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8
제 48화
페니실린.
즉, 푸른곰팡이를 이용한 항생제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만들어졌다.
시행착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절이 끝나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진천희 눈앞에 있다.
‘이게 되긴 되네.’
유리병 안에 든 액체를 보면서 진천희를 혀를 찼다.
‘아무리 빨라도 이 두 배는 걸릴 줄 알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지난 한 달. 눈만 뜨면 일에 매진했다.
수련, 연구, 개발.
세 개의 트랙을 달렸다. 스승님이 배당해 준 각각의 의각원들을 통솔하고, 유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결과 샘플을 뽑고 그걸 기록하고, 다시 시도한다.
‘돈도 시간도, 방법도 있는데 못할 이유가 없잖아.’
유호에게 생강시도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욕을 들었다.
진천희가 갈린다는 건 유호도 갈린다는 뜻이므로.
스승님이 맺어준 노동 공동체.
전우애는 없고 증오밖에 없는 둘이었지만 일에 관해서는 꽤나 손발이 맞는 편이었다.
‘유호는 좀 더 일을 할 수 있어.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더 할 수 있어!’
진천희는 어떻게 하면 놈을 더 부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진천희가 지옥의 쳇바퀴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오행진기 덕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굳이 더 다른 이유를 찾자면 젊음.
‘뇌가 지치질 않네. 기억력도 향상되고 수면 효율도 좋아. 수련의 때보다 빡세게 생활 좀 한다고 내공 심법의 성취가 이렇게 늘 줄은 몰랐다니까.’
어린아이의 얼굴이 느물거리는 아재의 미소로 변했다.
‘역시 어린 게 좋아. 어리니까 회복도 빠르고 머리도 팽팽 돌고 안경 없이도 다 보여. 아침마다 힘들었던 신경통도 이제는 사라지고.’
수술하면서 깨달았는데 손끝의 감각이 그때보다 더 예민해졌다.
팔다리가 짧다는 건 아쉽지만 감각이 예민하고 회복력이 좋다는 건 천금으로도 살 수 없는 재산이었다.
유리병을 흔들며 진천희는 웃었다.
‘내공 고수가 되면 노화 속도도 늦춰진다지. 천운이 따라서 반로환동이라도 되면 젊어질 수 있고.’
대표적인 예시가 스승님 아닌가.
스승님의 나이에 대해 진천희로서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운룡표국 국주와 연배가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나이만 보면 중년 내지는 장년의 나이.
오행신공은 수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의 활력과 균형을 맞춰 준다.
무예보다는 양생이 메인이다. 배우는 게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의원에게 있어 이만한 내공이 없다.
덕분에 스승님의 얼굴은 20대 팽팽한 얼굴이다. 신체 역시 나이를 잊었다.
병이 문제일 뿐, 스승님은 죽을 때까지 나이를 거의 잊고 사실 거다.
스승님의 미모가 진천희에게 더욱 동기를 부여했다.
‘나도 팽팽한 얼굴! 빠락빠락 잘 돌아가는 관절! 햇빛 아래에서 세포 안 보이는 눈알!’
그랬다. 진천희의 절박함은 그 나이의 세가 아이들이 가지는 목표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통 진천희 나이의 아이들은 무공 고수가 되어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푸른 꿈을 꾼다. 하지만 푸른 만큼 멀기도 했다.
반면 진천희는 노화를 경험을 해 봐서인지 눈앞의 실리를 쫓았다.
스스로 자처한 지옥 같은 생활.
그 생활은 진천희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
내공의 운용은 이제 완벽하다고 할 정도가 되어서, 오행심법의 성취가 무려 팔 성에 도달해 있었다.
자고로 먼 꿈보다 눈앞의 실리가 더 큰 동기를 부르는 법이다.
그 성취에 진천희 자신도 놀랐다.
‘스승님 말씀으로는 극도의 피로와 빠른 회복을 반복하면서 몸이 자연체에 가깝게 변하고 있다던데…… 한마디로 미친 노가다에 몸이 단련되고 있다는 건가?’
유호는 독한 놈이라고 혀를 찼다.
제갈가가 양생이 특성인 무공이라 다행이지 다른 무공이었다면 골병 들었을 거라고 했다.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
‘오행신공하고 현원전단신공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게 신의 한 수군. 오행심법 육 성부터 전수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미 팔 성이잖아?’
오행신공은 오행심법의 상위 심법이다.
그것은 천하에서도 유명한 신공절학 중 하나이지만, 익히기가 지극히 까다로워서 익힌 이가 거의 없는 무공이다.
제갈세가의 무인들 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이 수련하는 이 신공절학은 오행진기를 다루어 자연지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승인 제갈린도 오행신공을 대성하여 화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아니던가?
거기에 더해서 현원전단신공은 더욱 대단했다.
제갈세가의 비전 신공으로, 사실 내공진기를 따로 만들어 내는 종류의 내공 심법은 아니었다.
내공을 소모해서 없애는 무공!
그런 무공을 왜 익히겠냐고 하겠지만,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이걸 반드시 익혔다.
내공을 소모해서 뇌를 활성화하고 그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신공절학!
기억, 암산, 인지를 비롯한 뇌의 모든 기능을 향상시키기에 둔재를 범재로 만들고, 범재는 수재가 되며, 수재는 천재로 발돋움하게 만든다.
천재가 익힌다면?
천하를 오시할 두뇌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제갈세가의 비전신공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 현원전단신공 역시 전수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당장은 완성된 페니실린을 실험해 봐야 했다.
“그래서 만족하셨습니까?”
유호가 옆에서 불퉁한 얼굴로 말을 걸어온다.
“그럼. 엄청나. 역시 유호야. 우리 노ㅇ……가 아니라 만능 간호사!”
