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79
제 478화
다음 날.
긴급히 2층짜리 건물을 하나 더 구했다.
여기는 새로 지을 것도 없이 원래 있던 객잔을 구매했다.
“아이들은 그곳에 거주하게 하고, 백환후에 전부 가입시키죠.”
그러고는 만선을 시켜 백린의각 본단에 백환후 쪽 관리 인력을 요청하라고 이야기를 해 두었다.
만선이 움직이는 동안 진천희는 곧바로 천우와 함께 낭인 시장으로 향했다.
낭인(浪人).
강호의 떠돌이 무인들이 이 사람들이다.
연무 도시를 가장 많이 찾는 무인들도 낭인 출신들이고.
이 사람들은 이런저런 의뢰를 받아 먹고사는데, 대부분 칼로 버는 일들이다.
해결사 노릇을 하는 자들도 있고, 추적이나 산적 토벌을 위해 고용되는 자들도 있다.
이를테면 과거 인연이 있었던 삼절추호가 대표적인 낭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런 낭인들의 일거리를 주선해 주는 업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이들도 역사가 꽤 될 수밖에.
그렇다고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용병 길드와는 또 다르다.
무협 쪽은 업체가 중구난방인 데다가 통일되어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항주에도 그런 곳이 존재했다.
‘아니, 항주라서 그런 곳이 더 크게 존재하지.’
만풍거간소(晩風居間所).
“항주에서 유명한 낭인 인력 사무소라고 하더라고요. 본래는 거간꾼으로 이거저거 다 했었는데, 지금은 낭인 인력만 한다고 들었어요.”
“어째 잘 아는구나? 천우야.”
“하하하, 강호행을 하며 일전에 일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그랬다. 낭인뿐만 아니라 천우처럼 이렇게 강호행을 할 때 무인들이 돈을 구하기 위해 거간소에 들르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무당권제께서 천우에게 편히 유람 다니라고 용돈 주실 양반이 아니니 더더욱 그렇겠지.
천우가 말을 이었다.
“본래는 낭인 거간 업체가 몇 곳 있었는데. 만풍거간소가 유명해지면서 다른 업체는 문 닫았다고 하더라고요.”
“오우, 경쟁 업체들을 죄다 삼도천 보낸 거야? 상당한 곳인 모양인데?”
“네. 만풍거간소의 주인도 항주에서 명성이 높은 강호인으로, 별호가 만풍대부(晩風大斧).”
상당히 독특한 별호다.
천우가 말을 이었다.
“약 삼십 대 중후반 정도의 여성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더 많더라고요. 무위도 화경에 이른 고수로서, 세간에서는 낭인왕이라는 별호로도 불려요.”
“낭인왕이라. 상당한 별호인걸?”
“네. 그 무위가 십 대 고수에는 안 들어가나 강한 건 사실이라고 들었어요. 실제로도 풍기는 기도가 상당합니다.”
낭인왕이라는 별호를 유지하려면 그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무위가 있는 것도 당연하려나.
진천희는 생각했다.
천우가 말했다.
“추종하는 낭인들도 상당히 많아서 항주에서 나름의 세력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죠.”
“대단한 자인걸.”
진천희는 턱을 문질렀다.
* * *
만풍거간소를 찾아가니 넓은 마당을 소유한 3층 전각이 보였다.
건물 자체가 삼 층인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 전체가 흡사 인력 사무소처럼 북적였다.
노점 시장처럼 좌판이나 천막을 펼치고 각자 소리를 질러댔다.
“유사시 왜구와 싸울 무인을 모집하고 있소!”
“보타상단에서 임시 표사를 구인 중이오! 신원이 확실한 경력 무인만 추릴 것이오!”
“실종된 이를 찾는 일을 하실 자가 있소이까? 추적술로 이름이 높은 일급 낭인만 가능하오!”
좌판 뒤에는 칠판 같은 판이 있어 수많은 종이들이 붙어 있었고.
낭인들은 좌판의 외침을 들으며 각자 자기가 맡을 일이 있는지 살폈다.
“왜구…를 마주치지 않았을 시에 돈은 지급하오?”
“기본급만 주게 되어 있소. 하시게? 좋은 생각이오.”
