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88
제 487화
깨달음을 갈무리한 진천희는 삼 일 정도 밖으로 나오지를 못했다.
“계획대로 되질 않는구만.”
분명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전투를 통해 더 강해졌다면 강해졌다고 할 수 있을 터.
“형, 붕대 풀게요.”
“음.”
천우가 붕대를 풀자 붕대에서는 시커먼 독액이 흘러나왔다.
극독은 아니다.
다행히 내공으로 몰아낼 수 있는 수준.
다만 계속해서 독기가 나오고 있으니 이 상태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간 겁니까?”
보라색으로 변색된 왼손은 딱 봐도 엄청난 통증이 있어 보였다.
허나 진천희는 차분하게 답할 뿐이었다.
“아마… 오행상극독으로 흡수, 분해한 독과 새로 깨달은 초월심무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 같은데…….”
천우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진천희가 말하고 있는 무학은 무당권제님의 경지였고.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깨달음을 통해 기경팔맥에 무언가 변화가 생기면서 오행상극독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 정도.
“통증은……?”
“괜찮아.”
정말로 괜찮은지는 알 수 없다.
진천희는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상 외로 전투에 심력을 너무 소모했어. 보통이라면 괜찮았을 텐데……. 칸과의 전투에서 얻은 깨달음을 다시 써 보려다가 이렇게 된 거지.”
초월심무 생사예지(生死叡智).
그 부작용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
천우는 붕대를 갈고 다시 감아 주려다가 진천희의 손등 힘줄이 움찔하는 것을 발견했다.
“거봐요. 아픈 거잖습니까.”
“그래 아파. 아픈데, 하지만 괜찮다니까. 원래 내 단계에서는 쓸 수 없는 경지를 억지로 끌어냈는데 왜 부작용이 없겠어.”
“하아…….”
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천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침상 아래에 담뱃대가 있을 거야. 꺼내 줄래?”
진천희 말대로 침상 아래에 궤짝이 보였고, 그것을 꺼내니 묵빛의 유려한 조각이 되어 있는 담뱃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궤짝에 진통제 약초 말아둔 거 있을 거야.”
“괜찮은 거죠?”
“약제당주님께서 만일의 사태 때 쓰라고 준비해주신 건데, 좀 독하긴 한데 괜찮아. 안 피우고 넘어가고 싶었는데 어쩔 수가 없다.”
붕대를 벗기니 형의 손끝이 계속 떨린다.
극심한 통증이 오는 모양이다.
육체에 맞지 않는 경지. 그것을 과하게 탐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진천희는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는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손의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생사예지는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그냥 그 절기는 금하시죠.”
“죽는 것보단 낫잖냐.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도 낫고.
형이 무슨 말을 생략했는지 알 것 같아서.
“…….”
천우는 한숨을 쉬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독기는 삼 일 정도면 조절할 수 있을 거야. 통증도 삼 일이면 멈출 거고. 그동안은 두문불출할게.”
“네. 약속입니다.”
“그래.”
후우-
연기가 나른하게 내리깔렸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래도 깨달음을 되짚어볼 수 있어 좋았어.”
“생사예지에 대한 깨달음입니까?”
“음. 잘하면 육체에 주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도.”
“…….”
“어쩔 수 없잖냐. 애초부터 이 몸뚱이는 무공을 쓰기에 좋은 근골이 아니야. 나는 스승님이나 너 같은 무골이 아니라고. 여하륜처럼 천살성을 타고 나서 체질 자체가 변한 것도, 사마현처럼 사파의 무공을 연마하기에 최적의 손을 가진 것도 아니니까.”
“형 같은 근골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이 정도의 경지까지 오지도 못하지. 그래서 너희 무당파도 근골을 반드시 보고 뽑잖냐. 너는…… 당시에는 낙하산이었지만 크면서 근골이 성장한 거고.”
현대에 대입해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운동에는 그에 맞는 체구가 있다.
당장 농구만 해도 키가 큰 게 유리하고, 경마는 가벼울수록 좋다.
체조 선수에게는 체조 선수에게 맞는 체구가, 배구에는 배구에 맞는 체구가 있다.
레슬링도, 복싱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무공도 그러하다.
단단한 근골과 탄력 있는 근육. 그건 기본이다.
키와 근육량, 무공에 맞는 기경팔맥과 내구력까지.
“그래도 내가 재생력 하나는 좋긴 하지.”
보옥 덕분이다.
하지만, 진천희는 체질상 좋은 근골은 아니다.
키도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추었고, 근육도 잘 생기는 체질이 아니라서 끝없이 수련해야 했다.
그렇기에 처음 백린의선이 진천희를 데려가고자 했을 때 무골도 아닌 아이를 왜 제자로 들이는지 모두가 궁금해하지 않았던가.
진천희는 말했다.
“지금 내 상황이 오성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건데. 몸도… 어떻게든 되겠지.”
연기가 느리게 방을 채운다.
그러고는 되뇌듯 다시 말했다.
“음,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러더니 서신을 하나 꺼냈다.
“근처에 아비 스님께서 계실 거야. 보타상단 쪽으로 가 봐.”
“이게 뭐죠. 형?”
“비무첩. 너 그렇지 않아도 보타문과 비무 하러 가는 게 목적이었잖아. 아비 스님과 비무를 할 기회가 흔한 줄 아냐?”
“형은…….”
“왜? 내가 구호소 완성할 때까지 있었으면 됐지, 천년만년 눌러앉으려고 했어?”
