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11
제 510화
전투 이후 시체를 수습하고 공방을 다시 수리했다.
시신 중에는 마교도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금혈방의 어느 누군가가 마교와 손을 잡았고, 그것을 사마현과 진천희가 패퇴시켰다는 소문이 항주에 자자했다.
“백린의각의 소각주가 항주의 패자이고, 그것을 은혈방의 방주가 거든 셈인가?”
“사마현과 사마혜. 둘 모두 항주의 기둥이 된 셈 아닌가.”
“그래도 손속은 정말이지…….”
항주의 무인들 모두가 사마현의 소속을 알게 된 사건이었다.
사마현은 그것을 혈화라며 웃고 말았지만, 땅에 그려진 핏줄기 자국은 좀처럼 지워지는 법이 없었다.
항주 밑바닥에서 굴러 온 자들이야 의외로 흔한 광경이었고.
“오랜만에 보는군. 이거.”
“백린의각이 항주를 석권하기 전에는 늘 보던 광경이었지.”
“어떤 살행이 벌어진들 포두들조차 방관해 오지 않았나.”
어떤 비극은 반복되면 일상이 된다.
백린의각 소속 몇몇은 사마현이 만든 광경에 기겁했다.
“자네는 항주 출신이 아닌 모양이구만.”
“어떻게 이렇게 덤덤한 것이오.”
“뭐. 그래도 의원 나리들은 강호에 익숙하니 괜찮은 줄 알았건만.”
“아무리 그래도 천면호리가 만든 시신은… 우욱……!”
충격으로 구토를 하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비극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하룻밤 경극과도 같았다.
사마현이 내려왔다.
“대협들은 쉬시지요~ 이다음은 은혈방에서 치울 테니.”
천면호리의 별호는 혈면호리, 또는 광면호리로 변해 갔다.
사마현은 잘된 일이라고 자평했다.
그의 이름이 높아지고, 사마혜의 이름 역시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상, 사마혜가 그의 약점이라는 것 역시 숨길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잔혹한 손속 역시도 하나의 무기가 될 터이니.
“자아, 장사합시다요.”
천면호리는 오늘도 웃는다.
그의 미소에 누군가는 함께 웃어 주고, 또 누군가는 공포에 절여진 표정으로 바라본다.
둘 다 마음에 들었다.
“오빠!”
“혜아~ 나중에 오지, 왜 지금 와.”
사마혜는 그런 오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은공이 좋아할 만한 걸 찾았어.”
“음?”
“나는 바쁘니까, 오빠가 선물해 줘.”
그리 말하며 사마현의 팔을 와락 붙잡았다.
사마현은 그런 사마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가 낭자한 밤을 보냈지만, 아직 그는 무인이고 사람이었다.
동생, 그리고 형.
자신을 붙잡아 주는 두 쌍의 손이 있는 한 그가 추락할 일은 없었다.
* * *
사업은 순항 중이다.
몇 번의 습격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진천희와 사마현 두 사람이 막아 냈고, 당한 자들은 모두 사마현의 잔혹한 손속의 제물이 되었다.
금혈방, 황금왕의 시험.
사마현의 승리가 점차 굳어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황금왕에게서 전서가 왔다.
사마현이 말했다.
“사부님께서 돌아오래.”
“황금왕의 시험도 곧 끝나겠구나.”
“호오, 어찌 안 거야?”
“응. 기한이 일 년이라고는 했지만, 정확하게 날짜를 고지하진 않았잖아?”
그 말에 사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조는 일 년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명을 내린 그날로부터 딱 1년째 되는 날 끝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랬다면 날짜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형 말이 맞아. 더 시간이 흐른들 판이 뒤집히지 않는다 싶을 때가 온다면 그때는 시험의 의미가 없으니 부른다고 했지.”
사마현이 턱을 쓸었다.
“하지만 중간 확인을 하려고 불렀다면서 실없이 우릴 도로 보낼 수도 있어. 그런 양반이야.”
참으로 사람 미치게 만드는 기준이다.
황금왕의 손안에서 논다는 건 이런 감각인가.
웃기게도 황금왕 정도면 그래도 사파치고는 꽤 온건한 축이란다.
결국 그녀의 기준이란 철저하게 돈에 달려 있으니까.
