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37
제 536화
소를 잡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유호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유호도 월급을 받으나 아무리 많이 준들 사람처럼 기뻐하진 않는다.
인간의 화폐는 그저 인간들끼리의 물물교환 수단일 뿐이니까.
대신 의각에 돌아오자마자 매일 유호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 주는 게 진천희의 일.
소도 가장 좋은 부위를 유호에게 주었고, 라유며 들깨 기름까지 버무리고, 갓 낳은 오리알이나 달걀과 비벼서 육회를 만들어 주거나.
때로는 유부라는 걸 만들어서 유호에게 주었다.
유호는 생고기가 더 낫다고 했고, 진천희는 ‘역시, 이쪽은 서브 컬처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인가?’라며 투덜댔다.
그 유부는 결국 반으로 갈라 달달한 밥을 넣어 스승님에게 진상했다.
제갈린은 진천희가 만든 유부 초밥이라는 것을 썩 맛있게 먹었다.
대신 그 유부를 튀겨 만든 과자는 유호가 몹시 좋아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유호의 세계란 본디 인간의 세계와는 다르다.
황구나 뇌진과 비슷한 세계다.
그들의 세계에서 가장 귀한 것은 은이나 황금이 아니라 먹을 것. 그것도 맛있는 먹을 것.
만드는 도중에 내력이 들어간 거면 더 좋다.
제자 놈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 여우 놈을 포섭하기에 가장 좋은 무기를 계속 꺼내서 먹이고 있는 셈이니.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호를 아끼고 있는 게지.’
동생이나 스승을 대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지만 진천희 나름의 방식으로 아끼고 있는 셈.
어찌 보면 가장 인간적인 부분까지 부딪치고 있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후후, 답지 않게 질투를 하는군. 나도.’
결국 진천희가 응석을 부리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저 여우가 아니던가.
스승 앞에서는 죽어도 억지를 못 부리는 놈이 유호에게는 실컷 하고 있으니.
“터, 공양, 신앙. 결과적으로는 자네에게 필요한 셋을 다 해주고 있군.”
“공양이야 정성이 들어간 최상의 고기 요리이니 그런 셈 치고, 터는 설마 연구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나? 정해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으며 ‘자네’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일 수 없고. 웃기는 말이지만 백린의각에서 가장 정순한 곳이니.”
“허.”
유호가 어이가 없어서 숨을 내뱉는다.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라서 반박은 못 한다.
“거기에 선한 일을 하고 있기도 하지. 저곳에서 이미 생명을 살릴 것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사사건건 자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어찌 보면 본인 혈액과 고통도 공양하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이걸 인신공양이라고 해야 하나.
보통 사람은 견디지 못할 피와 고통이 따르고 있긴 하다.
그런데 웃긴 건 자처해서 유호에게 달라붙고 있다는 것.
그야말로 광기!
“신앙은 설마 그… 졸업 못 하는 대학원생이라며 알 수 없는 말을 주절거리던 그것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놀랍게도 거의 광신 아닌가. 무슨 건수만 생기면 ‘유호, 제발’부터 외치더군.”
“내 참.”
유호는 이마를 찌푸렸다. 스승님이 작게 웃었다.
“물론 과대 해석일 수도 있겠지. 어찌 되었건 본인은 자각이 없는 듯하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고. 어찌 되었건 이러다가 자네도 육각영독사 꼴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게.”
“정말로 조심하라는 겁니까. 아니면 놀리시는 겁니까?”
“최근에는 천일취(天一醉)를 제조할 준비를 하더군.”
한번 취하면 천 일을 취한다는 극상의 술.
과거 황궁 비고에서 얻은 비급이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유호를 좀 더 꼬셔 봐야겠다면서 유호용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정말로 천 일을 취하는 건 아니지만, 구전에 따르면 한 번이라도 맛보면 천 일 동안 잊히지 않는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더군. 자네는 술 좋아하지 않나?”
