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19
제 518화
약탈한 금붙이들도 발견되었지만 남궁운은 모두 관군 쪽으로 보내라고 명했다.
“이게 우리에게는 단순히 금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의 유품일 수도 있지 않겠나. 이런 금에 손댔다가는 계속 탐하게 될 걸세. 그 말로가 여기인 거고.”
남궁운은 담담히 그리 말하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해사방이 소악(小惡)은 결코 아니지. 거악(巨惡)이 태악(太惡)에 잡아먹힌 셈이네만. 처참하군.”
그는 생강시가 된 자들과 부상병들을 옮겼다.
진천희는 생강시들을 향해 시험 삼아 입으로 피리 소리를 따라 해 보았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삐익-
“…….”
단순히 내공을 담아 따라서 해 보는 수준으로는 안 되는 모양.
삐익, 삑! 삐로로로~
그 과정에서 무림맹도들이 미친놈을 보듯 그를 바라보았다.
“일광… 소문으로 듣긴 했다만.”
“잡기…가 많다고는 들었…네. 일단… 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 보고,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본다고.”
“그게 일광이 다른 화경과는 달랐던 이유인…지도 모르겠군.”
“제갈세가의 무위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고.”
“선대에게 들었는데, 혈린광살도 꽤나 대단했……다지 않나.”
“이런 방식의 대단함은 또 아닌 것 같은데. 혈린광살과는 또 다르지 않나.”
“제갈세가는 다 이런가 보지.”
어이가 없어 모두가 헛웃음을 짓는다.
무인들의 이상해하는 눈빛을 느끼는데도 일광은 포기하지 않고 방금의 피리 소리를 입으로 이리저리 따라 해 본다.
삑삑삑! 삐삑! 삐이–!
만약 다른 이가 생강시를 앞에 두고 이러고 있다면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으리라.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일광이 뿌린 검로를 경험한 자들.
그 유려하고 섬세한 정한기(靜寒氣)를 보게 되면 다른 장로들의 화경은 의아해지기 마련이었고.
같은 화경이라 자부해 왔건만, 진천희가 보여준 검로를 보게 된 장로들은 그런 진천희를 보고 미쳤다는 소리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화경이 단순히 벽을 넘는 것만이 아니었는가.”
“검사(劍絲)를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검강을 발출하게 된다면 화경이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화경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강호의 머리 굵은 장로들도 깊은 문답에 빠져야 했다.
‘아우님, 아우님은 자기가 장로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네.’
백린의각 본단에만 처박혀 있었으면 절대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
삘릴리- 삘삘- 삐삐삐!
이상한 박자의 피리 소리도 입으로 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일광은 아름다웠다.
그 뒤통수조차도.
삐삑삐삐-! 삐삐삐-삐삐!
* * *
정비가 끝났다.
무림맹의 무인들을 선두로, 관군도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관군은 무인들에 비해 약하지만 그들에게는 머릿수와 궁술이 있다.
기동력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진형을 짜서 공격하고 화살을 쏘면 큰 도움이 될 터.
“여기에 일광이 기르는 영물이 하늘을 날며 눈이 되어 주기로 한 건가?”
“하늘을 나는 영물을 대체 어떻게 길들였는지 모르겠군.”
“그 개는 어떻고. 개방의 개까지 길들였으니 안심일세.”
그걸 보며 남궁운은 생각했다.
‘일광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강호인들도, 관군도 사기가 오르는군. 아우님 자신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같은 시간, 실험을 끝낸 진천희는 연신 지도를 보며 섬 전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섬이 제법 크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못 뒤져 볼 정도는 아니군요.”
“대략 하루 종일 걸으면 한 바퀴를 돌 정도는 되지. 강호인이면 하루가 아니라 두 시진이면 섬 전체를 돌 수 있고.”
“뇌진이 같이 간다면 더 멀리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황구로 냄새를 수색하는 건 조심하고자 합니다.”
“지난번 마교를 상대할 때 동물 독에 당할 뻔했다지?”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리 눈치채서 자리를 피했지만 위험할 뻔했지요.”
킁-
황구가 자기도 나서겠다는 듯 한마디 하자 진천희가 ‘안 돼.’라며 냉정하게 답했다.
“뇌진이야 하늘을 나니 안심이지만 황구는 안 됩니다.”
