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64
제 563화
진천희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 것보다 마을이나 도시는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봐 주실래요? 마을 이름도요.”
지도를 꺼내서 공손영에게 건네주었다.
공손영은 지도를 받아 양치기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전부 이해하지는 못해도 현원전단신공으로 계속해서 대화와 문맥을 기억해 나갔다.
그리고 공손영에게 배웠던 단어들을 떠올리며 조합해 본다.
“마을은 여기서 하루 정도 말을 달려야 한대. 그리고 마을 이름은 하바롭스크? 하바로프스크? 하파로프스키? 발음 정말 어렵네.”
“대충 하바롭스크라고 하죠.”
“뭐. 그러자. 어차피 우리는 타국 사람이니까. 상인들 말은 듣기 편했는데 여기는 사투리가 섞여 있어서 어렵네.”
공손영은 툴툴거리며 품에서 육포 봉지를 꺼내 던졌다.
양치기는 그걸 받아 들었다.
공손영은 그렇게 한 마디 더 건네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뭐라고 하신 거예요?”
“친절히 가르쳐 줘서 고맙다고 한 거야. 먹을 건 어디를 가든 귀하니 준 거고.”
“오…! 표사 같은 느낌이 나요.”
그 말에 공손영이 피식 웃었다.
“표사가 아니야. 표두야. 표행 자체는 나한테 낯선 일이 아니니까.”
그리 말하며 공손영은 말을 몰았다.
“자, 그러면 하바롭스크로 가자고. 꼬맹이.”
그러고는 자신 있게 앞장섰다.
* * *
하바롭스크에 도착.
돌로 만들어진 성벽이 보였다.
사람들의 복식은 14세기의 유럽식에 화 제국식, 그리고 숙신족 같은 유목 민족들의 복식이 섞여 있었다.
한마디로 따뜻하게만 입으면 장땡이란 뜻이다.
백발, 은발, 금발에 눈 색도 검은색부터 푸른색까지 다양했다.
여기라면 스승님도 그리 눈에 띄지 않겠구나. 진천희는 생각했다.
공손영이 수문장에게 무언가 말을 하자, 위병들이 생각보다 쉽게 통과시켜 주었다.
들어가면서 그녀가 말했다.
“다들 황구를 부러워하네.”
“신기한 게 아니고 부러워해요?”
“이쪽 동네가 개가 전부 크잖아? 황구만 한 개들도 있긴 한 모양이야.”
“영물이려나. 아니면 영물도 아닌데 그만큼 큰 거려나요. 신기하네.”
그 말에 황구는 즐겁다는 듯 왕왕거렸다.
“여기 하바롭스크는 나도 몇 번 와 본 곳이더라고. 중원에서 부르는 말이 달라서 헷갈렸네. 낯익은 풍경이 보이니까 그제야 알겠더라.”
“중원에서는 뭐라고 부르는데요?”
“하녹시.”
“앞 글자만 비슷하고 전혀 다른 말이잖아요?”
“원래 그래.”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말머리를 자연스레 돌렸다.
“화 제국인이 운영하는 객잔이 하나 있거든. 거기로 가자.”
다행이다.
야영을 오랫동안 해서인지 객잔 밥이 먹고 싶었다.
객잔에 가니 역시나 화 제국과 유럽풍과 유목민이 섞인 제멋대로 석조 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자마자 수증기가 확 밀려오면서 온갖 음식 냄새가 밀려왔다.
술 냄새도 대단했는데 아이샤 왕국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독주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규모도 제법 커서 술 마시고 식사하는 공간이 대략 40평은 될 법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계산대와 여관 주인.
풍채 좋은 산적 두목 같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쪽을 보고 중원어로 말했다.
“어서 오쇼. 뭐야? 공손세가의 꼬맹이잖아?”
앞에 있는 공손영을 알아본 모양이다.
“석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또 호구 잡히러 왔어? 네 언니도 참 징하다. 나 같았으면 손모가지를 잘랐을걸.”
“하…. 전 사업하기 싫습니다. 이게 다 언니가 시켜서…… 아니 뭐 됐고, 이번에는 다른 용무로 왔습니다.”
“뒤에 있는 절세미인 때문이겠지?”
과연 여관 경영하는 사람답게 눈치가 빠르다.
진천희는 피풍의 털모자를 내리며 눈을 털었다.
“누나, 여기 제법 따뜻하네요?”