“방금 노예라고 부르려고 한 거 아닌가요?”
“에이, 그럴 리가!”
“하하하, 도련님. 요즘 들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셨군요.”
살기가 유호를 중심으로 밀려왔다.
예전이라면 공포로 머리 한구석이 하얗게 굳었을 테지만 지금의 진천희는 달랐다.
진천희는 유들거리며 태연히 자기 일을 해나갔다.
‘늘긴 했군.’
단순히 내공뿐만 아니라, 배짱도 늘어 가는 게 보였다.
‘물론 그래 봐야 얇은 목이지.’
원한다면 언제든지 끊어 버릴 수 있는 목이었다.
제갈린이 끼어 있지 않았다면 골백번도 비틀어 죽였을 터였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유호는 그리 생각하며 살기를 거두었다.
“그래서 이게 대체 뭐 하는 약이기에 이렇게 거창한 작업이 필요했던 겁니까? 아무리 봐도 서역의 연금술 장비 같은데.”
“서역에 연금술이 있어?”
진천희는 의아함을 담아 질문했다.
지존천마는 분명 무협 소설이고, 그 세계는 화 제국이라고 하는 동양풍의 제국이 무대이다.
이 화 제국의 넓이는 무지막지해서, 실제 그 시대의 중국보다도 거대한 넓이를 자랑했다.
그리고 소설상에서는 언급만 되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서역이라고 하는 지역이다.
색목인이 사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그 외에는 묘사가 거의 없어서 어떤 지역인지 알 수 없었다.
“있죠. 이 화 제국에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지만요. 연단술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녀석이죠. 그쪽에서는 마술과 마법이라고 부르는 비전지식의 일부이기도 하고요.”
유호는 진천희를 의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서역에 연금술이 있다는 걸 모르신다라…… 그런데 그 비슷한 걸 만드는 건 어떤 이유인지 저엉마알 궁금하네요. 주인님도 의문스러워하지 않으실까 싶은데요.”
“글쎄. 나는 유호가 이걸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더 궁금한걸? 그리고 스승님은 의문스러워하지 않으실 거야. 그럼. 누구 스승님인데.”
“흐으음.”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한다.
“뭐. 좋습니다. 도련노……님의 실력은 이제 의심하지 않으니까요. 주인님이 건강해지신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죠? 이 약이 무엇인지도 좀 설명해 주시면 좋겠군요.”
“방금 도련놈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유호?”
“잘못 들으셨을 겁니다. 제가 노예라고 잘못 들은 것과 비슷한 이치죠.”
“…….”
진천희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스승님의 건강이 중요하지 뭣이 중요하겠어. 그리고 이 약은 말이지…….”
진천희는 병을 보며 밝게 미소 지었다.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래. 제한적인 만병통치약이라고나 할까.”
페니실린에 대해 이 이상으로 좋은 설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진천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었지? 간단하잖아. 실험해 봐야지.”
“사람에게 말입니까?”
“그래. 우선은 동물에게 해야겠지만.”
“바로 사람에게 해도 좋을 텐데요. 굳이 그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자원하는 환자는 많을 겁니다.”
역시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인 세계다.
진천희가 망설이자 유호가 말을 이었다.
“환자는 늘 넘치고 대다수는 치료약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공짜 치료를 마다할 사람은 흔치 않을 건데요?”
잊고 있었다.
동네 의원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치료법을 들고 와서 환자에게 시행하고 회복 여부와 관계없이 버젓이 돈을 받는 세계였다.
의료보험도 없고, 환자를 보호할 만한 장치도 없다. 그나마 의각의 의원들이 좀 더 믿을 수 있을 뿐.
“일단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은 해 본 후에.”
제대로 만들어졌다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목숨에 해가 될 일은 없을 터였다.
유호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도련님은 무릅니다.”
“아니란 소리는 못 하겠네. 그래도 따라줄 거지?”
시대를 거스르지는 못해도 현대인으로서의 선은 지키고 싶었다.
“싫다고 하면 어쩌실 겁니까?”
“스승님에게 이를 거야.”
“차라리 명령을 하시죠.”
“뭐, 가식이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진천희는 피식 웃고는 유호에게 일을 배당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바로 통계다.
‘과거의 의학과 현대 의학을 나누는 건 바로 통계의 유무지.’
옛날의 의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치료면 아마 나을 겁니다.’라고.
현대의 의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치료면 완쾌될 확률은 90%입니다. 8%의 현상 유지, 2%의 부작용 위험이 있습니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실상 까 보면 큰 차이를 만든다.
현대의 의학은 통계의 의학이다.
수많은 환자들에게 검증을 하고, 그것이 과연 임상에서 얼마나 효능이 있는지 체크한다.
A라는 약의 완치율이 60%, B라는 약의 완치율이 68%라면 당연히 B를 선택하는 게 옳다.
그 검증 과정에서 의학은 진화한다. 더욱 안전해진다.
단순 감이나 개인적 경험에서 유추된 게 아닌 실질적 데이터가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인다.
“일이 끝나고 나면 매독에 감염된 사람을 모아 줘.”
진천희의 빙글빙글 웃는 얼굴을 보면서 유호는 미친놈을 보는 시선으로 말했다.
“돌았군요. 매독 감염자는 누구도 치료할 수 없…… 설마?”
“그래. 계산대로라면 아마 가능할 거야. 그러니 모아 줘.”
“…….”
유호의 실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좋습니다. 도련님. 당신의 능력을 기대하겠습니다.”
유호는 그 말을 끝으로 배양실을 나간다. 그걸 보면서 진천희는 중얼거렸다.
“유호는 능력은 좋은데 상대하는 게 좀 버겁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