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16
제 515화
지친 탐호대는 무림맹으로 보냈고.
진천희와 삼절추호는 최대한 빨리 경공으로 항주를 향해 달렸다.
갈 곳은 단 하나, 절강성의 성주가 머무는 관사(官舍)였다.
무림맹의 사자로 왔다고 전언을 넣으니, 얼마 후에 관군이 와서 이렇게 답했다.
“현재 성주께서는 선약이 있으셔서 거동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시지요.”
“음. 하긴 급히 왔으니 어쩔 수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내일 오겠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하루 후에 가니 비슷한 답변을 하는 게 아닌가.
“성주님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방문객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후일 다시 오시지요.”
성주의 저택에는 풍악 소리가 그윽하군그래.
아픈 사람이 예인들을 불러다가 연회를 즐기지는 않을 터.
문득, 삼절추호의 표정을 보니 그리 놀란 기색은 아닌 것이 익숙해 보이는걸? 약간 실망을 한 수준이야.
‘아아, 누님께서는 이것을 예상하셨군.’
거기까지 가니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관군은 이미 수적과 유착했구나.’
누님께서 그랬지.
해사방주의 손에 피가 많이 묻어 있다고.
단순 계산해도 흑도가 양민들의 피를 이리 오랫동안 쥐어짜기 위해서는 그걸 보고도 눈을 감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지 않겠나.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담벼락 안에 있구나.
호화로운 대문과 멋진 관우상을 바라보며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해사방주도 이건 우리한테 말을 안 했군.’
하긴. 굳이 이제 와서 이걸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본인이 했던 유착이니.
해사방주의 결말이 어째서 좋지 않을 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돈을 주고 관아의 눈을 닫았으니, 그는 앞으로 삼 년도 살지 못하리라.
“어찌할 건가. 아우님?”
“제가 아주 예전에 있던 곳에서는 말입니다, 누님. 다들 하루를 참는 것도 힘들어했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전서구가 한번 터지면 사람이 정신이 나갔지요.”
“전서구?”
“네. 엘티이라는 녀석입니다.”
“엘티이? 그거 참 희한한 이야기군.”
어차피 삼절추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무릇 일광이 이런 식으로 미친 사람처럼 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의 기행이나 기담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어도 들려오는 게 있으니까.
어떤 것들은 뼈가 담겨 있지만, 또 어떤 것은 왜 말했는지 영문을 모를 헛소리도 많지 않던가.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진천희가 소매에서 무언가 뒤적거렸다.
정확히는 팔찌다.
그것도 손목 안쪽 깊숙하게, 어디 팔꿈치 아래까지 안 보이게 쭉 밀어 넣은 터라 꺼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것 좀 봐주시지요.”
황금 드래곤이 용틀임을 하며 관군을 꼬나보고 있었다.
“이것은……!”
진천희의 벽안이 관군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했다.
‘오우, 못 알아보는군. 황금용인 걸 봐서 뭔가 높아 보이는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고 있어!’
역시 고작 일개 관원 정도로는 감찰사의 증거를 못 알아보는 건가.
“감찰패입니다.”
“……감찰패!”
그제야 놀란다.
일단 감찰패 자체를 의심하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걸 꺼낸 게 항주의 일광이니까.
진천희가 말했다.
“절강성주께 안내해 주시지요.”
“존명……!”
역시 권력은 모든 절차를 아주 빠르게 당겨 주지.
아주 그냥 빛의 속도야.
* * *
“고작 감찰사 따위가 절강성주인 나를 보러 온단 말이냐!”
음, 복도로 노호성이 울리는군.
절차를 다소 생략하고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누가 먼저 잽싸게 달려가 귀띔이라도 한 모양이야.
“고작 일개 감찰사가 오라 가라 할 만큼 본관이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닐… 근데 감찰사가 누구라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천희는 비단 장지문을 열었다.
드르륵-
“안녕하십니까!”
“히이이익?! 일과아아앙?”
바로 뒤로 자빠지는 폼이 무슨 옛날 희극 같군.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는 걸 보니, 멀리서라도 진천희를 봤거나 진천희의 용모파기를 봤거나 둘 중의 하나…….
