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66
제 565화
왕자는 두 사람에게 차를 대접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몹시 느리기 그지없었다.
“미안하군. 빨리 움직이면 또 몸이 더워져서.”
“제가 따르면 안 되겠습니까?”
진천희의 말에 왕자가 답했다.
“그건 안 되지. 내 몸을 치료할 의원을 소홀히 대할 수 있나.”
보통 왕족이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시종을 시킬 텐데, 일부러 본인이 차를 기어코 따르는 것이 굉장히…… 소탈한 성정이었다.
조르륵-
왕자의 느린 몸짓을 따라 찻물도 느리게 느리게 차오른다.
나무늘보와도 같은 슬로우 모션에 공손영이 물건을 떨어뜨린 척 허리를 굽혀 탁자 밑으로 갔다.
하암-
거기서 몰래 하품을 하는 걸 진천희는 보았다.
“여기 차네.”
그리 말하고 본인은 차가운 물을 다시 느리게 느리게 마셨다.
“어릴 때부터 몸에 열기가 뻗쳤는데, 덕분에 앓고 아팠던 일이 많았지. 아예 냉기에 노출되면 몸이 나아져서 그때부터 얇게 입고 다녔다네.”
“그랬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점점 더 몸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는 빙정이 있는 이 방을 나가는 것도 버거운 상태에 이르렀다 할 수 있네.”
“음…….”
“아,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졸리더라도 참게나. 이 방에서 잠들면 얼어 죽으니까.”
공손영은 화들짝 놀라서 자신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일단 진맥을 해 봐도 됩니까?”
“화 제국의 일부 의원들이 쓸 수 있다는 진기진맥이라는 것이지?”
“본격적인 건 내일부터 할 생각이고, 지금은 그냥 기본적인 것만 살필 생각입니다.”
“알았네.”
그는 다시 진천희에게 손을 뻗었다.
느리게, 아주우 느리게.
진천희는 그의 손목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맥을 했다.
“…….”
한참 동안 진맥을 하던 진천희는 생각했다.
‘하하하, 물리법칙 엿 먹이는 망할 강호 월드…. 빌어먹을… 하하하…….’
스승님의 구음절맥은 왜인지 몸에서 냉기를 발출한다.
왜 그러는지는 물리학적으로 당연히 설명이 안 된다.
음양오행으로 설명 비슷하게 짜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그 반대인 구양절맥 역시 왜인지 몸에서 열기를 발출하고 있다.
왜인지 어떻게 알겠나.
무협의 질병이라 그런가 보다 해야 한다는 거다.
‘인간은 체온이 40도 수준이면 위험해야 정상인데…….’
일단 빙공을 익혀서 열기를 뺏고 있긴 하다.
현대 과학으로는 입도 못 대는 상황.
옛날이라면 이 현상에 정신이 나갔겠지만 진천희는 이제 무림 의사예요. 하와와와,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듯 무림에서는 무림법을 따른답니다.
‘일단 스승님이 과거 치료하셨던 칠양절맥을 떠올려 보자. 당시 어떻게 치료했는지는 기록에도 남아 있고 스승님께도 들었으니까.’
음절맥과 양절맥은 단어가 비슷해 보여도 대처법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스승님이 칠양절맥은 치료하셔도 구음절맥은 치료를 못 하고 계시는 거였고.
스승님은 당시 극음지기를 가진 영초인 빙음초를 사용해서 벌모세수와 ‘불완전한’ 환골탈태를 유도했다.
어디까지나 유도이지 마지막 하나는 천운에 맡겼던 것.
그때 다행히도 천운이 닿아 환자를 태양지체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초양장군 육헌.
그가 제국의 칠 대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때 스승님의 처치 덕분이다.
허나 구양절맥은 스승님이 치료한 칠양절맥과 비교하면 거의 몇 배나 더 대단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지금 이 방의 온도는 이미 영하 10도의 수준, 거기서 알몸으로 있어야 겨우 온도가 유지될 정도면 밖으로 나갈 경우 체온이 몇 도까지 오를 수 있을지 상상하기가 싫다.
