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65
제 564화
영화에서는 아름답고 고상하며 뭔가 메르헨적인 이미지가 좀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긴 하지.
이 당시의 굴뚝이란 열기의 70~80%가 빠져나가고 잿가루가 생겨 호흡기 질환을 유발했다.
굴뚝으로 모든 연기가 빠져나가는 게 아니니 이산화탄소 증가도 컸고.
‘그렇군. 그리고 이 강추위 속에서는 땔감을 미친 듯이 때어야 했을 거고.’
때도 때도 열기의 3분의 2가 하늘로 콸콸콸 날아가는 상황이었군.
“뭐…. 그러니 이 정도 인기는 좀 즐기게나. 나도 덕분에 같은 중원인이라고 인기 좀 생겼네. 외지인만 보면 도끼로 머리를 쪼개러 오던 사람들이 그래도 온돌 기술공인가 싶어서 말을 걸어 주기 시작하더군.”
진천희는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K-팝이랑 비슷한 건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이제 강호의 미남들을 모아 군무를 추면 먹힐 것 같기도 해.
‘그런데 아이샤 왕국의 역사가 그런 줄은 몰랐는걸?’
객잔 주인이 말했다.
“거기 커다란 나무 통 있지? 같이 들고 가세나.”
“설마 관광이 아니라 부려 먹으려고 부르신 겁니까?”
진천희의 말에 객잔 주인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잘 들어 보게나. 내가 천하일광을 만났다는 말과 천하일광한테 짐을 들게 시켜 봤다는 말 중에서 뭐가 더 술자리에 먹힐 것 같나.”
“…어, 후자겠군요.”
“그런 셈이지.”
“대협의 큰 뜻을 알겠습니다만. 저한테는 무슨 이득이 생기는 겁니까?”
“만나 보니 착하고 싹싹한 청년이었다는 소문이 나겠지.”
“제가 안 들어 주면요?”
“괜찮네. 짐 들어 달라고 시켰는데 안 들어 줬다는 이야기를 술자리마다 하겠네.”
젠장, 이래서 공손영 누나가 눈 뜨고 코 베인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술 잘 마시고 객잔에서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양반이다.
아차하다 석 대협에게 눈탱이 맞기 딱 좋겠군.
“양민이라 봐드리는 겁니다.”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짐을 들어 주었다. 그 모습에 석중호가 껄껄 웃었다.
“소문보다 실물이 더 잘생겼다고도 평생 술자리마다 말해 주겠네.”
“……그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두 사내는 짐을 들고 객잔으로 돌아갔다.
“내가 손금에 생명선이 긴 걸 보니 미수(米壽/88세)까지는 족히 살 거니 남는 장사일세.”
“그때까지 오늘 이야기를 우려 드시겠군요.”
“당연하지.”
그렇게 객잔 주인 석중호는 진천희를 도합 세 번을 더 부려 먹었다.
“진짜로 미수(米壽)까지 사셔야 합니다? 사람을 이렇게 부려 먹고 말입니다.”
“내 생명선이 손목까지 나 있네. 믿어 보게나.”
* * *
그렇게 하루 동안 객잔의 뜨뜻한 온돌에 몸을 지지고 나서.
진천희와 공손영은 바로 아이샤 왕국 수도 마스코바로 향했다.
“왕국을 경유한 후에 북해빙궁으로 갈 겁니다.”
“북해빙궁이 본 목적이었는데. 참 황궁도 알차게 부려 먹어.”
“제대로 보상 뜯어먹을 거니 황궁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진천희는 씨익씨익 콧김을 냈다.
“그 털모자, 곰 귀를 형상화한 건가? 흉폭한 놈을 잘도 장식해 놨어.”
“귀여운 게 아니고요?”
“…귀여워? 곰한테 머리 뜯긴 표사를 본 일이 없나 보지?”
이 세계의 곰은 아그작, 카그작의 상징이라 그런가.
어릴 때 끌어안는 곰 인형도, 콜라 든 북극곰도 없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의미로 전해지는 모양이다.
“황실에서 하사받은 곰 가죽입니다.”
“그러면 황실 진상품이라는 건데, 보통 그런 건 사연 있는 게 많이 진상되지. 저런 건 보통 사람 몇 놈 잡아먹은 흉악한 놈을 잡는데 성공하여 황제께 진상했다는 걸 거고.”
