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33
제 532화
‘그리고 도량은 우리 의각 표준으로 맞춰야겠어.’
논밭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어느 관리는 다리가 길어서 세금이 줄어들고, 어느 관리는 다리가 짧아서 세금이 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지 않나.
그러니 다 같은 자로, 똑같이 매기는 게 답.
소출량 같은 건 조작이 쉬우니 그렇게 가는 수밖에.
그것을 도표로 만들어서 정리하고, 그래프로 통계를 내서 한눈에 볼 수 있게 벽에 붙이고.
그걸 통해 인구 생산량과 소득을 지역별로 나누고.
‘그래. 행정이 우선이지.’
신문물을 백날 들여온들 결국 이런 행정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갖게 되지 않나.
‘스승님께서 내게 현령 대리를 맡긴 것은 이러한 선정을 하라는 의미셨겠지.’
설마하니 족히 2년 정도 제자를 짱박아 둘 수 있어서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리라.
큰 교훈을 주시기 위해 이런 거대 임무를 주신 것일 터.
그렇게 또 몇 달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관원이 뒷돈 차기 힘들어졌군요.”
“현승 같은 관리들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이제는 바로 알아서 달려오는데 답이 없네.”
“너무 빡빡한 거 아닌가 싶지만.”
포졸들 중에 그리 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세금이 낮아졌다고? 그게 말이 되나?”
“우리가 냈던 세금이 나라에 안 가고 관리 놈들 배만 불렸다고 하오. 제대로 계측해서 세금을 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 보이는데?”
“오오오오! 내 오늘 반드시 백선광의 목상을 사서 치성을 드려야겠네.”
민중의 지지는 또 올라가기 시작.
일부에서는 민간신앙과 결합된 무언가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건축당이오! 백린의각 산하의 건축당이 지금 백린현에 도착했소!”
“건축당이라 하면 연무 도시를 뚝딱뚝딱 만든 그 토목의 고수들 아닌가!?”
“그러면 우리도 연무 도시가 생기나?”
“그건 아니라던데?”
“뭐? 그러면 대체 왜 건축당을 소의선이 불러들인 게지?”
“일광이잖소. 뭔가 신묘한 계획이 있겠……지?”
* * *
건축당은 백린의각 세력이 커져 감에 따라 외총관 무월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탄생한 곳으로, 백린의각의 수많은 건축물들이 그들 손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공중목욕탕과 하수도를 만들어 달라는 거죠?”
“연무 도시에도 있으니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거기에 조금 더 보강을 했어요. 화산재를 얻기가 좋으니까 이참에 회반죽을 제대로 해보죠.”
그리스, 로마식 콘크리트.
이걸 강호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려나.
‘어차피 내가 어디서 뭘 따왔는지 누가 알겠어? 내가 무슨 소설 주인공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며 하나씩 지시해 나갔다.
‘지금 지형을 봤을 때 현대식은 아니어도 로마식 상수도까지는… 아, 이건 공사가 오래 걸리겠다. 하지만 온천 지형을 이용해서 공중목욕탕과 하수도까지는 가능할지도.’
여기에 비누 보급에 우두 접종까지 시행.
비누까지는 그럭저럭 한다손 쳐도, 두창을 막기 위해 소의 병을 몸에 옮기는 행위이니 분명 중원의 안티 백서들이 반대를 하리라 생각했건만.
“소의선께서 시키신 일이다!”
“소의선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리하면 무병장수한다 하셨다!”
세금을 내려 주었기 때문일까.
초대 현승을 시작으로 양민들을 등쳐먹은 놈들을 곤장 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난한 양민들을 공짜로 치료해 줬기 때문일까.
안 되면 관원 놈을 불러서 대신 설득을 시키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졌네.
‘그, 그렇군. 이게 민심……?!’
그렇게 감탄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마교와 혈선교가 득세하는 건가?’
이 사람들 이렇게 순진해서 괜찮은 걸까.
