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15
제 514화
와아아아아아–!
천여 명 가까이가 지르는 함성이 귀를 후려치고.
진천희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며 탐호대의 수를 센다.
“백여 명, 진법도 없이 백여 명으로 버텨야겠군요.”
“상황 파악이 빠르군.”
도무지, 도무지 죽이지 않고 이 모두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나, 여기서 자신이 주춤거리면 아군이 죽게 될 터.
그럴 수야 있나. 그러니 진천희는 다시 앞을 바라본다.
시뻘겋게 물든 하늘 아래로 달려오는 모두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킁!
희미하게 나는 약 냄새에 황구가 불쾌한 울음을 냈다.
“광기에 세뇌당한 이들도 피해자이겠지요. 누님.”
“아우님, 선택을 좀 쉽게 하도록 첨언하자면, 세뇌당하기 전에는 인간 도살자였네. 양민을 죽이고 사람을 노예로 팔았지.”
“누님.”
“말했지 않은가. 흑도의 말로에 대해. 과정에서 이미 양민의 피가 묻었는데, 사람의 길을 버렸는데. 어찌 그 결과가 사람답게 끝나기를 바라나.”
“저는.”
“자네가 죽이지 않은들 나는 이자들을 죽일 것이고, 이 중에 살아남은 자들은 다음 혈선교의 의식을 위해 다른 양민을 죽일 거네.”
“저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겠습니다.”
진천희는 이를 악문다.
삼절추호가 답했다.
“그게 협(俠)이네. 협은 결코 선(善)이 될 수 없는 이유지.”
“…….”
진천희는 자신의 몸을 활처럼 튕겨 빠르게 나아갔다.
하단전에서 갈무리된 내력이 중단전을 타고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성대에 맺혀 노호성을 터뜨린다.
흡사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칠판을 긁는 소리같이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해봐야 세뇌당한 자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그러니 달팽이관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음을 터뜨릴 뿐.
그러자 순간 균형 감각을 상실한 자들이 휘청거렸다.
그 순간, 탄지천통이 비처럼 날아가 세뇌된 해사방도들을 쓰러뜨렸다.
“사람인가……?”
“일광의 명성이 과언이 아니군.”
탐호대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일광이 적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흡사 늑대가 양 떼를 흩듯이 뒤섞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삼절추호가 외쳤다.
“정신 차려! 모두 검진을 짜라! 탐호진 개진!”
탐호대가 삼절추호의 명에 따라 일제히 검진을 짠다.
“상대는 세뇌로 이지를 잃은 자들이다. 팔이 잘리든, 다리가 잘리든 흡사 강시처럼 덤벼들 터.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생강시란 말입니까?”
살아있는 상태로 세뇌를 당해 이지가 흩어진 자를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요즘은 덜하나, 선대 무인들에게서 과거 마교가 곧잘 사용했다는 말을 듣고 자란 이들이었다.
탐호대의 눈에 공포가 서린다.
“그래. 사실상 생강시지. 허나 혈선교의 생강시는 다르다. 마교의 생강시는 시키는 것만 하나, 혈선교의 생강시는 살육 그 자체를 원하니까.”
“더… 뛰어나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런 개념이 아니야. 본인들도 통제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이윽고 진천희가 만들어 낸 음공 사이로 해사방도들의 파도가 덮친다.
아무리 인간이 강하다고는 하나, 혈선교의 주술로 강화된 생강시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을 불가능할 터.
“생문(生門)을 닫아라!”
검진이 움직인다.
탐호대가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며, 해사방도를 쳐낸다. 그러나 그 말대로 팔이 찢기고, 다리가 찢겨도 놈들은 이지를 잃고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끄아아악! 끄억! 끄아아아악!
상대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면 차라리 나았을까.
콰르르릉!
진천희의 손에서 뇌전이 솟구쳐 그물처럼 해사방도를 쓸어 버린다.
주인의 신호에 맞춰 천뢰응도 함께 응해 벼락을 쏘았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많았다.
