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4
제 573화
‘북해빙궁이 사도련과 손을 잡고 전쟁에 나섰을 경우 손해가 난다는, 단지 그 정도의 계산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은데.’
뭔가가 더 있지 않으면, 북해빙궁을 멈추기 어려운 상황.
‘비무를 요청해서 되는 대로 전부 쓰러트려 버릴까… 깔끔하게 전치 12주 진단이 나오게 한 백 명쯤 두드려 패면…… 아니. 그 전에 제지당하겠지.’
어느 순간 무림인스러운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건가.
‘참자. 나는 의원이다. 저렇게 되면 내가 다 치료해야 할 거 아니야. 여기는 종교상 부술도 쉽지 않아요. 이 망할 동네… 아니, 아니. 심신을 평안하게. 피스, 이너피스…….’
진천희는 불경을 외며 심신을 다스렸다.
“정보 수집이 필요하겠네요.”
“정보 수집인가…….”
“예. 일단, 백호시 저잣거리에서 이 도시에 뭔가 문제가 없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어차피 바로 저를 부를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은혜를 입히겠다, 뭐 그런 거야?”
“그런 셈이죠.”
공손영의 질문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빙궁주와의 만남은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다시금 진천희와 만나 줄 것이다.
적어도 며칠의 시간은 있는 셈이다.
저들 북해빙궁이 필요로 하는 것 중 뭔가를 쥐여줄 수 있다면, 사도련과의 동맹이 깨지게 만들 수 있으리라.
“흐음. 나도 자네를 돕겠네. 생명의 은인에게 이 정도 도움을 못 줄까.”
“어… 하지만 왕자님께서 저잣거리를 돌아다니시는 건……?”
“궁 안에도 나름대로 아는 이들이 있네.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신 것은 스승님이지만, 스승님 외에도 사형과 사저들이 나를 가르쳤지.”
북해빙궁 내의 인맥.
그게 있다면 확실히 궁내에서 정보 수집을 하는 데 용이할 터였다.
“그러면.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나는 상가들을 돌아볼게! 그래도 내가 하던 가락이 있잖아!”
공손영이 씩씩하게 말했다.
사업은 모르겠지만, 사람 사귀는 데 있어서는 그녀도 상당한 능력자.
현대로 치면 이른바 슈퍼 인싸인 그녀라면, 상가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부탁드릴게요.”
“맡겨 둬!”
그렇게 일행은 흩어졌다.
* * *
백호시는 제법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였다.
호수에 인접한 이 도시에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존재했는데, 숙신족과 같은 부류의 유목민 출신 상인에서부터, 화 제국에서 넘어온 이들까지 다양했다.
‘여기 특산품이 청광수정이구나.’
청광수정.
가만히 내버려 두면 청색의 빛을 희미하게 내는 귀물이라고 한다.
저 거대한 대설산의 한쪽에 있는 광산에서 채굴된다고 하는데 스스로 빛을 내는 야광석과 같은 물건이었다.
야광석이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듯이 이 청광수정도 마찬가지로 비싸다.
다만 밝기는 야광석보다 약하다고.
청광수정 때문에 각지의 상인이 몰리기도 하고,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가려는 이들의 중간 경유지가 되기도 했다.
밖으로 나온 진천희는 저잣거리를 걸으며 그런 정보를 귀로 생생히 들었다.
무공을 익혔기에 사람들의 말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
그렇게 정보 수집을 하면서 북해빙궁을 나서기 전에 미리 소개장까지 받은 치료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제국에 의원이 있고, 다두 왕국에 치료술사가 있었듯이.
아이샤 왕국에는 치료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진천희는 이 지역의 의료 수준도 알아보고, 혹시라도 북해빙궁이 필요로 할 만한 정보가 없는지 알아보고자 하고 있었다.
굳이 치료원으로 정한 이유는, 그래도 진천희가 의료인이니 나름대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치료원에 오기 위해서, 일부러 왕자를 통해서 소개장까지 받았으니, 이거면 문전박대는 받지 않으리라.
“저기구나.”