그렇다면 마교는 어떠한가.
진천희는 흑운을 떠올렸다.
“우리보다 더 번 사람이 있을까?”
“흐음…… 없을걸?”
그동안 이런저런 인맥과 정보력을 통해 알아봤는데 이만큼의 수익을 단기간 끌어모은 이는 없었다.
특히나 1년 후, 2년 후, 어쩌면 3년 후가 될지 모르는 기나긴 예약금들이 고스란히 사마현의 주머니에서 잘 자고 있으니까.
현재 사마현은 은혈방이 가진 재산보다도 많은 돈을 홀로 벌어들였으니까.
“다른 황금왕의 제자들은 어찌할 거야?”
오만한 질문.
승리를 확신하는 형은 그렇게 아우에게 물었다.
“으음…….”
사마현 이놈은 시선을 돌리며 말없이 웃기만 하네.
사실 알고는 있지.
보통 사파는 이렇게 승자 구도가 확실해지면 그 외에 경쟁했던 자들의 목을 치지 않던가.
한 벌통에 여왕벌이 둘이 될 수 없듯.
결국 승자가 독식해야 사파의 면이 서는 법이 아닌가.
그들은 기본적으로 공포로 사람을 다스리는 데에 도가 튼 자들이니까.
그렇게 해서 자신을 거스르면 어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 주고.
그들을 지지했던 자들을 와해시키며.
마침내 권력 구도를 황금 피라미드처럼 단단하게 만들지.
사마현이 말했다.
“죽이는 쪽이 편하긴 한데, 그렇게 되면 공백이 생겨.”
“공백?”
“사업은 시스템으로 하는 거잖아. 형. 그만한 인력을 다시 뽑아서 가르치는 건 분명 낭비 같단 말이지.”
“시스템이란 단어는…… 또… 아니…다…… 내가 가르쳤겠군.”
진천희는 이마를 찌푸렸다.
사마현이 말했다.
“계속 전처럼 일해 줄 거면 살릴 거고, 그게 아니면 다음은 없어. 그게 기준이 되겠지~”
“철저하게 자본주의군.”
의외네.
다른 사파들처럼 철저하게 경쟁자였던 자들의 목을 치고 자기만의 제국을 만들 준비를 할 줄 알았건만.
포용하는 정책으로 가다니.
‘물론 그렇다고 피를 안 흘리지는 않겠지만.’
그 기간이 비록 짧다고는 해도 한동안 금혈방 금괴에서는 핏물이 배어 나오겠지.
그래도 영리하다고 해야 하나.
피와 공포, 돈으로 지배하던 금혈방이, 이제는 반대로 돈과 개방성으로 상대하겠다는 거다.
흡사 우유왕 알카포네가 떠오르는군. 이거.
총팔이 밀주팔이보다 우유가 더 돈이 되는 걸 깨달은 거지.
“형은? 이제는 뭐 할 거야?”
“항주에서 볼일이 끝났으니 의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이렇게 말했다.
“근방에서 삼절추호가 목격되었어. 형.”
“아… 그분?”
삼절추호 도백하.
그녀는 동생인 도백은을 찾고 있다.
금천군 도백은.
‘그렇다면 그때 본 새는 혈선교의 것이 분명하겠군.’
삼절추호가 와 있다는 것. 그리고 굳이 진천희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긴밀하게 주변을 봐야 한다는 뜻이고.
높은 확률로 근방에 혈선교의 누군가가 있을 터였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 줘서 고마워.”
“뭘~ 그런 것보다 조심해. 형.”
사마현이 형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웃음기 없는 눈으로 확인하듯 다시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사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거다?”
대체 이놈의 눈에 형이 어떻게 보이는 걸까.
“걱정하지 마. 사지 온전하게 숨 쉰 채 발견되게 해줄게.”
그 말에 사마현은 피식 웃었다. 허나, 여전히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삼절추호를 만난다는 건 일반적으로 좋은 일은 아닐 테니, 걱정이 되는 거겠지.
* * *
사마현을 보내고 혼자서 돌아가기로 했다.
원래라면 또다시 호위를 주렁주렁 달고 철판 마차를 타고 돌아가야 할 터.
허나 백린대의 인력이 부족했다.
