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68
제 567화
역시 왕자야. 몸이 참 좋아.
이런 절맥 관련 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당연히 생존이겠지만, 생존을 한다고 해도 혈관 문제를 달고 살아야 한다.
스승님만 해도 결국 대동맥 박리로 인해 인조 혈관 치환술을 했어야 하지 않았던가.
지구에서 이러한 환자는 보통 나이가 연로하시거나, 젊다고 해도 술, 담배,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인해 당뇨 같은 합병증이 오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이미 먹고 있는 약도 많다.
당연히 수술 전에 그 약물을 다 적어 주셔야 하고, 피 검사도 철저하게 해야 하고.
본인도 당뇨인 줄 몰랐다가 이 피 검사에서야 당뇨인 걸 알게 되는 일도 많고.
아스피린 같은 항혈소판제 약물을 2주 전까지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 또 알아야 하고. 고령이시면 무릎 관절 진통제를 드셨는지도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를 걸쳐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화학물로 연명해 간다는 뜻.
인류의 수명 연장은 어찌 보면 화학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지.
반면 이번 환자는 깨끗한 몸에 깨끗한 식습관, 스트레스도 잘 안 받는지 혈관도 짱짱하다.
딱 하나 걱정되는 건…….
‘경동맥.’
벌모세수는 단순히 몸의 노폐물을 빼내는 것뿐만 아니라 몸의 혈류를 진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경동맥이 걱정이 되는데…….’
원래라면 수술적 처치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다.
이 정도면 약물 요법으로 해결 봐도 될 터였다.
허나 문제는 환자가 구양절맥이라는 점이다.
“아프지 않으십니까?”
“크윽. 괜찮네.”
인내심도 강한 편.
황제 폐하께서는 그래도 엄살을 피우셨는데 이분은 그런 건 없다.
그가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고통에는 익숙해졌네. 그에 비하면 이 또한 못 견딜 건 아니네. 다만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아파 오는 게 괴롭…군……. 크윽.”
하긴, 스승님도 구음절맥으로 늘 아프셨다.
그 고통을 범인이 헤아릴 수준이 아님을 아나 그래도 안타까울 뿐.
보통 벌모세수는 무공을 쌓기 전의 어린아이들이 하지 이런 어른이 받을 건 아니지 않나.
그나마 어린아이들은 좀 고통이 덜한 편인데 어른은 다르다.
“크윽!”
“뒷목 쪽 혈도에 시술 들어가니까 많이 아프시면 손 드십시오.”
얼마 후, 왕자가 손을 든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리십시오.”
“덜 아프게 해주는 건 아니고?”
“하하하.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벌모세수 하는데 혈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제대로 벌모세수가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해서요. 음……. 잘되고 있군요.”
왕자가 뭔가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샤 말로 하는 욕임이 틀림없다.
* * *
벌모세수가 끝난 후. 목욕을 하고, 다시 벌모세수를 반복했다.
기절할 것 같은 고통이 끝나자 한빙 왕자는 지쳐 쓰러졌다가 다음 날 다시 깨어났다.
그는 신기한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내공이 증량되었군. 몸 상태도 좋아졌고.”
“이미 무공을 익히셔서 원래는 이런 식으로 증량되진 않습니다. 강제로 혈도를 돌려서 일시적으로 태양지체로 만들어본 거죠.”
“계속 침술을 놔서 살 수는 없나?”
“……고통이 심해서 무리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군. 후우…….”
한빙왕자는 느린 손으로 냉차를 삼킨다.
“몸에 열기가 치미는 건 여전하군. 그래도 기분 탓인지 덜 아픈 기분이야.”
“그건 일시적이고 조금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그러면?”
“개정대법을 할 겁니다.”
개정대법.
그것도 스승이신 백린의선께서 창안하신 백린개정대법이다.
벌모세수와 일견 맥이 상통하나 다르다.
벌모세수가 기본적으로 육체의 노폐물을 없애 깨끗한 상태로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개정대법은 육체를 약물과 기공술로 강화시키는 것.
‘어찌 보면 강시 제조술과 비슷한 면이 있지. 스승님은 살고자 그것을 자신의 몸에 했고.’
무슨 생각으로 자기 몸에 강시 제조에나 쓰이는 대법을 시행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 뭐든 못 하겠나.
