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6
제 56화
스승님이 말했다.
“진맥을 해 볼 수 있겠니?”
진천희는 이를 악물었다.
눈치를 보니 스승님 역시 절단을 해야 한다는 쪽인 모양이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자신의 제자의 의견이 어떤지 확인해 보는 것뿐.
진천희는 오행신공을 사용하여 내부를 살폈다.
순수한 물의 내력이 환자의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진천희의 눈꺼풀이 천천히 떠졌다.
“다리를 보존할 수 있어요.”
“뭐, 뭣이!?”
화주의각원들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윽고 포권을 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왕야, 공을 세우려는 백린의각의 사특한 꼬임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유호가 말했다.
“지금 사특하다 하셨습니까?”
“절단해야 살 수 있는 환자를 절단하지 않고도 살릴 수 있다 말하는 것이 어찌 사특하지 않단 말입니까!”
주왕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진천희에게 물었다.
“정말 다리를 살릴 수 있겠느냐?”
진천희가 말했다.
“스승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실 거예요. 백린의각의 의술로 살릴 수 있어요. 확답까지는 드릴 수는 없지만요.”
진맥을 해 보니 환자의 상태는 개방성 골절 3형, 오염된 창상, 거기다 근육까지 크게 손상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골편이 심하게 어긋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딱 하나, 불행 중 다행으로 동맥은 큰 손상 없이 깨끗한 편이었다. 하지만 위험한 수술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부마는 극심한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할 텐데도 여전히 버텨 내고 있었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정신력이었다.
“거 보십시오! 확실치 않다 하잖습니까! 제자를 이용해 흉계를 꾸미는 것입니다.”
‘흉계는 무슨 놈의 흉계!’
그때 제갈린이 진천희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진천희를 부드럽게 내려다보았다.
‘내게 맡기렴. 희야.’
그의 행동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제갈린이 말했다.
“천하의 주왕야를 두고 흉계를 부릴 수 있는 간 큰 의각은 없을 것입니다. 왕야께서 결정하시면 될 일입니다. 절단을 하면 확실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평생 다리를 쓸 수 없겠죠. 살린다면 모험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
“그러나 성공한다면 예전만큼은 힘들다 하여도 다시 춤을 추실 수는 있을 겁니다.”
부마가 말했다.
“왕야… 제발… 제발 간청 드리옵니다. 제 다리를 자르시면 아니 되옵니다.”
“랑랑…….”
“다리를 자를 바에는 제 목을 잘라 주시옵소서.”
“랑랑…… 어찌 그런 말을 내게 하느냐. 매정한 것 같으니라고. 어찌 나를 두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
“…….”
부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장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독한 것. 나쁜 것. 내 심장을 이리 찢어 놓고…….”
“왕야…….”
“일생 동안 그대는 내게 뭐 하나 부탁하는 일이 없었지. 수많은 금은보화를 쥐여 주려 했건만 그대는 그냥 받는 법이 없었어.”
“제 유일한 청입니다…….”
“그게 랑랑이 내게 처음으로 한 유일한 청이구나.”
그녀는 부마의 머리를 쓸었다.
이윽고 결심했는지 말했다.
“자르거라.”
“왕야! 왕야! 차라리 죽여 주시옵소서! 왕야! 크윽!”
그 순간, 부마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격심한 고통에 신음을 내뱉다 침대 밖으로 떨어지려 했다.
주왕은 놀라 달려가 그의 몸을 붙잡아 안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유리구슬을 껴안는 듯, 그녀의 손길이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랑랑! 나는 그대를 버릴 수 없는데. 아무리 그대의 유일한 청이라고 해도 그건 들어 줄 수가 없는데!”
주왕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의각을 내리눌렀다. 누구도 한 마디도 입을 떼지 못할 만큼 강력한 압박감이 공기를 채운다.
이윽고 주왕은 결심했는지 입을 열었다.
“어쩔 수가 없구나. 죽어도 괜찮다 저리 청을 하니 내 어찌 마다하겠느냐. 자르지 말거라.”
부마는 주왕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주왕은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랑랑, 그대는 너무나도 나쁜 부마요.”
그녀의 목소리는 깊게 젖어 있었다.
주왕은 그의 부름에 돌아보는 법 없이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주왕이 나가자 공기가 한결 나아졌다.
진천희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보호자의 선택이 끝났다. 그리고 환자도 강력하게 원하고 있어. 반드시 그의 다리를 살려야 한다.’
잘라도 죽고, 자르지 않는다 해도 죽는다면 답은 하나다.
소설 밖의 방법으로 살리는 수밖에.
그때 가장 나이가 많은 화주의각원이 말했다.
“나는 용서할 수가 없소. 백린의각…… 공을 세우기 위해 확실히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다니. 진천희라고 그랬나.”
진천희가 화주의각원을 바라보았다.
“네, 그렇습니다.”
“내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약선께도 고할 것이다. 네 세 치 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말할 것이다!”
주왕이 나갔다 하더라도 부마의 면전이었기에 더 심한 말까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독기만큼은 선명해서,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을 진천희는 담담히 들이켰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스승님의 옷자락을 쥐었다. 나서지 말라는 신호였다.
‘미래를 안다 말해 봐야 미친 사람 취급 받겠지.’
그것만큼은 결코 꺼낼 수 없는 비밀이었다.
‘사람 하나를 살리기가 이리도 힘들구나.’
궁귀의 딸, 왕각연을 치료할 때 느꼈던 감각이 밀려왔다.
사실 그랬다. 사람을 수술한다는 건 언제나 두려운 행위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을 진천희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안 돼. 환자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그는 진천희의 환자였다. 진천희는 환자의 얼굴을 보았다.