지나치게 많았다.
일광의 벽색 눈동자가 번개를 담아 다시 쏜다.
음공과 뇌전이 함께하며 춤을 추었다.
“저게 사람인가.”
탐호대는 일광의 무위에 경외를 담아 말했다.
“투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군. 어떻게 이 와중에도 저렇게 침착하게 싸울 수 있는 거지?”
“보통 무인이라면 이미 내력이 진탕되고도 남았을 터인데. 어찌 저리 검기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그들은 검진을 펼치면서도 진천희의 끝없는 무공에 경악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광의(狂醫). 천하 십 대 고수 일광이라는 무명은 오히려 축소되었던 거군.”
그날 사망한 탐호대원의 수는 총 열둘.
그리고 습격해 온 해사방도들 천여 명 중 사망자는 오백육십이 명이었다.
눈부신 승리, 그중 반 이상을 생포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 할 수 있었고.
내력을 탕진한 진천희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일다경 만에 일어나 다친 이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다시 쓰러졌다.
지옥은 그리 멀지 않았다.
* * *
항주, 근처 토굴.
작은 미동이 달려가 허름한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검은색의 도관과 검은 복식을 한 사내와 반대로 흰 도관에 흰 복식을 한 사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왔구나.”
“네, 사부님.”
미동은 그들에게 서신을 건넸다.
그들의 이름은 흑백괴선.
완전히 똑같은 얼굴에 복식의 색만 다른 두 미중년은 서신을 한참이나 읽었다.
“혈선교가 움직이는군.”
“천기역행자를 손에 넣기 위한 책략이겠지.”
두 괴인의 표정이 똑같이 꿈틀거린다.
“천기역행자가 그사이에 더욱 강해졌더군.”
“음공과 탄지공, 뇌공인가.”
“워낙 가지고 있는 패가 많은 자이니 무엇 하나로 규정하기가 어렵군.”
“심지어 무공에 대한 틀조차도 스스로 정하지 않아 보통 강호인을 상대하는 것과는 많이 다를 걸세.”
이윽고 백의괴인이 말했다.
“혈선교 놈들도 처리는 해야겠지. 그들이 지금 항주에 있는 것도 천기에 반하는 일 아닌가.”
“그러면 때를 봐야겠군.”
“그래.”
이윽고 흑의괴인과 백의괴인이 동시에 붓으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방휼지세(蚌鷸之勢).
이이제이(以夷制夷)
두 세력이 맞부딪치는 것이 흡사 도요새의 부리를 문 조가비와 같으니, 차라리 두 세력이 부딪치는 순간 처리하자는 뜻이었다.
서로가 쓴 것을 확인한 흑백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뜻이군.”
“같은 결과군.”
그렇다면 다음 방침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다시 무언가를 적어 서신으로 만들고는 미동에게 건네주었다.
미동은 예를 표하고는 곧바로 토굴을 나갔다.
“천기를 바른 길로.”
“천기를 바른 길로.”
두 괴인은 동시에 같은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람을 치료하고, 탈진하고, 다시 치료한다.
다행히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의원들이 함께했기에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고.
그런 진천희를 삼절추호가 기가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네는 주화입마가 안 오나?”
“음?”
“그 정도로 내력을 쏟아붓고 채우고를 반복하는데 어떻게 주화입마가 안 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라 그러네.”
“그게 가능하려면 정순한 무공과 심법이 필수지요. 처음 하단전을 만들 때부터 반복하다 보면 됩니다. 철사장과 비슷한 원리지요. 처음에는 낮은 온도의 모래를 찌르다가 점점 더 높은 온도의 모래를 찌르는 거니까요.”
“…미쳤군.”
나름대로 열심히 학구적인 설명을 했건만, 그녀는 그렇게 축약하고는 곧바로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뭔가?”
“지금 경지요?”
“그 경지를 박피에 쓴다는 소리를 내 들었네.”
그 말에 진천희가 허허롭게 웃었다.