저 멀리.
제법 멋들어진 4층 높이의 석고 건물.
지붕에는 수호교의 상징이 걸려 있는 이 도시 최고의 치료원이 보였다.
치료원을 운영하는 사람은 본래 아이샤 왕국 출신이 아닌 저 세림 교국 출신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제르맹이라고 했다.
그렇게 제르맹의 치료원으로 걸음을 옮기던 진천희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
으슥한 골목길 사이.
그곳에, 아주아주 익숙한 눈에 띄는 청년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마교 소교주 여하륜!
그는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눈만 돌려서 진천희를 힐끗 보더니 전음을 보냈다.
-오랜만이다. 형.
그림자 속에서 여하륜 특유의 어둡고 정적인 공기만이 느껴진다.
-어… 오랜만이야. 그런데 네가 여기 왜 있어?
-임무가 있으니까. 일단 자리를 옮기지.
그러고서 여하륜은 골목 사이로 걸어간다.
진천희는 급히 그 뒤를 따랐다.
* * *
골목 안쪽은 좁고, 미로 같았다.
오래된 도시의 특징.
항주도 마찬가지지만 건물이 무너지고 세워지고를 반복하다 보면 이렇게 도시 전체가 거미줄처럼 이어지게 된다.
진천희는 여하륜을 따라 안으로 가다가 낡은 집의 조그마한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교에서 만든 안가(安家)였다.
“아… 춥다. 집 안인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형이 투덜거리자 동생이 피식 웃었다.
“온돌 보급이 빨리 되고는 있지만 다 채우려면 아직도 멀었거든. 여기는 가난한 골목이라 더 그럴 거다. 형.”
“그동안은 어떻게 버티지?”
“그나마 화산 지대다 보니 다른 동토보다는 따뜻한 편이야. 이리 앉아.”
진천희는 여하륜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독주 두 잔을 뜨끈하게 데워서 하나씩 나누었다.
보통 열양기로 데운다고는 해도 이렇게 빠르게 준비 동작도 없이 사용하진 않는다.
흡사 이것은 내공이 아닌 의지만으로 데운 듯해서 그 경지를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진천희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주인공이고, 보통 사람의 이지를 아득하게 벗어난 강자니까.
“잠깐, 잠깐만.”
진천희가 들고 온 약함에서 뜬금없이 생선의 말린 꼬리 비슷한 게 나왔다.
그러더니 그걸 술 두 개에 넣고 다시 본인이 열양기로 끓이는 게 아닌가?
“그게 무슨……?”
“도미 지느러미 말린 거. 약으로도 쓰는데 술에다 담가서 끓이면 또 진미거든. 나는 그렇게 술은 좋아하지 않지만. 공손영 누나가 엄청 맛있게 먹더라고.”
“……형. 나는 맛을 못 느낀다.”
“그래서 그래. 술에 가향을 하는 것도 못 느끼나 해서. 일단은 또 혈향 같은 냄새는 잘 맡잖아?”
절맥처럼 여하륜이 맛을 못 느끼는 것도 현대 과학으로는 규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나.
“하. 형은 여기까지 와서 내 혓바닥부터 챙기는 건가.”
“일단 먹어 봐.”
“…….”
후룹-
여하륜이 한 모금 삼키더니 한숨을 쉬었다.
“식감만 느껴지는군. 형이 원하는 그런 맛은 전혀 아니니까.”
“……음… 이 정도로는 안 되나. 그러면 혈도 좀 내놔 봐. 아니, 내가 가까이 가야겠다. 가만히 있어.”
그러고는 장침을 뽑아들었다.
지난번처럼 일시적으로 맛을 느낄 수 있게 조처하고는 다시 잔을 건넸다.
후릅-
“맛있군.”
“그래. 헤헤헤.”
진천희는 맛있게 먹는 여하륜이 귀여운지 형님 미소를 지었다.
여하륜도 오랜만에 느껴지는 맛을 한참 음미했다.
“보내준 사탕은?”
“하나 빼고 다 먹었어.”
