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01
제 500화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항주에서 가장 맛있는 객잔 대신, 항주 추억의 객잔에 들어 동파육을 먹었다.
“여기에서 형을 만났지. 아마?”
“응. 그때 엄청 놀랐지. 무슨 어린애가 그렇게 변검을 그렇게 잘하는지.”
“그때 형이 은전 하나를 크게 넣었지.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고~”
사마현은 흥얼거리며 과거를 반추했다.
왜일까.
이대로 그를 보내게 되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니, 알 것도 같다.
저 녀석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그만큼 몰려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망할 새끼.’
그는 자신의 인간성을 반추하고 있었다.
그것을 버릴지, 가지고 있을지,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형만 믿어.]“음?”
[기다려 봐. 성질 급하게 나서지 말고.]일단 붙잡아두자. 이 녀석이 사고 치기 전에.
원래의 역사로 돌아가게 놔둘까 보냐.
그때 경극이 시작되었다.
과거 사마현이 했던 것과 똑같은, 그러나 어린아이와 어른이 섞인 경극이다.
진천희가 말했다.
“백린의각이 지켜주고 있어.”
“형이 항주 거리를 정리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응.”
패왕별희가 시작된다.
사마혜는 동파육을 먹는 것도 잊고 눈을 빛내며 경극을 바라본다.
“오빠, 옛날 생각난다.”
“…….”
항우와 우미인의 사랑 이야기.
어째서일까. 어떤 것은 시대와 시대를 건너고, 말과 말로 이어지는데도 빛이 바래는 법이 없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은 몰입하고 만다.
이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현아. 네 손에 있는 건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는 없는 거야. 다른 걸 얻겠다고 그 손을 놓치면 안 된다.] [동파육 든 젓가락?] [그래. 그 젓가락. 혜아가 건네준 거잖아.] […….]귀공자 같은 옆얼굴로 고뇌가 스쳐 지나간다.
황금왕의 자리에 오른다면 어쩌면 이 싸움을 그만해도 될지도 모른다는 유혹이 눈가를 스친다.
잠깐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내려놓자마자 빠르게 처리하고 다시 혜아의 손을 붙잡아도 되지 않을까.
그 자리에 오른다면, 그 힘을 가진다면…….
경극 속 항우는 부드럽고 절도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의 손끝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다가 곡에 맞춰서 두둥 멈춘다.
이윽고 사마현이 말했다.
[쉬운 길이 보여. 사실 조금만 옆으로 걷기만 하면 무척이나 쉬워질 거야. 모든 게.]-힘은 산을 뽑고 기세가 세상을 뒤덮으니 (力拔山兮氣蓋世)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알고 있어. 형. 조금만 내 안의 불을 밖으로만 꺼내면 돼. 그러면 나는 황금왕이 되겠지. 모든 게 편해질지도 몰라.]-오추마가 나아가지 못하여 어찌하나?(騅不逝兮可奈何)
[이대로 지게 된다면.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르지. 다음 대의 황금왕이 나를 놔둘 리도 없고, 흑도의 법이란 그런 법이니까.]경극 속에서 사마현의 전음이 울린다.
표정은 태연하나 속에서 타오는 불을 진천희는 느꼈다.
저 불이 어떤 불인지 독자는 알고 있다.
세상을 태울 불이고, 한번 밖으로 나가면 산천이 뒤덮일 불이었다.
[혜아를 잃을까 봐 겁이 나니?] [미움 받는 건 익숙해. 괜찮아. 하지만 혜아는 살아 있어야 해. 혜아만 살릴 수 있다면 나는…….]-우희, 우희여. 너를 어찌해야 할까?(虞兮虞兮奈若何)
[현아.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형이 있으니까. 나는 너를 지킬 거니까.] [나는 그런 거…….] [알고 있어.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다는 거. 그리도 오성이 강하고, 그리도 머리가 좋으면서, 그렇게도 뛰어난 용모를 가져놓고. 자존감에는 구멍이 뚫린 너를 잘 알고 있어.] [내가 형을 보는 만큼 형도 나를 지켜봤구나.] [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이야기하는 거야. 한 번 놓으면 두 번도 놓을 거야.]이윽고 진천희가 전음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음?] [답은 패왕별희에 있었어.]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사마현을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아우의 얼굴을 형은 전처럼 단아하고 고고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역경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진천희가 말했다.
