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58
제 557화
강소성 동부 해안 도시 중 하나인 요진(遼鎭)에 도착.
요진은 항구도시 겸 해안 도시로, 해군 기지도 겸하고 있다.
그래서 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인구의 대부분은 상업 또는 어업에 의존한다.
“여기서부터 배를 타고 갈 예정이야.”
컹?
“속이는 게 아니라 진짜로 북해빙궁에 가면 널 탈 거라니까.”
크릉.
“생선 요리해 줄까?”
컹!
그렇게 황구를 달래며 성문으로 들어가는데 병사 하나가 진천희를 붙잡았다.
“혹시 벽안신의 진천희 현령 대리님 맞으십니까?”
“음? 어찌 저를…….”
“맞다고 합니다!”
병사의 목소리에 새카만 무복을 입은 자들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다. 그들이 쓰고 있는 가면과 기이한 기척.
‘동창……?’
왜 동창이 여기서 기다렸다가 나오는 거지?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보는데, 그중 가장 화려한 가면을 쓴 동창이 말했다.
“의국백의 제자 진천희 현령 대리는 황명을 받으라!”
‘허미, 뭐여?’
갑작스럽지만 일단 습관대로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동창은 두루마리를 펼쳐 쭉 내용을 읽었다.
“은왕이 위독하니 지금 급히 입궐하라!”
은왕?
은왕야?
머리가 하얘지는 진천희를 앞에 두고 동창은 도록도로록 다시 두루마리를 말았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급히 황궁으로 출발하셔야 할 듯합니다.”
방금의 우렁찬 목소리는 어디 갔는지 퍽 공손하다.
“어… 저…… 북해빙궁에 가야 하는 상황인데…….”
황명이 온 것치고 나오는 대답이 어벙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깜짝 파티도 아니고, 깜짝 망태기란 말인가!
그리고 왜 이 타이밍에 터지는 건지.
그리고 실버 왕야께서 아프다고? 분명 마지막에 진맥했을 때는 매우 정정했는데?
재발? 설마 암 재발한 겨?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진천희에게 동창이 말했다.
“차후 북해빙궁으로 가시는 길은 저희가 준비할 터이니 심려치 마시지요.”
그렇게 진천희는 동창이 준비한 군선에 올라탔고.
‘와, 나……. 이건 상상도 못 했다.’
황궁으로 다이렉트 납치를 당했다.
* * *
‘아니, 대체 뭐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임?’
물음표를 백만 개 정도 띄워 보았으나 딱히 답은 안 나온다.
제발 전이만 하지 말라고 천지신명, 알라, 하느님, 성자, 성부, 붓다, 아폴론, 샤마쉬, 오딘, 하스터 등 아무나 붙잡고 기도를 했다.
어쨌거나 이 시대의 의술이란 게 결국 한계가 있고.
만약 전이한 거면 답이 없다.
‘마지막 진맥 상태로는 안 할 거 같긴 했는데, 이게 결국 내 경험에서 추론한 감일 뿐이지 인간 몸뚱이가 의사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도착할 때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다가 황궁에 도착하고 바로 은왕야에게 갔다.
“오, 왔나?”
“손목 좀 주시지요.”
“그래. 그러지.”
그렇게 한차례 진맥 후.
“……정상이시군요.”
“음. 바로 맞혔군.”
군주는 무치라고 하던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히 꾀병을 선포하는 게 아닌가.
“아, 아아아아…….”
긴장이 풀려서 그대로 쭈그려 앉았다. 기력이 없다. 대체 이 인간은 왜 이런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의원 놀리면 재미있습니까?”
“음. 재미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만, 그대 반응을 보니 재미있군. 한 번 더 써먹어도 되겠나?”
“주치의 바꾸십시오.”
“에이, 그대만 한 주치의가 어디 있다고 그러나.”
바꿔, 바꾸라고, 이 인간아! 아주 그냥 어지간해야지!
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든다.
“하, 옥체 강녕하신 걸 알았으니 이만 돌아가겠사옵니다. 전하, 아니 폐하. 아… 모르겠고. 갑니다.”
그리 말하고는 일어나서 뒤돌아 나가려는 진천희에게 그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 보게. 비록 본 왕이 꾀병을 부리기는 했으나 합당한 이유가 존재하니까.”
