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36
제 535화
한동안 진천희는 백린의각에 머물며 스승님의 일을 도왔다.
‘스승님께서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을 꾸미시고 계시는 것 같은 걸, 이거?’
그리 느끼긴 했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여쭙지는 않았다.
스승님 입장에서는 제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도 있을 테니까.
‘내가 스승님께 보이기 싫은 모습이 있듯이.’
기묘한 사제 관계라고 왕각연이 평한 적이 있었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사탕을 단 하나 완성해 스승님께 진상했다.
스승님은 한 번에 입에 넣고 그대로 까득 씹어서 드셨다.
“맛은 어떠세요?”
“나쁘진 않구나. 허나, 내 입맛에는 엿 쪽이 더 나은 것 같다. 사탕은 예쁘긴 하지만 굳이 찾아서 먹을 맛은 아닌 것 같으니까 말이다.”
“오, 그렇군요.”
다음에는 엿으로 도전을 해 봐야겠다.
진천희는 머릿속에 작게 메모를 했다.
동시에 별사탕도 제작 중이다.
미각을 느끼지 못하는 하륜이에게 다양한 촉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소다라도 만들고 싶은데, 강호에서 소다를 어떻게 만들지?’
입안에서 팍팍 튀는 사탕.
지구에서 소다는 슈퍼에만 가도 어디나 있었는데 막상 이 세계에서는 어떻게 만드는지 막막하군.
‘예전에 다큐에서 탄산수소나트륨으로 되어 있는 호수에 대한 걸 봤던 기억이 나는데…….’
아, 생각났다. 호수나 지하수에서 얻을 수 있다고 했지?
이걸 이용하면 하륜이도 입 안에 재미있는 촉감들이 생길 테니까.
안 먹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지난번 매운맛 사탕은 꽤 반응이 좋았으니까.
일단 별사탕에 다양한 맛을 농축해서 넣는 것까지는 하고 있다.
매 끼니마다 톱밥 맛이 난다고 했으니, 가끔 이런 거라도 먹어 주면 삶의 윤기가 되겠지.
진천희는 별사탕을 만드는 화과를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했다.
‘누가 보면 영약 만드는 줄 알겠네.’
별사탕을 만드는 것 자체는 지금 이 시대의 기술로도 충분하다.
설탕에 당액을 묻혀서 이렇게 거대한 화과를 규칙적으로 빙글빙글 돌려서 만든다.
중요한 건 시간과 끈기.
시간을 들이자면 일주일도 걸리지만 여기에 진천희는 내공을 좀 담았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단축되는 데다가(그래도 오래 걸린다.) 황구와 뇌진을 보며 느꼈는데, 내공이 들어간 음식은 맛이 다른 모양.
물론 영약 같은 효능은 없지만 그래도 맛을 못 느끼는 동생에게 뭐라도 자극이 되면 좋은 거니까.
쏴아아아-!
붉은 별사탕이 만들어진다.
당액에 농축시킨 마라와 내공을 섞었다.
‘솔직히 위장에는 안 좋지.’
이렇게 매운데 소화기관에 자극이 안 될 턱이 있나.
허나, 하륜이에게 필요한 건 건강식도, 영약도 아니다.
인간으로서 자신을 붙잡아 줄 무언가.
그게 무엇인지 형인 자신도 뾰족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맛을 못 느끼는 삶이 하륜이의 인간성을 마모시키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사람이 톱밥만 먹고 살면 멀쩡한 놈도 돌지.’
가끔 밀가루 음식도 좀 먹어 주고, 시원한 탕국도 말아 먹어야 정신이 건강해지지.
매일 사람 죽이고, 톱밥 먹으면 제아무리 부처라도 돌아 버릴 거다.
그렇게 진천희는 쉬는 동안 별사탕을 네 곽 가득 채워 만들었고.
매운맛뿐만 아니라 혹시 신맛이나 떫은맛도 괜찮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또 만들었다.
그렇게 시험작 한 곽 더.
도합 별사탕 다섯 상자.
‘잘 먹어라.’