[형에게 고민을 털어놔 줘서 고마워. 현아.]대체 저 얼굴이 깨지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무인치고는 작은 체구의 형은 총기를 담아 여유 있게 웃는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 같이 해내 보자. 현아.]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아도 되는 길.
그것을 형은 어떻게 찾아낸 걸까.
사마현은 궁금해졌다.
그때 혜아가 말했다.
“역시 경극은 오빠가 가장 잘하는 것 같아.”
그리 말하며 양손으로 진천희와 사마현의 손을 하나씩 쥐었다.
“헤헤헤. 셋이 놀러 와서 엄청 좋다.”
“…….”
놓지 않아서 다행이다.
인간 사마현은 그렇게 또 다른 선택을 했다.
자신을 붙잡아준 두 개의 손 때문이었다.
그저 결말이 눈앞의 패왕별희처럼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
* * *
다음 날.
진천희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재료를 주문했다.
‘유호… 유호가 없다.’
어쩔 수 없다. 만능 맥가이버 칼이 없으니 혼자서 하는 수밖에.
“형, 대체 뭘 하는 거야?”
의각 뒤편 공터 가건물.
폐하에게 하사받은 토지의 일부이나 아직 본격적으로 개발하지는 않고 창고로 쓰고 있다.
이곳에서 진천희는 모래 더미를 만지고 있다.
“현아. 너는 정상적으로 살고 싶은 거지?”
“응.”
“물론 네가 흑도의 길에 든 이상, 손에 피를 묻히며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은 거잖아?”
“…….”
사마현은 대답 대신 제 키보다 작은 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떤 것들은 대답하지 않기에 진심이 전해질 때도 있다.
이런 게 그렇다.
그 어떤 ‘Yes’보다도 강한 긍정을 형은 느낀다.
“좋아. 일단 완성될 때까지 혜아에게는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고. 너는 혜아에게 네 일을 알리고 싶지 않으니까.”
“응.”
단 한 줌의 더러움도 동생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했다.
이해했다.
현이에게 있어 혜아는 그래도 그를 사람으로 붙어있게 만들어주는 중력 같은 것일 테니까.
자신의 더러운 모습 같은 건 조금도 보이고 싶지 않겠지.
그러니…….
“그런데 형이 하는 모래 장난과 관계가 있는 거야?”
“응. 일단 어… 이건 그냥 모래로 보일 수 있지만 이산화규소, 탄산나트륨, 석회의 혼합물이야. 여기에 유리 가루도 쓸 거고.”
그리 말하며 모래를 희한하게 생긴 가마에 집어넣더니 까만 돌로 불을 지피고, 거기에 내공까지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진천희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솟구친다. 강대한 열양기가 모래를 녹이기 시작했다.
구그그그-
‘유리창 자체는 서기 79년,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했지.’
시작은 이집트 때까지 내려가야 하지만.
발견 자체는 화산 활동에 남은 잔여 유리를 보고 발견한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쪽이든 인간에게 있어 유리는 중요한 물건.
그것을 녹이고 평평하게 만들어 내공으로 천천히 식혀 나간다.
사마현은 턱을 괴고 쭈그려 앉아 형이 하고 있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본다.
중간에 내공을 사용하는 것 같긴 한데, 자세한 것은 봐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꽤 그럴듯한 판유리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유리 뒤쪽 표면에 은을 녹여서…….”
그것까지 하고 나니 진천희 자신도 지쳤는지 기진맥진하게 누웠다.
“아니… 이거 하나 만드는 게 강기 날려대는 것보다 더 힘드네. 헉… 허억…….”
