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17
제 516화
“진료에 기공치료까지. 아주 그냥 알차게 받아갔구만.”
“뭐, 좋아했으니 된 거 아닙니까. 아직 토벌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굳이 각을 세울 건 없지요.”
그렇게 며칠 후.
커다란 군함 다섯 척이 마련되었고, 수군절도사가 소집한 수군들이 이동해 오기 시작했다.
또한 무림맹의 무력 단체가 도착했다.
혈선교의 토벌은 강호 무림공적을 토벌하는 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놀랍게도 거기에 있는 것은 남궁운.
“오, 아우님! 오랜만이군.”
한동안 진천희와 사이가 야악간 서먹해졌던 남궁운 아닌가.
업무적인 교류야 있어 왔지만 예전 같은 살가움은 줄었다 생각했는데 직접 이번 일에 자원해서 올 줄이야.
“오실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살짝 복잡해진 심경을 담아 답하자 그는 일부러 태연하게 웃었다.
“혈선교를 잡는다 하지 않았나. 내 발 벗고 나서야지.”
그래. 이런 사내이지.
결국 나 혼자 마음에 담아 둔 건가.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헌앙하신 건 여전하십니다.”
삼절추호의 말에 남궁운이 답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소. 삼절추호께서도 기세가 여전하시구려. 오랜만에 보았는데 전보다 성취가 깊어지신 것 같소이다.”
“말주변도 여전히 좋으시고 말입니다.”
삼절추호는 기분은 나쁘지 않은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상대는 혈선교고. 자칫 십천군 중의 하나를 맞닥뜨릴 수 있고, 또한 몹시 위험하다는 전서를 보냈는데 알고 오신 게 맞습니까.”
삼절추호의 말에 남궁운이 답했다.
“뭐, 그걸 모르고 올 리 있겠소. 그저 아우님이 와 있다 하여 한칼 보태고자 온 것이지.”
그러면서 쾌활하게 웃는 모습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제왕검.
남궁세가의 얼굴 그 자체였다.
‘그래. 원작에서도 그는 대의에 목숨을 걸었지.’
천마 여하륜을 막다 사망했다.
물론 그게 자신이 죽을 자리라는 것을 모르고 간 것은 아닐 터.
복잡한 마음속에서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잊자. 남궁세가의 제왕검은 무척 도움이 될 터이니.’
그는 어찌 되었건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백선광의, 벽안신의, 또는 일광이라 불리는 이에게 의술과 무력, 세력이 존재하는 한 남궁세가는 백린의각과 교류할 것이니까.
그가 정말로 자신에게 우정을 보내고, 의로써 대하는지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남궁운이 말했다.
“무림맹에 속한 이들뿐 아니라, 각 문파의 무인들도 참여한다고 하네. 그 수가 무려 사백여 명이지. 또한 노강호들도 제법 나섰다네.”
노강호라 하면 적어도 초절정의 고수들이거나, 개중에는 화경에 이른 자들도 한둘은 있을 터.
원래 지존천마였다면 여하륜과 마교 소교주들, 그리고 혈선교의 수많은 직간접적 혈사에 싹 다 돌아가셔야 하지만 이제는 잘 살아 계신다.
그런 이들을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인가?
“대단하군요.”
“어떤가. 이 정도면 해사방을 박살 내는 데 충분하지 않은가? 거기에 관군도 오천여 명이 지원된다고 세가에서 들었는데. 아마 틀림이 없을 걸세.”
확실히 말만 들으면 대단하네.
제아무리 혈선교라도 이 많은 숫자에는 꼼짝도 못 할 거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허나, 왜일까.
묘하게 뒤통수 따끔따끔한 것은.
상대가 그만큼 만만치 않는 놈들이기 때문이려나.
* * *
남궁운은 지난번에 본 것보다 더 큰 태검을 등에 매고 왔다.
검 손잡이에는 용이 양각되어 있었는데 뇌룡을 상징했다.
‘벌써 검뢰(劍雷)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나.’
남궁세가의 제왕검형과 창궁무애검법은 무형지기를 이용한 무공이지만.
그것에 필적하는 또 다른 절기가 있으니 이를 천뢰검형(天雷劍形)이라고 했다.
뇌기(雷氣)를 기반으로 하는 이 무공은 패도적이면서도 아주 빠르지.
정중동(靜中動)의 이치를 가진 제왕검형과는 반대되는 성향의 무공.
그러나.
진천희가 알기로 천뢰검형은 불완전한 무학이라고 들었다.
뇌기를 다루는 무공이지만, 뇌기를 체내에 저장하는 것에 실패했다고 하던가.
이는 지구별 시절에 읽은 지존천마 때문에 아는 것이 아니라, 이 무림별에서 생활하다가 알게 된 무수히 많은 정보 중 하나였다.
천뢰검형이 불완전한 이유는,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
제왕검형에 비해서 내가진기를 두 배는 더 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남궁세가에서는 이 절학을 익힌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불완전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제왕검형에 필적한다고도 평가받지 못할 터.
당연히 이 무공은 남궁세가에서도 소수만이 익힐 수 있는 신공이기도 하다.
진천희는 남궁운을 보며 떠오른 생각을 바다에 내던지듯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뱃머리에 앉아서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궁운이 그런 진천희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우님. 그간 잘 지냈나?”
“잘 지냈지요.”
“음. 사실 다름이 아니라, 내 지난날의 이야기를 조금 사과하고자 하여 이리 왔네.”
“네?”
“제갈세가와 남궁세가의 이야기 말일세.”
“아…….”
진천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남궁운이 피식 웃었다.
“그날 이후 내심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장로님들과 아버님께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었네. 당시 구파일방 팔대세가에서는 제갈세가가 멸망할 것으로 보고 그런 일을 저질렀지. 멸문한 세가의 비전이 어찌 되는지는 알지 않나.”