“괜찮았나 보네. 하나는 힘들 때 먹으려고 남겨 놨구나?”
“음.”
여하륜은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렇게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진천희가 물었다.
“그래서. 너희는 왜 여기에 있어?”
단순히 여하륜뿐만 아니라 마교 전체를 묶어서 하는 질문.
후릅-
여하륜은 형이 주는 술을 음미하고는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두 가지 이유로 여기 와 있다.”
“혈선교?”
“그래. 과연 형이군. 바로 눈치챘어.”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러면 두 번째는?”
“사도련과 북해빙궁의 동맹이 유지되도록 돕는 것.”
“…….”
“놀라지 않네. 예측한 건가?”
“혈선교의 방식과는 또 달랐으니까. 그리고 결국 정사대전을 원하는 세력 중에 마교도 포함되어 있을 거고.”
천마는 피를 원한다. 그녀는 더 큰 피를 원했다.
결국 혈선교와 다를 뿐, 그녀 역시 마교가 천하를 쟁패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피로 강을 만들어야 함을 안다.
“고수들이 너무 많이 살아 있다 하시더군.”
“그래?”
“응.”
진천희는 턱을 긁적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철무문의 철무백?”
“……거기까지 파악했나?”
여하륜은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젊은 신진 고수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만약 산에서 수련하고 왔다고 치더라도 굳이 사도련에 가는 것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음?”
“긁어 봤는데 왠지 욕을 듣는 게 익숙한 사람 같더라. 이상하지? 분명 그렇게 강한 재야 신진 고수인데 욕을 많이 들어 본 것 같으니 말이지.”
“철무백이 너무 침착했군. 간자로서는 일류이나, 그 일류인 점이 도리어 독이 되었어.”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야 처음부터 의심하고 들어갔으니 그런 거고. 사도련 입장에서는 또 달리 보였을 거야.”
“…….”
여하륜은 생각에 잠기더니 술을 한 모금 더 삼킨다.
진한 주향과 도미살의 고소한 향.
그리고 혀끝부터 위장까지 뜨끈하게 데워지는 독주의 감촉을 음미했다.
‘형은 변함이 없군. 아니, 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걸까.’
그 말대로 사도련은 철무백을 의심하지 않았다.
계파 역시 과거 사도련에 소속된 무인이 나가서 만든 문파로, 밀수를 중심으로 하는 곳.
장부상으로 깨끗한 데다가.
과거 사도련에 소속된 개파 조사도 기실 마교 소속인 무인으로.
사도련에 잠입해 있다가 적당한 때에 나온 셈.
결국 사도련 입장에서는 당연히 친척과도 같은 사이이니 그것을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몇 가지 특징만으로 간파해냈다.
그만큼 이제 강호의 생리에 익숙해졌다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철무백이 간자라는 사실을 이렇게 쉽게 확인시켜 줘도 돼?”
그 말에 여하륜은 피식 웃었다.
“괜찮다. 사도련과의 일이 어그러지면, 그쪽 소교주 놈이 곤란할 테니 나야 상관없지.”
“오호?”
“물론 형이니까 말해 주는 거고. 다른 놈이었다면 이 비밀을 아는 순간 죽여서 입을 닫게 해야지.”
‘음, 천마님. 댁네 리틀 천마가 이렇게 교의 비밀을 술술 불고 있네요.’
게살탕수값은 이제 갚은 셈 치겠습니다.
천마신공이요?
그건 댁이 억지로 떠넘기신 거고.
진천희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역시 콩가루 집안이구만. 소교주끼리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네. 하긴, 어차피 차후 천마는 한 명뿐이고. 살아남은 일인이 다음 천마가 되기 때문인가?”
“뭐, 그런 셈이지. 그나저나 형이 올 줄은 몰랐는데. 형이 왔다는 건 사도련과의 동맹을 방해하기 위해서인가?”
“맞아. 쓸데없이 서로 죽일 필요는 없잖아. 아차차차. 생각해 보니 안주로 괜찮은 게 있는데.”
그리 말하더니 약함에서 또 어포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