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59
제 558화
‘죽겠군, 이거.’
풍하은을 상대하기 왜 이리 버거워지는지 또한 머리로는 알고 있다. 왜 이렇게 동요를 하는지.
‘혈육이란 게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전생도 현생도 그러지 않았나.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너는 세상에 혼자가 아니고 풍씨라고.
네 과거를 좀 알고 있고.
동족상잔의 콩가루 집안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평화로우니까 들어와라?
형인지, 삼촌인지 맞춰 보세요?
‘이런 건 지켜보는 사람만 재미있지.’
드라마나 소설에서 나올 때야 뭐, 그런갑다 하지만 본인 일이 되니 돌아 버리겠다.
이놈들 때문에 혼삿길도 반쯤 포기했다. 물론 사마현이 조져 버린 것도 크지만 자신도 이런 갑작스러운 출생의 비밀은 사양이다.
‘천희, 풍 머시기 아들이에요? 아이고. 부질없다.’
머릿속은 정신이 없는 동안 손은 착실하게 벌모세수 중이다.
‘확실히 전보다 탁기는 줄어들었네.’
은왕야께서 아주 웰빙한 삶을 사시는 모양이야.
스트레스도 적게 받고.
숙신족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하시겠나.
그렇게 통한의 벌모세수를 끝내고 나니 풍하은 왕야께서는 아주 반들반들하고 보송보송해진 피부로 넉살을 부린다.
“오늘 벌모세수는 각별히 아프군. 그게 그렇게 싫었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왕야. 어찌 되었건 탁기도 적게 나오시는 것을 봐서는 그동안 몸 관리는 칼처럼 하신 것 같군요.”
“내 무공에 더욱 정진했지. 참, 그런 의미에서 내 형제도 좀 봐 주게나.”
“풍하금… 폐하 말씀이십니까?”
“그놈도 대충 왕야라고 부르게.”
“알겠습니다. 심각하게 아픈 부위라도 있으십니까?”
“음… 별거라면 별거긴 한데.”
풍하은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진중히 말했다.
“이 이야기는 비밀이네.”
꿀꺽.
진천희는 목울대로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무슨 황실 톱 시크릿이 튀어나오려고…….’
* * *
“충치입니다.”
“뭣이라?”
풍하금을 진찰하고, 입을 벌리게 하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침 비슷한 것으로 꾹꾹 쑤시기를 반복한 진천희는 결론을 내렸다.
“많이 썩었네요. 어금니 안쪽 두 곳입니다. 위치는 여기군요.”
그러더니 사마현표 은혈당 손거울을 꺼내 입안을 보여 주었다.
“보이시죠? 이 까만 게 충치입니다.”
충치.
이 세계에서, (현대도 그렇지만) 충치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질병 중 하나다.
사실 현대에서도 치료 방법이라고 해 봐야 이빨을 때운다, 뽑는다, 크라운을 씌운다, 신경치료를 한다 정도이지 치아를 재생한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나 이 세계에서는 기본이 발치다.
버텨 보다가 못 버틸 것 같으면 그냥 뽑는다.
중세 이발사들이 이빨도 뽑아 줬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도 다를 건 없지.
금으로 치아 구멍을 메울 생각을 한 건 15세기 후반부터.
이른바 ‘이빨 때운다’고 하는 치아 보철 주조법이 발달해 제대로 써먹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반부터.
하지만 마취 기술이 부족했고 지금과 같은 매끈한 전동 치과 드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야말로 고통의 상징이었단다.
발치하다가 죽은 환자도 종종 나왔고.
지금의 현대 치의학이 탄생했다 싶은 시기가 18세기부터이니 말 다 했지.
피에르 포샤르의 라는 저서가 그 시작.
물론 삐리한 이론도 들고 와서 쓰긴 했는데(치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오줌을 물고 있어야 한다거나) 당시 기준으로 이 정도면 양호하다.
그래도 보철이나 발치에 필요한 다섯 가지 기구.
무자격자가 치과 시술하는 것을 엄히 금해야 하는 이유.
환자를 눕혀서 치료하는 게 아니라 안락의자 같은 곳에 앉혀서 치료하는 것을 제안한다거나 치아 교정에 대한 기초 개념 등.
치의학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설탕이 없어도 충치는 생기니까.’
꿀, 과일이나 엿으로도 인간은 당을 섭취할 수 있다.
이집트 때도 충치는 있었지 않나.
당장 지구 조선왕조실록에도 성종께서 치통으로 20대부터 고생을 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랬다.
