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5
제 574화
컹!
삐익!
황구와 뇌진이 왜 자기는 안 주냐고 벌써 난리였다.
진천희는 급한 대로 두 놈에게 하나씩 물려 주고는 어포를 열양기로 가열해서 종이를 접시 삼아 탁자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고소한 향에 여하륜이 한입 먹었다.
바삭-
“맛있네.”
“응. 그치? 많이 먹어. 너 살이 더 빠진 거 같아.”
“기분 탓이야. 형. 내 몸집은 더 커졌으니까.”
“아니야. 넌 여위었어. 이게 다 벽곡단 같은 거나 먹으니 그런 거지. 더 먹어.”
여하륜은 뭐라고 반박하려다 말고 형이 주는 안주를 계속 집어 먹었다.
맛있었다.
“어찌 되었건. 형이 평화를 원하는 건 알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어. 이미 철무백이 다 처리했더군. 나에게 내려진 두 번째 임무도 사실상 형식적인 것이었던 게지. 제대로 하달된 정보가 없다. 미안하다.”
“너야 마교 내에 적이 많으니까 어쩔 수 없지.”
두 번을 참아 살인을 막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존천마의 혈행을 조금 덜어준 정도.
애초에 인간과 감성 자체가 다른 저놈이 뜬금없이 마교 내에서 정치질을 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제아무리 일카나가 부관으로 붙는다고 해도 여하륜은 여하륜.
본디 무협지 주인공이란 주변인들에게 이질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나.
“그래서 첫 번째 임무인 혈선교는 찾았어?”
“마교 내에서 혈선교 간자들이 대거 발견되었다. 천마께서 직접 처죽이셨지.”
오, 꽤나 대로하신 모양이군.
그녀는 선악을 떠나서 사는 양반이지만, 배신자는 용납지 않는 분이니까.
“그래도 직접 손을 쓰실 줄은 몰랐네.”
지존천마에서도 당연히 혈선교가 마교 내부에서 분탕치는 내용이 있긴 했다.
그건 천마가 승천을 준비하며 폐관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다.
천마께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준비에 들어간 후에나 일어설 놈들이 지금 발견되었다?
‘하, 하하하. 이건…… 역시 내 영향 때문인가. 일카나도 살아 있고…….’
나비효과가 그렇게 갔나.
여하륜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혈선교를 추격하며 찾은 곳이 이곳이다. 이곳에 혈선교가 제법 많이 숨어 있더군.”
“그래서 찾았어?”
후릅-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여하륜은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꼬리를 찾기 힘들다는 건 깊게 숨어 있다는 뜻이고, 아직은 여기가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해. 너무 마음 쓰지 마.”
“형. 너무 위로할 것 없어.”
“위로가 아니야. 어찌 보면 더 커지기 전에 일찍 온 셈이니까.”
“그건 책사로서의 감인가? 아니면, 형 특유의 기묘한 예측인가.”
그 말에 진천희가 살짝 놀란 눈으로 여하륜을 바라보았다.
‘역시 주인공답게 감이 좋단 말이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가 지존천마 속 세계이고 나는 독자였는데 밖에서 갑자기 들어왔다고.
그리고 내가 읽은 소설에서 너는 주인공이었고.
이 세계는 널 중심으로 돌아가더란 이야기를 어찌할 수 있겠나.
진천희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혈선교는 어떻게 찾는 거야?”
“혈선교는 혈선을 숭배하는 광신도들. 혈선진기를 찾아내면 된다.”
진천희는 짐짓 과장된 표정으로 궁금해했다.
“호오? 혈선진기라. 그러니까 그건 어떻게 찾아내는데?”
“이 녀석이 찾아내지.”
여하륜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방구석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애옹-
작은 고양이였다.
그것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고양이.
진천희가 말했다.
“영물이네?”
“음, 바로 맞추는군. 흑설묘다.”
컹!
황구가 낮게 짖었다.
‘이 녀석, 흑설묘 냄새 못 맡았군.’
요즘 이래저래 체면이 상하고 있는 황구다.
그만큼 흑설묘가 보통 영물이 아니라는 뜻이겠지만 황구는 그래도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
진천희는 황구의 머리를 쓸었다.
흑설묘.
마교 내에서 손꼽히는 영물 중의 하나.