‘……이게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래도 구양절맥의 효과인지 기골 자체는 아주 장대하다.
보고만 있어도 양기가 뻗쳐나가는 게 아주 후끈하다.
“겨울이 오면 그래도 나도 나갈 수 있지, 하지만 봄부터는 여기서 지내고 있다네.”
그는 느릿느릿 얼음 동동 띄운 찬물을 삼킨다.
“그래도 아이샤 왕국의 후계인데 이래서야 왕국을 이어받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차라리 다른 형제에게 맡기고는 싶지만 한 놈은 도박 중독이고, 다른 한 놈은 아편 중독이라 요원하네. 우리 아바마마가 자식 농사 참 개같이 지어 놨지.”
컹?
황구가 억울하다는 듯 낮게 짖었다.
진천희는 황구의 이마를 쓸어 주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 방에서 국정도 돕고 있는 셈이군요.”
“조세나 좀 돕는 것뿐 이걸 돕고 있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런 셈이지. 몸을 너무 움직이면 뜨거워지니 조세 장부는 암산으로 확인하고 있고.”
……뛰어난데?
천재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왕자로서는 나무늘보 이상의 효율을 못 내는 몸뚱이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셈이었다.
“대단한 재능이군요.”
“뭐….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애초에 절맥에 걸린 인간은 단명하는 대신 재능이 넘친다 하니까. 나보단 자네 스승이야말로 천재성으로 이겨낸 거지, 나는 그냥 왕궁 안에서 아바마마가 벌어 주시는 자원을 흥청망청 써서 생명을 연장 중 아닌가.”
왕자라기보다는 동네 돈 많은 집 아들 같지만, 잘 살펴보면 은근슬쩍 자신을 낮추고 의원의 스승을 높여 주고 있다.
목숨 줄을 쥐고 있는 게 진천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고.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건, 여기 도착하기 전에 조사는 다 끝냈다는 걸 거고.’
황제께서 진천희를 급히 밀정으로 파견했을 때 분명 절맥을 치료할 의원을 보낸다고 했지, 정확하게 누구인지까지는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안다는 건 처음 객잔에 들렀을 때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높았고.
그 말인즉슨, 이미 왕국의 눈과 귀를 통솔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승을 높여 주고 자신을 은근슬쩍 낮추고 있다?
공손영이 말했다.
[야, 쟤 착하다. 일왕자를 따르는 신하가 많다고 들었는데 저래서 그런 거 같아.] [……어… 누나……. 어…….]누나는 사업하시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이 목구멍으로 나왔다.
어쨌거나 진천희는 자신의 일을 할 뿐.
공손현이 기어코 공손영에게 사업의 일부라도 물려주어 공손세가 기둥 뿌리를 뽑을지 말지는 의원이 알 바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저희 스승님께서는 과거 칠양절맥을 치료한 바 있었으나, 구양절맥과는 차이가 있기에. 여러모로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자네 스승은 구음절맥으로, 마지막 치료는 자네가 하지 않았나?”
“완치는 아닙니다. 그저 대증요법에 가깝지요. 거기다 음기와 양기는 성질이 달라 얼핏 같은 병으로 분류를 하는 의원들도 있으나 사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 말에 왕자가 끄덕였다.
“알겠네. 오히려 믿음직스럽군.”
* * *
‘와, 현대 과학이 1도 안 통하는 무림 질병은 진짜 오랜만이다.’
두창도 기생충도, 장티푸스 콜레라, 골절, 뇌종양도 결국 지구 질병 아니었나.
어찌저찌 현대의 지식으로 해결 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뼛속부터 강호 월드 병이다.
다음 날부터 진천희는 구양절맥을 파악하기 위해 진기진맥으로 계속해서 왕자의 몸을 진찰했다.
“진맥은 알겠는데 피는 왜 뽑아 가는 건가?”
“제 미련 때문입니다.”
응, 현대 과학 못 버려. 뭐라도 해 봐야지.
진천희는 일단 환자와 대화를 해 봤다.
“일단 왕자께서는 북해빙궁의 빙백신공을 익히신 게로군요.”