“…….”
“들어 보겠나?”
진천희가 걸음을 멈춘다.
“엄청 귀찮은 일일 것 같군요.”
“허허허, 본 왕에게 그따위로 말하는 건 주치의밖에 없지. 이리 앉아 보게나.”
마지못해 그의 인도에 따라 착석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자 동창들이 먹을 것을 산처럼 쌓아 주기 시작했다.
황실의 호사스러운 다과들이 자태를 뽐냈다. 특히나 흔한 간식들 사이로 감자튀김의 자태가 웅장하다.
그때 레시피를 알려준 이후로 계속 먹고 있는 건가.
‘아주 그냥 미식 기행을 하시는군.’
하긴 진맥을 하니, 건체도 이런 건체가 없는데 무슨 상관일까.
바삭-
감자튀김의 겉이 바삭하게 입 안에서 부서지더니 포슬포슬한 속살이 혀 위로 와르르 쏟아진다.
“북해빙궁이 자리한 동토에는 사실 아이샤 왕국이란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네. 지도로는 알고 있습니다.”
“의뭉 떨기는. 거기에서 온돌을 엄청 수입해가고 있지 않나?”
“뭐…….”
맞는 말이긴 했다. 아이샤 왕국 역시 온돌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수입해 가고 있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인 걸까.
어마어마한 기세로 온돌이 퍼지고 있다고 듣긴 했다.
“가는 김에 아이샤 왕국과 우호조약을 맺고 오게나.”
“저는 사신이 아닙니다만.”
“그곳 왕자가 절맥을 앓고 있다 들었네. 그것을 치료하면 우호근린의 동맹이 될 테니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네.”
“……아니, 절맥이 이렇게 흔한 겁니까?”
그 말에 은왕야는 태연하게 답했다.
“다른 병이었으면 다른 의원을 보냈겠지. 하지만 절맥 관련해서는 백린의각의 의술을 이길 수가 없으니 말일세. 그렇다고 백린의선이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지 않나. 곧바로 아파서 못 간다고 답변이나 던지고 잠적하겠지.”
문득 개띠꺼운 얼굴로 가운뎃손가락을 쳐든 스승님이 상상되는군.
“뭐… 스승님이 호락호락한 분은 아니시죠.”
“그러니 덜 호락호락한 제자를 이용해 먹는 거 아닌가.”
‘아, 이 인간이 진짜! 왕야면 다냐!’
이대로 저 밉살맞은 볼따구를 당겨서 반정의 쿠데타를 일으켜 볼까 3초간 고민됐다.
황제 볼따구는 다른 볼따구보다 뭐 더 튼튼한가 보지?
“하하하, 공짜로 부려 먹을 생각은 물론 없네. 그리고…… 잊지 말게나. 나는 자네를 정식으로 황궁 어의로 채용하고 싶어 죽겠지만. 누이께서 막아서 채용을 못 하고 있는 것을.”
그랬다.
골드&실버 왕야의 망태기가 닫혀 있는 것은 주왕께서 구명지은의 은혜를 갚기 위해 네놈 벼슬길은 막아 주겠다며 드러누웠기 때문.
무슨 놈의 구명지은의 은혜가 벼슬길 막기로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괜찮은 상을 주겠네.”
“뭘 주실 겁니까?”
툴툴대는 진천희에게 은왕야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사람 궁금하게시리 캐물을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백린현 경영이 제법이더군. 현황은 익히 들었네.”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는 솜씨가 프로다. 역시 황제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건가?
“특히 신생아 사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30분의 1로 떨어졌다고 하더군. 그뿐 아니라 백린현이 되고 나서 걷히는 세금이 3할 증가되었으며, 치안도 크게 좋아지고,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농민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하던데.”
그는 생각에 잠기다가 물었다.
“어떻게 그런 묘기를 한 거지?”
“서류적인 건 이미 받아 보셨을 거 아닙니까.”
“그치, 자네가 깔끔하게 정리해서 위로 올렸더군.”
“그냥 토목을 통해 치수를 정비하고, 서류직 할 애들 현장직 좀 시켜 보고, 강제로 비누 쓰게 하고, 강제로 두창 예방접종 시행하고.”