지존천마에도 나왔었다.
여하륜의 애완동물로서 적을 추적하는 데 쓰이는 녀석이다.
애옥옹?
흑설묘는 걸어오더니 진천희의 손가락에 뺨을 부비적거렸다.
여하륜이 말했다.
“신기하군. 나 외에는 아무도 안 따르는 녀석인데.”
“맛있는 냄새가 나서 그런 것 같아.”
컹!
삐익!
정작 황구와 뇌진은 흑설묘의 등장이 달갑지 않은지 한소리씩 했다.
“너도 육포 먹을래? 열양기로 구웠거든.”
그리 말하며 하나 주니까 순식간에 와구와구 삼키는 게 아닌가.
크릉!
삑, 삐익!
육포까지 나눠 주자 더 못마땅한 모양이다.
‘아이고. 봐줘라. 너희들은 내가 따로 맨날 맛난 거 먹여 주잖니?’
욕심도 많은 두 영물이었다.
진천희는 그렇게 흑설묘에게 육포를 주고는 말을 이었다.
“북해빙궁은 요즘 어때?”
“전염병이 있어. 물론 아직 퍼졌다고 하기에는 걸린 사람이 많지 않고, 또 전염병이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전파 방식이 이상하긴 하지만.”
전염병?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진다.
여하륜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아직 환자가 많은 것은 아니기에 북해빙궁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대처도 하고 있고.”
“병명은?”
진천희의 말에 여하륜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모르겠군. 이곳 사람들은 ‘혼란열병’이라 부르던데.”
“혼란열병. 증상은?”
그 말에 여하륜이 으쓱했다.
“나도 거기까지는 모르겠군. 치료원에 모아 두었다고 하니 가 보는 건 어떤가?”
“고마워.”
진천희가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진천희는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살짝 고민하다 천장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인사했다.
“일카나, 오랜만이에요. 임무 중인 거 같아서 인사하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오랜만이니까.”
그러자 어이가 없다는 듯.
가면을 쓴 누군가가 툭 내려왔다.
“역시 눈치채셨군요. 형제님.”
“그건 황구도 눈치챘거든요.”
킁!
일카나가 투덜거렸다.
“나보다 흑설묘가 더 은신을 잘한다는 건가. 아, 조금 자존심 상하네요.”
“그럴 거 없어요. 참참!”
그러고는 약함에서 까만색 무언가를 꺼냈다.
지구에서는 초콜릿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었다.
“당 떨어질 때 드세요. 이 지방에서는 당분 보급하는 게 어려우니까.”
“고맙습니다.”
“하륜아. 너는 여기 있어서 아직 안 받았겠구나.”
“음?”
진천희는 간식 상자를 한번 바라보았다.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 놓고 남은 것.
힘들 때 먹으려고 아끼고 아낀 것이었다.
“…….”
망설임은 짧았다.
“이거 먹어. 너도.”
다시 탁자로 걸어가 초콜릿을 내려놓았다.
“마교로 돌아가면 이미 도착해 있겠지만 상했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 먹어두는 게 좋겠다.”
마교로 갈 때는 다시 이별이니 도착해서 받는다고 한들, 맛을 느끼기 어려울 거고.
진천희는 그 말을 삼켰다.
“이건 뭐지?”
“형 고향에서 당 떨어질 때마다 먹었던 거.”
“색이 검군.”
“맛있어. 공손영 누나가 하나 먹더니 자꾸 뺏어 먹으려고 해서 사수하느라 혼났다.”
알파벳 찍힌 초콜릿.
지구에서 먹은 걸 재현해 보려고 애를 써 봤지만 좀처럼 각이 안 살아서 포기했다.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니 좀 이 무림 월드도 고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신을 보낼 때 입에 맞았으면 좋겠다고 굳이 쓴 건 좀 부끄럽지만 역시.
……만든 사람의 미련이겠지.
‘잘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 초콜릿. 지구에는 흔하지만 이제 여기에는 나밖에 없으니까.’
진천희는 씨익 웃었다.
“음. 역시 마지막 하나는 이렇게 쓰는 게 최고지!”
형의 마음을 느낀 걸까?
여하륜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겠다. 형.”
“그래.”