“……가 아니시군요. 척추는 괜찮으십니까?”
아이고, 백린의각 내원 환자였네.
환자의 개인사나 직책에 관해서는 일부러 함구하는 편이고, 치료 이후에 환자가 어떻게 살든 병증으로 다시 내원하는 게 아니면야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오, 절강성주가 되셨군요. 감축드리옵니다!”
이놈은 기억이 아주 생생하다.
척추 디스크 문제로 왔는데 당시 별채를 통으로 내놓으라고 떼를 썼었다.
그때 이미 별채 쪽은 다 차 있었고, 심지어 하필 한이정이 입원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다른 관리분이 그에게 면회를 갔었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조용해졌지.
사실 이런 일은 일일이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의각에 너무나도 흔한 일 중의 하나다.
출세했구나. 이놈.
“험험, 본관이 그간 공무가 다망하여 소홀했구려. 백린의각의 소각주는 무슨 일로 본관을 만나자고 했소?”
방금 성깔은 또 어디 갔는지 얌전히 겸양을 떠는 모습이 웃기네, 이거.
반면 절강성주의 속셈은 또 달랐다.
‘요새 폐하께서 총애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일광이 아닌가! 젠장……!’
하필 황실 직속 감찰사 패를 들고 온 게 일광일 줄은 몰랐다.
일시적으로 받은 건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감찰사 일을 하는 것인지는 절강성주의 직책으로 알 수 없으나 일단 위기인 것은 확실했고.
‘과거 주왕야의 부마를 치료해서 주왕야의 총애까지 등에 업은 데다가 식읍을 2천 호나 받고 부곡을 내리네 마네 했다는 소문까지 있는데……?’
비록 황도에서 직접 정회를 본 것은 아니나, 그 소문 하나만은 요란하다.
특히 폐하께서 두창을 잡은 일을 크게 치하하였고, 사물을 완벽하게 비추는 거울을 진상하여 기쁘게 해드렸다고 한다.
그뿐인가.
숙신족과의 전쟁에서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는 입이 아플 지경.
이런 놈을 상대로 이틀이나 미루었단 말인가.
‘멍청한 수하 놈들. 일광이 왔으면 왔다고 진즉 말해야 할 것 아닌가! 저놈이 감찰패까지 가진 상황에 황상께 잘못 입이라도 털면……. 나는……?!’
그러했다.
무릇 성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권력에 민감해야 했다.
특히나 주왕처럼 왕(王)의 위를 받은 것도 아니고 결국 폐하께서 목을 치면 죽는 하루살이 관리 인생 아닌가.
삼절추호가 바로 태도가 돌변하는 놈의 행태를 보고 있다가 전음을 했다.
[우리 아우가 정계에서 말발이 먹히는군그래. 그 감찰패에 대한 정보야 이미 알고야 있었지만, 단지 그뿐만은 아닌 것 같으니.] [하하하. 다행이지요.] [전장에서 활약한 건에 주왕야의 부마를 치료한 건, 그리고 왕야……님을 치료한 건도 더해지니 그런 겐가.] [아, 정보가 거기까지 갔군요.]진천희의 말에 삼절추호가 피식 웃었다.
[내 비록 몸은 산간벽지를 떠돈다 할지라도 귀는 늘 열려 있네. 다들 차마 누구도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고는 있지만 풍문은 돌고 있지. 분명 죽은 줄 알았던 ‘쌍둥이 황룡’이 살아 있다는 것이라든가…….] [하하하하.] [자세히 말해 주지는 않는군.] [이미 알아서 다들 추측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도 제 목숨이 소중하니까요. 이미 이 감찰패를 꺼낸 것만으로도 부담이 있거든요.] [엄청난 권한 아닌가. 자네는 왜 그리 그걸 신줏단지 모시듯 꽁꽁 숨겨 놓고 있었나.]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좋다고 휘둘러 대다가 뭔 일이 일어날지 알고.
지금이야 산토끼마냥 강호를 쑤시고 다니지만 잘못하면 황궁의 집토끼가 되는 수가 있으니까.
‘학사물 중에 그런 엔딩이 있긴 했지.’
