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30
제 529화
그렇게 현령 대리의 명으로 채용된 수재들은 진천희의 이세계에 도착했다.
“선배, 이것이 대체 무엇이오?”
“아아, 모르는가. 이것은 표라고 하네. 현령 대리께서는 가끔 ‘그래프’라고도 부르기도 하지. 이것으로 우리는 업무 속도를 높일 수 있다네.”
“세상에, 이럴 수가. 이것이 그래프…….”
“만약 익히지 못한다면 전용 야삽을 지급하겠네. 신참.”
“전용 야삽?”
“그렇지. 땅에 한번 박고 발로 밟은 후에 힘껏 파기 위한 도구네. 조립하기에 따라서는 곡괭이로도 사용이 가능하지.”
“이딴 야삽을 내가 왜 쓰게 된다는 것이오. 선배.”
“산을 미는 데 쓰지. 그래프를 익히지 못하게 되면 조만간 알게 될 걸세.”
“이게 무슨! 다섯 살에 천자문을 떼고, 여덟 살에 소학과 사서삼경, 예학에 통달한 중원 천재인 나를?”
“축하하네. 신참. 자네가 우리 중에서 최약체야.”
선배는 네 살에 천자문을 떼고 일곱 살에 소학을 익혔다.
옆 책상의 선배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뒷산을 야삽으로 파고 있는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월봉을 받고 올 정도면 다들 자기 마을에서는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 들었던 자들.
콰과과광!
뒷산에서 굉음이 울린다.
놀라서 바라보니 선배는 태연하게 말했다.
“현령 대리깨서 검강으로 산을 뚫는 중이라네. 이제 토목 선배들이 뒷정리를 하겠지.”
선배가 말했다.
“일광의 별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네. 신참.”
저 그래프란 것을 익히면 저 짓은 안 해도 된다는 건가.
“참, 신참. 산술은 익혔는가?”
“그건 저잣거리 상인이나 익히는 천한 학문이 아니오?”
그 말에 왜인지 선배들이 막 웃는 게 아닌가.
“……축하하네. 토목과에 새 친구가 생기겠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신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다시.
콰과과광!
“현령 대리께서 아주 시원하게 다 박살 내시는구먼.”
“아니, 일광은 분명 화경의 경지라 들었는데, 대체 왜 그런 절후한 무공을 고작 돌 부수는 데에 쓴단 말이오?”
“…….”
콰광, 콰과과과광!
선배들이 말했다.
“일광은 원래 그런 놈일세. 적응하게나.”
“다섯 살에 천자문을 떼고 여덟 살에 소학과 사서삼경을 익혔지만 산술은 모르는 자네에게도 야삽을 들려서 토목과에 굴리시는 게 일광이네.”
“아니… 대체… 미친… 이 귀한 인재인 나를 왜? 어째서?”
쿠구구구궁!
다시 일광이 먼 곳에서 산을 미는 소리가 울린다.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일하다 말고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양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
“아니, 대체 왜 일광을 향해 기도를 하는 것이오? 바위산을 무공으로 박살 내는 것뿐인데 대체 왜 다들 존경을 하고 있는 게지?”
“토목에 인재 났군. 인재 났어. 기왕 토목으로 가는 거 등고선을 외우고 가게나.”
“등고선은 또 뭐요?”
그것이 일광의 별세계.
머리가 굳은 자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선배들은 왜인지 이번 신참을 몹시 안쓰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리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 두게나.”
“……?”
“신발은 편한 걸로 준비했지? 없으면 빌려주겠네.”
“……?”
“대나무 주먹밥은 요 앞에서 파니 꼭 챙겨 가게.”
* * *
티브이도 없고, U튜브도 없는 이 세계에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는 현령 재판이랑 망나니 칼춤 아닌가.
물론 조선처럼 춤을 추면서 벨까 말까 하는 흥취는 없는데 커다란 도끼로 한 방에 써는 건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화 제국은 약간…… 중세 유럽식이군.
구(舊)현승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대신 노역을 보내며 포승줄에 묶어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세리머니를 해주었다.
그러니 현령 대리의 지지율은 하늘을 찔렀지.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팍팍 보여줄 생각으로 창고를 털어 보니 쌀과 황금이 우르르 쏟아졌다.
한마디로 불법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이었고.
가혹한 세금을 내느라고 양민들은 현승에게 돈을 빌려야 했는데, 이상하게 나라에서 내라고 했던 세금의 금액이랑 실제로 거둬들인 세금이 또 달랐단 말이지.
