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48
제 547화
“그보다 어찌하여 정파는 죽을지도 모르는 일에 검을 쓰는 겁니까.”
“글쎄다. 이것은 비단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지. 강호인 전체의 의지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권제는 그리 답하며 다과를 한입 삼키더니 그만 기침을 했다.
“아니, 이 집 다과는 왜 이리 떫어?”
“뭔가 잘못 만들었나 봅니다.”
진천희의 대답에 권제는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알면서도 그걸 먹고 있는 게냐? 누구보다 미각에 예민한 네놈이?”
“…….”
오독, 오독.
다과를 씹는 소리만이 다실을 가득 채운다.
이윽고 마지막 한입까지 깔끔하게 삼키고는 진천희가 답했다.
“일단, 저는 저의 일을 하렵니다.”
“무엇이냐?”
“의원의 일이지요. 사람을 치료하고, 환자를 구할 것입니다. 방해한다면 그때는 그때의 일을 해야겠죠.”
“독한 놈. 무서운 놈.”
“과찬이십니다.”
처음 했던 그 대답을 다시 돌려주는 진천희를 보며 태극권제는 어이없어 헛웃음을 내뱉었다.
“미친놈.”
“감사합니다. 저는 정사대전에서 절대 중립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에는 단 한 점의 미망도 들어있지 않아서.
심장 한켠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토할 만큼 쓰디쓴 다과를 씹으며 이놈은 무슨 생각을 한 건가.’
이윽고 권제는 그런 진천희에게 이리 말했다.
“부디 그 의지 끝까지 관철시키길 바란다. 이 알 수 없는 것아.”
그 말에 진천희는 대답 대신 푸른 눈으로 한참 웃기만 했다.
사람의 소름을 돋게 만드는 웃음이었고.
이윽고 진천희는 그런 권제께 진심을 담아 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으이구! 혈린이 괴물을 키웠어!”
* * *
용봉지회 자체는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고.
백린의각은 여전히 한가하고.
‘아, 그렇구나. 애초에 정, 사, 마가 모이지 않으니 은원도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아무래도 정파들끼리는 서로 안면 튼 사이가 많다 보니 살수까지 쓰는 일이 좀 드문 것 같다.
인간사 다 비슷비슷하게 돌아가는 걸까.
그러다 보니 환자가 생겨도 중환자는 없고 경환자 정도.
‘거기다 화주의각에서 체면 때문에 환자를 도맡기 시작했으니 개꿀이네?’
하와와와, 이 의원은 좋다 이거예요.
대체 강호의 체면이 무슨 메리트가 있어서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지.
어쨌든 다들 용봉지회 축제를 즐기면서 한숨 돌리고 쉬고 있달까.
그렇게 찻물을 삼키며 여기저기서 날아온 전서들을 검토하는데 사마현이 찾아왔다.
“형~”
“오냐. 너 슬슬 철수해야지?”
“……아니,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슬슬 정사대전 시작이니 맹주께서 하오문 애들 철수하라고 일렀겠지, 뭐.”
“뭐, 그런 셈이야.”
사마현은 여전히 신기한지 진천희의 푸른 눈을 빤히 바라본다.
“혹시 제갈세가는 점도 봐?”
“별 보고 치는 게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천문은 소질이 없더라고. 스승님도 그쪽은 별로 관심이 없으시고.”
애초에 별로 미래를 다 알 수 있으면 세상만사 힘든 일이 뭐가 있겠나.
미래를 알고 다 피하면 되는데 말이지.
“나는 천기라는 거 잘 모르겠더라고.”
“제갈세가 사람한테 입으로 들으니 되게 신선하네~”
“사파도 별 보는 애들 있지 않아?”
그 말에 사마현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별이 사람 목숨은 알려준다는데 돈의 흐름은 안 가르쳐주더라. 그래서 황금왕 스승님께서는 그거 별로 안 좋아해.”
그렇지. 밤하늘에 돈의 흐름이 반짝이면 그게 주식 전광판이지 별자리겠냐.