주인공이 학사로 시작하는 무협이다.
■■학사, 또는 학사■■로 타이틀이 찍히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네 글자.
황궁에서 학사 일 하다가 뛰쳐나가는 경우가 반, 학사 공부를 하다가 뜬금 무공을 익히는 게 또 반, 여기에 환생하니까 학사 집안이라 강제 유교 공부를 하는 경우가 또 나머지.
엔딩에서 황제 목을 쳐서 역성 혁명 루트를 본인이 이루는 경우가 있고, 또 조정 관리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고 본인은 등선을 하는 경우가 있고, 아예 황실과 연은 안 닿는 경우도 있고.
의외로 관리로 돌아가는 엔딩은… 음…… 흔치 않군.
없지는 않지만 흔한 건 아니지.
해외 무협과는 다르게 한국 무협은 정치 또한 개연성이라 유교의 이념 아래에서 제대로 치국이 되지 않으면 야악간…… 의구심을 가지신다.
나라가 개판이 되어 백성들이 신음을 하는데 왜 황건적 같은 거병이 일어나지 않는 건가.
황제 놈이 치국을 잘못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금의위도 약한 설정이다?
관무불가침이고 나발이고 사파들은 백성 목은 그렇게 잘 따면서 왜 황제 목은 안 따는가.
진정한 충신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폭군에게 개지랄을 해야 한다는 한국인의 근성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뒷돈 좀 받고 수적 눈감아주는 수준이 아니라 대기근, 대역병 이런 이벤트가 등장하면 반드시 행정적 부분에서 의문을 갖는 리플이 달리곤 했지.
‘그래. 나도 방심하지 말아야지.’
그러니 이 감찰패를 도저히 기다리기 힘들 때만 써야겠어.
학사물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진천희를 뒤로하고 절강성주는 삼절추호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이럴 수가! 이 절강성에 속한 섬들 중에 그런 수적들의 소굴이 있다니! 당연히 토벌을 해야 하지~! 토벌을 해야 하고말고~ 암암~”
[아우님, 성주쯤 되면 사람이 이렇게 되나.] [뒷돈이야 타격이 있겠지만, 당장 목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역시 관아는 무섭군. 무서워.]진천희는 피식 웃었다.
뼛속부터 강호인인 그녀에게 있어 관리의 이런 태도는 어이없음 그 자체겠지.
“걱정 마시게! 본관이 즉시 수군절도사를 부를 터이니 안심하시게나!”
[야……. 처음 듣는 것마냥 구는 게 엿 같구먼그래. 보고가 이미 수백 차례가 넘게 올라갔을 터인데.] [누님, 참으시지요. 거기까지 들어가게 되면 도리어 될 일도 엎어지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어째 아우님은 익숙해 보이는군.] [의각을 운영하다 보면 이런 건 익숙해집니다.]도리어 차분하게 답하는 진천희가 삼절추호는 신기하기만 했다.
잠깐 만났을 뿐인데 이자들은 강호인들과는 다르다.
그걸 뼈저리게 느낀 삼절추호는 속으로 고개만 저을 뿐.
그렇게 대략적인 용무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절강성주가 진천희를 불렀다.
“긴히 부탁할 게 있는데 잠시 들어줄 수 있겠소?”
“무엇인지요?”
진천희는 영업용 미소를 날리며 답했다.
절강성주는 한참을 쭈뼛거리다가 결국 이런 기회는 놓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옛날과는 다르게 이제는 경쟁자가 늘어 백린의각 소각주의 진료를 받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으니까.
허나, 이대로 넘기자니 후회를 남길 것 같아 그는 결국 용기 내서 말했다.
“요새 기가 허한지 밤에 잠자리가 좀… 힘들어서 말일세. 거…….”
“음, 그렇군요.”
기가 찬 삼절추호를 뒤로하고 진천희는 태연하게 진맥을 봐주었다.
[아우님, 혹시 의각의 의원이란 다들 이렇게 몸에서 사리를 만들며 사나?] [음. 그래서 스승님이 의각을 산에 지으셨지요. 엔간하면 살인까진 안 하시려고요.]강호인은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