각자 무인들은 어떤 일을 받을지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타상단은 돈을 많이 주나 어렵기도 어려워서 걱정이군.”
“아마 해양운수를 끼게 될 확률이 높으니 수적을 만날 수 있겠군.”
“보타문의 검수가 대동하는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좀 더 안전한 상행이 가능하겠지.”
자신의 목숨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낭인은 스스로 그 일의 위험성을 파악해야 하고, 그 위험성에 사례가 적합한지도 판단해야 했다.
이런 곳에서 일을 받아가는 낭인들은 대부분 이류에서 삼류 정도의 무인들.
언제든 눈먼 칼에 이슬이 되어 사라질 수 있다.
“그나저나 형은 왜 이곳을 찾는 겁니까?”
“하하하, 빨리 물어보는구나, 천우야. 본단에서 충원할 무력대가 오기 전에 일단 임시라도 보호 인력을 충원하려고 그래.”
“하긴, 확실히 그게 중요하겠네요.”
“응. 앞으로의 싸움을 생각하면 그렇지. 본진을 지켜야 가능하니까.”
항주 분타 1호점에도 백린대가 상주해 있지만 그 숫자는 딱 1호점을 지킬 수준의 것이라 할 수 있고.
2호점을 세우는 와중에 보호를 위한 호위 인력이 필요했다.
특히 앞으로 항주를 들쑤시려면 무인은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거간소를 찾은 것.
천우의 안내를 따라 시장 바닥 같은 마당을 지나 건물로 향했다.
천우는 익숙한지 문지기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백린의각 소각주이신 진천희 의원께서 오셨으니, 거간소의 주인께 안내해 주십시오.”
문지기가 살짝 놀랐다.
“앗, 천우 도사님 아니십니까. 백린의각 소각주이시라면 일과……ㅇ…… 아, 아니 백의무룡!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진천희가 물었다.
“어라? 백의무룡은 또 뭐래요? 무슨 별호가 이렇게 자주 바뀌어?”
그 말에 문지기가 멋쩍게 말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강호에서 활동하신 지 연차가 조금 되셨잖습니까? 신룡은 강호초출에게 몇 년 동안 붙여 주는 별호니까요. 그래서 무룡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실례입니까?”
“아닙니다. 음… 일광보다는 낫죠.”
진천희의 말에 문지기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일광이라고 말할 뻔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 주고, 진천희는 안으로 들어갔다.
“무룡(武龍), 나쁘지 않네.”
“형의 지금의 무위를 생각한다면 딱 알맞은 별호죠.”
그래. 일광보다는 낫다. 일광보다는.
얼마나 더 들어갔을까.
백의무룡이 나타났다는 말에 잘생기고 다부진 체격의 미남자가 나와 진천희를 맞이했다.
“백의무룡을 뵙습니다. 저는 이 만풍거간소의 잡일을 맡고 있는 묵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묵달 소협.”
진천희와 천우 모두 예를 갖추었다.
묵달이라는 자는 기도가 제법인 것이 적어도 초절정 고수로 보였다.
‘이런 자가 잡일을 맡고 있다고?’
스스로를 낮추어 말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잡일꾼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한 실력자로 보였다.
그는 쾌활하게 말했다.
“다른 용무였다면 밖에서 보셨을 터이고, 백의무룡 대협이라면 아무래도 소장님을 만나고자 오신 것이 아닌지요?”
눈치도 빠르다.
“네, 맞습니다. 낭인왕이라 불리는 그분을 뵙고자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역시 단순히 잡일꾼으로 보이지 않았다.
문득 진천희는 사내에게서 낯익은 기도를 느꼈다.
‘뭐지?’
딱 짚어 말할 수는 없으나 왜인지 그의 걸음걸이나 행동거지가 어디선가 본 적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일단 그는 앞장서서 걸어갔고.
진천희는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삼 층을 올라갔을까.
묵달이 외쳤다.
“소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아이, X팔! 먼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이야? 들어와!”
허스키한 목소리나 듣기 좋은 미성이 크게 울렸다.
“약간 기분이 상하신 모양이군요.”
진천희의 말에 그가 답했다.
“본디 미인은 잠이 많은 법이라 하지요. 개의치 마십시오.”