그렇게 인사하고는 마지막 한 조각의 미련을 털어 버리려는 듯 다시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게 아닌가.
그런 진천희의 등을 한참 보다가 일카나가 말했다.
“형제님은 어째 달라진 게 없군요.”
“…….”
그 말에 여하륜은 술을 후릅 마셨다.
다시 내공을 쓰면 맛을 못 느끼는 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감각을 최대한 많이 느껴야 한다.
인간성을 지탱하는 것은 도덕도, 양심도, 감수성도 아니라 먹고, 마시고, 통증을 느끼고, 향을 맡는 사소한 감각에서 나오니까.
여하륜이 형이 만든 술을 조용히 음미하고 있을 때 일카나가 물었다.
“그런데 마교 형제님. 큰 형제님에게 어쩌면 전염병 뒤에 혈선교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은 건 무슨 이유죠?”
그 말에 여하륜이 답했다.
“말하든 하지 않든 형은 환자를 치료하러 갈 거니까. 그리고 그런 형을 지키는 건 아우인 내가 할 일이지. 어차피, 형이 환자를 치료하면… 혈선교 놈들이 튀어나올 거니까.”
“……그렇군요.”
“괜한 말로 의원의 마음을 심란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그 말에 일카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진천희 형제님은 이미 눈치 까지 않았을까요?’
위험한 곳에 자진해 가서 사지를 칼날에 갈아 버리고 있는 형이 걱정되어 굳이 말을 하지 않은 건 이해한다.
하지만 하필 상대가 진천희라는 게 문제.
그저 예쁘고 맹한 것 같아 보여도 가끔 보여 주는 심계가 범인(凡人)을 아득하게 뛰어넘지 않던가.
“뭐, 우리 선에서 처리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마교 형제님.”
* * *
‘전염병은 커졌다고 생각할 때가 늦지.’
과거 혈선교가 전염병을 일으키려 한 일이 있었다.
수원지(水源池)를 오염시켜 콜레라를 퍼뜨리는 걸 보고 그야말로 기함했었지.
다행히 그때는 무림만의 질병이 아니기에 진천희 자신도 대응할 수 있었다.
‘만약 이번에는 무림만의 고유 질병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필 직전에 치료한 환자가 구양절맥이기에 더 걱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북해빙궁과 아이샤 왕국의 미래를 알기에 의원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치료원 앞에 선 진천희는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는 미리 준비한 장갑을 꼈다.
황구과 뇌진에게는 잠시 멀찍이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물에게도 감염되는 병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치료원 주변에는 빈민들의 천막이 쳐져 있었다.
누군가가 아이를 끌어안고 발아래에 무릎을 꿇는다.
이제 제법 아이샤어를 익힌 진천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공자님, 제발. 우리 애가 먹을 밥이 없습니다. 뭐라도 주시면 제발…….”
다행히 이 근방은 지열과 강수량이 따라준 덕에 농사를 짓거나, 또는 거대한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기에 식량 걱정이 없다 들었다.
물론 그 농사가 한랭 기후에 맞는 작물들 중심으로나 가능하고 대부분은 사냥과 물고기로 충당하지만, 그래도 부족함은 없다 했는데.
그 많은 식량이 어디 갔나 생각하면서도 일단 손을 움직여 급히 행낭에서 작은 죽통을 꺼내 건넸다.
진천희 입에서도 서툴지만 아이샤어가 튀어나왔다.
“이대로 끓여 드시면 죽이 됩니다. 당장 굶어 죽는 건 면할 수 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북해빙궁이 지배하는 이곳은 빈부 격차가 유례없이 큰 곳이다.
항주와 비교한다면 항주는 그래도 관리가 파견되어 조세와 군납을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구휼미를 뿌린다.
그리고 다행히도 기후가 이곳처럼 가혹하진 않다.
이곳은 발가락 다섯 개가 다 있는 빈민이 거의 없을 지경.
그 많은 온돌을 수입해 갔지만 정작 여하륜의 안가에는 온돌이 없다.
어디에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고 있다.
북해빙궁의 무인들 집.
그 으리으리하게 거대한 집에 주인 없는 손님용 방에 깔리겠지.
심지어 사람 집보다 커다란 애견 방을 따로 만들어놓고 거기에 온돌을 깐다고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