이미 스승님은 당시 생존을 위해 산 자라면 마땅히 갖는 존엄조차도 버린 상태였고.
시체에나 하는 대법을 자신에게 시행하면서 스스로의 몸을 실험하고, 또 실험해야 했으니까.
‘후우.’
자신의 몸을 실험체로 삼아 그렇게 백린개정대법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구음절맥은 치료되지 않았다.
몇 년의 수명을 다시 벌었을 뿐.
강호의 모두가 혈린이 죽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럼에도. 그것을 알면서도 스승님은 자신을 구명하고자 했다.
으스러질 듯 꾸역꾸역 살아오던 삶.
그 속에서 스승님은 무엇을 본 걸까.
사람 일 모르는 거다.
그때의 절망이 이제 누군가를 살리고 있으니까.
어떤 어둠은 스스로를 태워 빛을 부른다.
우리는 그걸 ‘희망’이라고 부르지.
“한 달에 걸쳐 이루어질 겁니다.”
강시 제조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대법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게 싫다면 부술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도.
그 말에 왕자는 슬프게 웃었다.
“내 대답이 무엇인지 알지 않나.”
“비밀로 하면 안 됩니까?”
“아바마마께서 격노하실 걸세.”
“…….”
진천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안 아픈 날이 없을 겁니다.”
“그만큼 소의선 자네도 체력과 심력을 갈아야 할 테니 쉽지 않겠군.”
그는 그리 말하며 다시 느리게 느리게 차를 삼킨다.
“모르겠네. 내가 배운 것은 언제나 책임지는 삶이었고, 장자로서 이 나라를 이어받는 자의 삶이었네. 나라고 날 위해 살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이대로라면 곧 죽을 거고. 부술로써 살아남는다고 한들 결국 왕위를 이어받게 될 다른 아우들이 날 죽일 걸세. 도박 좋아하고, 마약 빠는 놈들에게는 으레 나쁜 친구가 있기 마련이지 않나.”
원작에서는 아마 한빙 왕자가 죽었을 거다.
그래서 둘째든 셋째든 다른 왕자가 왕위를 이어받았을 거고.
그러면 혈선교가 꼬이는 건 어렵지 않겠지.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 혈선교 역시 인간의 약한 부분을 파고드니까.
‘지존천마에서는 죽은 사람밖에 없었어.’
원작에서 뭔가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게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만약 원작을 몰랐다면 다르게 행동했을까.
어찌 되었건 한빙 왕자의 추측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가 왕위를 잇는 것 외에는 이 왕국이 살아남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으면 뭘 하고 싶습니까? 평소에 할 수 없었던 것들 중에서요.”
“…….”
후릅-
그는 느린 시선으로 창밖을 본다.
중원은 봄이나 여기는 아직도 겨울.
지긋지긋할 정도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심장이 터질 만큼 빠르게 경공을 하고 싶네. 웃기나?”
“음……. 아닙니다. 제 스승님도 다 나으시고서 검무를 추셨는걸요?”
그때 그 검무로 무엇을 새겼는지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리긴 하다만. 어쨌거나 스승님께는 그게 중요한 일인 거겠지.
그에 비하면 경공은 꽤 상식적이지 않나.
“술도 마시고 싶네. 이 동네 술은 중원 술보다 독하다는데 참으로 그런가?”
“뭐, 중원이 워낙 넓다 보니 극과 극이라 뭐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아이샤 왕국 술이 세긴 합니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러면 완쾌하시면 한잔하시죠.”
“술을 안 좋아한다 들었는데 그래도 되는가?”
“안주만 줄창 비워도 됩니까?”
“하하하, 부탁하네.”
환자는 준비가 되었다. 그러면 진천희 자신도 준비해야 할 때. 설원 먼 곳까지 가득 차 내리는 눈발을 보며 진천희가 말했다.
“다행입니다. 장기전은 꽤 자신 있거든요. 한두 번 해보는 게 아니라서요.”
“이거 참, 화 제국 황제께서 아주 든든한 의원을 보내주었어.”
* * *
한 달 내내 해가 뜨면 스승님의 백린개정대법을 행했고.
해가 지면 돌아가서 왕께 하사받은 빙정과 천년대합표 영단으로 뭔가를 했다.