“…….”
진천희 역시 스승님께 멸문한 세가의 무공을 전수받기도 했다.
남궁운이 말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적어도 멸문 후, 삼대(三代)는 족히 흐른 다음에 일어나는 일. 생존자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네. 백린의선은 산 채로 그것을 눈 뜨고 지켜봐야 했을 테니 말일세.”
무공이란 결국 세대와 세대를 잇는 정신이며 역사, 어쩌면 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조상의 묘를 파헤치는 것과 진배없다 하였던가.
이 칼밥 먹는 유교 사회에서 그것은 가족이 모두 죽고, 위패가 갈가리 찢겨지는 것을 지켜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군요.”
“또한 아우님께서 제갈세가의 다음을 잇고 있는 이상에는 그 무맥이 이어질 것이고.”
“…….”
“물론 백린의선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기를 느낀 세가 어르신들이 물밑에서 그를 핍박하기도 했지. 그분이 의술을 익히기 전까지는 말일세. 그의 침술은 장로들도 필요했으니 말일세.”
제갈린의 의술은 그가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서 익혔다는 이야기가 강호에 널리 퍼져 있다.
천재는 과연 천재인지.
불과 십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강호 삼 대 의선으로 불릴 정도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나, 그런 천재조차도 결국 천형을 극복하지 못해서 강호의 많은 이들이 안도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랬던 이들 모두가 좌불안석이지만.
“의원은 어디나 필요한 법이죠.”
“사실 그가 자네를 만날 때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의각을 만든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셈이지. 혈채를 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건강은 악화되고, 사문을 욕되게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람을 구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그 심마를 짐작하기도 어렵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항주의 밤공기가 찼다. 그의 입에 흰 구름이 맺혔다.
“장로님들을 대신해 사과한다는 소리는 안 하겠네. 후인인 내가 감히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대표성도 없으니 말이네. 또한 이미 흩어진 비전을 주워 담는 것 또한 불가함을 알고 있네.”
“그렇다면…….”
“내 오늘 세가에서 뇌룡검을 들고 왔네. 본가의 절학인 천뢰검형을 쓸 때 쓰는 특별한 검이지. 부디 내 절초를 잘 봐주었으면 하는군. 본래 불완전했던 천뢰검형을 완성하는 데 제법 애를 먹었거든.”
남궁운과 진천희의 시선이 잠시 얽힌다.
행간에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 뜻을 진천희는 알아차렸다.
천뢰검형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완성하는 데 제갈세가의 무공을 사용하였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 그런 자신의 무공을 자세히 ‘관찰’해 달라.
강호에서는 타인의 무공 수련조차 엿봐서는 안 된다.
죽음으로서 사죄를 해야 할 정도의 대죄.
그런데도 그는 굳이 저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무공을 보여 주고, 그것을 ‘관찰’하게 함으로써 죄를 씻으려는 것인가?
“어찌하여 그러시는 겁니까.”
진천희의 질문에 그는 대답 대신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남궁세가의 검은 뇌양기를 사용하네. 제갈세가의 오행신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이 천뢰검형도 그러하다네. 그러니. 앞으로 잘 봐 주면 좋겠네.”
진천희는 잠시 남궁운을 본다.
그의 노력이 가상하나, 이런 행동 정도로 과거의 과오를 씻을 수 있을 것인가?
강호에 온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진천희는 당사자인 스승 제갈린이 아니기에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이해야 하는가?
[이것으로 사죄가 될 것은 아님을 아네. 그래도 부디 받아 주게. 무애(無碍)라 함은, 나아감에 거침이 없으며 검(劍)이 이르는 길을…….]그 순간 남궁운이 무공의 구결을 전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진천희로서도 경악을 하게 된다.
무공의 구결이란,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뛰어난 무인이라면 무공 구결만으로도 수행이 가능하며 파훼법 같은 것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그것은… 세가의 사람 외에는 알려주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남궁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음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모든 구결을 전달하고 나서, 남궁운은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자, 어떤가. 이러면 비긴 게 아닌가.”
그 말에 그만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천뢰검형은 신공절학이며 남궁세가에서도 견줄 수 있는 무공이 몇 없다.
그 완전한 것을 전부 말하고서도 이런 태도라니.
아무리 소가주라 하여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남궁세가는 남궁운을 징죄하고 백린의각과 전쟁을 벌이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지.’
남궁운은 그때 이후 나름대로 고민을 했고, 또 그 나름의 해답을 찾은 셈이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자기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그는 보였다.
진천희가 물었다.
“남궁가는 세가의 비전무공을 타인에게 전수해도 내버려 둡니까? 황보세가 같은 곳이면 보통 분골착근에 단전을 파할 텐데요.”
“남궁가도 그러네. 사지근맥을 끊지.”
“……미쳤습니까.”
“아무리 미쳐도 일광만 하겠나.”
그는 그리 말하며 휘파람을 불며 멀어졌다.
그런 남궁운의 등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하… 내 참.’
마음이 헝클어진다. 흡사 이 바다처럼.
‘용서는 바라지 않겠다는 건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답을 내놓을 뿐이라.’
한없이 오만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되,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간다라.
만약 진천희가 이 일을 독하게 사용한다면 본인은 죽은 목숨임을, 또한 세가 전체에 화가 될 수 있음을 그가 모르지는 않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림맹주 감이라는 건가.’
이 와중에도 슬그머니 질투심이 치미는 것은.
그만큼 진천희 자신이 걸어온 길이 결코 남궁운과 같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겠지.
진천희는 그렇게 한참이나 새카만 바다를 응시했다.
모두가 잠든 이후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검은 해류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