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93
제 492화
일단 두창에 노출된 의원들을 접종시켰다.
우선 진천희 자신이 나서서 가장 먼저 맞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가 이 날을 위해 아껴 놓았지.’
소각주가 나서서 직접 접종을 하니, 다른 이들도 용기 내서 할 수 있었다.
의술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뭐, 망한다고 하더라도 우두 좀 걸리고 마는 거잖아요?”
천연두는 끔찍한 병이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흉측한 수백 개의 농포 자국을 얼굴에 달고 살아야 하는데, 그 모습이 혐오스럽다 하여 사람들에게 배척받기 일쑤였다.
일자리를 얻기 힘든 건 둘째 치고, 그 사람 옆에 있는 것만으로 두창이 옮는다고 하여 돌을 맞는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일단 환자를 구명하고, 두창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하고.
발생 경로를 추적하기에는……. 이미 두창이 만연한 시대이니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그래도 환자의 집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고 장례식은 화장으로 대응하는 정도까지는 할 수 있겠지.
‘좋아, 해보자.’
어찌 되었든 사람을 구명해야 한다.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여 줄지, 걱정이 밀려왔다.
* * *
“우두에 걸리면 정말로 두창에 안 걸린다고 해서 왔습지요.”
다음 날 빈민가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네. 맞아요.”
“그거……. 인두법보다 안전합니까?”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두창을 막는 방법으로 인두법이 소개된 적이 있었으나, 그 위험성이 늘 문제였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네, 부작용은 천분지 일 정도인데……. 고열에 시달리지 목숨을 빼앗기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어떤 과정으로 그걸 발견해낸 거냐.
이런 질문이 오면…….
‘답을 못 하지. 알고 있어.’
일단 우두에 걸린 이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것은 여기나 거기나 똑같고.
현대야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모두가 다 아는 지식이다.
허나, 이곳에서는 아직 퍼지지 않은 지식.
그렇다고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않나.
진천희는 저도 모르게 긴장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때 한 사람이 담담히 말했다.
“저부터 맞아도 됩니까.”
“네?”
“신의께서 평생 두창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 하셨으니 그리해야죠.”
“맞네. 신비금침으로 악귀를 몰아내 주시겠지!”
……역시나 민간 신앙이 섞였군.
‘역시 과학의 힘으로 불치병을 예방한다기보다는 내력이 담긴 신비금침으로 병마가 사라졌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
진천희가 말했다.
“두창에 걸린 이는 누구라도 면역이 생깁니다. 굳이 저한테 받을 필요는 없는 거죠.”
“그렇군요. 아무튼 두창에 안 걸리게 해주신다는 거죠?”
음, 결국 좋은 게 좋은 건가.
이 시대를 살며 느낀 건데, 이 시대 사람들이 현대보다 멍청하진 않다.
기억력 같은 것은 현대인보다 더 낫다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현대와 이 시대에 차이가 생긴 이유는, 과학과 기술 발전의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발견과 발명이 쌓여서 현대가 된 거다.
지금은 덜 쌓인 거고.
백신의 작동 방식을 공교육이 가르쳐 주려면 앞으로 먼 훗날은 되어야 하지 않던가.
그냥 그런 거겠지.
“그래도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지요.”
어쩌면 그동안의 선행을 얕잡아 보았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주에서 자신의 이름이 가진 힘이 어떤지 과소평가했던 걸지도.
진천희는 모두에게 접종을 했다.
* * *
접종을 하고, 잠시 면역이 생길 때까지는 두창에 걸린 아이를 돌보는 것은 위험하다.
허나, 이 의각에서 아픈 애 하나 돌보지 못한다면 그 또한 방치와 다름없는 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아, 저 우두 걸렸었습니다!”
백환후 출신의 하의원이 손을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있던 마을은 여자가 소를 몰고 남자가 밭을 갈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러다 옮았죠. 지금 생각하니 다행이네요.”
백환후에는 다양한 출신, 다양한 지역의 아이들이 모여든다.
딱히 어느 지역이라고 차별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자격이 되는가만 중요했을 뿐이었으니까.
그 결과. 과거에 베풀었던 은(恩)이 이런 식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두창은 다들 간호하기 꺼리는데 괜찮겠어요?”
진천희의 말에 하의원이 피식 웃었다.
“만약에 제가 맨날 옆에 붙어서 간호해도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면 소각주님 주장이 맞는 거죠?”
“네!”
“실제로 신기하긴 하거든요. 저희 마을은 소를 많이 쳐서 그런지 진짜로 우두 걸린 사람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두창 걸린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특히 마을 여자들은 늘 건강했으니까요.”
하의원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이번 일에서 제가 끝까지 건강하다면 후에 적을 의서에 제 이름을 넣어 주실 거죠?”
이 와중에 거래까지 확실했다.
진천희는 가슴이 뿌듯했다.
‘잘 컸다. 잘 컸어. 어이고……. 내 새끼.’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것이지만, 만약 거기에 이득이 있다면 챙겨야지. 똑똑한 게 마음에 든다.
잘 큰 대학원생을 보는 교수의 마음이다.
“당연하죠. 고맙습니다.”
“좋아요.”
‘와아, 살았다.’
진천희는 가슴을 쓸었다.
* * *
그렇게 하의원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진천희의 팔에는 주사 자국과 우두의 특징인 발진이 올라왔다.
면역이 생기자마자 하의원을 만났다.
그녀는 평소와 똑같았다.
“매일 진맥 중인데 예상대로 멀쩡하네요.”