“영물을 이렇게 오냐오냐 돌보는 인간은 아우님밖에 없을 걸세.”
“얘가 뭔 죄라고 사람 싸움에 나서서 그 고생을 한단 말입니까. 고구마 말랭이 먹자~”
이렇게 말하며 고구마 말랭이를 입에 넣어준다.
쩝쩝쩝쩝-
황구가 꼬리가 안 보일 정도로 흔들며 고구마 말랭이를 열심히 먹었다.
그 커다란 입이 맛 한번 음미해 보겠다고 쩝쩝 씹으려는 폼이 일품이군.
“대체 아우님은… 이래서 일광 소리를 듣는군.”
“……?”
“아니네. 아니네.”
남궁운은 한숨을 쉬었다.
술이 당겨왔지만 적어도 싸우는 중에는 금주하기로 했지 않았나.
진천희가 말했다.
“관군은 전부 수병이라 얇은 가죽 갑주를 입을 겁니다. 창도 쓰지 않고, 칼과 방패 정도. 궁병, 그리고 배에서 대기하고 있을 포병으로 이루어져 있겠지요. 궁병 천에 검방병이 사천 정도인가요?”
“미리 보고서를 읽었나?”
“깃발을 보면 대충 보이지요. 백인장의 숫자만 세어도 그 정도는 나옵니다.”
“기가 막히는군그래. 제갈가에서 그런 것도 가르치나.”
“스승님께서는 관군의 구조와 기본적인 진법을 가르쳐주곤 하셨지요.”
“그걸 바탕으로 거기까지 가야 하는 겐가.”
그 말에 진천희가 눈을 들었다. 푸른 눈동자가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게 얄미울 지경.
“뭐……. 이상합니까?”
“……아니네. 아니야.”
숙신족과의 전투 때도 느꼈지만, 원래부터 무인으로 태어나 무인의 교육을 받고 자란 자들에게 있어 제갈세가는 유독 이질적이다.
단순히 사고를 쫓아가기가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섬뜩할 때가 있었으니까.
‘이게 십 년이 되고, 이십 년이 되면 본가의 장로님들처럼 되는 거군.’
그래서 죽어 스러지길 그토록 바랐던 건가.
제갈린이 모든 의욕을 잃고 의각에 처박혔을 때 그리도 기꺼워하며 남궁가의 세를 불렸던 건가.
복잡한 마음속에서 남궁운이 말했다.
“자네가 의인이라 다행일세.”
“음……. 아닙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강호인일 뿐이죠.”
오히려 냉정하게 답하는 게 아닌가.
입맛이 쓰다.
이윽고 장군이 진천희와 남궁운을 불렀다.
남궁운이야 방검단주라서 대장이니 당연히 부를 만했고, 진천희를 부른 건 진천희가 감찰패를 가진 것을 그도 알기 때문.
그리고 한 가지 더.
‘숙신족을 상대로 제갈세가의 사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모두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지.’
폐하의 총애와 주왕의 총애까지 업고 있는 진천희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감찰패로 수군을 소환한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작전을 짜자는 거군요.”
“그렇소. 혹시 좋은 의견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 주었으면 하오.”
진천희는 지도를 내려다본다.
지도는 처음 보급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그려져 있다.
뇌진이 척후 일을 충실하게 잘했기 때문.
‘사실상 작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군.’
이 상황에서 만약 실패한다면 책임을 감찰사에게 몰아주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이것은 관의 생리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속내를 모를 아우님이 아니다.
그렇기에.
진천희는 일부러 말을 아낀다.
“우선 생각해 본 것을 들어 보고자 합니다.”
장군이 말했다.
“병사들은 후열, 선두에는 강호인이 서는 게 기본적인 군략이오. 하지만 그러기에는 지형이 맞지 않으니, 화공으로 대응함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화공이군요.”
“섬의 절반은 나무가 무성하고, 또 절반은 바위산인 곳 아닌가. 나무가 시야를 방해하지 않겠소.”
그 말에 남궁운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그래서 화공이군. 괜찮지 않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진천희는 답하지 않고 푸른 눈으로 한참 생각하고 있을 뿐.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아우님.’
