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2
제 571화
‘초콜릿은 진즉 도착했겠지?’
의각을 나서기 전에 남만에서 잘 말린 카카오 빈을 받아 초콜릿을 만들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지만 시간은 금방 가더라.
그렇게 완성된 초콜릿은 그리 양이 많지는 않았다.
맛보기로 한두 개 먹었는데 고향인 지구 생각이 나서 좋았다.
스승님과 유호도 잘 먹었고.
그래서 표국에 의뢰하여 동생들과 친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마웠던 분에게 보냈는데.
입에 맞으셨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먹을 것도 넉넉하게 들고 올걸.’
이런 날씨일수록 생각나는 게 초콜릿이다.
그랬다.
어느덧 저 멀리 호수 최북단으로 향하자 이제 높고 거대한 산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화산 지대의 열 때문일까? 눈 덮인 산에 드디어 나무며 풀이 보이기 시작했고.
산 중턱에 거대한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해빙궁이군요! 이름 그대로 거대한 왕궁처럼 생겼네요.”
공손영도 한마디 덧붙였다.
“화산 지대 위에 자리를 잡았는데 저기는 좀 덜 추울까?”
그 말에 왕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곳도 온돌 많이 쓰네. 이런 곳까지 보타 장인들을 모셔 와서 온돌 설치할 정도면 말 다 하지 않았나?”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밤에 얼어 죽을 온도와 낮에도 얼어 죽는 온도인 곳은 또 다르니까요.”
그 말에 공손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나요?”
“으음. 한번 들어가 보면 알겠군.”
한빙은 그렇게만 답했다.
건축물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여기가 단순히 성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그 규모가 웅장하기 이를 데 없었고.
북해빙궁 자체가 흡사 하나의 도시와도 같았다.
실제로 북해빙궁 사람들 외에도 아이샤 왕국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이샤 왕국의 언어를 썼다.
왕자가 말했다.
“엄연히 말해 북해빙궁도 아이샤 왕국 영토에 속해 있는 셈이지. 북해빙궁의 궁주는 대대로 공작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네.”
공손영이 말했다.
“도시 이름은 화 제국에서는 백호시(白湖市)라고 하더라고요.”
하얀 호수의 도시라는 뜻.
당연히 도시 이름은 따로 있다.
세베로바이칼크스(Северобайкальск)라고.
“잘사네……. 단순한 무림 문파가 아닌데?”
공손영의 말에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 이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다 보니 사실상 작은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부득불 작위를 내린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고.”
그 말에 진천희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화 제국에서는 군벌 수준이네. 이 동네식으로 하면 영주 그 자체고.’
실제로 작위까지 내렸다.
새외라서 그런지 사실상 자치권이 있는 귀족 취급을 해주는 셈.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제쳐놓더라도 이들이 사병을 동원하는 것만으로도 꽤 큰일.
물론 사병을 이끌고 남하하면 아예 화 제국 차원에서 전쟁으로 대응할 테니, 그렇게 많은 숫자가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게다가 문파들의 싸움과 국가 간의 전쟁은 다르지.
문파들의 싸움의 경우 상대 문파를 멸문시켰다고 해서 그 동네 지역을 지배하거나 할 수는 없으니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세권과 행정권이 없기 때문.
해당 문파가 가진 사업권과 이권, 보유했던 토지 정도는 얻겠지만 결국 강호에서 조세권과 행정권은 황제가 갖고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이다.
가끔 큰 공을 세우면 의국백 같은 자리를 하사하는 게 전부고.
어찌 보면 그게 그나마 강호인들이 군벌이 되는 걸 막는 체계라고 할 수 있겠지.
‘여러모로 골치 아프네. 그래도 아이샤 왕국과 이번에 조약을 맺게 돼서 다행이지. 아이샤 왕국 자체가 어떤 군사적 액션을 할 일은 이제 적어도 이십 년 정도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백호시 안에 들어섰다.
백호시 자체적인 성벽은 없다.
산 중턱에 북해빙궁이 자리하고 있고, 그 산 아래에 도시가 있을 뿐.
“어찌 생각하나? 북해빙궁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좋겠나?”
진천희가 고개를 지었다.
“일단 슬슬 밤이 오고 있으니 객잔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북해빙궁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좋은 생각이네.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니.”