사마현은 형이 만들어낸 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티 없이 맑은 거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꽤 다양한 거울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깨끗한 건 처음이야. 형.”
그랬다.
빛조차도 반사할 정도로 맑은 거울이, 그것도 커다란 거울이 거기에 있었다.
“역시 난 좀 잘생긴 거 같군요. 가가~?”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맑게 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나. 사마현의 질문을 무시하고 진천희가 말했다.
“돈 될 거 같지 않니? 금이 얼마가 되든 사고 싶을 것 같은데?”
“물론 그래. 이만한 물건은 나도 본 적이 없고, 황금왕이라도 가지고 싶어 하실 거야. 하지만 사업을 하려면 대량생산을 해야 해. 형처럼 내공을 마구 쓰면서 생산을 하는 거면 단가가 안 맞는걸~”
“그래. 맞아. 이건 그냥 너 보라고 견본품으로 만든 거고 대량생산 방식은 또 따로 있어.”
그렇게 해도 유호의 솜씨를 따라가기는 어렵겠지만 말이지.
진천희는 뒷말을 삼켰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가가?”
“물론.”
‘형은 대체 어떻게 그것을 안 걸까.’
사마현은 생각에 잠겼다.
형은 마치 이 세상에는 없는 지식들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서대륙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짐작은 해보았으나, 가끔은 서대륙에도 없는 지식을 꺼내오기도 했다.
“무슨 생각 해?”
“상품 가치를 따지고 있습니다요~”
그리고 이 착한 현자가 절대 가르쳐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형은 아닌 듯하면서도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제갈세가이기에 그런가 했는데 글쎄다.
“상품 가치는 어떤데?”
“형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고, 제조 공정이 괜찮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아마 원가의 스무 배는 남겨 먹을걸?”
“그래. 그럴 거야.”
인류사에서 유리 거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 12세기경이던가.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쪽 무림 랜드에도 유리 거울은 있다.
‘이보게. 당신, 모래로 무엇을 만들려는 거야! 이 빛나고 투명한 것은 뭐지?’
‘아아, 모르는가. 이것은 유리라고 한다. 이것으로 거울을 만드는 것이지,’ 같은 이세계인 클리셰가 불가능하다.
그 짓을 했다가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봐주긴 할 것이다.
이미 유리 거울을 알아서 잘 만들고 살기 때문이다.
물론 비싸기도 오질 나게 비싸고, 유리를 씌우지 않은 동경(銅鏡, 구리 거울)보다 아주 약간 더 나은 수준이라서 보편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있긴 하다.
이유는 기술에 있었다.
이 세계의 유리들은 평평하고 고르게 만들어지는 것이 오로지 장인의 손기술에 달려 있다.
거기다가 이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유리 거울은 유리 한쪽 면에 주석과 수은의 합금을 얇게 바르는 형태로 제작되기 때문.
일단 주석과 수은 합금의 반사율이 그리 좋지 않고, 수제 제작이라는 점 때문에 표면이 고르지도 않아서 상이 제대로 반사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유리 거울들은 굴곡이 심해서 제대로 형상을 반사해서 보여주지 못하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보라.
지금 진천희가 만든 것은 아주 깨끗하게 반사해 낸다.
‘지구의 거울은 반사율이 80% 이상이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금속은 알루미늄과 은뿐이라고 했었지, 아마?’
진천희는 전생에 봤던 다큐를 떠올렸다.
투명한 유리의 한쪽 면에 은이나 알루미늄을 코팅함으로써 비로소 거울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코팅을 아주 균일하게 해내야 한다는 점.
물론 화경에 도달한 자들 중에서도 허공섭물을 정교하게 다룰 수 있으며 내공이 빵빵한 진천희였기에 수평을 완벽히 맞춰서 합일이 가능한 것이지, 다른 이들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짧게 생각하고 있던 진천희의 귀로 여전히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정말 대량생산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