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32
제 531화
콰르릉–!
숲의 화마를 스쳐 지나가며 밤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다.
푸른 섬광이 질주하며 꽂힌 것은 거대한 전나무.
수천 년을 산 나무가, 벼락 하나를 견디지 못하고 화마 속에 쓰러진다.
쿠웅.
발아래로 단말마 같은 진동을 느끼며 노회한 제갈은 속삭였다.
“새싹을 밟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요.”
“뭣?”
“왜 그랬습니까. 제가 몸이 나았음에도 은거해 있을 때, 그저 가만히 계셨으면 저도 잊은 척 살았겠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
“…천기 순행자들에게 제자의 정보를 파셨습니까?”
“그, 그걸 어찌?!”
“참으로 기이하더이다. 어찌하여 무림맹에 들어간 내 제자의 정보들이 천기 순행자들에게 들어가는 것일까.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것마냥 은밀히 쫓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이노오오오옴!”
“강호의 은원이 참 질기기도 하지요. 혹여 제 제자가 스승의 은원을 알게 되고 강호에 복수라도 하게 될까 두려우셨습니까? 차도살인이라 하셨으니 답하겠습니다. 늙은 청성이 차도살인을 먼저 꾀하려 한 것을 본 제갈 모(某)가 모를 것 같았습니까?”
그 순간, 청건 진인이 제갈린을 향해 검을 뽑아든다.
그 모습은 필시 청성파의 비전 무공.
사전절광검(射電絶光劍)!
검강이 서려 있는 장문인의 검은 그야말로 일절이라 할 수 있었고.
이제는 거의 남지 않은 내공을 전부 긁어모아, 선천진기까지 끌어 쓸 각오로 제갈린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서컹!
분명 제갈린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는 불타는 나무만이 서 있었다.
“아, 청건 진인. 아지랑이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이렇게 숲을 화마가 덮을 때는 열기로 인해 상(像)이 굴절되기도 하지요. 그것을 약간 진법에 응용하면 이런 재미있는 놀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덤벼라!”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제 한 칼이라도 진인에게 닿게 되면 청성파가 모를 리가 없겠지요. 청건 진인도 그걸 원하시는 게 아니십니까. 자신의 제자들이 제갈 모에게 복수를 해 주기를요.”
“노옴, 감히이이이! 이노오옴!”
타오르는 것은 숲인가.
심마인가.
그를 비웃는 제갈린의 웃음만이 화마 속에서 울렸고.
제갈린이 말했다.
“자, 그러면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십시오. 제갈 모는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그저 청성파의 장문인은 영약을 얻은 채 화마에 휩쓸려 죽은 걸로 남기도록 하지요.”
“싸우자! 그러고도 무인이냐!”
제갈가의 은빛 괴물은 그저 웃기만 했다.
무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그의 제자였고.
제갈린이 강호인으로서 사는 방식을 제자에게 가르쳐 주듯, 제자 역시 평범한 양민들이 사는 법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물론 그걸 배워다가 이렇게 완벽 범죄를 하라고는 가르쳐 주지 않았겠지만.
“불타는 산이 절경이로구나. 화공은 효율적이기도 하고, 증거를 없애기도 좋지.”
“제갈세가의 선조께서도 화공을 곧잘 하셨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들었습니다.”
제갈린의 뒤로 유호가 나타난다.
“그래. 적벽대전은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더냐. 천 년이 지나도, 이천 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기억해 주겠지.”
선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진천희는 ‘과연, 연의 쪽 세계!’라면서 손뼉을 치곤 했었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제자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음에 들지 않던가.
“어릴 적부터 매일 죽기를 바랐지. 그럼에도 자결하자니 긍지가 용납지 않더군.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그자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하니. 그조차도 무기력했지.”
나는 살아도 되는 존재인가.
증오는 한이 되어 남고, 한은 돌보다 무거워 사람을 가라앉힌다.
제자 놈은 자신의 가치를 너무 모른다.
누구를 끌어올렸는지, 누구에게 삶의 의지를 쥐여 주었는지 모른다.
싸우자고, 곱게 죽게 하지 않겠다며.