“눈치챘나? 허허허허. 온돌이 깔려 있기 때문이지. 마을에서 내가 가장 먼저 온돌을 깔았거든?”
“네에?”
“백린의각의 소각주가 만들었다지? 벽안광의라는 별호를 가진. 과연 미친놈이야. 괜히 광(狂) 자가 별호에 들어간 게 아니라니까.”
“하하하하하!”
공손영은 배를 잡고 웃었다.
“아저씨. 요즘은 그 벽안광의가 천하일광이라고 불려요.”
“거기까지 갔어? 그래. 그럴 것 같았다.”
“크핫! 하하하하!”
공손영이 계속 웃고 있자 석중호는 한쪽 눈썹을 까닥였다.
“이 녀석 왜 이래?”
“어…….”
진천희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을 망설이자 공손영이 말했다.
“얘가 천하일광입니다. 백린의각 소각주.”
“뭣이?!”
놀라서 공손영과 진천희를 바라본다. 그리고 진천희와 함께 들어온 게 소가 아니라 거대한 개, 그리고 거대한 새라는 것도 깨닫는다.
“어, 어, 어? 어이고. 죄송합니다. 소각주님……. 제 입이 방정입니다.”
과연 엄청난 커브력이다.
방금 태도는 간데없이 곧바로 공손해진다.
그걸 보며 공손영은 뭐가 그리 웃긴지 또 웃어댔다. 진천희는 차분히 수습했다.
“괜찮습니다. 말 편히 해 주세요. 여기 공손영 소저와 누나, 동생 하는 사이기도 하고…….”
“……그럴까?”
세 번 거절하지도 않고 바로 받는 건가?
그런데 옆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샤 왕국의 발음이지만 ‘벽안광의’라고 하는 것 같았다.
“벽안광의?”
“벽안광의!”
수많은 사람들이 흥분해서 서로 빠르게 대화한다.
“어……. 왜 저러죠?”
진천희 말에 답할 틈도 없이 다른 이들이 벌떡 일어나 두툼한 술잔을 내밀었다.
“벽안광의! Спасибо!”
“Спасибо…….”
겨우 알아들은 단어.
석중호가 말을 이었다.
“고맙다는 말일세. 사실, 온돌은 이 지역에서 구원자 취급을 받고 있거든.”
“어. 그래요?”
“그렇다네. 가장 먼저 도입한 건 이 몸이지만, 그걸 보고 다들 따라 했지.”
많은 이들이 진천희에게 다가와 술을 건네기 시작했다.
뒷말은 알 수 없으나 앞말은 확실히 고맙다, 혹은 벽안광의라는 단어였다.
석 아저씨가 천하일광이라고 고쳐 주자, 다시 ‘천하일광!’, ‘천하일광!’이라고 외쳤다.
‘내 별호가 이렇게 멀리까지 퍼졌을 줄은……?!’
황금빛 술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큰하게 취해서 술을 권하고 반가움을 표한다.
극진한 환대 속에서.
결국 진천희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나도!”
사람들이 함께 온 공손영에게도 술을 건넨다.
두 사람은 그렇게 첫날부터 얼큰하게 취해 버렸다.
* * *
객잔 주인은 이 동네를 보여 주겠다며 진천희를 여기저기로 끌고 갔다.
“이 동네는 이제는 온돌 없이는 못 살지. 온돌 덕에 매년 동상으로 사지를 잘라내는 사람들이 줄고 있으니까 말이야. 특히 노인들이 아침에 확 돌아가시는 일이 줄었어.”
지구에서도 러시아에 온돌 패널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었다.
물론 온돌 패널은 우리나라에서만 만드는 게 아니다 보니 중국, 독일, 미국, 폴란드도 함께 수출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5위더라.
이게 글로벌이다.
보일러는 왠지 모르게 이탈리아가 인기가 좋아서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터키, 한국 순이었고, 한국 4위.
어쨌거나 한국은 양쪽 모두에서 알차게 수출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이 중원 랜드에는 지구 별 중국, 독일, 미국, 폴란드,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터키, 심지어 대한민국조차 없는 고로.
백린의각과…….
“짭을 조심해야 하긴 하지. 짭이 더 싸긴 하지만 자칫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네.”
……이름 모를 각종 짝퉁들. 이렇게 시장을 갈라 먹고 있는 상황.
그때 중원어가 간간히 들려서 돌아보니 두터운 모피 옷을 입은 중원인들이 무언가를 나르는 게 보였다.
