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
제 57화
“부마께서는 말씀을 낮춰 주세요.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는걸요.”
진천희가 배시시 웃자 부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부마라고 불리지만 천출인 몸입니다. 의원님께서는 편히 대해 주세요.”
‘이런 어린아이를 보고 끝까지 존칭을 쓰다니. 내 참…….’
대체 주왕은 어째서 저 사내에게 반한 걸까.
세력이 있는 사내를 잡아 정략결혼을 하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리라는 것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그 후 이 사내를 첩실로 앉히든, 아니면 비밀 연애를 하든 아무도 신경 쓸 이가 없으리라.
압도적인 무력으로 전장을 제패하던 그녀였다.
영웅은 호색이라 하는 시대이니 그리 흠이 될 것도 없었다.
그에 비해 부마로 앉은 이는…….
‘확실히 미모가 뛰어나긴 하네. 우리 스승님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거기다가 좀 착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주왕은 이 사내에게 심장을 주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천하의 모든 귀한 것들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듯 주왕의 총애란 꽤나 각별한 것이었다.
대체 뭐에 반한 걸까.
진천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공을 익히신 것 같은데요.”
“네, 호신공을 익혔습니다. 삼재보법도 함께 익혔고요.”
“삼재보법 참 좋죠.”
진천희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조금 뻔뻔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금방 끝낼 테니까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세요.”
“의원님, 제가 앞으로도 예인으로서 계속 살 수 있겠습니까?”
이 사내에게 춤이란 뭘까, 진천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가끔은 한 가지에 홀린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마치 중독과도 같아서 부나 명예, 그리고 사랑으로도 그 갈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책으로 읽었을 때와 달리 직접 보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다.
뭔가 퍼즐 하나가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 뭔가 제게 미처 말씀하지 못하신 게 있나요?”
“…….”
“준비가 끝나면 곧 부술실에 들어가실 거고, 들어가면 늦습니다. 사소한 것까지 다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왜일까.
책으로 읽었을 때의 기억과 의사로서의 직감이 충돌했다.
책에서 이 사내는 분명 춤으로 살고, 춤으로 죽는 예인이었다.
지금 보이는 것도 딱 그런 모습이었다.
다리를 잃은 그는 춤을 더 이상 출 수 없다는 사실에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죽었다.
책에서 그랬다.
눈에 보이는 모습도 그랬다.
하지만, 왜 이리 뒤통수가 서늘한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부마가 말했다.
“기억나는 건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붉은 꽃과 같이 요염한 미소였다.
어째서 주왕이 이 사내를 그토록 아끼는지 알 것도 같은 미소.
향이 나는 목소리가 공기를 물들이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이 새끼…… 엄청 수상하네.’
방금 전까지 ‘의사님, 내 다리 좀 살려 주소!’ 하던 새끼가 뭐 좀 물어보니 저렇게 접대용 미소를 흘리며 답할 건 뭔가.
동시에 진천희는 깨달았다.
‘수술대에서 죽으면 죽었지 절대 말 안 하겠군.’
제일 피곤한 타입의 환자다.
‘설마 무림에 이런 환자들이 많은 건 아니지?’
의사가 보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신념을 가진 분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 따위는 초개처럼 바치는 그런 분들.
현대에서는 엔간하면 볼 일 없는 그런 극히 드문 분들.
‘그래. 그런 인간들이 세상 어디에 더 있겠어. 내가 있는 무협 세상 속에서나…… 허허허허…….’
돌겠다. 그리고 진천희는 새삼스럽게 진리를 눈치채고 말았다.
진천희는 부마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목숨보다 귀한 건 없습니다.”
“네, 네?”
“아무리 대단한 신념이 있다고 한들 목숨보다 귀한 건 없다고요. 나중에 알면 늦어요.”
의사가 말하면 좀 들어라!
* * *
부마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진천희는 이럴 것 같아서 두 번, 세 번 더 진맥을 하고, 혹시 놓친 게 있나 싶어 다른 의원들을 불러 함께 더 진맥을 했다.
특별한 건 더 나오지 않았다.
진천희는 이 부분을 수술 전 스승님과 공유했다.
“흐음, 어려운 문제로구나. 그러나 앞으로 무수히 만날 문제이기도 하지.”
무림뿐만 아니라 황실에도 비밀이 있다.
특히 황실의 비밀은 음모와 모략이 함께한다.
“희야, 비밀이란 말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일 때도 있지만, 듣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 입을 다무는 경우도 있단다.”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수술에 관련되지만 않으면 내 알 바 아닌 문제니까.’
그래도 여전히 조금은 찝찝하다.
자꾸만 의사로서의 감이 뒤통수를 쿡쿡 찌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부마를 상대로 취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입을 다물겠다는데 다른 수가 뭐 있을까.
스승님이 눈을 빛냈다.
“그보다 새로운 부술법이로구나.”
표정은 평소와 같이 진중하나, 눈빛은 마치 선물 포장을 뜯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열의가 높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오싹할 때가 있다.
궁귀가 말한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천희는 또렷하게 느꼈다.
스승님에게는 생명을 대할 때 생기는 두려움 같은 게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이란 하나의 퍼즐과도 같았다.
조각을 완벽하게 맞추고 나면 흥미는 떨어진다.
단순히 명예욕이라고 하기에는 상대는 주왕의 부마였다.
수술이 실패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과야 뻔했다.
“판돈이 큰데도 즐거워 보이세요. 스승님.”
“흐음, 네 눈에는 그리 보이는 모양이구나.”
그럼에도 이 사내는 하고자 했다.
