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6
제 575화
‘여기 사람들 평균 수명이 짧은 게 단순히 기후나 기생충 때문만은 아니구나. 그리고 북해빙궁 사람들은 평균에서 빼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인 거고.’
스승님이 말하지 않은 것을 진천희는 깨달았다.
어차피 의원.
정치가도 사상가도 아니다.
새외까지 와서 남의 문파 내정에 간섭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저 눈앞에 있는 환자를 살리고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버거우니까.
‘후우. 일단 눈앞의 일을 해결한다.’
치료원 병사가 진천희를 막았다.
아무리 봐도 중원인의 이목구비와 머리 색.
그리고 입고 있는 옷도 비록 장식이 없다고는 하나, 분명 비싸 보이는 옷이었다.
병사는 빈민들 대하듯 발로 차는 대신 진천희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전염병 환자가 들어 있어 출입을 제한하는 중입니다.”
진천희는 북해빙궁의 소개서를 내밀었다.
병사는 사무적으로 답했다.
“들어가시지요.”
딱 들어도 책임지기 싫다는 말투였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치료원 안쪽에 병상이 가득했다.
환자의 대소변과 땀, 수많은 냄새가 뒤섞여 고약한 악취를 만들었다.
환자들의 신음이 가득했는데, 어떤 환자들은 아예 전신을 묶어 놓고 입까지 막아 놓았다.
그런데 정신착란이 왔는지 게거품을 물며 몸을 떤다.
“여기 환자가 응급……!”
도와 주는 치료사들이 없다.
각자 텅 빈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제야 진천희는 깨달았다.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구나.’
고칠 수 없는 전염병이라면 으레 이렇게 한곳에 모아서 격리하고 죽을 때를 기다렸다가 시체를 태운다.
그동안 약을 주든 물을 주든 어차피 고칠 수 없기에 자원 낭비라고 생각하고 방치하기 마련.
진천희는 급히 다가갔다.
환자의 혈을 짚어 발작하는 것을 막고는 목부터 난 피부 발진을 확인했다.
기이하게도 발바닥에는 발진이 나지 않았는데 몸은 고열이 나서 뜨거운 상황이다.
옆에 있던 환자가 말했다.
“죽게 놔두지 그랬소.”
그 순간, 텅, 텅!
혈을 짚었던 환자가 다시 사지를 떨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다들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신참 치료사라 그런가 아직 순진하구만.”
진천희는 아예 아혈을 짚어 발작하던 환자를 잠시 진정시켰다.
하지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혈도의 문제가 아니라 병에 의한 신경계 발작으로 보이기에 아혈을 짚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죽지는 말라고 하는 처치에 불과했다.
“옆의 환자님도 발바닥에 발진이 없으십니까? 아, 손바닥도요.”
“신기하군.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천희는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가려운 부분은 없는지, 발진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오한, 발열, 근육통은 없는지.
다 나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이 주 정도면 버티는 사람은 살아서 나가고, 못 버티는 사람은 그 안에 사망하네. 자네가 기절시킨 저치는 늙어서 못 버틸 거야.”
“노인들이 많이 사망하는군요.”
“그런 셈이지. 애들도 잘 죽고.”
여기에 추가로 진맥을 하다가 진천희는 생각했다.
‘발진티푸스 같은데……?’
현대라면 손쉽게 피검사를 하면 된다.
그것만 확인만 할 수 있어도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오독문의 악몽이 떠올랐다.
‘일단 종합해 보면 발진티푸스가 맞는 거 같아. 한랭 지역에서 출몰하는 전염병이기도 하고.’
발진티푸스.
그냥 뭉뚱그려 리케차(Rickettsia)라고도 부른다.
이름만 보면 장티푸스 사촌 같아 보이겠지만 전혀 다른 병이다.
한랭 지역에서 주로 발병하며, 그 원인은 작은 벌레인 이(蝨) 때문.
발진티푸스에 감염된 이가 사람의 몸을 물면서 병을 옮기는데, 그 이가 만들어 내는 분변이 혈관에 들어가 감염병을 일으킨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발진티푸스에 의해 러시아인이 무려 300만 명이나 사망했던 역사가 있고, 동유럽에 해당하는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지.
군인들 사이에서도 감염자가 폭증해, 세르비아에서는 15만 명의 병사가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나중에는 환자의 수가 거의 수천만에 다다르기 시작하는데, 치명률이 1~20%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해서 더 종잡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나이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
노약자와 어린아이에게는 치명적이나 젊고 건강한 젊은이에게는 치명률이 크게 떨어진다.
이 발작하고 있는 환자도 노인인 이유가 이것이었다.
‘1, 2주 정도 잠복기에 오한, 두통, 발진, 발열이 시작되고 발진은 몸통에서 사지로 퍼져 나가지만 열굴, 손바닥, 특히 발바닥에는 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
그 덕에 발진티푸스를 빨리 떠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이다음인데.’
면역력이 떨어지는 환자의 경우.
환청, 환각, 혼란, 헛소리 등의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추신경이 손상당했기 때문.
발진과 함께 이런 정신이상 증세까지 겹쳐지면 여기서는 보통 사망할 환자로 치고 있단다.
마침 여기는 추운 지방인데 또 완전히 얼어붙는 지역도 아니다.
호수가 따뜻해서 나름대로 적당한 온도를 갖추고 있다.
거기다 극심한 빈부 격차까지 더해지니 이가 자생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이가 사방에 붙어 번식하면서 병을 옮기는 거고.