천우는 작게 혀를 찼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이런 걸 먼저 준비한 형이 야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천우가 본래의 목적을 포기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들고 가. 당장 비무를 잡지는 않아도 되니까, 백린의각 분타 2호점 개장하면 거기서 하자고 하면 알았다고 하실 거야.”
“형.”
“대답은?”
천우가 곁에 있으면 이득이라는 것을 모를 형이 아니다. 허나, 일부러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가르쳐줄 것은 이제 다 가르쳐주었으니 멈춰 있지 말라는 거겠지.’
너무 곁에서 응석을 부렸던 건가.
그걸 간파하고는 여태 내버려두었던 건가. 형은.
“알겠습니다. 형.”
“착하다.”
이제 천우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그건 의각이 아닌 실전을 통해 만들어질 터.
진천희는 그렇게 축객령을 내렸다.
천우를 보낸 데에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통증을 가라앉힐 시간이.
‘이 상황에 천우가 같이 있게 되면 나도 보내기 점점 더 어려워질 거야.’
그건 무인으로서 좋지 않은 신호다.
진천희는 그렇게 통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깊게 숨을 쉬었다.
지독한 통증에 잇새로 신음이 밀려왔다.
부족한 몸뚱이로 더 높은 경지를 탐낸 결과가 이거라면.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가?’
* * *
항주에 백린의각 분타 2호점이 그렇게 열렸다.
건물은 1호점 때보다도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4층 높이의 전각에, 병실 역시 넉넉할 정도.
거기에 백환후의 지점을 만들기 위한 추가적인 공사도 진행되었다.
백환후는 결국 갈 곳 없는 고아들을 자립하게 만드는 곳.
교육 기관이자 보금자리가 될 터이고, 일자리가 되기도 할 터였다.
이 시대에 아동은 노동을 해야 한다.
물론 백환후에 들어온 이상 어릴 때부터 일자리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 시대 기준으로 성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백환후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글을 배우고, 무공을 익히고,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갖춘 후에는 날아가야 한다.
‘이것도 다 돈이지.’
이 둘 모두를 해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사람들을 고용해야 한다.
항주에 적을 둔 학사들을 고용하고, 백린의각 본단에서 도착한 의원들이 업무를 하달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풍거간소에서 고용된 낭인들이 철통처럼 지키며 주변 치안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먹고 마시기 위한 물건들도 오갔다.
여기에 백린 편의점을 항주 전역에 깔기 시작했다.
‘의료 인프라도 확대가 되었고. 사람이 몰리고, 치안이 안정화되니 더 몰리고…….’
다른 중소 상단들도 모이기 시작하니, 일자리가 더 생겼다.
덕분에 항주 집값은 고공 행진 중이다.
여기서부터는 진천희도 답이 없다.
관아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새벽녘 항주 분타 2호점 꼭대기 지붕에 앉아서 항주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청보랏빛으로 번져가는 새벽이 감자꽃과 닮아 있었다.
어딘가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여느 때의 항주와 같다.
하지만, 이윽고 누군가가 달려가는 소리도 들렸다.
“여기요. 여기예요!”
한 아이가 거간소 낭인을 붙잡고 같이 소리 나는 곳으로 향했다.
항주는 조금 더 나아졌을까?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업히시오.”
더 나아진 것 같다.
‘참 재미있지? 분명 손해 볼 것이 분명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퍼다 부었으니 적자여야 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진천희의 자금은 흑자 상태였다.
항주의 흑도 방파들을 거의 다 정리하고 얻은 재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양이었기에 자금은 남아돌고 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빨아먹고 있었던 걸까.
은원을 바꾸어 돈을 얻었다.
그리고 그 돈은 엄청난 것이었다.
‘힘은 돈이 되는구나.’
진천희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인망, 무공, 집단.
이 셋 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이런 계획은 단순히 몽상에 지나지 않았겠지.
진천희는 왼손을 바라보았다.
‘이제 독기는 발출되지 않는군.’
육체에 걸맞지 않은 오성은 독이 된다.
보옥으로 제법 보완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이것은 종(種)의 문제였다.
제아무리 참새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독수리의 기술을 쓰면 날개가 찢어지는 것과 똑같다.
‘그저 단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인가.’
경지에 맞지 않는 머리 위의 무학을 끌어 쓴 것만으로도 이만한 통증이라니.
후우-
담배 연기를 마지막으로 들이켜고는 탁탁 재를 턴다.
‘왼팔에 타격이 온 것은 내 몸 중에서 가장 약한 부위가 그곳이기 때문이겠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왼손 중지부터 어깨까지의 혈도가 너덜너덜하다.
스승님이 아셨다면 왼팔을 무슨 걸레짝으로 만들어 놨냐고 크게 혼을 내셨겠지.
‘그래도 이 정도면 꽤 회복은 되었으니.’
진천희는 지붕에서 다른 지붕으로 뛰어내린다.
무명천이 부풀어 오르며 사내의 잔근육이 드러났다.
“신의!”
항주의 아주머니가 진천희를 그리 불렀다.
“벽안신의!”
무인들도 그리 부른다.
항주의 새로운 별호.
그리고 이 항주의 패자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지붕과 지붕을 밟으며 진천희는 어딘가로 달려갔다.
흑도 하나가 진천희를 이렇게 불렀다.
“백선광의(白善狂醫).”
순백의 선함을 가진 미친 의원.
그리고 평범한 강호인들은 튀어나가는 초록색의 무복에 대고 단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광의(狂醫).”
항주에 아침이 피었다.
흰 감자꽃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