드륵-
문이 열리자 큰 침상에 누운 여성이 술병으로 나발을 불고 있었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지도 않아서 옷자락이 대충 흐트러져 있었는데 옷 사이로 보이는 것은 모두 근육.
그것도 외공을 극한까지 단련한 근육이었다.
“해장술 좀 느긋하게 먹으려고 했더니만.”
8척의 키에 두터운 근육으로 이루어진 전신 근육질, 그리고 큰 눈에 강한 인상을 가진 여인이었다.
“항주제일미이신 낭인왕, 목담화이십니다.”
“얼어 죽을 항주제일미. 캬악, 퉷!”
참고로 강소제일미는 스승님이시다.
아름다움은 시대와 지역마다 매번 다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밀로의 비너스가 다르듯 아름다움이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
강호에서의 미인이란 현대의 패션모델처럼 가늘고 낭창한 미인상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날 선 병장기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뜻한다.
사람들이 스승님을 비유하기를 태검(太劍)과 같은 미인이라고 표현하는데, 항주제일미 목담화는 한 자루의 청룡언월도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쿠웅!
그녀는 광배근의 힘만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흰 피부와 부리부리한 눈매.
아마조네스와도 같은 근육의 힘!
그녀는 거대한 체구만으로 공기를 압도시켰다.
‘과연 항주제일미군. 풍겨 오는 기세가 남다르다.’
보는 것만으로 압도될 것 같은 미인.
그 웅후한 투기에 진천희는 긴장감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묵달은 낭인왕에게 말했다.
“소장님. 백린의각의 소각주님이 오셨습니다.”
“일광?”
그 순간, 어깨를 타고 한쪽 옷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터운 등세모근을 타고 삼각근까지 드러나자 묵달이 한숨을 쉬었다.
“소장님. 제발 좀……. 손님 오셨는데 옷 좀 입으세요.”
“아. 네가 입혀 줘. 귀찮게.”
“죄송합니다. 소각주님, 잠시 채비 좀…….”
묵달은 한숨을 쉬며 잠깐 안채의 문을 닫았다.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소리가 사륵, 사륵 들렸다.
[음, 낭인왕께서는 여전하시네요.] [털털한 편이시구나.] [애초에 타고난 근골 자체가 항주제일미로 꼽힐 만큼 기상이 남달랐고, 성정 역시도 호쾌하여, 저래 보여도 주변에 인덕이 많다고 들었어요.] [주왕야와 비슷한 면도 있는걸.] [그분도 무골이 상당하시고 술 좋아하시고, 굳이 분류하면 같은 과죠.]그렇긴 하다.
그래도 유교 사회에서 남녀가 유별한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어깨 아래를 드러내도 되는 걸까 걱정은 좀 되긴 했다.
‘뭐, 천우야 맞는 도복이 없다 보니 자꾸 가슴이 보이기는 하는데.’
낭인왕이 돈이 없어 옷을 못 맞추진 않을 거 아닌가.
진천희는 벌게진 얼굴로 낭인왕이 옷을 다 입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드르륵 열렸다.
거기에는 한숨을 쉬는 묵달과 새 옷으로 갈아입고 의복을 정제한 거한의 낭인왕이 앉아 있었다.
술병은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하하하, 만나서 반갑네. 일광. 아, 내가 연배가 더 높으니 말 놔도 되지? 이 몸도 이 거간소의 소장이니 백린의각 소각주에게 결코 꿀리지 않아.”
낭인왕이 큰 눈을 삼백안으로 뜨자 긴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그 지역의 ‘제일미’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근골도 뛰어나야 하나, 이목구비가 가지런하여 용모도 수려해야 한다.
천하제일미이자 강소제일미인 제갈린과는 다른 분위기였으나 그녀 역시 뛰어난 미인이다.
“편하신 대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소장님. 백린의각의 소각주인 진천희라고 합니다.”
“들어오게. 술…….”
한잔하라고 말하려는데 묵달이 그만 좀 마시라고 눈짓을 한다.
결국 낭인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차라도 한잔 대접하지.”
혹시나 상사가 마음이 바뀔까 싶어 묵달이 재빨리 말했다.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질 좋은 항주 미인차가 들어왔는데 당장 들고 오도록 하지요.”
“X발.”
낭인왕은 욕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