부마는 침통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죽음을 각오한 얼굴이다.
여기서 죽는다면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싫어하는 표정을 하고 계시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생에 대한 집착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 좋았다.
그런 환자가 잘 견디고, 잘 낫는다.
-웃어. 얄미울 정도가 딱 좋아.
젊을 적 선배의 목소리가 진천희의 달팽이관보다 깊은 곳을 울린다.
이제는 없는 사람의 조언이다.
하지만 진천희는 힘껏 안면 근육을 당겨 뻔뻔하게 미소를 지었다.
선배 말대로 딱 얄미울 정도로 당기는 게 중요했다.
“화주의각은 살릴 수 있어요?”
“뭣이?”
“다리를 살리고, 환자의 목숨도 살릴 수 있는 방도가 있기는 하냐고 물었어요.”
“그냥 다리를 자르면 될 것 아니냐!”
“……없다는 거군요.”
진천희의 말이 칼날이 되어 화주의각원의 턱 끝을 겨누었다.
화주의각원들 모두가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자 백린의각의 모두가 그것 보라는 듯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승부는 끝났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진천희의 승리였다.
제갈린이 말했다.
“외인들은 나가 주십시오. 지금부터 처치를 준비해야 합니다.”
축객령이었다.
으드득-
화주의각원들은 어금니를 격하게 씹으며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진천희는 환자의 표정을 보았다.
불안감에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희망을 보았기에 불안해질 수도 있는 거지.’
아까보다는 나은 얼굴이었다.
진천희는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사람을 살리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전염시키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응급처치부터 후딱 해 버리죠. 하하하.”
부마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행히 급히 혈을 짚어 놓았기 때문에 통증이 조금은 반감된 모양이다.
“신의의 제자분이시라고는 들었는데 이런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우, 아직 말할 정신도 있으셔?’
좋은 신호다.
“어떤데요?”
“사람 참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요. 좀 얄밉네요.”
그렇게 말하더니 일그러진 표정이 조금은 펴진다.
망막 위로 차가운 불꽃이 번진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환자는 스스로를 놓지 않고 견뎌 내고 있었다.
앞으로 있을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서.
‘음, 좋은 얼굴이야.’
진천희는 생각했다.
* * *
긴급 수술 준비에 들어가기 위해 스승님은 진법을 준비시켰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던데 소독에 관련해서는 현대 의학보다 확실했다.
오행진법 화기가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정화시켜 주니까.
진천희는 침 끝에 내력을 넣어 환자의 기문(萁門), 혈해(血海), 양구(梁丘) 혈을 순서대로 점혈했다.
어찌 보면 마취라고도 할 수 있으니 이것 역시 현대보다 낫다.
현대에도 침술로 부위를 마취하는 경우가 있기야 하지만 골절, 그것도 개방성 골절 환자의 다리를 이렇게 마취하지는 못하니까.
‘그래도 본격적으로 수술에 들어가면 재워야겠지.’
수술을 하게 되면 몸이 움직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혈도 함께 흔들린다.
그렇기에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탕약을 먹이고, 다리가 아닌 목 뒤의 혈도를 점혈하여 마취시킨다.
진천희는 환자의 상태를 심도 깊게 검사했다.
‘자세히 뜯어 보니 확실해. 혈관은 크게 손상되지 않았어. 이 정도면 신경도 괜찮고.’
뼈의 회복 속도는 혈관의 손상 정도에 달렸다.
단단한 뼈가 대체 왜 혈관과 관계가 있을까 싶겠지만 사실 뼈를 회복시키는 게 바로 혈관이다.
스키장에서 다리가 부러진 상황을 상상해 보자.
우선 부러진 부분이 퉁퉁 붓는다.
피가 모여들어 염증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부종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염증기다.
퉁퉁 부은 염증이 서서히 가라앉고 나면 섬유모세포(fibroblast)가 새 기질을 형성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부러진 곳에 연성가골(Soft Callus)이 생긴다.
연성가골은 쉽게 말해 부드러운 가골 조직이다. 이 상태에서 점점 더 단단해진다.
그게 바로 경성가골(Hard Callus).
그러나 아직은 어디까지나 가짜 뼈. 그래서 가골(假骨)이다.
아직은 제대로 된 뼈라고 할 수 없다.
여기까지가 복원기.
부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순 골절이라면 여기까지가 약 4주 정도.
이후 재형성기(remodeling phase)를 거치는데 이때 과하게 형성된 가골을 흡수하고, 골수강이 재생된다.
제대로 된 뼈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혈관이 다쳐 버리면 뼈의 재생도 자연히 느려진다.
이 환자의 경우 다행히도 비골동맥(Peroneal artery)이 살아 있었다.
그래도 천운이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이 귀한 영단을 끊임없이 먹이시는군요.”
개방성 골절은 항생제로 시작해서 항생제로 끝난다.
특히나 합병증으로 들어오는 골수염이 난치성이기 때문에 원래라면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항생제를 투여해야 했다.
밖에서 옥신각신하느라고 이제야 항생제를 정맥 투여하는 중이다.
예전에 유호를 갈궈서 만든 링거는 이제 의각에서 최고의 핫템으로 꼽히는 중이었다.
그걸로 페니실린을 정맥 투여 중이었는데, 기를 이용해 배양해서 그런지 환자의 체력 보존에도 도움이 되는 영약인 상태였다.
거기다가 주왕부의 무인들의 뛰어난 경공술 덕에 환자는 흔들리지도, 다친 후 시간이 그리 소요되지도 않았다.
거기에 진천희의 적절한 초기 대처까지 있었다.
덕분에 긴급 수술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