누가 살고 죽는 걸로 무언가가 비싸지고 싸지는 걸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바에는 하오문 정보통을 쓰는 게 낫겠지.
“아무튼 형. 나는 철수할 테니까. 혜아를 잘 부탁해.”
“오냐. 참, 혜아 불러야겠다. 운기하러 들어간 지 좀 돼서 슬슬 나올 때 됐어.”
“아니, 됐어. 방해하기 싫…….”
“혜아야–!”
내가 소리를 치자 환자 간이침대 가림막 사이로 사마혜가 불쑥 나타났다.
“네, 은공! 아아, 오빠!”
“백린의각 한가하다는 소리가 사실이었네~”
사마현은 그리 말하며 동생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 * *
그렇게 함께 사마현을 배웅하고 나니, 시간은 이제 저녁 무렵.
‘축제치고는 확실히 싸움이 적어.’
진천희는 사마혜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객잔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사마현이 추천한 곳으로, 양고기가 일품이라 하여 가게 되었다.
주문을 하고 앉아 있는데 뭔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와하하하, 이 집 양고기가 천하진미지요.”
“네. 오늘 화주의각 의원님들 말만 믿겠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화주의각 사람들이 나타났다.
옆에 함께 동행한 것은 도복을 봐서는 공동파의 사람들로 보였다.
사마혜가 전음을 내뱉었다.
[화주의각 소각주 양빙이네요.] [아, 저 사람이 양빙이야? 새롭게 소각주로 올라갔다던?]혜아는 얼굴도 알고 있구나.
진천희 자신도 화주의각 새 소각주에 대해 이름은 알고 있지만, 얼굴은 만난 적이 없으니 몰랐다.
문득 사마혜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녀가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우득-
‘아, 진짜 싫어하는구나.’
그녀도 약간 사마현과 닮아서 싫을수록 더 환하게 웃는다. 친한 지기에게 짓는 웃음과는 다르다.
정신 무장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새끼에게 주는 무언가다.
아니나 다를까.
양빙이 이쪽을 돌아본다.
“오오, 항주 분타주 사마혜 소저 아니시오!”
반갑게 다가온다.
사마혜도 입꼬리를 당겨 화사하게 답했다.
“아, 화주의각 소각주 양빙 소협이시군요.”
“하하하, 이렇게 만나게 되니 역시 우리는 인연이오.”
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내가 보낸 선물들은 잘 받으셨소?”
“아…. 다른 상의원들과 잘 나누어 가졌습니다. 하지만 일전에도 말했듯이 다시는 보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물을 자꾸 보낸다라?
‘단서가 하나씩 쌓이고 있는데, 내 추측이 맞는 건지 아니면 오지랖인지 헷갈리는데, 이거.’
그사이 양빙이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했듯 화주의각과 백린의각이 사이가 나쁜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보오.”
음, 제법 바른 말을 하는데?
사마혜가 답했다.
“맞습니다. 똑같이 인명을 구하고자 하는 일인데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지요.”
“그러니. 사마 소저께서 시간을 내주시면 좋겠소.”
“야심한 시간은 안 되며, 단둘의 만남도 사양합니다.”
먼저 못을 박는다.
한두 번 거절한 눈치가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시를 세울 거요! 사마 소저는 장미처럼 아름답지만 자꾸 이러면 귀엽지 않소.”
드륵-
진천희가 나서려는 것을 사마혜가 막았다.
[은공. 오라버니께도 이건 말하지 마세요. 의각 내에서도 두 의각의 교류로만 아는 사람들도 많으니까.]그렇게 말하고는 사마혜가 답했다.
“저는 양빙 소각주께서 제게 이러시는 게 부담스럽고, 그저 화주의각 소각주와 백린의각 항주 분타주로서의 교류만을 원합니다. 이제 제 거처를 찾아오려는 것도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고, 선물을 주시려는 것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 말에 양빙이 ‘허허허!’ 웃었다.
그러자 공동파 무인들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젊은 나이에 분타주가 되어서 그런가, 앙칼지군그래!”
“양 소각주도 고생이 크시겠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하니. 힘내시구려!”