“저 같은 존재 중에 술 싫어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래. 술은 본능이지.”
착실하게 코가 꿰이고 있는 여우 놈을 향해 제갈린은 빙글빙글 웃는다.
이러다가는 제갈린이 더 놀리겠다 싶어서 유호가 잽싸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주인님은 어찌 보십니까. 주인님의 계산에 따라 이번 용봉지회는 저번과 다르겠지요.”
“그렇지.”
“아마 진짜 위선이 뭔지 보게 될 터인데 그때에도 도련놈은 흔들리지 않고 활인(活人)을 추구할까요?”
“…….”
제갈린은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이윽고, ‘알 수 없지. 다른 이도 아니고 그 녀석인 것을.’이라는 말만 내뱉었다.
이윽고 유호가 되물었다.
“하면 주인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모르겠네. 나와 같이 사람에 실망하고, 사람을 버린다면 의외로 안심이 될 것 같네. 이상한가?”
“이상할 건 없습니다만 어째서입니까?”
“적어도 이 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아이이기 때문이겠지. 더는 상처 입지 않을 테니까. 긴 여정이 끝난다면 그 또한 된 일이지. 안온하게 백린의각에서 여생을 보내면 될 일이네.”
“그러면 반대면 어떠합니까?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길 원한다면.”
“만약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런 진흙탕 같은 위선자들도 구해야 한다 한다면…….”
그 순간, 스승님 앞에 눈이 내렸다.
용봉지회다.
언제나 용봉지회는 추울 때 시작하여 추울 때 끝이 난다.
어찌하여 겨울이어야 하는가.
강호의 미래를 판가름하는 칼의 연회는 어찌하여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피어나는 것인가.
스승님은 눈 한 송이를 보고 말았다.
이윽고 땅에 부딪쳐 녹아내리고.
아직 지표면에는 온기가 남아 있어 눈송이 한둘 정도는 쉬이 물로 만들어 흡수한다.
허나, 이 눈이 계속된다면. 내일도 내린다면, 그리고 겨울이 더욱 깊어진다면.
제갈린이 입술을 연다.
“……그럼에도 구한다면. 나는 그래도 아직은 사람에게 희망이 있겠다 믿겠네.”
“주인님.”
“그것은 강호를 다시 믿겠다는 뜻이 아니네. 그저 그 아이가 살리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라면 그런 것이겠지.”
제갈린의 푸른 눈에 육각의 눈송이가 스쳐 지나간다.
이미 아득한 경지까지 나아간 자에게 눈이 내리는 광경은 범인(凡人)과는 달리 보인다.
그는 육각과 팔각의 세상을 본다.
“나는 사람이 싫네. 유호. 인간이 싫고, 가족이 싫고, 우애가 싫네. 그 모든 게 왜 이리도 사람을 지긋지긋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네. 나는 그런 인간이지.”
흰색은 배척의 색이라 하던가.
다른 색과 섞이지 않았기에 흰색이었다.
제갈린은 자신과 닮은 눈송이들을 본다.
“부모가 싫네. 남녀의 애정도 생각해 본 일이 없고. 내 옆에 지성체가 숨 쉬는 게 귀찮지.”
어쩌다 이리 뒤틀려 버렸는지 제갈린 스스로도 조소(嘲笑)가 나오지만.
자신을 학대한 아비와 방치한 어미를 대신하여 강호에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 아이는 결국 모든 것에 다 신물이 났다.
그래도 좋은 것이 있었기에 아득바득 복수라는 것을 해나갔으나.
이 세상에 영원한 따뜻함 같은 건 없었고, 뒤를 돌아보니 그마저도 시산혈해와 함께 닳아 없어져서.
결국 향불 하나 태우는 기력밖에 남지 않은 그런 텅 빈 괴물.
그게 자신이라면.
제자가 어찌하여 그 괴물을 스승이라 떠받들며 신앙처럼 따르는 것인지 제갈린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강제로 목숨을 늘려 구명해 놓고서 이번에는 세상을 구명하겠다고 묫자리 찾아 달려가는 저놈을.