뒤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생명의 귀중함은 백린의선에게 사실 그리 중요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의 광기에 맞춰 환자가 목숨을 구하는 것일 뿐이 아닌가 하고.
‘이것 또한 재능이라면 재능일 수도 있겠지만…….’
제갈린이 말했다.
“어릴 적 가주께서 말씀하셨단다. 어차피 길게 살기는 글렀으니, 어떻게 살지를 고민해 보라고.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웃었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짓는 미소가 신처럼 성스러워서 보는 이의 숨을 막히게 했다.
“판돈은 중요치 않단다. 희야, 얼마나 즐거운가가 중요하지. 가급적 즐거운 것만 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야말로 중요하지 않겠니.”
그것은 제갈린이 사는 방식이었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내가 오기 전에는 밥도 드시지 않으셨다 했지. 며칠에 한 번 정도 벽곡단이나 삼켰다 하셨어.’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유호가 말했다.
하지만 진천희의 생각은 달랐다.
‘밥 먹는 게 재미가 없으셨던 거라면. 재미없는 건 그저 하기가 싫은 것이라면…….’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쾌락주의자인가.
진천희는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내 억측이다. 그냥 지적 흥미를 과하게 해석한 거야.’
생각은 거기까지.
진천희는 파충류의 꼬리를 잘라내듯 헛된 추측 역시 잘라냈다.
“우선 외고정술에 관해서인데요.”
진천희는 수술 플랜에 대해 빠르게 스승님과 공유했다.
그중에는 그간 진천희가 집필하고 의각에 전수한 의학 지식도 있었지만, 당연히 새로운 것들도 많았다.
주어진 시간은 짧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 * *
모든 수술 준비가 끝났다.
이미 한 번 했기 때문인지 지난번보다 준비가 더 빨라졌다.
환자가 수술대에 올랐고, 의각의 의원들이 마취를 준비했다.
진천희는 수술복을 입었다.
“지난번보다 낫네요.”
유호가 답했다.
“누구 덕분에 말이죠.”
얼기설기 이어 놓았던 헝겊은 이제 없다. 처음부터 제대로 만든 수술복이 완성되었다.
“많이 만들어야 할 텐데요?”
“네, 그렇지 않아도 공방에 시켰습니다. 도련님과 주인님 것만 제가 직접 만들었습죠.”
어쩐지 스승님 옷에 들어간 자수가 아주 섬세하더라.
수술을 고려해 크게 하지는 않았지만 정성이 아주 잘 들어가 있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유호.”
“네?”
“고마워요. 유호가 아니었으면 환자를 치료할 결단도 내리지 못했을 거니까요.”
솔직한 감사에 유호가 잠시 말문을 잃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고마우면 일 좀 줄여 주십니까?”
“그건 안 되고.”
“그러면 감사 안 받으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진천희의 뒤쪽 옷깃을 당겨서 끈을 묶었다.
“자수는 무슨 색이 좋으십니까? 다음번에는 의견 받아서 지어 드리죠.”
진천희가 답했다.
“스승님과 똑같은 색으로.”
“젠장,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진천희는 작게 키득거렸다.
“자, 그러면 시작하자. 유호.”
* * *
정형외과의 수술실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술실과는 풍경이 많이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수술이라고 하면 메스와 샤프, 겸자와 봉합사가 함께하는 수술을 생각한다.
물론 정형외과의 수술에서도 그런 도구를 사용한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가 더해진다.
망치, 드릴, 나사, 철근.
공사판에서 볼 법한 공구들도 함께 사용된다.
여기는 전기가 없는 세계이기에 드릴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나사송곳을 내력을 이용해 사용하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환자는 마취로 누워 있었고, 의각원들이 실시간으로 환자의 맥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오래 걸릴 겁니다. 다들 미리 식사는 해 두었죠?”
모든 의각원들의 눈이 진천희를 향해 꽂힌다.
진천희는 태연스럽게 수술대 앞에 선다.
이 세계에서 하는 수술 자체는 이번이 겨우 두 번째.
그럼에도 여러 장비가 전보다는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다.
그간 준비를 꾸준히 해 둔 덕분이다.
“세척부터 하겠습니다.”
보통은 생리식염수로 저압 세척(low pressure)을 한다.
생리식염수라고 하면 어려운 느낌이 드는데 쉽게 말해 소금물이다.
멸균 상태로 만든 소금물로 유호가 꼼꼼히 저압 세척에 들어갔다.
‘참 쓸모 있단 말이야.’
“기본적인 세척은 종료되었습니다.”
유호의 말에 진천희가 메스를 들었다.
변연 절제술.
오염되거나 죽은 연부 조직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피하지방과 근막은 피가 좀처럼 닿지 않는 곳이다.
자칫 세균의 온상이 되는 곳이기에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철저하게 제거하는 편이 좋았다.
‘보통 근육을 볼 때 경도(consistency), 색(color), 출혈 능력(capacity to bleed), 수축도(contractility). 이 4가지 기준(Scully’s 4C)으로 확인하지만…….’
막상 임상에 들어가 보면 같은 환부도 의사마다 판단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책이나 사진만으로는 익힐 수 없는 영역이다.
진천희의 경우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간단했다.
‘환자는 오행단의 화기를 마지막까지 섭취했지.’
진천희는 화기를 근막에 보냈다.
진기의 흐름을 따라서 근육의 오염도가 느껴졌다.
화기가 강하게 부딪치고 있는 곳은 오염된 조직이다. 반대로 화기가 가지 않으면 죽은 조직이었다.
‘이렇게도 응용이 가능하네.’
오행신공을 배울 때 익힌 응용법이다.
그것을 외과술에 결합하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진천희의 손끝이 마치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