“젊은 선남선녀의 사랑싸움을 보는 것도 이 늙은이들은 즐겁지. 즐거워.”
대체 이 사람들은 사귈 마음이 없다는 말을 모르는 걸까.
나이가 젊어도 연애를 하기 싫을 수도 있지 않나.
아니, 연애를 하고 싶어도 그냥 저놈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난 좀 별로일 수도 있지 않나?
이걸 어떻게 투닥투닥하는 썸으로 볼 수 있는 거지?
[음, 말을 못 알아듣는군. 혜아야, 그냥 말을 못 알아듣고 있어.] [죄송해요. 은공!]왜 사마혜가 사과하는 걸까.
싫다는데 계속 들이대는 놈이 나쁜 걸 텐데.
진천희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제게 접근하지 말아 주시고! 연락은 서신으로만 보내주세요.”
“하하하하, 이거 참, 원래 아름다운 꽃일수록 절벽에 피는 법 아니겠나.”
“우리 양빙 소각주가 쩔쩔맬 만하구만.”
진천희가 보기에 사마혜는 온 힘을 다해 ‘No!’를 외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싫은 놈을 싫다고 말하는 게 뭐 그리 잘못이고 곡해해서 들을 일인가.
그동안 사마혜가 은근히 진천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왜 스스로 혼삿길을 막고 있는가 고민했더랬다.
일이 더 좋아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개인적인 어떠한 이유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정말로 딱히 누군가를 좋아할 마음이 없을 수도 있겠다.
결혼 그 자체가 싫을 수도 있고.
하지만…….
‘스토커 퇴치하느라 그랬던 건가?’
접근하지 말라는데 접근하고, 심지어 사마혜의 숙소까지 직접 찾아오려 하고.
원치도 않는 선물을 계속 보내고.
소각주란 신분을 이용해 계속해서 들이댔던 걸까?
거기다 공동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사마혜에 대해 뭔가 잘못된 소문을 뿌리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단 사마혜는 사마현만큼이나 영민하다.
다만 경험이 부족할 뿐이지.
그간 오빠에게, 그리고 백린의각에 피해를 입히기 싫어서 어떻게든 ‘교류’로 포장을 해온 거라면.
그게 ‘책임’이라고 생각한 거라면.
순간 진천희는 ‘사마혜는 너님이 싫다고 함! 좀 꺼지셈. ㅇㅇ’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사마혜가 몇 번이나 했던 말 아닌가.
아니면 ‘사마혜는 연예에 관심이 없소!’라고 말한다거나.
‘아, 이것도…… 무리다. 믿지도 않을뿐더러 이 시대 인간들은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거나 저 어디 무당파에서 도사 자격증은 따야 그게 참독신이구나, 해 주지.’
사극만 봐도 그렇지 않나.
천하의 근본은 가족이고.
가족을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유교사회에서 들어먹을 말이라고는…….
그때 양빙이 말했다.
“사마 소저, 다른 마음에 둔 이라도 있는 거요? 그러면 내 깔끔히 포기하리다. 하하하하!”
“그게…….”
사마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구 이름을 대든 민폐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이뿐이 아니었다.
‘껄떡대는 놈이 한둘이 아니야.’
이 쓰레기 같은 세계에서는 고아 출신의 재산 많이 모은 사람은 뭐랄까, 봉으로 보는 것 같다.
신경 쓸 처가가 없으니 결혼만 하면 사마혜가 모은 재산은 모두 자기 거.
심지어 오라비까지 든든하니 그냥 어떻게든 껄떡대고 보는 것 같다.
대놓고 선을 넘어 버리면 차라리 대처가 쉽다.
하지만, 이런… 업무적 명분을 앞세워서 접근할 때가 문제.
‘그냥. 들이박자.’
무협지의 전형적인 클리셰 악당 새끼를 굳이 참아 줘야 할까?
“하하하하!”
진천희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리자 모두가 이상하게 봤다.
“싫다는 사람에게 왜 그리 껄떡대는지 모르겠군. 화주의각도 갈 데까지 갔소.”
“일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