“보타 상단에서 배치한 인력들이네. 온돌을 새로 깔거나 보수 공사를 도맡아 하고 있지.”
“오오오!”
인부들도 현지 사람 다 됐다.
“어, 그러고 보니 지붕에 어째 제 머리 장식과 비슷한 토용이 얹혀 있네요.”
“아아, 병을 쫓아내준다고 보타 기술자들이 달아 주더만. 소의선의 상징일세. 거기 보면 개 모양도 얹혀 있을 걸세. 그게 소의선이 데리고 다니는 황구고.”
컹?
잘 보니 개 모양 토용도 보인다.
“저기 새도 있을 걸세. 저건 뇌진이고.”
삑?
“……저걸 토용으로 처마에 얹는다고 병을 예방하지는 않습니다.”
“뭐, 그거야 그렇지만. 기분 문제 아닌가. 보타 상단 사람들 중에서도 항주 출신 사람들은 제법 진지하게 깎더만.”
‘비누보다 민간 신앙이 먼저 보급되다니…….’
그가 말했다.
“물론 자네가 신이 아니란 건 다들 아네. 그냥 무림의 고수이고 의원이라는 것도. 하지만 귀여우니까 얹는 거고, 운이 좀 좋아질 것 같으면 뭐든 해보는 거지. 저기 잘 보면 여우 모양 토용도 있네. 그건 ‘유호’ 토용이지.”
노란색 여우가 앞발을 들고 있는 토용이 보인다.
“음?”
뜬금없는 이름이 나왔다.
“최초로 온돌을 직접 제작한 자가 ‘유호’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들리는 무명(武名)이 없는 걸 보니 그는 무림의 고수가 아닌 듯하네. 그래도 이름을 유호(有狐)라고 쓰니, 그냥 여우 모양으로 장인들이 굽기 시작했지.”
“오오, 유호 토용은 저도 사 갈게요.”
이거 사서 놀려줘야지.
투덜거리면서 짜증 내겠지만 그래도 잘 포장해서 선물하면 언젠가 의각 어딘가의 지붕에 얹혀 있긴 할 거다.
그런 녀석이니까.
“항주 출신 기술자들은 누가 자네 욕을 하면 가끔 좀 무서워질 때가 있지만, 그 사람들도 자네가 신이 아님을 아네. 그냥… 신의 목소리를 들어서 약을 만든다고 믿는…… 경우가 좀 있지.”
‘뭐지? 나 사이비 교주 하나.’
“그렇군요.”
“그렇다네. 항주에서 두창을 없앴다면서? 어떻게 한 건가.”
“진짜로 궁금하신 겁니까?”
“그래. 솔직하게 말해 보게.”
“…….”
진천희는 미간을 찡그리고는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인간의 지혜와 노력, 그리고 약간의 영감이 행성과 차원을 뛰어넘어 전수된 것입니다.”
“차라리 신의 목소리라고 해두지. 천하일광이라더니. 진짜 미친놈일세.”
에이, 씨.
진천희는 투덜투덜거렸다.
이렇게 된 거 여우 모양 비누나 보급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신작 이름은 유호 비누다!’
진천희가 삐죽이는 입술을 보더니 객잔 주인이 허허롭게 웃었다.
“이 인기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으음, 일단 따라오게나.”
그는 외곽의 낡은 집을 보여 주었다.
벽돌에 진흙을 바른 유럽식 집이다.
“이곳 사람들 조상은 과거 서대륙에 있다가 얼어붙은 빙하를 건너 넘어왔다고 전해지지. 그래서 중원 사람과 머리색도 눈 색도 근골도 다르다네. 모두 키가 엄청 크지 않던가.”
“네. 그렇죠.”
“이 집은 서대륙식으로 지은 집인데 지금의 서대륙과는 또 다를 것이네. 굳이 말하면 옛날 여기 조상들이 이주할 때의 서대륙식이지.”
그리 말하며 문을 연다. 괜찮나 싶어 쭈뼛거리는데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었다.
“이제는 창고로만 쓰니까 괜찮네. 들어오게나.”
그러며 벽을 가리켰다.
벽난로였다.
“여기에 불을 때고 벽에 모피를 걸어서 따뜻하게 데웠지. 하지만 아침이 되면 노인이나 아이들이 동사하거나 돌연사하는 일이 잦았네.”
‘음, 과거 유럽의 난방 방식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