하, 다시 생각해도 짜릿하다.
이게 권력이야.
모두를 손 씻게 할 수 있어.
진천희는 절로 행복해졌다.
“도량형(度量衡)도 통일했고 말이지.”
“그거야 세금의 기본이니까 말이죠.”
관리 다리 길이로 세금이 정해지는 게 말이 되나.
거기다 이런 치수용 토목은 정밀성이 요구되니까 반드시 도량형을 맞춰야 한다.
그렇게 백린현에 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고. 은왕야는 턱을 괴고 진지하게 들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건 백린현이 그나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라 되는 겁니다. 더 커지면 여기서 행정의 공백이 또 생기겠죠.”
“그렇겠지.”
“그냥 하는 데까지 하는 겁니다. 딱 손에 닿는 것까지만.”
그 말에 은왕야는 작게 웃더니 진천희를 한참 바라본다.
“그대는 늘 같은 소리를 하는군.”
진천희는 뺨을 긁적였다.
은왕야는 대하기 불편하다.
출생의 비밀도 있기 때문이겠지만, 묘하게 의뭉스러운 그 태도가 더욱 사람을 조바심 나게 하니까.
‘후우, 그렇다고 출생의 비밀을 물을 수도 없고.’
만약 인생 한 번만 살아본 진천희라면 이 판도라의 상자를 깠을 거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고양이도 궁금하니 죽을 각오로 열어 봤을 게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일상이 너무 소중해졌지.’
설령 모르는 게 좀 생기고, 어쩌면 거짓이나 가식으로 덮여 있는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어른은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쥐고 있는 것을 놓을 생각이 없다.
“벌모세수나 해 드리겠습니다.”
“와, 끝까지 안 물어보는군. 독하다. 독해.”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지만 온 김에 해 드리죠!”
“진짜 안 물어보나? 보통 궁금해 죽으려고 하지 않나? 생모는 누구인지 뭐 그런 거.”
아악, 안 들린다. 안 들려!
너랑 나랑 피가 이어져 있든, 말든. 내 알 게 뭐냐!
진천희가 대놓고 거부하는 티를 내자 은왕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요놈 보게.’
분명 궁금해 미칠 텐데도 끝까지 안 물어보고 버티는 꼴을 보니 심술이 난다.
난세의 황족이라면 모를까. 평화 시의 황족 아닌가.
신분 상승의 기회. 괜히 저잣거리 사소설에서 주구장창 우려내는 게 아니다.
그런 출생의 비밀이 눈앞에 있는데 이 의원 놈은 입 꾹 닫고 도리도리 잼잼 중이다.
“조카님? 아우님? 어느 쪽일 것 같나.”
“아악, 엄청난 말씀을 하시는군요. 왕야아아아!”
푹!
“끄아아악! 이마, 이마가!”
“다시 말하겠습니다. 온 김에 벌. 모. 세. 수나 하고 가지요.”
진천희는 벌게진 얼굴로 씩씩대며 손가락 사이로 암기마냥 침을 하나씩 꽂아 들었다.
* * *
아니, 왜 자꾸 게이트를 열려고 해?
‘나는 정리 끝났다고. 남남 하자고!’
진천희는 벌모세수를 시키며 생각했다.
‘풍천희 할 바에는 스승님께 애걸해서라도 그냥 제갈천희 하고 말지!’
훗날 스승님께서 혼례를 올리시고 후사까지 보신다고 하면 그때는 도로 진천희가 되겠다고, 걱정하지 마시고 호적에서 파셔도 된다고 어떻게든 부탁할 생각이다.
‘제갈세가의 은원 때문에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쩌지?’
으, 제갈세가의 비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집작하기는 어렵다. 깊고 어둡다는 것만 알고 있고.
스승님께서 세가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 평범하진 않다는 것만 알 뿐.
다른 세가들은 제삿날이 되면 그리도 으리으리하게 꾸미는데 그냥 스승님께서는 기일에 향 하나 꽂고 마시니까.
특히 선대 가주님의 위패는 본인이 닦지도 않으시고 유호를 시키신다.
완전히 잊는 것도 아니나,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는 무언가.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하나뿐인 제자.
황궁 끌려가게 놔두지는 않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