자신이야 남김없이 건강하게 만들고 말겠다는 야욕에 불타서 이런 일을 시키고 있지만 이렇게 의심 없이 시키는 대로 다 따라도 괜찮은 걸까, 이거.
이 문제에 대해 무월에게 물어봤더니 무월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 현령의 명을 어기라는 말입니까?”
그렇군.
계급주의 피라미드 사회에서 그건 당연한 일이었나.
“무월. 저는 이제 슬슬 은퇴하려고 합니다.”
“네?”
“이 정도 기반을 닦았으면 현승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자에게 현령 대리를 맡기고 저는 그냥 의각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무월의 눈이 살짝 커졌다.
2년, 아니 못해도 족히 1년 반은 여기에 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개운한 표정으로 뜨려고 하고 있으니 놀랄 만했고.
‘확실히 어지간한 현령들의 3년 치 업적을 혼자서 해내셨다만.’
하지만 각주님은 좀 더 제자를 오래 붙잡아 놓을 예상이셨을 텐데 이래도 되는 것인가?
허나, 진천희는 뼛속까지 효율적인, 빨리빨리 인간.
“스승님께 보여 줄 장부나 보고서도 완성했고, 이거면 다음 추수 전에 한번 다시 와서 들르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 그, 그렇군요.”
“외총관께서는 저와 함께 백린의각 본산으로 올라가실 겁니까?”
무월의 고민은 짧았다.
그는 섬광처럼 빠르게 답했다.
“저는 소각주님께서 남기신 일을 정리한 연후에 천천히 올라갈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무월.”
그렇게 백린의각 본단에 태풍이 돌아왔다.
* * *
“도련놈 오셨습니까?”
“어이, 유호, 나 없는 동안 신수가 훤해졌어? 일이 줄어서 좋은가 봐.”
진천희의 말에 유호가 곧바로 목을 조른다.
“끄악, 끄아아악!”
그런 진천희의 목을 조르며 유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최근에 괜찮은 인재들을 백린의각 본산으로 보냈더군요. 어디서 불쌍한 인간들을 속여서 데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덕분에 업무가 삼 할 이상 줄어들기는 했죠.”
진천희는 손으로 유호의 팔을 밀며 말했다.
“속여서 데려오다니! 내가 무슨 악덕 업주 같잖아? 취직 못 하고 놀고먹는 애들 좀 데려온 거야. 그리고 감사의 인사가 목 조르기……. 끄에에엑!”
이 망할 도련놈.
그가 백린현에서 뭘 했는지는 유호도 알고 있다.
알 수밖에 없지.
굳이 사람과 인력을 차출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엄청났으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 청년이 소년이었을 적, 칼을 쥐기 전부터 유호는 그를 봐 왔다.
이 아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인간이 아닌 자라도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유호 반만 한 손으로 뭔가 하려고 애를 썼고, 뭔가 배우려고 애를 썼다.
그건 어쩌면 유호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느껴지는, 한발 떨어져서 인간을 통찰하는 자의 시선.
“거기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까?”
“뭐?”
살짝 정곡이 찔린 얼굴로 바라본다.
“더 이상 뭔가 더 열심히 하지 않아도 주인님께서 당신을 버릴 일은 없을 텐데요?”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무슨 애인 줄…….”
“…….”
한순간 딸꾹질이 났다.
유호는 진천희의 목을 조르는 걸 그만두었다.
어차피 인간 하나, 백 년도 못 살고 스러질.
육각영독사의 예언이 있고 없고는 중요치 않지 않나.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지 않는 극소수가 등선을 하겠지.
무영투괴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고, 혈생노괴는 이미 인간보다는 자신들에 가까운 존재.
혈생노괴는 진리에 집착하여 인간을 버렸다.
어찌 보면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광기.
그러나 결국 인간 진천희는 혈생노괴와는 그 근원부터 다른 존재.
결국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백 년도 못 살고 사라질 것이고.
만에 하나 무(武)의 극의를 보고 등선을 한다고 한들 신선이 되면 인간의 육체를 버릴 것이니 그것을 사람이라 볼 수는 없겠지.
