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9
제 49화
그 자존심 강한 의각주들이 왜 유호의 말이라면 한 수 접는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유호가 필요해.’
대체할 사람이 있다면 진즉에 했을 터다.
진천희는 고개를 돌려 페니실린을 보았다.
“부디 제대로 된 효력이 나와라. 그래야 돼. 효과가 없으면 그 성격에 얼마나 더 지랄하겠냐.”
진천희는 마음속 깊게, 믿어 본 적 없는 신을 향해 기도했다.
* * *
매독.
발병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성적 접촉에 의한 감염이다.
본래 지구에서는 서인도 제도에 있던 병이었는데, 대항해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좋을 콜럼버스 일행이 전염된 이후 유럽에 전파. 이후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 진천희가 공부할 때의 정설이었으나…….
요즘은 콜럼버스보다 100년 전 유럽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근거가 발견되고 있어서 다시 미지수다.
‘어느 쪽이든 나한테 중요하진 않지.’
문제는 매독의 치료법이다.
이 시대에 매독에 감염되면 보통은 사망하게 된다.
게다가 높은 사망률과 별개로 치료제도 변변치 않다.
수은을 함유한 극약이 치료제로 종종 쓰였지만, 효과는 제대로 없는 데다가 수은 중독으로 더 고통스럽게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매독은 결국 페니실린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감염자들을 무수히 많이 죽이는 저주받은 질병이 되었다.
그것은 이 화 제국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현실의 역사처럼 서인도에서 발현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매독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화 제국 내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질병이었다.
불치병.
그런 매독 환자들을 모아 달라는 진천희의 말은 당연하게도 의각 전체로 퍼져 나갔다.
“저는 공자를 믿습니다.”
궁귀는 신뢰로 가득한 눈동자로 그렇게 말했다.
왕각연 역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도울래요. 아빠!”
“넌 쉬거라.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잖니.”
궁귀의 성격을 닮아 실행력 하나는 끝내주는 그녀였다.
예전에는 위태로웠던 아빠를 곁에서 지켜야 했기에 착한 딸 노릇을 해 왔지만 이제는 달랐다.
궁귀의 생활이 안정된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을 나이.
“하지만 다 나을 때까지는 아무 일도 하면 안 돼. 그게 방침이야. 어기면 궁귀 아저씨가 사부님한테 대신 혼날걸? 다 안 나은 딸을 왜 일 시키냐고 말이야.”
진천희의 조리 있는 말에 왕각연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나도 도울 수 있는데…….”
그 말에 진천희가 웃었다.
“하하하, 다 낫고 나면 도와줘. 그때는 일이 너무 많다고 울걸?”
진천희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막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오문 쪽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될 것 같다는데… 애들 교육에는 안 좋다. 각연아…….’
매독은 성병이다.
자연히 기루를 기점으로 둔 사파인 하오문 사람들이 대거 모일 터였다.
진천희와 궁귀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 * *
하오문.
무림 세계에서 유곽과 주루를 담당하는 사파다.
사람 사는 곳에 술이 없는 곳은 없다.
하오문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반드시 거점이 있다.
제아무리 목석같은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입이 가벼워지는 법. 거기서 얻는 정보를 팔아 돈을 벌기도 하고, 때로는 첩자를 심어 방심을 유도해 세력을 넓히기도 한다.
문제는 이 시대의 인권 감수성은 현대 지구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거다.
하오문의 구성원들 태반이 어릴 때 팔려 온 아이들이다.
날 때부터 고아인 경우도 있지만 집이 가난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아이를 팔기도 한다.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체질과 외모를 감별해서 하오문을 지키는 호위로 쓸지, 첩자로 쓸지, 그도 아니면 버리는 패로 쓸지 정해진다.
그렇게 선택된 아이들은 사파의 무공을 배우고, 춤과 노래를 배우게 된다.
사파이기에 선이 없고.
언제든 죽을 수 있기에 아이들은 일반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
한번 하오문은 영원한 하오문이라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팔려 오면서 생긴 빚을 갚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거니와 하오문에서 배운 것 외에는 다른 생계 수단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잘 풀리는 케이스가 고관의 첩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하지.’
금분세수가 안 되는 곳이다.
“잘 부탁드려요. 공자님.”
두꺼운 화장을 한 남녀가 들어왔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미모였으나 매독으로 인해 크게 상했다. 그걸 덮다 보니 화장이 더욱 짙어졌다.
아예 면사로 얼굴을 가리는 이들도 있었고, 거동이 힘들어 무인들에게 업혀 온 이들도 많았다.
다만 특유의 그 냄새만은 완연한 병자의 것이어서 의원들 모두 참지 못하고 얼굴을 구겼다.
무림에서도 하오문은 늘 가장 지저분한 일을 맡았다.
그곳 기루에 사는 이들이 받는 대우야 뻔했다.
진천희만이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귀한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동전 한 냥에도 안 살 몸뚱어리. 이렇게라도 써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후후후.”
어린아이에게 할 농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세계에서는 그 또한 농이었다.
진천희는 이렇게 답했다.
“산 아래 의방에서 치료를 해 드릴 생각이었는데 직접 올라오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람 눈만큼 무서운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럽다는 걸 머리로 아는 것과 더러운 것을 직접 보는 건 다른 이유에서죠.”
