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75
제 474화
다음 날.
새벽부터 진료 막사에 사람들이 다시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형이 하는 일은 늘 똑같다.
모두 함께 물을 뜨고, 물을 끓인다.
전보다 많은 빈민가 사람들이 함께 우물에서 물을 떴다.
어제는 세 번을 왔다 갔다 했지만 오늘은 두 번 정도면 될 정도로 많은 물이 모였고, 많은 장작이 모였다.
모양은 가지각색이고 마른 정도도 가지각색이나, 장작으로 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물을 끓인다.
“이 시대에 끓는 물은 소중한 자원이지. 물도 땔감도 많이들 보내 줘서 수고를 덜긴 했는데, 그래도 장작을 더 준비하는 게 좋겠다. 이제 슬슬 겨울이니까.”
항주 새벽에 입김이 희게 서렸다.
진천희는 함께 온 호위 무사들에게 각각 세부적인 지시를 내렸다.
천우 역시 형의 지시를 받아 도끼를 들었다.
천우의 일은 간단하다.
땔감을 한 번 더 반으로 자르는 일이다.
형은 벽돌로 아궁이를 기이한 모양으로 쌓은 후에, 그 위에 진흙을 바르고, 철통을 구해서 연기가 빠지는 구멍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아궁이는 보통 아궁이보다 더 오랫동안 불이 유지되었는데, 대신 그렇게 하면 단점이 있다.
장작을 보통 것보다 더 잘게 잘라 넣어야 한다는 것.
‘권제님께서도 도끼질 엄청 시키셨지.’
도끼질은 상체 근육 단련에 좋다.
거기다가 힘 배분이 잘못되면 척추가 나간다.
권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끼질을 하다가 목과 등에 더 하면 끊어질 것 같은 위험한 느낌이 오면 그건 잘못된 자세로 휘두르고 있는 거니 알아서 ‘잘’ 고치라고 했다.
덕분에 천우는 인간 장작 머신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장작을 깨부수고 있다.
“오우, 잘하는데?”
형은 엄지를 척 들어 칭찬했다.
형이 기뻐하는 걸 보니 천우는 뿌듯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막 뜨기 시작할 즈음, 호위 무사들이 마차와 일꾼들과 함께 나타났다.
쓰디쓴 약초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천우야. 장작 다 팼으면 이리 와 줄래?”
“네, 네. 형!”
진천희와 상의원들은 약재들을 빠르게 분류했고, 그중에서도 자주 쓰는 턍약 재료들은 한곳에 전부 소분해 놓았다.
“내공을 써서 이 약재들을 빻을 거야. 네 태청신공이라면 충분히 잘할 거다. 이거라면 곱게 빻을수록 좋으니까 얼마나 갈아야 할지는 신경 안 써도 돼. 최대한 가루처럼 만들어.”
“넵!”
“착하다. 내 동생.”
진천희는 천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다시 환자를 치료하러 들어갔다.
천우는 자리를 잡고 약연기를 받았다.
약재를 빻을 유발과 약 맷돌, 약선(藥船)이다.
‘이걸 태청신공으로 하라고?’
천우의 몸집에 비해 약연기들이 너무 작다.
특히 도자기로 된 유발은 힘을 주면 깨질 것 같아 불안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백린의각 무사들이 영혼 없는 눈으로 약을 갈고 있었다.
천우가 잡은 건 약선.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위에 있는 바퀴를 굴려서 약재를 빻는 데 쓴다.
일단 내공을 넣지 않고 해 봤다.
드륵-
한 번 바퀴가 구른 정도로는 빻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태청신공을 조심조심 넣어서 빻아 본다.
드르륵-
확실히 내공을 넣으니 더 잘 빻아진다.
하지만,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벌써 어깨 근육이 뻐근해지는 기분이다.
‘형이 그랬지. 내공을 한계까지 탕진시키고, 채우고, 다시 그것을 쏟아내고 채우다 보면 단전과 기경팔맥이 단련될 수밖에 없다고.’
허나, 자신은 음과 양을 사용하는 무당의 태청신공을 가지고 있으니, 음기와 양기를 고루 균등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건……. 수련이 될 수밖에 없군.’
형은 계속 이렇게 자신을 단련해 왔던 걸까.
사람을 살리는 행위도 무학으로서 단련이 된다는 건가.
신기했다.
* * *
천우는 약초를 곱게 갈고, 의원들은 그것을 말리거나 곧바로 탕약으로 만들거나, 또는 환자에게 주기도 했다.
어느 약초가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의원이 아니니 알 수는 없으나 태청신공을 어느 정도 사용해야 약초가 곱게 갈리는지는 알 것 같았다.
‘내력을 많이 쓴다고 더 잘 갈리는 건 또 아니구나. 이거.’
효율적인 발출이 중요했다.
드륵, 드르륵-
천우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허나 집중한 그는 그조차도 잊어버리고 태청신공을 어떻게 발출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했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걸 깨달았다.
“밥 먹자.”
형이었다.
“아, 형. 언제부터 와 계셨던 겁니까.”
“방금 왔어. 집중하고 있기에 좀 흐름이 끊길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군요.”
천우가 그제야 약선에서 손을 뗀다.
그 순간, 양팔이 자르륵 울리더니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헉!”
가쁜 숨을 내쉬는 천우의 입에 동그란 환약이 하나 쏙 들어갔다.
“씹어서 삼켜.”
형의 말에 억지로 입에 침을 내서 환약을 씹고는 죽처럼 뭉글해지자마자 삼켰다.
얼마나 쓴지 토기가 밀려올 정도였다.
진천희가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내력을 장시간 반복해서 발출한 건 처음이지?”
“네.”