이건 현승뿐만 아니라 전대 현령도 한탕 해먹었다는 증거인 터라 현승의 비밀 장부를 찾아내고, 돈을 낸 양민들의 증언까지 첨언해서 황궁을 향해 쏘았다.
이미 자결한 양민들은…… 남은 가족이 없어 이웃이 대신 해주었다.
폐하? 아니지.
이 이상 그쪽으로 보내면 귀찮은 일이 생길 테니 호부상서 한이정을 향해 보냈다.
‘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부디 잘 터져서 환하게 불꽃놀이를 해주길.’
꿈과 희망의 레버랜드 불꽃 축제를 떠올리며 날려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승+현령 두 사람만 했겠나.
여기 지나간 감찰사도 해먹었을 거고, 현령 꽂아 준 놈도 관직을 매매했는지 봐야 할 거고.
제대로만 불 질러 버리면 줄줄이 황천행 특급열차 타고 갈 거다.
애초에 강소성 일대 토지가 괜찮은 곳이에요.
땅 자체 크기는 작아도 장강이 만들어 낸 퇴적토가 강소성 대부분을 비옥한 토지로 만들고.
그렇게 비옥해진 토지가 엄청난 쌀 수확량을 만들어 주지.
심지어 여긴 바다와도 인접해 있어서 해양 무역 하기도 좋은 데다가 강과도 인접해 있어서 그쪽으로도 물류를 이동시킬 수 있고.
갯벌도 많아서 조개나 게도 많고.
이런 땅에서라면 비록 백린의각 근처 이천 호뿐이라고는 해도 거둬들일 수 있는 소득이 상당할 터.
스승님이 살인 좀 덜 하시고, 건강도 지키시려고 온천 지대 산으로 가셨지만, 그래도 의각으로서의 기능은 해야 하니 강소성 쪽을 고르지 않으셨나.
이런 대단한 땅을 개발도 하지 않고 놀려 먹는 건 그야말로 이세계인의 죄악이다.
기껏 이계로 왔는데 개발을 왜 안 해.
도로도 뚫고! 땅도 만들고!
쿠과과광–!
미친놈 보듯이 보는 관리들에게 현령의 지팡이 좀 흔들어 주고!
콰광, 콰과과광!
“히익, 일광……. 말로만 들었지. 정말로 산을 칼로 베다니!?”
“아니, 그런데 대체 왜 귀한 검강을 바위 깨는 데 쓰는 거요?”
“도로를 내기 위해서라는데, 장강이 있는데 왜 굳이 도로를……?”
들어라. 우매한 관리들아, 도로는 다다익선이라고.
거기다가 매년 여름이 되면 장강이 넘쳐서 수해가 심각한데 지금부터 치수 작업을 미리 해야 해.
‘지금 내가 깨고 있는 이 석회암, 화강암들은 치수에 써야 할 거고.’
요순 임금처럼 뭔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려는 게 아니다.
그냥 홍수에 사람 떠내려가고 소 떠내려가고, 말 떠내려가는 걸 막으려면 치수가 필수 불가결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빠개고 있는 돌덩이들이 요긴하게 쓰일 거다.
‘내가 현대 공법 중에 공부해 둔 게 있지.’
이 석회암을 갈아다가 모래를 섞으면 끝내주는 시멘트가 된다.
그리고 화산재까지 섞으면?
그게 그리스 로마식 공법이지.
마침 백린의각 본산이 화산 지대라 화산재를 구하기 쉽다.
“일광은 대체 왜 절벽을 굳이 깍둑썰기를 하고 있는 거요?”
“그게 옮기기 좋다고 하더이다.”
“나무를 잘라서 가로로 정렬한 것도 그것 때문이오?”
“잘려나간 나무를 바퀴로 삼아서 그렇게 자른 바위들을 아래로 내려 보내면 인력을 적게 쓸 수 있다고 하더이다.”
쿠과과과광!
치수–!!
토목 공사아아아아!!
“머리 위에 노란 나무 투구는 왜 쓰는 거요?”
“안전 제일이라고 솔선했소. 초록색 십자 표시 보이시오?”
수재들은 전부 장비를 하나씩 꼬나 쥐고는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가.”
“강호인들이 강하다 들었건만, 이 정도면 황족의 이능에 절대 뒤지지 않겠구려.”