진천희도 이 세계에 와서 팔자에도 없는 충치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
썩은 부위를 긁어내고 금으로 씌우는 걸 기본으로, 이 시대 금속 주조 기술의 부족함은 검기로 대응하고 있다.
뽑아야 한다면 뽑겠지만 그때는 침술을 이용해 마취를 한다.
현대의 발달한 치위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 어디 객잔에서 야매로 뽑는 것보단 낫다.
이의 썩은 걸 긁어내기 위해서 초절정 고수급의 능력이 필요하니까.
전동 드릴이 없으니 초미세 검기로 조금씩 절삭하고 있다.
이게 피부 박피 때와는 다르나, 조금이라도 치아 부분을 보전하기 위해 무림인의 초감각을 이용해 깎아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절정의 경지로 남의 이빨을 쑤시고 있냐는 표정으로 여럿 쳐다보긴 했는데.
‘알 바 아님. ㅇㅇ’
치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진정한 활인(活人)이 여기서 나오는 법!
무공 익혀서 사람 강냉이를 터는 것과 사람 강냉이를 치료하는 것.
어느 쪽이 활인이냐 한다면 단연코 후자니까.
“크헤헤헤헤!”
경박한 웃음소리가 터진다. 옆을 슬쩍 보니, 은왕야가 배꼽 잡고 경박 오브 경박으로 굴러다니며 웃고 있다.
‘와… 이거.’
그동안은 농을 칠 때도 엄격, 근엄, 진지한 은왕야였다.
언제나 기품이 좔좔 흘러나오는 사내였고, 묘하게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은 위압감마저 늘 풍겨 왔던 자.
그러나 지금은 형제의 불행이 진심으로 기쁜 찐형제다.
‘가끔 주왕야 앞에서도 이런 모습이 튀어나올 때가 있긴 하지.’
풍주하, 풍하금, 풍하은.
그나마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있을 때는 위엄을 유지하지만.
없을 때는 이쪽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형제지간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이 정도면 뽑지는 않아도 되겠네요. 금만 씌우면 됩니다. 제가 검사지경이라 얼마나 다행입니까.”
“……검사지경의 고수만이 이게 되는가 보군.”
“크하하하핫!”
금왕야가 은왕야를 서늘하게 노려보았다.
아, 적응 안 된다.
똑같은 얼굴의 사내 둘이서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있으니 돌겠군.
‘심지어 둘 다 황제야. 아이고, 의원 등 터지네.’
그래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한입에 꿀꺽 잡혀 가는 수가 있으니 진천희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중한 입 속인데 검사지경인 쪽이 낫죠.”
“호오, 그렇군. 짐이 금니를 씌우면 똑같은 모양으로 저놈 어금니도 도려낼 수 있는가?”
“……?!”
그 순간 진천희와 은왕야는 순간 사고가 멈췄다.
금왕야가 차분히 말했다.
“잘 들어라. 우리는 둘이자 하나이지. 그러니 짐의 어금니를 도려내 금을 씌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필히 다른 하나도 똑같이 금니를 해야 한다.”
생니를 도려내라는 말에 은왕야가 말했다.
“돌았군. 내가 부술 받을 때 똑같이 배도 쑤시지 그랬나?”
“그것은 옷으로 가려지지 않나. 그리고 주안법을 적용해 흉터도 거의 가려졌고. 하지만 어금니는 다르지. 말할 때마다 금니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면 조정 신료들이 어찌 생각하겠나.”
“어차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눈 가리고 아웅 아닌가?”
그랬다.
쌍둥이의 생니를 갈아 버리겠다는 금왕야와 내 치아에 칼끝 하나 대지 말라는 은왕야.
진천희는 소름이 돋았다.
‘그렇구나. 황궁에서 살아남으려면 보통 성깔로는 힘들군. 이렇게 초고속으로 돌아가는 두뇌와 필사의 각오로 엿을 먹이겠다는 오기가 있어야 하는 건가.’
형제란 원래부터 한 배에서 태어난 이상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의 라이벌이자 경쟁자인 법.
그건 인류에게 입력된 프로그램 같은 것이었다.
공손현과 공손영이 서로에게 애틋할 수 있던 것도 둘이 친자매가 아니라 사촌지간이라 가능한 게 아닌가 싶을 지경.
대다수는 과거 황보 남매처럼 서로를 향한 주먹질이 우선이다.
풍하은, 풍하금 두 사람은 특히나 한 뱃속에서 서로를 향해 발길질을 했고, 태어난 지금도 운명 공동체로서 화 제국을 이끌고 있지만 때가 되면 가끔씩 엿을 먹이고 있다.