‘이건… 스승님이 과거 치료했던 전염병과는 전혀 달라.’
항생제로 치료는 가능하다.
현대에 사용하는 항생제만큼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문헌에 따르면 페니실린으로 치료한 일화가 있고.
‘옛날에 심심풀이로 봤던 논문에 의하면 일곱 명에게 페니실린을 투여한 결과 한 명은 사망, 여섯 명은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했지.’
1946년도.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된 해외 논문을 방에서 인터넷으로 볼 수 있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싱글벙글하던 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다만 이게 발진티푸스를 치료해서가 아니라 병에 따른 추가적인 다른 감염들이 페니실린으로 치료가 돼서 면역 체계가 리케차(Rickettsia)와 싸울 힘이 나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이 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세균의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는 스트렙토마이신 쪽도 치료가 가능하리라 생각은 되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가 없으니 진천희도 확신할 수 없었다.
페니실린도 해외 문헌 사이트에서 놀다가 나온 거였으니까.
일단 지구에서는 소수의 아프리카 지방을 제외하고는 박멸한 병이기도 하고.
‘항생제…. 백린의각에서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지금 가지고 있는 걸로는 당연히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가 문제인 만큼 청결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 빨고 다 소독하고 다 씻겨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진천희는 원장을 찾아 움직였다.
원장실에 도착하니 마침 원장이 환자 한 명에게 기묘한 도구를 쓰고 있었다.
원장에게 다가간 병사가 뭔가 귓가에 속삭이자 원장이 그제야 진천희를 향해 유창한 중원어로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연금술사이자 치료사인 생 제르맹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진천희는 살짝 놀랐다.
‘지존천마에 묘사되었던 생 제르맹과는 인상착의가 다른데?’
동명이인인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 * *
원장실에는 해골 모형과 인체 모형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니, 이런 데 이것이?’
내장이 현대처럼 자세하게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석고로 비슷하게 깎아 만든 티는 났다.
진천희가 놀란 기색을 보이자 그가 답했다.
“제 고향에서부터 연구하던 것을 가져온 것이지요. 서역인이다 보니 양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서역인이요?”
“아, 저는 서대륙 출신입니다. 동대륙에 불로불사의 약이 있다 들어 이렇게 오게 되었지요.”
진시황의 불로불사약을 말하는 건가.
진시황이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네.
“그렇군요.”
“여기는 어느새 제2의 고향이 되었지요. 특히 요새는 도제들이 많이 생겨 애착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백의신룡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익히 들어 왔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는 본론을 말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들르셨는지요?”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하는 건 북해빙궁주도 그렇고 이쪽 사람들 특징 같아 보였다.
진천희는 무림맹의 사자로 오게 된 이야기를 하고는 할 말은 대충 끝내 놨고 전염병이 돌기에 왔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좀 더 진맥해 봐야 확실하겠으나……. 아는 병인 것 같았습니다. 만약 맞다면 치료법도 있고요.”
일단 현대의 지식과 수차례에 걸친 진맥으로 진단하긴 했으나 일부러 확신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생 제르맹이라는 자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였다.
생 제르맹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치료법이 있으시다고요?”
“네, 짐작이 맞다면요. 약도 조금은 가지고 있고요.”
우선 생 제르맹은 알았다고 하며 진천희를 환자에게 안내했다.
진천희는 가지고 온 백린신단 일부를 치료사에게 건네주며 용법과 용량을 지시했다.
생 제르맹이 말했다.
“부술이라는 걸 사용할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여기서는 함부로 쓸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방금 환자는 항생제 처치로 충분히 나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보다는 환자를 씻기고 이불보를 빨든가 태워야 합니다. 이를 없애야 해요.”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이게 결국 위생이 우선이 안 되면 백약이 무효합니다.”
“참조하도록 할 테니 염려 놓으시지요.”
‘아……. 이거 불안하네.’
아무리 항생제를 쓴다고 해도 어차피 위생이 개선 안 되면 의미가 없는 병이다.
괜히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될까 싶어서 걱정이 되었다.
허나 그는 오히려 다른 쪽에 관심을 가졌다.
“이 약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백린신단의 제조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가르쳐드린들 불가능합니다. 특별한 설비와 공법이 필요하거든요. 그걸 여기서 다시 만든다고 해도 족히 몇 달은 걸립니다.”
“아아…. 안타깝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천희가 물었다.
“중증인 환자는 포기한다고 해도 경증인 환자라면 치료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나요?”
이번에는 진천희가 물었다.
그러자 생 제르맹이 자랑스럽게 답했다.
“저희 역시 약물로 치료를 하고 있지요. 저희 연금술의 기본인 수은과…….”
‘히익! 수은!’
“아편을 섞어서……!”
‘히이익! 아펴어어언?’
“수은 연고를 만들어 발진에 바르면 효험이 있지요.”
그 말에 진천희는 충격 속에서 생각했다.
‘으아아아! 이… 이 인간. 연금술사다. 진짜 연금술사야아아아! 건강에는 안 좋은 그런 연금술사야아아아!’
당장 지구의 18~19세기만 해도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은 증기를 매독 부위에 쐬는 치료법이 인기 있었다.
거기에 동시에 피부에 바르는 수은 연고 같은 것을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당장 뭔가 호전이 되는 느낌이 든다고는 했다.
나중에 수은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환자가 사망해서 문제지.
이게 그 유명한, 인간을 죽이면 병도 같이 죽는 치료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