한 가지 더 이유가 있기도 했다.
‘북해빙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알아봐야겠어.’
이런 극지는 개방이나 하오문에서 정보를 캐내기 힘들다.
애초에 거지는 얼어 죽는 동네고, 술집에서 중원인은 너무 눈에 띄는 터라 더욱 그랬다.
어찌 보면 깜깜이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한 조사도 없이 궁 안으로 들어가면 늦다.
그 전에 이곳의 판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전 조사를 해야 할 터.
진천희는 피풍의에 달린 곰돌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는 엄숙, 근엄, 진지하게 주변에서 하는 말들을 들어 보려 했다.
숙소를 알아보러 돌아다니는데 왕자는 밖에 나온 게 즐거운지 신이 나서 말했다.
“백호시는 교역의 중심지이지. 뭐, 중심지라고 하기에는 여기 말고는 도시가 없다 보니 그리된 거네만.”
“이 위로 사람 사는 곳이 더 있다고요? 미친.”
공손영이 투덜거렸다.
“뭐, 중원인이 견디기 힘든 추위이긴 하지. 여기서 호수에 배를 띄워 서남 방향으로 가면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도시들이 나오네. 그곳과 교역을 하지. 그렇다고 자네가 있던 항주 같은 도시를 생각하면 안 되네만.”
“인구수부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렇지. 여하튼 상업이 발달되어 있고, 호수 면에는 배도 제법 정박해있지. 호수지만 항구의 역할도 하는 거라네.”
“신기하네요. 호수가 이렇게 크면 그리되는군요.”
“그런 셈이지.”
그리 말하며 적당한 객잔을 찾으러 계속 이동했다.
그러다 문득 골목 끝에 사도련 쪽 무인들이 보였다.
사도련의 무복을 입었다고는 하나 그들도 털옷으로 똘똘 감고 있어서 기실 알아보기 힘들고. 검집을 보고 알아보았다.
특히나 이 동네에서 중원인 무리는 너무 눈에 띄니까.
‘흐음, 동맹 때문에 온 건가? 정사대전의 밑 준비가 아주 착착 흘러가는구만.’
새외의 북해빙궁이 사파에 들어가게 되면 무림맹의 타격은 클 터.
‘애초에 문파가 토지권과 조세권을 처먹고 있는 게 말이 되나? 대체 왜 이런 놈이 왕국을 자처하지 않고 사파에 들어가는 거야?’
진천희는 생각했다.
우리 스승님은 제국에 공을 크게 세워 의국백이 된 거니까 우리 스승님은 깍두기라고.
아무튼 토지권&조세권 있는 놈들은 문파가 아니라 군벌로 분류해서 이런 정사대전에서 끼워주면 안 된다고.
진천희가 내로남불을 돌리는 사이, 사도련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쪽도 진천희를 바로 알아본 모양.
“이 먼 곳에서 일광을 볼 줄은 몰랐소!”
문제가 있다.
저자는 진천희를 바로 알아보는데 진천희는 이놈을 모른다.
허나, 강호랜드 원투 데이 하는 게 아니다. 강호 짬밥으로 포권을 하고는 가볍게 웃었다.
“와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이라는 소리는 안 했다.
현원전단신공을 백날 돌려 봐도 이 새끼를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뵙겠소. 본인은 철무문의 철무백이라고 하오.”
철무문?
들어본 바 없는 무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보낼 정도면 제법 규모가 있는 곳이라는 뜻인데.
“사도련은 이번에 내부를 개혁하여, 사도팔문이 아닌 사도십이문이 다스리는 곳이 되었지. 우리 철무문은 새롭게 사도련의 간부가 된 문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오.”
현원전단신공으로 지존천마의 내용을 다 뒤져도 철무문에 대한 건 없다.
‘하필 이 타이밍에 나타났다? 단순히 나비효과로 보기에는 이상한데…….’
하오문의 인명사전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사마현이 만든 인명사전으로 깊은 정보는 없으나, 그래도 규모가 있다 싶은 자는 빠짐없이 수록했었다.
간부급이라면 필시 들어가 있을 터. 그럼에도 인명사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아주 작은 문파였다가 갑자기 뿅하고 커졌다는 뜻인데.’
이게 되나?