“당장의 열기를 끄기 위해서는 그게 가장 적합했으니 필사적으로 익혔지.”
과연 단전에 제법 빙한기가 차있다.
물론 열기로 인해 빙한기…라기보다는 미지근한 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주화입마에 안 걸린 것은 어릴 때 일찍이 벌모세수를 하고 철저하게 관리해 왔기 때문인 걸 거고.’
왕자께서 어릴 때 돼서야 알게 되었다고는 설명했지만 아마 그보다 일찍 체질을 깨달았을 거다.
‘환자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지만…….’
굳이 한이정이나 유랑후까지 갈 것도 없다.
특히 황족이나 세가의 후계 같은 경우는 가문의 비사(祕史)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얼버무리게 되고, 그 거짓말을 간파하는 것은 의원의 소양이다.
지금 눈앞의 경우는 그래도 사소한 축.
진천희는 재빨리 환자의 병증 발현 시기를 수정했다.
환자의 내력을 보았을 때 빙백신공을 익힌 것은 훨씬 어릴 때.
아마 갓난아기 때부터 빙백신공을 가르칠 준비를 했을 터.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아이샤 왕국은 그래도 북방에서 그 역량이 작은 곳은 아니지 않나. 그러다 보니 극음지기를 가진 건 모두 구해 왔지. 특히나 이 거대한 빙정이 그 성과일세.”
“네. 이렇게 큰 건 또 처음 봅니다.”
“그래. 북해빙궁에서 구해 왔지. 궁주께서 흔쾌히 승낙했다네.”
왕자를 북해빙궁의 제자로 받아준 셈 아닌가.
‘북해빙궁과 아이샤 왕국은 사실상 한배를 탄 사이겠구나.’
그렇다는 말은 이 왕자의 상태에 따라 앞으로 북해빙궁에서의 입지도 결정이 난다는 뜻.
“빙정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것 외에도 가지고 있네.”
“그중 하나를 쓰고자 합니다.”
“흐음? 또 부술을 사용하는 건가? 그것에 대해 미리 말하자면 우리 아이샤 왕국에서는 부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네.”
“그렇습니까?”
“이건 종교적인 문제이기에 양해 바라네만.”
스승님의 구음절맥을 결국 부술로써 해결 보았기에 이렇게 못을 박는 모양이다.
치료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한다는 건, 부술을 할 바에는 차라리 이대로 살다 죽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종교, 그래. 종교는…… 중요하지.’
진천희는 생각에 잠긴다.
“…….”
오독문에서 종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경험했지 않던가.
특히나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 신은 전부다.
사람이 신선이 되고, 제물을 바쳐 혈선교의 신이 권능을 내려준다.
악신조차도 신으로 존재하는 세계.
사람이 죽으면 별자리가 바뀌는 세계 속에서 현대인은 약간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최대한 부술 없이 치료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그게 가능한가!”
플랜 B가 있긴 하다. 어디까지나 플랜 B.
현대인 입장에서는 대체 이런 이유로 목숨을 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은 철학자가 아니라 의원일 뿐.
결국 답은 하나뿐 아닌가.
‘어쨌든 사람이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나.’
* * *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아니, 부술을 대체 왜 안 받겠다는 거야? 이 동네 토착교 이해가 안 가네.”
“…….”
“똑똑한 양반인 줄 알았는데 꽉 막혔어.”
공손영이 툴툴거렸다.
“단순히 신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일 수도 있어요. 만약 부술이 부정하다고 믿는 종교라면, 그걸 받은 왕자도 같이 부정하다 보겠죠. 그리되면 왕위 서열에서 밀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거고.”
“동생들은 한 놈은 도박하고 한 놈은 아편한다 했던가?”
“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샤 왕국은 다음 대에 백성들이 고통을 지게 될 겁니다.”
공손영은 머리를 득득 긁었다.
“아아. 뭐 이렇게 복잡하냐? 왕족들은.”
‘세가라고 다를 거 없어요. 단지 그동안은 흑빙독룡 공손현이 죄다 뒤로 처리해서 공손영 누나는 모를 뿐이지.’
결국 혼잣몸이 아니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