계에서는 자칫하다 눈탱이 맞기 일쑤다.
그렇게 거마꾼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동안 호위 무사는 연신 사주경계를 하며 진천희를 쫓았다.
“소각주, 거 좀 조심해서 움직입시다.”
“네?”
“주변 좀 돌아보시죠.”
“흠?”
사방에는 진천희를 쫓아서 모여든 행인들이 보였다.
용모파기가 많이 알려진 탓일까. 아니면 황구와 뇌진 탓일까.
아이 하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얼굴이 붉어지더니 후다닥 행인들 뒤로 숨었다.
사람들에게서 ‘벽안광의’라는 말이 들렸다.
“이거…… 나중에 개를 떼어 놓든, 새를 떼어 놓든 해야겠군요.”
컹컹!
삐익!
“그게 싫으면 멱리라도 쓰시죠. 얼굴이라도 가리게.”
‘나도 항주의 유명 인사가 다 되었구만.’
그리고 만선도 걱정이 늘었다.
백린대 사 대주 만선.
백린대란? 백린의각 세력이 커지며 무력대의 이름을 백린대로 바꾸게 된 것.
그리고 더욱 크게 개편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 대주 만선과 수하 열 명이 따라오게 되었고.
부동산을 보러 다니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스승님이 시켜서 하기는 하는데……. 다른 소가주들이 들으면 희한해할 명이기는 해.’
스승님의 명은 정확히 이렇다.
1. 일단 땅 하나를 산다.
2. 그리고 의방을 하나 연다.
3. 의원들을 불러서 영업을 한다.
4. 그리고 주변의 흑도와 사파의 방파를 공격해 정리하고 재산을 흡수한다.
5. 전부 진천희가 직접 진행해야 한다.
‘아니……. 1~3번은 이해가 가는데 4번은 뭔데?’
그 과정에서 은원이 안 생길 리가 없다.
허나, 스승님은 그 은원조차도 등에 지고 싸워 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에 대한 소문이 제법 많이 났을 텐데……. 사파나 흑도 방파들이 나랑 싸우려고 하기는 하려나 모르겠네.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하나?’
아니면 강호의 이성을 고평가한 걸까?
하긴 무당권제 님도 그 자리에 올랐지만 권제 님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하룻강아지들이 늘 있다고 듣기는 했지, 아마?
스승의 깊은 뜻을 고민해 보지만,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진천희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쪽 지역은 뜨죠.]“네?”
만선이 당황했다.
[저는 여기 왔다가 가는 것으로 하고, 며칠 쉬었다가 역용술로 얼굴을 바꾼 후 다시 오겠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네. 일단 의각을 여는 동안에 이렇게 사람이 모이면 번거로우니까요. 나중에 의각을 열고 나서 정체를 다시 밝히면 되는 거잖아요? 그동안 만선께서는 저를 호위해 나가는 시늉만 해 주세요.] [으음…….]만선이 고민에 빠진다.
[원하시면 동행해서 나가는 척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부탁드립니다.]빈틈이 없으시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스승님의 명대로 강호의 밑바닥을 즐겨 보실까.’
사마현이 구른 항주다.
그 아이가 구르는 동안 누구 하나 손을 안 내민 곳이 항주이고.
이 만만치 않은 동네에서 벽안광의라는 별호를 가진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백린의각 소속 의원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사람 치료하는 건 자신 있는데 주변 흑도와 사파 방파를 패서 재산을 갈취하는 게 문제네.’
허나, 진천희는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실함으로 이 일을 판단했다.
멀리 보기보다는 손에 닿는 것부터 해 보는 것.
즉, 일단 패 보자.
돈을 뱉을 때까지 패다 보면 뭔가 이루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