끝이 아름답지 않아도 좋고, 고고하지 않아도 좋으니 싸우자고.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을 떼어 줘 놓고서는 이제 모두 행복하시고 잘살라고 떠날 놈이었다.
그런 불효막심한 놈이 진천희였으니까.
그런 제자 놈을 건드리는 자들은 모조리…….
“쓰레기가 잘 타는 것 같구나. 그러면 돌아가 볼까?”
“분부대로.”
그렇게 두 개의 잔상이 흩어져 사라진다.
그것은 진천희가 설견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당시의 일이었다.
* * *
“오오, 그렇군요. 등고선과 표를 모두 익히게 되면 확실히 업무 효율이 좋아지겠군요.”
신참 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이놈의 눈빛은 그야말로 학구열에 가득 찬 삐약이의 그것이다.
처음에 못 하겠다고 개기던 선배들이 모두 토목으로 차출되어 직접 자재를 끌어도 보고, 땅도 파 보며 어떻게 현장이 돌아가는지 알게 되는 모습을 지켜본 후.
선배들처럼 직접 땡볕에서 지도 들고 관사 짓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더욱 학구열에 불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선배들이 인부들을 통솔하는 위치까지는 진급했지만 시원한 실내에서 주판이나 두드리며 차나 마시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 않나.
애초에 여기 온 자들 대부분은 평생 붓보다 무거운 것을 들 일이 거의 없는 자들.
그 저질 체력으로 이렇게 구를 걸 생각하면 가만히 있던 학구열이 솟아오르기 마련.
벽안신의, 백선광의, 혹은 소의선, 일광.
그가 백린현의 현령 대리가 된 지 이제 두 달.
그동안 백린현은 무서울 정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업무 효율이 좋아지면 어찌 될 거라 생각하나. 신참.”
“어… 빨리 일을 끝낼 수 있겠죠.”
“빨리 일이 끝나면 어찌 될 것 같은가?”
“……퇴근?”
“모르는군. 새 일이 온다.”
“…그 새 일을 하고 나면요?”
“또 다른 새 일이 들어오지.”
신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슬슬 이 백린현이 돌아가는 꼴을 알게 된 것.
“일단 등고선과 표를 익혔으니, 이다음은 도량법이네.”
“그게 무, 무엇입니까?”
탁-
선배가 그의 앞에 내려놓은 것은 철로 된 자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음각되어 있었다.
일 장(尺).
“백린현에서는 정해진 자를 만들어 보급하네. 줄자와 접이식 자이지. 현 전체가 이것과 동일하게 규격을 맞추도록 하는 게 우선이네.”
신참의 눈에 슬슬 ‘일광은 뭐하는 새끼지?’ 하는 기색이 떠오른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아직 이성이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고, 본격적으로 과로하기 전이기 때문이겠지.
“일 치, 일 척, 일 장. 이것을 통일하는 게 우선이라 하셨네.”
“왜 굳이?”
“같은 포목점이라도 1척의 길이가 장사치의 손 크기에 달렸지 않나. 그러다 보니 세금을 공납할 때도 크기가 다르고, 목수에게 같은 길이의 대들보를 주문해도 다르니 그게 비효율적이라 하셨네.”
“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내 왔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하라더군.”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있다가 없으면 불편하나, 처음부터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잘살아 가지 않던가.
“참고로 이건 강제네. 본인 손으로 1척을 가늠하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게 좋겠다며 토목으로 발령 내 버리네. 거기서는 도량을… 익히기 싫어도 강제로 익히게 될 테니까.”
몸의 학습.
“애초에 여기까지 와서 그 봉록을 받은 놈이 이걸 못 하면 그것은 머리 나쁜 놈이 아니라 머리가 굳은 놈이라 하셨네.”
“아니, 왜… 굳이 잘하고 있는 걸 왜 그렇게까지 한답니까?”
“잘 정착하면 약간… 더 편해지네.”
고작 조금 더 편하자고 이런다고?
신참이 보기에는 이건 이해할 수가 없는 일.
“거, 좀. 별로면…….”
고참은 기다렸다는 듯 구석에서 주섬주섬 신형 야삽을 꺼냈다.