진상 편지 18번이다.
그렇다고 황제한테 보내는데 ‘오다 주웠다’ 할 수는 없잖나.
특별한 걸 진상하는 거니 그만한 사연을 구구절절 써야 나중에 치하도 받는 거지.
공손영이 말을 이어 나갔다.
“흰곰 털이라 잘 안 보이겠지만 미색 무늬가 등 결을 따라 오려서 붙인 흔적 없이 쭉 이어지는 걸 보면 이거 가죽 하나로 만든 거야. 엄청 큰 곰이라는 거지.”
“와, 그게 보여요?”
“응. 상단 일 하다 보면 당연히 가죽 보는 법은 배우니까. 알고도 자꾸 호구 잡혀서 문제지만.”
어쩐지 이렇게 추워도 따뜻하더라.
내공도 그다지 안 돌리고 있는데 따끈따끈하다.
“말 그대로 최고급 피풍의지. 왜 모자에 곰 귀를 붙여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맹함을 상징하는 거라면 납득이 되지.”
……그렇군.
공손영은 나름대로 언니 공손현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 자체는 많이 했다.
아이샤 언어도 꾸역꾸역 배웠고, 이런 물건 보는 법도 배워 놨고.
그러고도 대차게 사업을 말아먹는 건데.
공손현 가주는 그럼에도 스스로를 희망 고문 중인 거고.
그렇게 도착한 마스코바.
“수도답게 건물이 더 웅대하네요. 성벽도 중원과 양식이… 비슷하면서 다른 부분도 있고요.”
입구에 서 있는 문지기들도 뭔가 더 잘 차려입었다.
‘어릴 때 본 지브X 애니메이션 생각나는걸?’
거기 사람들 옷이나 집 양식들이 여러 문화를 섞어 놓은 느낌인 것들이 많았는데, 이것도 그렇다.
공손영은 문지기들에게 진천희가 황제로부터 받은 서신과 증표를 대신 건네고는 뭐라고 말했다.
그들은 진천희를 왕궁까지 안내해 주었고, 덕분에 별 절차 없이 빠르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첫 감상은.
‘엄청 추운데?’
건물 안이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
‘왕궁이 커서 그런가, 아니면 옛날 조상님이 지은 왕성을 개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생긴 문제인가?’
여기서 문화재 재건축의 비애가?
현원전단신공을 돌려 빠르게 주변을 보니, 일단 천장까지 높이는 5장 정도(약 15m).
벽은 모두 돌을 깎아 만든 형태이고 창문도 매우 컸는데, 이건 중간중간에 벽난로로 해결 본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온돌 깔려면 다 다시 지어야 하는 형태야. 이건. 하지만 생 땔깜으로 해결 보기에는 건물도 너무 크고, 굴뚝으로는 열 낭비가 클 터.’
성 사람들의 건강은 괜찮은 걸까?
의원으로서 그거부터 생각이 났다.
그렇게 귀빈 접객용 별궁에 도착하니…….
‘음, 별궁도 춥군! 껴입고 지내야겠어.’
그나마 침실 하나가 따뜻해서 왜인가 싶었는데 이건 또 온돌이다.
“억지로 개조를 한 거군요. 이거.”
“응, 그런 거 같네. 사람이 살아야지.”
화려한 별궁에 이불은 침대 대신 바닥에 놓여 있다. 기묘한 K현지화.
황구는 이미 바닥에 배를 깔고 인절미처럼 눌러 붙었다.
“이 정도면 아이샤에서 따로 제작해서 팔 수도 있겠네요.”
“응. 돌아다니는 짭의 태반이 아이샤 현지 자체 생산으로 알고 있어. 하지만 아무래도 보타 상단 쪽 석공들이 기술이 더 우수하다 보니 못 따라가고 있지. 그래서 중원인들 보면 여기서는 다 온돌공인 줄 알잖아.”
아아, 객잔 주인이 했던 말이다.
그렇게 진천희와 공손영은 각자 배정받은 방에서 짐을 풀었다.
* * *
짐을 풀고 얼마 있지 않아 시종이 찾아와 왕이 부른다는 전갈을 전했다.
진천희와 공손영은 곧바로 의관을 정제하고는 시종을 따라 왕이 거처하는 대전(大殿)으로 향했다.
