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0
제 50화
어떤 기루에서는 비싼 고(蠱)를 쓰기도 했다.
하오문에서 주는 약이 아니면 고(蠱)가 몸속에서 발작해 죽게 된다.
그녀도 그녀의 동생도 그 정도의 상품성은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도망갔다가 잡히면 답이 없고, 도망에 성공한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평생 기루의 삶만 알아 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다른 삶에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농사도 모르고 상인의 일도 몰랐다.
정상적인 삶 자체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도망치는 꿈을 포기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남은 게 하오문의 문주가 되는 것이었다.
힘이 정의인 사파에서 강자는 문주가 될 수 있다. 그 끝자락인 분타주까지 그녀는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매독으로 무너졌고.
그녀는 무월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그래도 소각주의 그 눈빛은 편하더구나.”
“아…… 저도 그랬습니다. 누님.”
“그래. 내게 많은 것을 묻지도 않고, 참견하지도 않았다. 그저 치료할 상대로 보더구나.”
“자신이 할 일만을 생각하는 눈이었죠.”
“그래. 사람으로 보는 눈이었어. 그 미지근한 눈빛이 좋았단다. 보통 사람들은 늘 그렇게 서로를 봐 왔겠지?”
“…….”
무월은 대답 대신 누님 무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님이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기대를 하다니…… 아둔한 것.”
“누님이 3년 후에도 저를 바보라고 놀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3년? 100살까지 아둔한 것이라고 놀려 달라고 하지 왜.”
“거기까지는 너무 큰 욕심일 테니까요.”
“이미 욕심이 크구나.”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더는 말하지 못했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왔기 때문이다.
‘말을 너무 많이 했어. 아파…….’
날이 갈수록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내공으로 참아 본다고는 해도 사파의 무공이다.
내공이 정순하지 않으니 정파 같은 양생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꿈을 바꿨다.
부디 내년까지 살아 있으면 좋겠다고.
욕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소원이니 그것만이라도 이루어지길 바랐다.
* * *
다음 날, 그녀는 유독 열이 심했다.
의식이 통증으로 각성했다가 침전하기를 반복했다.
사지가 찢겨 나가는 고통이 이런 심정이었으리라.
온몸에 돋아난 발진은 매독의 상징이었다.
진천희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을 재고는 진맥을 했다.
“의원님…… 제가 나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진천희의 미간이 좁혀졌다.
“…….”
매독에는 단계가 있다.
통증이 없는 발진 때문에 걸렸는지도 자각하기 어려운 1기.
본격적으로 발병해서 전신에 걸쳐 나타나는 2기.
여기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복기를 거치다가 다시 발병하는 게 3기다.
3기로 넘어가 버리면 눈, 내장, 뇌, 뼈 등에 고무종(gumma)이 발견된다.
장기, 심혈관과 신경까지 손상시키는 단계로 사망률은 급격하게 오른다.
1기와 2기라면 근육 주사를 놓으면 된다.
이 단계라면 예후 역시 좋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상태는 위험했다.
‘3기…… 하지만 신경까지 퍼졌을 가능성도 있어.’
현대라면 뇌척수액을 뽑아서 검사를 해 보겠지만 여기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3기라고 해도 신경매독이 아니라면 근육 주사로 가능해. 하지만 신경까지 번지면 이야기는 달라져.’
근육 주사만으로는 페니실린이 뇌혈관 장벽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운동 능력은 정상인 것 같으니 근육 주사를 놓고 상태를 볼까.’
만약 이것만으로 호전된다면 다행히 신경은 무사한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맥주사로 넘어가야 한다.
진천희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무화는 생각했다.
‘소각주에게도 어려운 일이겠지. 불치병은 불치병이니…….’
가슴이 따끔따끔하다.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미련이 남았나 보다.
이윽고 진천희가 말했다.
“잘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같이 한번 노력해 봅시다.”
‘그래도 혀만 차는 다른 의원들과는 다르구나. 달라.’
* * *
‘여기서부터는 마라톤이다.’
환자들의 상태를 관리하며 정해진 시간에 투약한다.
3기, 장기까지 균이 침범한 환자는 내장에 괴사까지 이미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태가 급변할 때를 대비해 계속 관찰했다.
‘그다음이 데이터.’
환자의 호전 상태와 혹시 모를 부작용까지 계속해서 적어서 자료로 남겨야 했다.
진천희로서는 지구의 페니실린과 이곳의 페니실린이 완전히 같은 작용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건 이곳은 기(氣)라는 게 있는 세계다.
인간이 맨손으로 바위를 깨고, 말처럼 달린다.
깨달음을 얻어 우화등선을 하면 신선이 되고, 어딘가에는 요괴가 있다.
‘이곳에서 만든 항생제가 과연 현대 지구와 똑같은 작용을 할까?’
동물 실험에서는 성공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알 수 없다.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건 약재당주, 만파곡이다.
“경과가 좋던데?”
그녀는 약재당의 의원들을 풀어 진천희가 있는 부술당을 도왔다.
페니실린이 성공하면 그동안 없었던 내상 치료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시게. 어린 소각주님.”
“늘 넘치도록 도와주시는걸요.”
진천희의 말에 만파곡은 후덕한 웃음을 지었다.
“도움을 받는 건 이쪽이지. 벌써부터 호전되는 환자들이 생기고 있어. 어쩌면 인간의 힘으로 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좀 더 지켜보고요.”