저 미친놈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사실 세상에 환멸해 줬으면 좋겠네. 비뚤어졌나?”
“뭐, 그러면 저는 일이 줄어서 좋겠군요.”
“하하하. 그거 참 정답이로군.”
* * *
마을 아래로 내려가니 200명의 백린대가 출발 준비를 하고 대기해 있었다.
여기에 백린의각 상중하 의원 서른 명까지.
‘한… 오십 명만 데려가면 안 되나? 백오십 명은 돌아가라고 하고? 턱도 없겠지?’
스승님 성격에 그럴 거면 의각에서 나가지 말라고 하시겠지.
여기에 사 대 당주 중의 하나인 추나당주 주단하도 함께 간다.
그녀가 이번에 함께 가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가장 무공이 출중하시기 때문이지.’
침구당주 사마병이나 약재당주 만파곡. 두 분도 자신의 몸을 지키는 수준으로는 충분히 단련하신다.
하지만 추나당주 주단하는 다르다.
그녀는 권의 대가다.
추나술 자체가 타권이나 유권에 다친 몸을 치료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만큼, 어떻게 패야 하는지도 잘 알 수밖에.
거기다 그녀 자신도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개인 전투력은 사 대 당주 중에서 무력당주인 독고중후의 바로 아래나 그와 거의 비슷하게 견줄 수준은 되지.
그리고 당연히 무력당주 독고중후는 이번에도 개근을 찍으며 함께 간다.
“…하, 이제 진짜 좀 은퇴시켜 주시면 좋겠구려.”
그는 의욕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목소리로 마차 고삐를 붙잡았다.
그리고 진천희는 스승님이 준비한 호화 철갑 마차에 올랐고.
거기서 황구한테 간식 주고, 뇌진 좀 쓰다듬고, 가끔 작은 마을에 들러서 대민지원 좀 하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
마침내 중간에 사마혜와 합류할 수 있었다.
“은공~!”
사마혜는 백린대 열 명과 함께했다.
“혜아야! 강호가 얼마나 험악한데 고작 백린대 열 명만 데리고 다니는 거니!”
스승이 들었으면 가슴을 찢었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사마혜를 걱정했다.
“에이~ 은공. 열 명이면 충분하고도 남죠. 원래는 혼자 다니려다가 분타에서 난리라 어쩔 수 없었어요.”
“보렴. 혜아야. 이 은공은 백린대 이백 명과 다닌단다. 너도 더 호위를 붙여야 해.”
출발 전에 조금만 덜어내면 안 될까, 딱 150명만 덜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어디로 가고.
진천희는 뻔뻔하게 자신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움직이노라 말했다.
“하지만 은공. 저는 이래 봬도 절정 고수인걸요!”
“대단하긴 하지. 네 나이를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화경에 오른 은공에게 들을 말은 아니네요.”
사마혜는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참, 그러고 보니 중간에 산채를 발견했는데.”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어디 다친 건…….”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산채에 도착하니 이미 반송장된 산적들이 쓰러져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외안의 사파 고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한다.
“외안 사파 고수?”
“네. 백호 가죽으로 만든 피풍의를 입은…….”
……설마?
* * *
황구와 뇌진은 매우 좋은 추적기다.
모르는 사람은 못 찾아도, 아는 사람이 근처에 있다?
어떻게든 찾아낸다.
황구가 냄새로 방향을 잡고, 뇌진이 날아서 근방을 수색한다. 그렇게 얼마 후.
컹컹!
삐이이익!
뇌진이 천우의 머리에 앉아서 이마를 쪼고, 황구는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두 발로 서서 천우의 어깨에 양발을 턱 올려놓는다.
어마어마하게 큰 황구인데 천우는 ‘어라? 형이 근처에 있구나?’ 하고는 뒤로 휘청거리지도 않고 자연스레 이마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