“괜찮아. 처음치고는 잘했어. 밥 해 놨으니까 회복되는 대로 일어나서 먹으면 돼. 우선 운기조식부터 하자.”
천우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억지로 가부좌를 하고는 내력을 주천시켰다.
텅 빈 단전에는 한 톨의 내기밖에 남지 않았다.
거기다가 영산인 무당산도 아니다 보니 내력이 쌓이는 속도도 느리기 그지없었다.
이런 곳에서 대체 왜 내력을 탕진하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걸까.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뜨니 형은 그곳에서 여전히 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히 밤이 되었다.
“내력이 잘 안 쌓이지?”
“타지가 원래 그렇죠.”
“그래. 하지만 굳이 좋은 영산에서 정순한 기만 받아먹을 필요 없어. 감자가 빗물을 가리지 않듯,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편이 더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
“……?”
“그래. 말로는 이해가 잘 안 갈 거야. 괜찮아. 몸으로 깨달으면 되니까.”
진천희는 천우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천우의 배가 눈치 없이 꼬르륵 소리를 냈다.
얼굴이 붉어지는 동생을 보며 형은 말했다.
“밥 먹자. 늦었지만 원래 튀긴 닭은 다시 데워도 맛있어. 아니다, 아예 조각내고 계란 입혀서 덮밥처럼 해 먹자. 닭고기 계란 소보로 덮밥!”
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항주는 절강성의 성도이니만큼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 별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지냈던 진천희의 입장에서는 또 그렇게 엄청난 정도는 아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항주의 인구는 대략 오십만 명 정도.
이 정도면 전생 기준으로는 소도시에서 중도시 정도의 규모랄까.
서울의 인구가 천만 명이고,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있는 부산은 오백만 명 정도 하니까.
항주는 대한민국으로 치면 부산과도 같은 곳인데, 그 인구는 부산의 십 분지 일 정도 될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등록된 인구일 뿐.
관광이나 상업을 위해 움직이는 유동 인구와 관청에서 파악하지 못한 인구를 생각하면 더 많겠지.
일단 의방에 가서 치료를 받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한 이들은 그중에서 약 절반은 될 거라고 봤다.
나름대로 먹고살 만한, 집도 번듯하고 직업도 확실해서 일하며 먹고살 정도는 버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물론 결코 풍족한 것은 아니다) 그들을 직원으로 쓰고 있는 중산층, 그리고 놀고먹는 부호들의 합이 다른 절반을 차지할 것이다.
과거 사마현과 사마혜, 그리고 사마현을 따르던 아이들처럼 관청에 출생 등록도 안 될 정도의 아이들은 더 많을 거고.
그 아이들은 의원을 보는 것보다 아편을 구하는 쪽을 더 선호한다. 아편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값이 싸니까.
‘단순 계산을 한다고 해도 하루 백 명씩 백 일 치료하면 겨우 일만 명인 셈이지. 백 일이면 얼추 석 달.’
거기에 드는 자금 계산까지 하다가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원래 자선사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지.’
그래서 생각을 조금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다.
인구 절반이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는 이들이라지만, 이들 중 실제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에 걸린 이들의 수는 다시금 줄어든다.
통신도, 기록 장치도, 그리고 통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이 무림 별에서 그 인구를 제대로 알아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백린의각이 그간 만들어 온 통계 자료로 추측해 보면 적어도 15% 정도는 크고 작은 병을 앓고 있지만 치료를 못 받는 이들일 것이다.
즉.
이십오만 명의 사람들 중 삼만칠천오백 명 정도는 환자일 것이다……라는 게 진천희의 예측.
물론 제대로 된 통계학을 배운 것도 아니고 엉망진창의 가설적 추론에 불과하기에 오차는 클 테지만.
그렇다 해도, 대략적인 단순 계산으로도 거의 일 년을 소모해야 이들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수준이라는 소리다.
가벼운 병 정도면 그래도 치료 가능하다만, 중병 환자가 있으면 기간은 하염없이 늘어만 갈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복지의 영역인가.’
그건 위정자가 할 일이다.
그렇다면 의각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일까.
‘자선사업이 꽤 중요한 일이긴 하지. 화주의각도 정파와 손을 잡은 의각이라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이따금씩 빈자들을 치료해 주고 그 명성을 기반으로 지역 토호(土豪)들과 관계를 구축하니까.’
칼 든 유교 사회에서 명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오늘은 사람을 도살하지만 내일은 군자의 도를 따르길 바라는 게 이 바닥 아닌가.
‘백린의각도 화주의각과 똑같이 할 수야 있지. 그런데 기왕 돈 쓰는 거, 보여 주기식으로만 하고 끝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화주의각의 방식은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다음 주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 낙차로 인해 인망을 더 얻을 수는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왕 인력과 돈을 쓴다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
‘백린의각 의원들을 일정 기간 상주시키고, 하루 동안 꾸준히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한다면 어찌 될까.’
대단한 병을 치료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된다.
중의원, 하의원이 병을 처치하고, 본인 손으로 안 되는 것은 상의원이 있는 분타로 보내면 된다.
가뜩이나 중의원, 하의원들은 실습을 할 기회도 많지 않다.
세도가의 사람들은 간단한 드레싱조차도 상의원이 해주길 바란다.
과거 유호가 내쫓았던 그 진상 환자가 절대 드문 일이 아니다.
상의원의 붕대 감기에 중의원, 하의원을 뛰어넘는 스페셜한 무언가를 원하는데, 그런 거 없다.
같은 붕대 감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의원과 하의원이 나설 기회가 적어진다.
‘거기다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백린의각의 중의원들은 다른 의각의 상의원의 수준을 뛰어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