하오문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로를 그렇게 평했다.
그녀가 한마디 덧붙였다.
“도련님이야말로 참으로 괴짜십니다. 의술을 위해 더러운 것을 모아 오시다니 말입니다.”
말에 날이 서 있었다.
무림인이라고는 하나 환자의 몸으로 산을 올라왔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자조가 담겨 있었다.
기묘한 비틀림이었다.
진천희는 차분하게 답했다.
“제가 치료에 성공할지 못할지는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할 테니까요.”
환자의 사정은 환자의 것.
의원은 그저 치료에 최선을 다할 뿐.
하오문도들은 그런 진천희의 태도가 신기했다.
하오문도들은 서로에게 눈빛을 교환했다.
‘백린의선의 제자가 괴짜라는 건 익히 듣긴 했지만 정말이네.’
‘동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담백하게 구니까 도리어 속을 알기가 어려워.’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하오문도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도 진천희는 꽤나 별종이었다.
매독을 치료하겠다고 나서서 환자를 수배한 것도 이상한 일인데, 더러운 놈들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쌍한 인생이라고 동정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통성명을 하지 못했군요. 제 이름은 무화(無花)입니다. 소각주님. 남동생의 이름은 무월(無月). 저희 남매가 함께 온 하오문도들을 통솔할 겁니다.”
무화는 붉은 미소를 뿌리며 달콤하게 말했다.
진천희가 물었다.
“두 분 모두 매독의 증상이 있으신 거고요?”
“네. 저희 남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시기에 걸렸습니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유호 총관. 모두 병실로 모셔 주세요.”
그걸 끝으로 진천희는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 * *
“유곽에서 일생을 살아왔지만 저런 아이는 참 처음 보는구나.”
“누님. 백린의각의 소각주를 상대로 농이 지나치셨습니다.”
무화와 무월은 병실을 배정받은 후, 밖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둘은 가난한 집안에서 팔려 온 남매다.
남매 모두 어릴 때부터 미색이 출중하여 하오문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워 냈다.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고, 서화나 서예도 곧잘 했다.
한때 분타주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매독에 걸려 뒷방으로 밀려난 상태.
“무월아.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지 그러느냐. 너는 멀쩡하다고.”
“하오문에서 매독에 걸린 환자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습니까. 저라도 없으면 누님을 누가 보살핍니까.”
“넌 참으로 바보다, 무월아.”
“누님이야말로 바보입니다. 그러게 도망치자고 할 때 같이 도망쳤으면 우리 남매 모두 괜찮았을 텐데…….”
그 말에 무화는 한참 웃었다.
“부모님이 말했잖느냐. 이제 하오문을 집으로 여기고 살라고. 도망친 우리 손을 붙잡아 다시 하오문에게 쥐여 준 분들이다.”
“누님.”
“우리가 도망가면 어디로 가겠느냐. 그리고 하오문에서 잘 가라고 손이라도 흔들어 줄 것 같으냐.”
바람이 불었다.
대나무 소리가 빗소리 같았다.
그녀의 두꺼운 화장 아래로 매독의 증거인 수포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 공자님은…….”
“섣부른 기대는 하지 말자꾸나. 무월아.”
“누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젊은 도련님의 객기겠지. 우리는 그저 몸을 내어주고 정보를 훔치면 될 일이야.”
하오문에 의뢰가 왔다.
백린의각의 동태 조사와 어린 소각주에 관한 조사.
주변의 평판부터 의술 실력까지. 약점을 잡아내는 것까지는 못해도 괜찮다.
알 수 있는 한에서 작은 것이라도 알아낼 것.
꽤나 광범위한 의뢰였다.
언제나 그렇듯 남매는 이 의뢰를 한 이가 누군지는 알 수 없다.
분타주일 때는 그래도 들어오는 게 많았으나 지금은 그저 버리는 패일 뿐이니까.
그랬기에 무월은 절박했다.
“의뢰는 그저 의뢰일 뿐입니다. 누님. 치료에 전념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불치병이 괜히 불치병인 줄 아느냐. 무월아. 너야말로 나 같은 건 그만 돌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웃음 파는 일보다 누님을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아둔하구나.”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만약 그 소각주가 치료를 성공한다면. 나는…….’
생각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녀는 다시 조소했다.
‘나야말로 아둔한 건 여전하구나. 이루어질 리 없는 꿈을 꾸는 것만큼 바보짓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릴 적 그녀는 참 많은 꿈을 꾸었다.
가장 먼저 꾼 꿈은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루의 가장 인기가 많은 기녀들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강호의 다른 무인들처럼 매일 검을 연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이 찌면 못나지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꿈이었지.’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하오문이지 기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인지 인기가 많아질수록 빚은 더 쌓여 갔다.
그녀는 아무리 아름다워져도 영원히 빚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꿈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곳을 벗어나는 꿈도 꾸었어.’
그녀는 도망친 기녀의 손가락을 인두로 지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인두는 그녀와 동생들이 함께 달구어야 했다.
그게 본보기였다.
인두를 불에 달구면서 그녀도 그녀의 동생들도 울었다.
지금도 자다 깨서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인두는 도망친 기녀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에도 흉터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