꼼꼼하게 포장해서 표국을 통해 여하륜의 위장 신분 앞으로 보냈다.
엄청난 기밀인 양 포장한 주제에 열어 보니 기이하게 생긴 사탕뿐이니 얼마나 웃기겠냐마는.
그걸로라도 동생이 한번 웃어 줬으면 하는 형의 마음이다.
‘자, 그러면 사마현과 천우에게도 보내 볼까?’
천우는 도사라 풀을 주로 먹지만… 설탕도 사탕수수에서 나온 거니까 채식 아닐까?
진천희는 그런 미친 생각을 하며 추가로 한가득 보통 맛의 별사탕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만들어 드린 것은 스승님과.
“유호. 내 마음이야!”
“……실성했습니까?”
“이거 먹고 나와 같이 탄산수소나트륨을 만들자.”
“…이제는 이상한 말을 숨길 생각도 안 하는군요.”
“그러면 탄산수소소금을 만들자! 유호! 우리가 셋째까지 그동안 약만 만들었는데 하나 정도는 맛있고, 세척도 잘되는 거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이거 적당히 먹으면 제산제로도 쓰이거든?”
천연 미네랄 나트론 자체는 고대부터 인류가 사용해 왔다.
이집트 애들이 써 왔단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우리가 아는 탄산수소나트륨, 즉 베이킹소다가 상용화된 건 1800년대 중반이던가?
진천희가 원하는 건 그쪽이다.
“…….”
“첫째, 둘째, 셋째보다 훨씬 쉽다! 만들기 완전 쉽다!”
“…….”
“달고나에 넣으면 와따다! 개맛있다!”
미친 도련놈은 지난번에 유호가 몸 대신 정신을 으깨 버렸던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약점을 꽤 깊이 찔렀을 텐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유호! 나랑 넷째… 넷째 보자!”
빠아아아악!
“꾸에에에에엑!”
분노한 유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진천희를 팼고, 진천희는 팔을 십자로 교차하고는 만화처럼 날았다.
둘 다 상당한 고수.
이 정도로 다치지는 않았으나 순간적으로 두 사람이 취한 절기는 그야말로 극상의 경지였고.
지나가던 입원 환자들도 넋을 놓고 볼 정도였다.
그렇게 낙법으로 세 바퀴 구른 진천희는 벌떡 일어나서 유호에게 달려갔다.
“유호! 유호도 내가 해 줄게! 평생 달고나 공짜로 해 줄게!”
“이 도련놈이 말이라고오오오오! 결국 또 고생문일 게 뻔한데에에에에!”
“유호! 별사탕 한 번만 잡숴 봐. 너에게 주는 나의 마음… 꾸에에에엑!”
그렇게 교수와 졸업 못 하는 대학원생이 생사를 걸고 혈투를 벌이는 동안.
그걸 지켜보는 환자(무인)들은 넋을 놓았다.
“일광… 그사이에 무위가 더욱 높아졌군. 그래. 그것 자체는 이상하지가 않아, 일광은 그런 자니까. 허나 그런 일광을 후려 패고 있는 저 총관이라는 자는 대체……?”
“이건 분명 일광이 봐주고 있어서 그런 것뿐이네.”
“아무리 봐준다 해도 저렇게 자진해서 처맞는단 말인가?”
“유호라는 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군. 두려워.”
반면 백린의각 상의원들은 이 어마무시한 무위를 외면한 채 각자의 일을 했다.
“자네 오늘 식당 점심 뭐로 나오는지 아는가?”
“식단표 보니 오늘은 오리 국수더군?”
“오, 내가 좋아하는 거군. 잘됐네.”
완벽한 무시.
환자(무인)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상의원들을 바라보았으나, 그 눈빛조차도 상의원들은 익숙했다.
“유호! 한 번만, 한 번만 맛만 봐주라! 유호오오오!”
소각주의 처절한 절규만이 의각을 울릴 뿐.
결국 유호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넝마가 된 교수 놈을 욕하면서 끌고 갈 때까지 이 폭력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두들겨 맞으며 진천희는 꿋꿋이 별사탕 한 번만 먹어 달라 했고, 유호는 마지못해 하나 먹어 주더니.