“그렇다기보다는 일광이 기이하게 강하다고 들었소.”
수재들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일광의 행태를 눈에 담았다.
‘향후 이자들이 현을 대신 돌보게 되겠지.’
진천희가 요청한 수재의 숫자는 총 스물둘.
나중에 추가로 더 부를 예정이지만 일단은 스물둘.
설견이 뭐 이리 많이 데려오라고 하냐고 했는데 어림없는 소리, 이중 일부는 못 견디고 떠나게 될 터.
녹봉이 세고 백린의각의 의료 혜택이 있다는 건 분명 장점이다.
심지어 백수들 아닌가.
오랫동안 쉬면서 황제에 대한 시가도 쓰고, 미꾸라지나 까마귀를 비유하여 간신들이 지배하는 화 제국을 탄식하고.
일개 유자(儒者)로서 상소도 써서 올려 보고 했을 터다.
그렇게 백수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뭐라도 하고 싶어질 거고.
심성 테스트도 개방주가 직접 했으니 어지간한 역경이 닥쳐 와도 흔들리지는 않을 터.
허나, 평생 쳐다볼 일도 없는 산술을 배워야 하고, 표를 익혀야 하고.
또한 등고선이니 뭐니 하며 배워야 할 게 산더미인데 그것부터 익혀야 한다?
거기다가 성적이 낮은 자는 토목 현장에 끌려와서 현령 대리가 어떻게 산을 밀고 길을 뚫는지 눈으로 체험 학습을 해야 하고, 돌도 날라 봐야 한다?
미친 짓이지.
‘그런데 필요해.’
책상물림만 하게 되면 토목과 치수를 종이로만 보게 된다.
아마 중간에 누군가가 끌고 가는 저 바위가 화강암인지 석회암인지, 또 나무는 단풍나무인지 소나무인지도 못 알아보게 될 거야.
그리고 뭐가 편한지, 작정하고 중간에서 누군가가 착복하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될 거고.
모든 부패는 그렇게 일어난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배워야 하는 거지.’
여기에 일단 백린현(백린의각에 내려진 식읍이라 이참에 이름도 개명했다)에 필요한 현승은 셋 정도.
그리고 남은 자들은 백린현과 백린의각을 보조하게 된다.
이 중에서 몇이나 버틸까.
제발 한 명이라도 더 버텨야 할 텐데.
“어이, 우리 현령 꼬맹이, 밥은 언제 줄 거야?”
설견이다.
“아직도 안 돌아간 겁니까?”
“지랄. 거지가 어딜 가든 거지 마음이지. 크크큭.”
그녀는 거친 말투로 웃으며 진천희의 등을 툭툭 쳤다.
“그런 의미에서 백선광의께서 해주시는 점심이나 구걸하고 싶은데 말이야.”
그냥 밥 얻어먹으러 들른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진짜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일단 시간을 내 보기로 했다.
* * *
“크큭, 어차피 강소성의 용무는 다 끝냈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그녀는 국밥을 뜨던 수저를 흔들었다.
설렁탕이 사방에 튀었지만 진천희는 담담했다.
설견의 미친 성정을 생각하면 맨손으로 집어먹지 않은 걸로 감사해야 했으니까.
그나마 청결에 끔찍하게 민감한 의원 앞이라 수저를 들어 주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겠지.
“마지막으로 제 얼굴을 보러 오신 거군요.”
“그래. 저 아래 동네에서 혈사가 크게 터져서 이동 중이었거든.”
“크게 터져요?”
“영약을 둘러싸고 문파 다섯 정도가 붙었어. 아주 난리도 아니지. 사파만 둘에 정파가 셋이나 붙어서 아주 전쟁이야. 크큭.”
여하륜을 통해서 대충 일이 뭔가 터졌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예상 이상으로 더 커지고 있는 모양.
“사도련과 무림맹은 뭘 하고…….”
“중재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지~? 결국 정사대전으로 번질까 봐 맹과 련, 둘 다 손절했지. 양쪽 모두 아예 개입을 안 한다나?”
“그러면 더 치열해지겠군요.”
“그렇지. 이미 다섯 중의 둘은 거의 궤멸이나 마찬가지야. 어쩌면 세가로서 명맥이 끊어질지도 모를 일이지.”
작가의 말
드디어 업체에서 사진이 도착하여 이렇게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직접 가서 보시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뒤늦게 이렇게 올려봅니다.
다시 한번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