“다행이네요.”
“혹시나 해서 아예 천연두 환자의 균을 주입해 보았는…….”
“어허허헉!”
진천희가 당황해서 팔을 내젓는다.
하의원은 눈에 불이 붙었다.
“잠시만요. 소각주님. 저는 상의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아니, 최소한 그런 짓을 할 거면 저한테 말이라도 하셔야죠.”
“하지만 진짜 안 걸릴 것 같았거든요.”
“저를 너무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하의원이 피식 웃었다.
“저도 마을에서 경험한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혜… 그 친구가 믿는 분이시잖아요.”
그 말에 진천희는 문득 사마혜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진천희와 같은 날에 맞았으니 그녀에게도 발진 자국이 생겼겠지.
하의원이 말했다.
“물론 의원 집안에서 의원이 되기 위해 자란 사람도 있겠지만요, 백환후에 들어와서 의원이 된 저 같은 사람들은 소각주님께 감정이 남달라요.”
가난한 무인의 자식들이, 또는 부모를 잃은 무인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란 늘 정해져 있다.
진창을 구르고 약육강식을 배우고, 결국 누군가를 죽이며 올라간다.
백도로 향하는 이도 있으나 흑도로 가는 일이 더 많다.
그것은 과거 진천희가 느꼈던 악의 가성비 때문이다.
‘그걸 소각주님이 끊어 준 건데.’
정작 이 미남자는 느물거리는 얼굴로.
“오오, 저한테 반했어요?”
만선대주한테 했던 농이나 치고 있다.
“뭐, 인품에 반했다고 해두죠.”
“헤헤헤.”
물론 남자로서 반한 건 아니다.
솔직히 얼굴이나 인품이나 대단한 분이시지만, 배우자가 되면 지옥길이 열리는 게 빤히 보인다.
그래도.
굳이 남녀 사이의 감정이 아니더라도 은공에 대한 경애는 있어도 되지 않나.
하의원이 말했다.
“저희 백환후 의원들은 언제나 소각주님 곁에 있을 겁니다.”
“월봉은…….”
“물론 지금 수준으로 계속 유지해 주신다는 전제하에요.”
하의원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사마혜를 떠올렸다.
사마혜는 이 하의원과 같은 방을 쓴다.
이 녀석이 얼마나 은공 이야기를 하는지 저 소각주는 모르겠지.
오히려 단호하게.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사람이 돈이 있어야 일도 하는 거지. 그런 정신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거예요. 그래도 다음에는 저한테 먼저 이야기해 주세요.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진천희는 그리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뭔가 생각났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 이번 일은 벌점을 드려야 하는 거예요. 알죠? 하지만… 네. 이런 말을 들어 버렸으니 혼내기도 어렵군요.”
그렇게 쓰게 웃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손목.”
“네.”
맥을 짚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진천희는 오랫동안 이 하의원의 몸 상태를 진맥했다.
하의원은 눈을 감고 있는 진천희를 문득 보았다.
‘역시 참 잘생겼단 말이지.’
독버섯은 왜 이리 예뻐 보일까.
소각주님에게 반한 인간이 남녀 가리지 않고 늘 있는 이유도 그거겠지.
진짜 반하면 내 속이 뒤질 걸 알면서도, 이 사내는 무심하게 본인 일만 하고 있다.
이윽고 크고 긴 속눈썹이 열렸다.
“다행이네요. 건강하십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매일 저한테 진맥 받아요. 그리고 논문… 아니… 의서에 같이 이름을 넣도록 하죠.”
“네!”
진천희가 환하게 웃는다.
“건강하셔야 해요.”
그 순간 하의원의 심장이 조금 뛰었다.
두근-
망했다.
결국 이 독버섯, 먹어 버리고 말았다.
이건 지랄 난 소리였다.
* * *
약속된 망한 첫사랑을 시작한 하의원을 뒤로하고 진천희는 업무를 시작했다.
우선 두창에 감염된 환자들을 돌보는 것.
어른도 밀려오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아이와 노인이 가장 많다.
‘어째서 병원에는 아이와 노인이 많을까.’
머리로는 알고 있다.
면역이 약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허구한 날 아파서 병원을 집처럼 들락날락거렸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어른이 놀라면 물 한잔 마시고 끝이지만 아이는 경기를 일으킨다.
그런데 그건 노인도 마찬가지.
스트레스로 인해 ‘억.’ 하고 쓰러져서 오시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비무로 생기는 응급 외상 쪽은 젊은 무인들이 많이 오고, 이런 병 쪽은 아이와 노인이 가장 많이 온다.
‘차라리 노인은… 노인은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하지.’
그동안의 인생을 반추하며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쌓아온 것이 많고, 본인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충분한 시간.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아이는 자신이 왜 아픈지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제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후빈다.
그걸 지켜보는 의료진들 역시 슬픔에 전염되지 않으려 애를 써보나 버티기 쉽지가 않았다.
그건 이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몸에 수포가 가득하다.
진천희는 아이에게 내력을 주입하고 계속해서 간호했다.
콜레라 때와 똑같다.
마땅한 약이 없기에 대증 치료가 전부다.
의원의 힘으로는 아이에게 더 수포가 올라오지 않게 해줄 수도, 이 고통이 끝나게 해줄 수도 없다.
몸이 이겨낼 때까지 숨을 붙여 놓는 게 전부.
‘참……. 이걸 보면 의술이란 게 덧없게 느껴지니.’
세상에는 아직도 못 이기는 병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