항주의 공방까지 지켜야 하는 데다가, 무엇보다 황금왕의 시험 종료를 앞두고 혜아를 인질로 삼는 자가 있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
‘거기다가, 이제 와서는 고기 방패밖에 되지 못하니.’
스승님이야 이들이 죽음으로써 일 초라도 벌면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쪽 입장에서는 [살려야 할 목숨+1] 아닌가.
백린대의 누구도 황구보다 냄새를 잘 맡을 수도, 뇌진보다 멀리 볼 수도 없다.
타인을 지키며 싸우는 것 자체가 걸리적거렸으니까.
‘그리고……. 손님이 오셔야 하니.’
그 손님은 진천희 외에 다른 이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 워낙 강호에 은원이 복잡하게 얽혀 계시는 분이시다 보니.
혼자 있을 것.
그것이 조건이었으니까.
그래서 산길에 적당한 동굴을 발견해 입구에 모닥불을 피우고 자리를 마련했다.
무릇 별이란 적막 속에 피어나는 꽃이 아니던가.
새벽이 멀고, 고요가 깊을수록 은하수가 멀리 보였다.
‘역시 지구는 아니군.’
별자리가 다르다.
하긴, 위인이 죽는다고 별이 떨어지는 세계에서 지구와 똑같은 별자리를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되려나.
그래도 인간이 별에 느끼는 감동은 어디나 똑같았고.
어두운 밤하늘, 별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황구와 뇌진은 사슴 뒷다리를 하나씩 차지하고는 좋다고 뜯어 먹었다.
고기에 칼집을 넣고, 후추에 허브를 비롯한 각종 양념, 거기에 버터까지 집어넣어서 구웠다.
극상의 맛을 두 영물들이 즐기고 있다.
‘으음, 오늘 밤은 아닌가.’
진천희식 중원 스튜를 재워 놓고, 슬슬 잘까 준비를 하는데 황구의 귀가 움찔 움직였다.
하지만 낯선 기척에도 황구는 경계를 하기는커녕 다시 먹던 고기에 주둥이를 박고 열심히 뜯어댔다.
‘으음, 왔는가.’
진천희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깡마른 여인이 걸어왔다.
“여기 있었군. 아우님.”
“네. 동혈에 표식을 해두셔서 덕분에 잘 쉴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
진천희와 은밀히 접선하기 위한 방책으로 삼절추호는 동혈마다 자신의 표식을 남겼다.
물론 그 표식을 동굴 벽에 그린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랬다가는 원하지 않는 객(客)도 마주치게 될 터이니.
그녀가 한 것은 ‘냄새’다.
진천희가 혼자 다닐 때 반드시 황구와 동행한다는 것을 알기에 세외에서 구한 특수한 향신료를 단지째로 파묻어 놓는다.
향신료는 땅 밑에서 숙성이 되고, 황구는 그 냄새를 찾아서 간다.
향신료 단지를 파내면 그것으로 고기를 요리해주는 ‘보상’이 따르기 때문.
“덕분에 야행이 풍족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독이라도 파묻는 게 좋을까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분명 아우님이 싫어하겠지. 아끼는 개가 독 냄새를 맡으며 다니는 건 별로일 테니. 그래서 바꾸었네.”
“최고죠. 덕분에 탕국이 세외식으로 완성되었는걸요.”
진천희식 중원 스튜다.
“아우님은 어디서나 잘 해먹고 사는구만.”
“정말 맛있다니까요? 한 입만 드시면…….”
진천희가 국자로 스튜를 휘저으려 하자 삼절추호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해후를 풀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
“음?”
“치료해 줘야 할 환자가 있네.”
“치료요?”
“혈선교의 꾀를 찾았네. 허나, 정보를 쥔 자가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이니 부디 도와주게나.”
“음. 알았습니다.”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켜 보지만, 역시나 스튜가 아까워지는군.
저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가자 삼절추호가 피식 웃었다.
“야영 뒷정리는 바로 해줄 테니 걱정 말게나.”
“오오!”
“하여간 아우님은 노숙조차도 즐기며 사는군. 보통은 다들 밤이슬 맞는 걸 싫어하는데 말이지.”
“가끔은 이런 시간도 귀하거든요. 의원은 혼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그리 말하며 가볍게 짐을 챙겨 삼절추호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