“의각원들 모두 들떠서 난리더만 우리 소각주님은 여전히 엄격하시구먼. 아참, 약이 완성되면 이름은 페니…… 뭐로 하지 말고 알기 쉬운 걸로 바꾸는 게 좋을 걸세.”
그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왜죠?”
“나는 왜 페니…… 하여튼, 무슨 약 이름이 그렇게 외우기 어려운지도 모르겠고. 그건 다른 의각원들도 마찬가지. 기억하기 쉬운 게 쓰기도 쉬우니 좀 편하게 짓게나. 후후후.”
그녀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진천희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떨어졌을꼬. 각주님께서 총애하실 만하구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일하러 갔다.
페니실린을 가공하는 건 약재당의 일이다.
변변한 기구가 없는 시대에 약효를 살린 채로 정제와 가공을 하는 건 무던히 어려운 일이었다.
‘약재당이 있어서 다행이야.’
같은 약초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단순 투여량뿐만 아니라 약을 건조하고, 달이는 과정, 약끼리의 상성도 자칫 환자를 죽일 요인이 되었다.
그녀가 지휘하는 약재당은 지금 이 순간에도 톱니바퀴처럼 일을 하고 있다.
후덕한 인상의 그녀가 지휘하고 있다고는 상상되지 않을 만큼 날이 선 군기.
그러면서도 인망이 좋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녀가 그녀의 일을 하니 이제 진천희는 진천희의 일을 할 차례다.
진천희는 회진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계속 살폈다.
“형이 이 약 만들었다면서요?”
어린아이가 진천희의 진맥을 받으며 물었다.
“잠깐만. 말하지 말아 봐.”
아이는 진천희의 말에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선천성 매독.
태아 상태에서 감염된 아이들이다.
크게 조기 선천성 매독과 지연 선천성 매독으로 나뉘는데 신생아 때 매독이 발병하면 어차피 이 시대의 기술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이는 사망한다.
그나마 좀 성장한 후에 발병하면 가끔 이렇게 병과 싸우며 살아가는 케이스가 생긴다.
하지만 매독은 무서운 병.
얼굴 반을 덮은 흉터는 둘째 치고 아이의 한쪽 눈은 이미 실명한 상태다. 한쪽 귀 역시 이미 난청이 왔다.
어머니는 이미 매독으로 사망한 후고, 이 아이는 진천희의 요청 덕에 이리로 오게 되었다.
진맥을 마친 진천희가 물었다.
“무공을 배운 적 있니?”
“아니요.”
“단전에 내력이 흐르고 있는데?”
“어…… 내력?”
페니실린으로 상태가 호전이 되자 몸 안의 내력이 움직이는 게 발견되었다.
정작 아이는 내력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진천희는 손짓발짓을 하며 설명했다.
“어, 그러니까 이상하게 숨을 쉬어 본 적 없어?”
“아, 맞다. 열이 나서 너무 아프면 배로 숨을 쉬면 덜 아파서 그렇게 했어요. 이렇게……!”
아이는 올챙이배로 열심히 진천희에게 숨을 쉬어 보였다.
‘이걸로 내공을 쌓았다고? 구결을 사사받은 것도 없이?’
그게 사실이라면 이 아이는 천재다.
일단 진천희는 등에 손을 대고 아이가 숨을 쉴 때마다 내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주천을 해? 주천을 시킨다고?’
스승님도 없이 내공을 호흡에 맞춰서 주천을 시키고 있었다.
그냥 내공을 쌓는 정도면 만에 하나, 아니 천만에 하나 기연을 얻어 영약이라도 섭취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공을 몸 안에서 휘돌게 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본인 자각이 없다는 게 더 놀랍다.
“원래 이러는 건 줄 알았는데……?”
아이는 갸우뚱했다.
흉측한 얼굴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한쪽 얼굴을 가렸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더러운 상태였는데 지금은 깨끗하게 씻어 좋은 향기가 났다. 하지만 흉측한 건 여전해서 다들 시선을 피했다.
진천희가 물었다.
“이름은 없다고 했지?”
“하오문 아저씨들이 ‘야’라고 불러요. ‘거기’나, ‘저기’라고도 부르고. 애들은 ‘개’나 ‘잔반’이라고 부르고.”
“음…….”
진천희는 한쪽 이마를 찌푸렸다.
매독 환자 중에서 유일한 어린아이다.
사연이 기구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들으니 느낌이 다르다.
“이렇게 하자. 형이 네 이름을 그렇게 적을 수는 없으니까 여기에 대충 지어서 쓸게.”
“마음대로 해요.”
대충 쓴다고 말했지만 진천희는 그대로 앉아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썼다.
천우(天佑).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앞 한자를 땄다.
불행했던 만큼 앞으로 이 아이를 하늘이 돕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었다.
“넌 이제 천우야. 하늘 천에 도울 우. 하늘이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와, 좋네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괜찮다면 하오문 말고 다른 곳에서 살 생각이 있니?”
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무인으로서 뭘 하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하오문 안에서는 안 됐다.
“헤헤헤, 형이 데려다주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요.”
정에 굶주린 걸까.
아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른들은 무관심했고 또래 애들은 그를 때렸다. 발병 이후 긴 학대가 이어졌다.
‘병균 옮을지도 모른다’며 아이들은 소년을 때렸다.
하오문도 내에서 병자가 모인 곳으로 거취를 옮겼음에도 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진천희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일단 스승님과 하오문의 허락이 필요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