대전은 크고 화려했는데, 바닥은 모두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고, 왕좌는 4단으로 이루어진 계단 위에 있었다.
좌우에 근위병들이 쭉 도열하였는데 그쪽에서도 화 제국의 사신인 진천희를 환대하는 의미 같았다.
‘여기는 절이 아니라 한쪽 다리를 굽히라고 했던가?’
진천희는 배워 온 대로 예를 취하고는 밀서를 건넸다.
신하는 곧바로 가져다가 왕에게 주었다.
왕은 밀서를 읽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뭔가 이야기를 하자 진천희가 전음으로 공손영에게 물었다.
[만일 왕자를 치료한다면, 약조대로 화 제국과 교역을 확대하여 더욱 든든한 우방이 되어 주도록 하겠다는, 대충 그런 이야기 맞죠?] [벌써 거기까지 익힌 거야? 아니면 눈치로 때려 맞힌 거야? 거기에 기마족을 견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말도 했어.] [원래 외국어 시작은 다 눈치죠, 뭐. 기마족이면… 아…. 숙신족 때 이후로 화친과 견제 둘 다 하고 계시는군요.]전쟁은 화 제국에 큰 상흔을 남겼다.
진천희나 공손영은 의각과 세가로 돌아가 자신의 일을 하면 되나, 황제는 그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위정자의 일.
대외적으로는 기마족과 화친하고 유화책을 펼쳐 교류하고, 물밑에서는 이렇게 중소 왕국들과 화친하여 기마족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견제책을 준비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왠지 세계사 교과서에서 봤던 구절들이 떠오르는군.
괜찮게 치세했다 싶은 왕의 업적을 외울 때마다 유럽사, 서아시아, 동아시아, 국사 할 것 없이 꼭 저런 문구가 들어갔었지.
‘뭐, 착실히 일을 하고 계셨구만. 겸사겸사 내가 북해빙궁에 간다니까 옳다구나 하고 부려 먹고.’
가게 된 김에 하는 건지, 물밑에서 책략을 짜서 보내 버린 건지 모르겠다.
황제의 복심이 어디에 있는지 한낱 의원이 뭘 알 수 있겠나.
확실한 것은 천방지축 얼렁뚱땅 빙글빙글 돌아가는 정무 속에서도 어금니는 썩을 수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황제쯤 되면 영단 깎아서 인레이 박아 달라는 미친 요구도 가능하다는 것 정도겠다.
‘환자를 치료하면 되는 일이겠지. 치료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렇게 왕께 예를 표하고 시종이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더욱더 추운 별궁이다.
[여기는 밖보다 추운데요. 누나?] [그러게 말이다. 무슨 빙고도 이렇게 춥진 않겠다.]별궁 안쪽, 깊은 심처의 문을 열자 이번에는 미지근한 공기가 밀려왔다.
시종이 뭐라고 말하며 예를 표했다. 진천희가 물었다.
[왕자라는 뜻이죠?] [이번에도 눈치로 맞힌 거야? 아니면 알고 맞힌 거야?] [반반이죠.]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예를 표했다.
왕자는 흡사 남국에 있는 것처럼 얇은 옷만을 입었는데, 방 가운데에는 거대한 빙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종의 빙고(氷庫)를 만들어 일부러 방 안에 냉기를 가득 채운 모양이었다.
원래도 추운 지방인데 더 차갑게 식히고 있다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지근한 공기는…….’
진천희는 단번에 이 왕자가 어떤 절맥인지 깨달았다.
구음절맥의 반대쪽에 자리한 절맥.
구양절맥.
진천희가 치료할 절맥이 이것이었다.
왕자가 몸을 일으켰다.
“나를 치료할 의원이 도착했는가?”
신기하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건 화 제국의 언어였다.
* * *
곰도 추워지면 덩치가 산만 해지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아이샤 왕국 사람들도 화 제국 사람들보다 평균 신장이 더 큰 편이다. 그런데 왕자는 더 크다.
스승님이 생각나는 거대한 체구.
아니, 어쩌면 이 정도면 스승님보다도 더 클 수도 있겠다.
‘이 정도면 팔 척을 넘어 거진 구 척도 노려볼 법한데?’
거기에 두꺼운 근육까지 합치면 흉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열기 때문에 더운지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자의 몸에서 열기가 뻗치는 게 보일 정도였다.
‘뭐…. 이건 걸어 다니는 인간 난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