이 좁은 섬에서 쓸 수 있는 전법이야 한정되어 있고, 바람의 방향을 보았을 때 화공은 틀림없이 먹힌다.
이윽고 진천희가 입술을 열었다.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장수와 휘하 백인장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해변가에 자리하고 배를 더욱 가까이 끌어왔다.
그리고 궁수들을 배 위로 올려 배 앞에 병사들의 진형을 짰다.
그리고 병사들 앞에 강호인들이 선 상태로 나무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바람의 세기도 딱 좋아서 불을 지르기 좋은 지형이었다.
“불이오–!”
“쏴라!”
내력을 담아 강호인이 외치자 기세를 담아 궁사들이 불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불이 삽시간에 섬을 덮기 시작하자 해사방도들이 흡사 광전사처럼 달려 나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때의 피리 소리가 울렸다.
삐이이–!
이번에는 종소리도 함께 울렸다.
해사방 토벌전, 시작.
* * *
숲이 불타기 시작하긴 했으나, 불이 한 번에 번지진 않지.
이건 군사로서의 기본적인 상식 아닌가.
특히 화공은 잘 쓰면 이만한 효자가 없는데 못 쓰면 애물단지다.
다행히 일기(日氣)가 좋아서 관군의 군사가 꺼내올 만한 패였긴 했다만,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갈까.
아니야. 아무리 상대가 혈선교라고 해도 이 이상의 계책은 잡기 힘들어.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으로 연기가 치솟으니 해사방도들이 달려 나오는 게 아닌가.
흡사 침몰되는 배의 쥐 떼와도 같았고.
그 사이로 강시들도 보였다.
생강시가 아니라, 본격적인 강시.
혈선교의 강시가 기존의 마교나 진주언가의 강시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
다들 바짝 긴장하고 칼을 쥔다.
남궁운이 말했다.
“진을 펼쳐라! 내가 가장 먼저 칼을 들겠다!”
그런 남궁운의 좌우로 과거 여하륜과 보았던 쌍둥이 장로분들도 초식 자세를 취했다.
남궁세가에서 본격적으로 작정한 모양이네.
아니면 남궁운이 두 분을 설득했거나.
그렇게 남궁세가의 세 사람이 검기를 일으키고, 그걸로 검사를 뻗어 나가며 전면으로 휘둘러 나가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휘우, 과연 제왕검!”
“역시 남궁세가가 앞장서는구먼!”
남궁운은 착실히 차기 무림맹주로 가는 길을 밟고 있군.
크와아아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사방도들은 덤벼든다.
이성과 공포라는 감각이 마비되었으니 당연한 결과려나.
제왕검이 단번에 수십 명의 목을 베어 나갔다.
츠가가각!
남궁운이 슬쩍 눈짓한 것은, 구결을 가르쳐 주었으니. 이제 신공을 보고 요체를 알 수 있으리라는 뜻.
‘참 밥맛없어.’
목숨 줄을 알아서 진천희에게 건네 놓고서는 이렇게 태연하게 나아가는 속을…… 이해는 가지 않지만 알 것은 같아서 괜히 배알이 꼴리네.
‘그게 남궁운의 길이라는 거겠지. 낭만이라는 거고. 어찌 보면 풍류라고도 할 수 있겠고.’
이래서 어릴 때부터 잘 먹고, 잘살고, 사랑도 듬뿍 받으면서 자란 도련님과는 상종을 못 해요.
내가 이래서 지구에서도 그런 부잣집 도련님들 보면 은근 배알이 꼴렸어.
싸가지 없는 놈이면 아예 선을 그으면 되는데 은근히 또 자꾸 다가오는 놈들이 있어서 쳐내기도 애매했지.
이쪽 주머니 사정을 알고 나니 유럽 여행 비용은 자기가 낼 테니 네가 여행 플랜을 다 짜면 되지 않겠냐, 그러면 피차 빚지는 게 아니니 같이 가자는 놈도 있었고.
‘돈 많고 싸가지 없는 놈들보다 이렇게 돈 많고 주변 챙기는 놈들이 더 질투가 났지.’
이쪽은 삐딱한 고아 의대생이라 속도 좁았거든.
함께 뭘 하든 얘들과 출발선이 같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
물론 겉으로는 절대 표 내진 않았지만.
남궁운은 약간 그런 타입이랑 비슷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