나이 차 있는 누이인 풍주하에게 잘못 엿을 먹였다가는 주먹으로 갚아 주는 수가 있으니 자제해야 할 거고.
‘조금… 부럽네.’
이 와중에 혈육끼리의 싸움을 보며 이런 감정이라니.
묘하게 진 기분이 든다.
그래도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내색했다가는 ‘역시 친혈육이 최고 아닙니까요!’ 이러면서 어디선가 제독태감 선생이 나타나 용 문양이 새겨진 금줄로 포박하며, 여기저기다가 이렇게 외칠 것이다.
새롭게 왕야가 되신 풍천희 왕야 납신다~ 길을 비켜라~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하군.
둘은 같이 금니를 하네 마네 옥신각신했고.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금을 대체할 거라면 강화 레진이나 지르코니아 정도가 좋은데… 없지.’
아, 하나 있다.
그 순간 섬광같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엄청나게 비쌉니다…….”
“흠?”
“그……. 영단을 씌우면 됩니다.”
과거 스승님의 구음절맥을 치료하기 위해 했던 방식 중의 하나다.
“영단의 종류에 따라 가공하면 치아 색과 비슷해지면서 금에 필적하는 강도를 갖는 게 있거든요. 그걸 씌우면 외관상 변화는 그리 없을 겁니다. 단, 그에 맞는 영단을 찾는 게 우선인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차라리 금을 쓰고 말지, 어느 미친놈이 치아 색 맞추겠다고 영단을 쓰겠나.
그 말에 은왕야가 곧바로 답했다.
“짐승계 영단인가, 곤충계 영단인가? 아니면 어류인가?”
“네?”
“당장 고하거라.”
“많이 비싼 데다 돈이 있어도 시기가 맞지 않으면 못 구할 수도 있습니다.”
“영단은 충분히 있다. 몇 개나 필요하지?”
아, 역시 황궁인가.
* * *
검사지경을 이용해 썩은 부위를 삭제했다.
중요한 것은 치아를 갈 때 최대한 부드럽게 갈아 주는 것.
그렇게 갈고 나니 상한 부분이 보였고, 여기서부터는 검사지경을 이용해 미세하게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치과에서 늘 하는 말을 한다.
“비록 점혈을 했다고 해도 신경이랑 가까워서 좀 시릴 수 있습니다. 아프면 손 드세요. 금왕야.”
폐하라고 불리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은왕야랑 똑같이 대하고 있다.
“아아으다(알았도다).”
“만약 진맥했던 것보다 깊이 썩은 거면 뽑아야 해요.”
“애도 호거라(쟤도 뽑거라).”
그리 말하며 독기 가득한 눈으로 은왕야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은왕야가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 통증이 있을 정도는 아니잖나.”
은왕야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어……. 네. 일단은 뽑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네요.”
완전히 다 긁어낸 후, 접착제를 넣고. 그리고 UV 광선으로 굳히는 대신 오행신공으로 접착제를 굳히고.
치아 신경의 자극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니까 기저제(base)를 넣는다.
물론 현대처럼 다양하게 여러 기저제를 만들지는 못하고.
지금 연구동에서 제작한 건 조개껍질에서 성분을 추출, 재가공해서 치과용 시멘트로 사용하는 수준이다.
여기서 물의 농도와 분말에 따라 기저제가 되고, 접착제가 되는 거지.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
‘이번에는 영단이 남아돌아서, 영단을 갈아 만들었지.’
천 년을 살았다는 천년대합의 영단을 갈아서 만들었다.
이게 무슨 사치인가 싶지만, 황상 아니신가.
기저제를 집어넣어 치수를 보호하고.
그리고 다시 접착하고.
검사지경으로 또 다듬고.
치과용 시멘트를 준비하고.
이 치과용 시멘트도 기저제와 똑같이 천년대합의 영단이시다. 점성이 좀 다를 뿐이지.
‘와……. 호화롭다. 호화로워.’
딱 봐도 섭취만 해도 내공을 어마무시하게 올려줄 것 같은 전설의 영단을 충치 때우는 데 쓰고 있다니.
무림인&현대인은 죽창이 그리웠다.
“이 다음에는 본을 뜰 겁니다. 왕야.”
본뜨는 건 고무나무 수액으로 만들었다.
남만에서나 자라는 놈이 왜인지 황실 뒤뜰에 울창하게 크고 있더라.
물론 거기서 추출한 건 아니고 백린의각에서 공수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