“넓은 범위의 활인(活人)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죠.”
문득 이놈 스승은 대체 뭐하는 놈일까.
삼절추호는 3초간 생각하다가 잊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이놈 스승인 백린의선이라고 정상적인 놈은 아니지 않나.
그나마 백린의선쯤 되니까 저런 놈도 감당하며 살 수 있는 걸지도.
진천희는 왼팔의 붕대를 풀고는 다시 감는다.
“조심하세요.”
“독기가 계속 나오는 모양이군그래.”
“네. 오독문의 독공을 오행상극독으로 해체한 이후로 계속 이럽디다.”
“……잘도 살아 있군.”
질렸다는 표정으로 삼절추호가 정색했다.
“헤헤헤.”
진천희는 그녀의 정색을 웃음으로 대충 무마했다.
새로 붕대를 감고 헌 붕대는 화생기로 즉각 태워서 처리했다.
창문을 살짝 열어 환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깨끗한 새 붕대로 왼팔을 감으며 진천희가 말했다.
“아우인 사마현에게 듣기로 해사방도는 대략 오천에서 육천여 명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귀신같군. 대충 그 정도가 맞네.”
“그러면 지금 대략 천여 명이 여기에 왔고, 다른 천여 명 정도는 해사방주를 따르다가 죽었으니, 이제 남은 건 사천여 명 정도려나요?”
“그렇겠지. 거기에 혈선교의 전력까지 더해야 할 걸세.”
붕대를 계속 감고, 감으며 청년은 물빛 눈으로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되물었다.
“그냥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냥 관군을 동원해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흠?”
“어차피 수적은 관군에게 있어서 주적이 아닙니까, 이놈들은 일전의 병역의 의무도 수행하지 않았으니 사파에서도 도적들은 반역분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때문에 녹림도 역시 숙신족과의 전쟁 때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았고요.”
“아우님. 애초에 수적과 산적이 세금을 안 내는데 그놈들이 군납이라고 하겠나.”
“네. 때문에 관군을 이용해 토벌해도, 문제는 없지요.”
“그게… 음.”
삼절추호는 무언가 반박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엇이 걱정되는 겁니까? 혹시 관군보다 수적이 더 강할 것이 걱정이 되어 그러십니까.”
“으음. 물론 그건 맞네. 수로채도 엄연해 말해 강호 방파이지. 수적이라고 해도 무공을 아예 안 익히는 것은 아니니 비록 삼류라고 해도 일반적인 관병보다는 강하니까.”
“그렇다면 무림맹에도 지원을 요청해 두죠. 혈선교는 무림 공적. 그러니 무림맹에서도 나설 명분이 있습니다.”
그 말에 삼절추호는 뭔가 석연치 않은 듯 살짝 혀를 차는 게 아닌가.
“왜 그러십니까. 만약 다른 계획이 있다면…….”
“그… 아니네. 아니야. 꺼림직한 부분이 하나 있긴 하지만 내 추측이 틀릴 수 있으니 함께 가 봅세.”
거기까지만 말하고 삼절추호는 입을 다물었다.
“……?”
되묻고 싶었지만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더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도백하는 무림맹에 서신을 썼다.
“천뢰응인 뇌진을 통해 부탁하면 됩니다.”
삐익-
진천희는 육포를 화기로 구워서 뇌진의 부리에 물려 주었다.
삑삑!
“맡겨 달라는군요.”
“강호에서 가장 빠른 전서구군.”
“그런 셈이지요.”
그렇게 뇌진의 다리에 전서를 묶어 날려 보내고 진천희는 짐을 쌌다.
“이대로 바로 관군을 만나러 갈 건가?”
“네. 그러지요. 혈선교는 이미 관무불가침을 넘은 놈들이니, 쓸 수 있는 것은 다 써야 하니까요.”
언제 다시 민가를 습격하고 양민의 내장으로 의식을 치를지 알 수 없는 일.
이거 좀 조급해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