“실을 짜는 거야?”
“네. 오행진기의 금(金)을 영단에 적용하면 이런 것도 되거든요.”
“호오. 신기하네. 옷감을 만들 거야?”
“음… 어찌 보면 비슷하긴 하네요. 옷감이라기보다는 그물이랑 풍선에 가깝지만.”
“……?”
무슨 말을 하는지 공손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놈이 이상한 짓을 하는 게 뭐 하루 이틀인가.
‘뭔가의 실험 중이구나’ 하고 말았다.
“하루 두 시진은 자?”
“아슬아슬하게요.”
“그러다 죽는다.”
“크헤헤헤, 누나 먼저 주무세요.”
진천희는 일부러 과장되게 웃으며 공손영을 보냈다.
공손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아지고 있는 건 맞지 않나?’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샤 왕국의 어의가 많이 호전되고 있다며 진천희를 극찬하는 걸 들었다.
그렇다면 조금은 여유 있게 지내도 되지 않나?
하지만 진천희는 뭔가 쫓기듯이 일하고 있었다.
‘원래 그런 놈이라면 그런 놈이지만.’
이윽고 물었다.
“혹시 네가 한다는 그 치료법 말이야. 실패할까 두려워?”
“두렵죠.”
“환자가 죽을까 봐?”
“그건 당연히 두렵죠. 하지만… 이 사람이 죽으면 생길 미래도 두렵네요.”
“뭐…. 방탕한 왕 때문에 백성이 신음하는 건 하루 이틀도 아니지 않나?”
“하하하하. 그건 그렇죠.”
이렇게만 말하고 웃는다.
왠지 밉살맞아서 뺨을 잡아당겼다.
“아얏!”
“하여간 세상 짐 다 지고 있다는 표정하고는. 맹랑해서는.”
* * *
치료는 한 달째 이루어졌다.
벌모세수와 백린개정대법.
이 두 가지가 모두 끝났을 때쯤. 백린의각의 의원 다섯이 도착했다.
놀랍게도 함께 온 것은 주왕 전하였다.
공식적인 행차가 아니기에 일부러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온 그녀는 진천희에게 반갑게 인상했다.
“여어! 잘 지내냐? 여전히 피곤에 찌들어 사는 얼굴이네.”
“아니? 무공서와 의원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는데 왜 직접 오신 겁니까?”
“반갑다고 한마디 좀 하지 그러냐?”
일부러 정색하고 물으시는 게 아닌가.
“아, 아니…. 바… 반갑죠. 주왕 전하. 당연히 반가운데…….”
“내가 직접 가르치려고 왔다. 태양신공이 필요하다며?”
“네. 네에. 그렇습니다만.”
주왕께서 직접 사사하신다고?
그렇다는 말인즉, 풍하은, 풍하금 두 황상께 이 아이샤 왕국과의 외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예측이 맞긴 하다.
‘혈선교에 잡아먹히게 되니까.’
우리의 천살성 하륜이가 아니었다면 이 아이샤 왕국을 중심으로 혈선교가 더욱 득세하여 사방에 피를 흩뿌릴 터.
하지만 골드&실버 왕야께서 원작을 모르는데 거기까지 예측하실 리는 없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공고하게 다지시는 거지.
직접 사사하여 연을 만든다라.
중원이 특히 그렇지만 새외도 마찬가지.
스승과 제자의 연은 특히나 더 각별하다.
괜히 북해빙궁에서 일왕자에게 이름을 내리고 제자로 받아들인 게 아니다.
아이샤 왕국의 왕이 북해빙국의 무공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만큼 북해빙궁의 연은 황금으로도 바꿀 수 없게 될 거고.
설령 한빙 왕자가 구양절맥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고 해도 아들의 생을 연명하게 해준 공이 있으니 홀대하진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주왕야에게 직접 태양신공을 사사받게 되면 어찌 될까?
‘빈틈이 없으시군. 정말.’
은왕야와 주왕야가 함께하니 이런 계략을 짤 여유가 생겼다는 거겠지.
‘거기다 나까지 말판으로 쓰고 계시고 말이지.’
이 망할 놈의 황실 시크릿 블러드 같으니.
진료비가 얼마나 비쌀지 기대하시라. 이 풍가 놈들아.
진천희는 속으로 칼을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