거기다 간부 자리를 화투로 딴 게 아닌 것이, 풍겨오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적어도 태양지체인 공손영과 비슷하거나 패를 숨기고 있다면 그 이상.
‘만약 신비문파로 산에 들어가 있다가 이제 봉문을 풀고 나온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사파 아닌가.
산에 들어가 고고하게 도 닦을 수 있는 성정이었으면 정파를 했지, 사도련을 들어갔을까?
그가 말했다.
“북해빙궁은 이미 본 련과 동맹을 맺기로 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구려.”
먼저 손을 쓴 건가.
허나, 진천희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하하하, 이 추위에 이 먼 곳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허나, 저도 스승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을 들고 왔으니 전해 드리는 게 제자로서의 도리지요. 그래도 초면임에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철무백 대협. 앞으로는 무명 좀 많이 들리겠군요.”
‘뭐 하나 알려진 적도 없는 네 녀석 말만 믿고 어떻게 돌아가냐.’라는 말을 우아하게 돌려 먹이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포권했다.
그 말에 철무백의 표정이 살짝 구겨진다.
“흠……. 소문대로 오만하구려. 뭐, 그렇다면야. 그러면, 다음에 다시 뵙겠소.”
그는 그것을 끝으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무리의 수는 대략 스물여덟 명 정도.
먼저 기다리거나 나중에 합류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많겠지.
“강한데?”
“네. 강해요. 그리고 도발에 안 넘어가네요. 뭐 좀 캘 수 있나 살짝 긁어봤는데 말이죠.”
“……넌 진짜. 그 성격 좀.”
“왜요? 정사대전을 해먹자고 동맹 맺으러 다니는 놈한테 이 정도도 못 먹여요? 지금 떼로 움직이면서 전쟁하자는 건데.”
“그게 강호이고 혈풍이지. 아니… 아니 됐다. 이 성격 더러운 의원 놈아.”
“푸헤헤헤.”
진천희는 일부러 푼수처럼 웃었다.
“어쨌거나 전혀 제 도발에 응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걸 보니, 그건 그거대로 짐작할 게 많긴 하네요.”
“음?”
공손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옆에서 잠자코 팔짱 끼고 있던 한빙 왕자가 물었다.
“그래서 제갈가의 유일한 제자는 어디까지 본 거요?”
“으음. 그렇게 얼굴에 금칠을 하시니 오히려 부담스럽네요. 그냥 별것 아닙니다. 강하고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문파인데 과묵한 성정인 놈이 사도련 사절로 왔다. 그런 놈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왔다?”
“그래서?”
“그것보다는 비밀스러운 대형 사이비 종교에서 사람을 파견한 게 더 현실적이겠다 싶었습니다.”
“마교? 혈선교? 어디를 짐작하나?”
“…….”
진천희는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화제를 돌릴 뿐이었다.
“그냥 좀, 골치 아프겠다 싶네요.”
그렇게 일행은 여관을 잡았다.
* * *
여관을 잡아 요리를 시켜 먹었다.
양젖을 끓여 만든 요리인데 현대의 스튜와 비슷한 맛이 났다.
여기에 장작에 구운 양꼬치까지 합쳐지니 진미였다.
양꼬치에서는 고기 누린내가 났는데 신기하게도 비리지 않고 도리어 감칠맛이 났다.
무슨 향신료를 쓴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
“크으, 전부 술안주로 그만이구만. 북해빙궁은 주도를 아는 사람들이야. 암!”
공손영이 신나서 한 손에 양꼬치를, 다른 손에는 술잔을 들고 주거니 받거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이, 은인 꼬맹이. 표정 좀 풀어. 아까부터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해?”
“아, 누나.”
“당장 답 나오는 일이면 해결하러 가고. 그거 아니면 그냥 즐겨. 이렇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죽상 짓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그건 그러네요.”
“그런 의미에서 술!”
그러며 물잔에 술을 콸콸콸콸 따르는 게 아닌가.
“누나!”
“날도 추운데 몸 좀 덥히자. 그러다가는 될 일도 안 되니까.”
어휴.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결국 공손영이 따라준 술을 삼켰다.
‘크으. 누나랑 다니면 나도 술이 느니, 원.’
이래서 근묵자흑이라고 하던가.
주당과 함께 여행하면 같이 주당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