한 상자를 다 가져갔다.
환자들이 말했다.
“진정한 고수는 총관이었던가.”
“아니, 일광이 봐준 게 분명하네!”
강호에 뜬금없이 백린의각 총관의 무위에 대한 논의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삶이란 결국 강과 같아서, 느린 것 같아도 좋은 것들은 늘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스승님.”
개와 새 한 마리, 그리고 강호낭중을 상징하는 약함.
제자는 다시 훌쩍 다음 일을 하러 떠나간다.
제갈린은 문득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제자를 보며 마치 시냇물에 흘러 내려가는 배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흰 겉옷과 녹빛 소매가 더욱 그래 보이는 것이겠지.
“모든 것이 주인님이 설계한 계책이라는 것을 도련놈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군요.”
“원한다면 할 수 있을 걸세. 이미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원치 않으면 절대로 다가가지 않는 게야. 고얀 놈 같으니.”
“혹 주인님은 도련놈이 눈치채길 바라십니까?”
“그건 아닐세. 그저… 저 영민한 녀석이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선을 그으려 하는 게 느껴져서 그렇지.”
제갈린은 쓰게 웃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단, 한 번도 떼를 쓰지 않고, 아비 같은 스승님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어리광도 부리지 않는 아이라니. 어른이 될 때까지 저 아이는 착하게만 살려고 애를 썼지, 제 욕심을 챙기려고 한 적이 없었으니.”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제갈린을 바라보며 유호는 짜증을 부렸다.
“저한테는 왜 그런답니까?”
“허허허, 글쎄. 적어도 자네 정체가 궁금할 법도 한데 늘 덮어 주려고는 하는 것 같네만.”
“그건 절 더 부려 먹기 위해서죠. 뻔합니다.”
과연 그럴까.
이 조숙한 녀석은, 스승이 무언가 계책을 짜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숨기고 제자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저 알겠다며 내려간다.
“평범한 녀석은 아니지. 친아들처럼 내 모든 걸 주려 했지만, 도리어 괜찮다 정색하고 자기가 가진 것들을 언제나 내게 내려놓는 아이지. 그래서 더 난감하네.”
이 녀석은 평범한 또래 아이들과 너무 다르다.
부나 명예를 원하지도 않고, 무공도 활인의 수단일 뿐.
그것이 목적이 되는 일도 없고.
스승이 시키는 것은 모두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주제에 스승님에 대해 무엇 하나 따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런 놈을 만나서는.’
제갈린은 한숨을 쉬었다.
“이거 아나? 내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놈이 바로 저 녀석일세.”
“천하의 주인님이 말입니까?”
“그래.”
“저놈은 주인님이 시키는 것은 뭐든 다 할걸요? 심지어 사지(死地)에 보내도 웃으면서 갈 놈입니다. 그러고 넝마가 돼서 돌아오겠죠.”
“이미… 멀쩡한 곳을 보내도 넝마가 돼서 돌아오고 있는데 의미가 있나 싶지만.”
제갈린은 부채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더니 말을 이었다.
“나를 위해 넝마가 될 수도 있는 놈이 정작 내게는 원하는 게 없잖나. 그게 얼마나 난감한지 유호는 모르겠지.”
“제가 인간 놈들 생리를 어찌 압니까.”
“거기다 머리도 좋고 빈틈도 없는 놈인 데다 턱없이 선하기까지 하니 골치가 아프네.”
“제자 자랑입니까?”
그 말에 제갈린은 유호를 본다.
유호는 투덜거리며 멀어져가는 진천희의 머리 꽁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저 눈은 인간보다 아득히 더 멀리 볼 수 있겠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켠으로는 유호에게 무언가 이해를 받는 것은 무리겠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유호는 유호다. 그런 놈이니까.
그저 이놈이 진천희에게 왜인지 조금씩 미운정이 들어 가는 게 웃기긴 할 뿐.
‘하긴, 미워하기에는 희가 들인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