원래라면 백린의선의 얼마 안 남은 여생을 지켜봐 주는 것이 그의 계약이었으나 이 녀석 때문에 최소 두 배, 아니 세 배는 계약 기간이 늘어 버렸고.
아주 그냥 거머리처럼 붙어서 하나라도 더 짜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나.
‘결국 모든 인간은 같은 곳으로 가지.’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결핍하며, 갈망하며, 채우고, 채우다가.
그냥 늙어서 쇠한다.
이 녀석의 미래 역시 빤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급하게 무언가를 하려는 놈들은 보통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놈들이고.
보통 찰나를 살고 찰나에 죽지.
‘빨리 죽으면 나야 편해지겠군.’
알면서도 그만 정곡을 찌른 것은 아마 이놈이 앞으로 불러올 산더미 같은 일감에 심술이 났기 때문.
즉, 짜증이 나서 찔러 버린 거다.
제아무리 강해 보이는 인간이라고 해도 이런 놈일수록 의외의 약점이 있는 법이니까.
“전 이만 갑니다.”
“유호, 아차차, 유호! 나랑 연구동 같이 가야지.”
“아, 꺼지십시오. 저 지금 다른 일 맡았단 말입니다.”
유호는 그리 말하면서 큰 키로 성큼성큼 가버렸다.
끝까지 쫓아오면 한 대 패고 같이 가 줄까 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없었다.
아마 백린의선을 만나러 간 거겠지.
* * *
‘누가 무슨… 내 나이에 고작 그런 걸 신경 쓸 줄 아나.’
필요한 사람이 되면 버려지지 않을 거라니.
스승님이 얼마나 제자를 귀히 여기는지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 않나.
‘굳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스승님께서는 충분히 날 인정해 주고 계시는데 무슨.’
스승님 목숨도 구했고, 백린의각에 기여도 엄청나게 했다.
의서를 편찬하고 사람들도 키웠고, 스승님이 시킨 일도 강호에 알려질 만큼 잘하지 않았나.
‘유호 놈, 역시 물리 공격이 안 되니 정신 공격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할 모양이군.’
어쩔 수 없지.
그놈은 졸업 못 하는 대학생이니 이해해 주도록 하자.
‘스승님 뵙기 전이니 깨끗하게 목욕재계해야지.’
그동안은 입구에서부터 마중 나오고 계셔서 추래한 모습만 보였는데 지금은 바쁘신 모양이다.
이참에 깨끗하게 목욕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뵐 수 있겠어.
그렇게 진천희는 후다닥 대욕탕으로 달려가 몸을 씻고는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스승님께 드릴 선물을 잔뜩 들고 서재로 향했다.
“스승님! 저 왔…… 어라?”
서재에서는 스승님이 턱을 괴고 졸고 계셨다.
그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승님이 일하다 졸다니?
언제나 서늘한 칼날처럼 사시던 분 아니신가.
진천희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가서 스승님이 깨실 때까지 기다렸다.
스승님의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죽간본과 종이들이 스승님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결하고 계셨는지 알려주고 있었고.
차는 아예 말라붙어 있는 것이, 차를 삼킬 시간도 없이 계속 일만 하셨던 모양.
왠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 속에서 제자는 스승님께서 오수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빛 사이로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였다.
얼마나 있었을까.
스승님의 큰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곁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에 스승님은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쥐어서 휘두른다.
그것은 부채.
부채에 풍기를 담아 단번에 강기를 날리는 게 아닌가!
‘으하악?! 스승님?’
“……!”
제갈린도 놀라서 눈을 부릅뜬다.
살수라 생각했는데 제자가 있으니 더더욱 놀라신 거겠지.
진천희는 궁신탄영의 묘리를 이용해 스승님이 부채로 만들어 낸 강기를 쳐낸다.
탕!
손에 들고 있는 게 하필 스승님께 드릴 선물 보따리라는 게 문제였다.
“으앗!”
서컹!
강기의 궤적을 바꾸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선물 보따리는 작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