“아니, 아닙니다! 실로 대단한! 대단한! 대단한… 그… 발상입니다!”
“그래. 그렇군.”
고참은 그리 답하며 다시 야삽을 집어넣었다.
야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토목은 언제나 당신을 원한다.]“건강을 생각하면 너무 거부하는 것도 안 좋네. 한번 다녀오면 평생 비쩍 곯아 있던 몸이 아주 그냥 건강해지네. 잘 먹이고, 잘 부리시고, 또 잘 먹이시지.”
일광의 새참은 멀리서 온 신참에게도 유명하다.
그는 새참의 신이자 함바집의 왕이었다.
‘대체 천하 십 대 고수에 의원이나 하는 놈이 왜 이러고 사는가?’
선배가 말을 이었다.
“어디 좀 삐끗할 것 같으면 귀신같이 와서 진맥해 주고 바로 일할 수 있게 처치해 주니 걱정할 거 없네.”
그렇군.
줄어드는 건 관원 정신줄뿐이었나.
책상물림이 업인 자들의 수명을 강제로 늘려 주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잘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도량법도 완벽하게 마음에 듭니다!”
“그래그래. 그러고 보니 자네는 부모님이 상인 집안이라 산술도 곧잘 한다 들었네. 그래서 관원으로 불렀다고 했지.”
“네!”
신참 앞에 주판이 내려왔다.
“도량이 통일이 된 상태이니 토지 길이도 다시 측량했다네. 자네가 할 것은 여기 쓰여 있는 토지 크기로 세금을 다시 계산하는 거네.”
쿠웅!
죽간들이 신참의 앞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선배들이 직접 측량하여 적은 것이니 그리 어렵지 않겠지. 그냥 덧셈만 하면 되네.”
이게 일인가.
이게 본격적인 일의 양인가.
선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했다.
“아, 모두 표로 적혀 있어 한눈에 보기 쉽네. 자네는 표를 모두 다 익힌 것 같으니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업무 효율이 아무리 좋아도 업무량이 이렇게 많으면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소가 쓰러질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밭을 갈게 하고야 말겠다는 악덕 농장주의 마음인가.
“그게 다 끝내면 세금 납부 내역 장부도 있을 것이네, 과하게 낸 사람은 덜어 줘야 할 것이고, 적게 낸 사람은 더 내라고 해야 할 것일세.”
쿠과과과과광-
먼 곳에서 메아리가 울린다.
마치 자신의 심정을 말해 주는 것 같은 극한의 고통.
그것은 일광이 산을 미는 소리였다.
선배는 담담히 말했다.
“현령 대리께서 또 시작하시는군.”
그러고는 신참의 어깨를 자상하게 두드렸다.
“원래 교육 기간일 때가 가장 꿀 빠는 때 아니겠나. 이제 좋은 시절 다 끝났군. 껄껄껄껄.”
“…….”
“정 힘들면 한번 몸으로 때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원하게 다녀오게나.”
그리 말하면서 결국 그 야삽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토목은 언제나 당신을 원한다.]일광의 말이었다.
“참, 비누로 손 씻는 거 잊지 말게나.”
* * *
후, 총 서른 마리의 소와 세 마리의 현승인가.
얘네들을 모아놓고 차근차근 교육을 시키니 그래도 약간 X셀보다는 3% 나은 기분이 드는군.
무엇보다 엑X은 토목을 못 하잖아? 얘들은 하고.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나.
‘이게 권력이구나.’
강호를 떠돌며 ‘자, 우리 친구. 이거 보세요. 이게 비누예요. 우리 친구가 감기 같은 각종 질병에 안 걸리기 위해서는 이것으로 매일 손을 씻어야 해요. 거기다 깨끗하면 이성에게 인기가 좋답니다.’라는 사탕발림을 할 필요가 없단 게 중요하다.
‘우리 친구, 비누가 싫다고? 오오, 나는 바쁘니 여기 현승이랑 대화해 보렴? 대화도 싫다고? 그래. 그러면 토목을 보내야지. 설득을 못 한 우리 현승을.’ 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의원의 천국이 아닌가.
강제 방역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