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9
제 578화
주변이 뭐라고 말하든 진천희는 그대로 한정의 맥을 짚어 진기도인을 했다.
선천진기를 끌어다 썼기에 분명 내상을 입었을 터.
그것을 응급조치를 하고는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승리입니다.”
의원은 죽이지 않을 의사를 명백하게 말한다.
“…….”
기묘한 고요 속에서 북해빙궁의 무인 누구도 숨 쉬는 소리 하나 내지 못하였고.
진천희는 더는 말하지 않고 북해빙궁주만을 바라볼 뿐.
이윽고 빙궁주가 말했다.
“좋다. 패자 한정은 처형하라.”
‘이 미친놈이?! 패했다는 이유로 본인 수제자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
진천희가 급히 말했다.
“생사투라는 것은, 제가 이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이제 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생사는 제 것이니까요.”
“…….”
궁주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진천희를 노려볼 뿐.
공기가 활시위가 되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지고.
모두가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이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궁주가 말했다.
“좋다. 백린의각의 소각주 진천희. 네 의견은 합당하다.”
“감사합니다.”
“허나, 그것은 본궁의 율법과 위배되는 것. 그렇다면, 너의 예방법은 시행하지 않겠다.”
“이는 북해빙궁과 백호시의 양민들에게도 옳은 일입니다.”
“그것은 너의 생각일 뿐. 너의 방법이 옳은지 알 수 없으며, 이 북해에는 북해의 율법이 있다. 그것이 싫다면 우리의 율법을 지키면 된다.”
그 말에 공손영이 참다못해 말했다.
“아니, 그렇다는 건 지금 일광에게 한 사람의 목숨과 백호시의 목숨, 둘을 저울질하라는 말 아닙니까!”
“내 언제 발언을 허락했는가. 공손세가의 무인이여!”
공손영은 입을 다문다.
그저 주먹을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다시 한마디 덧붙이려고 한다.
“허나, 이것은…….”
[……누나, 괜찮아요.]진천희는 전음으로 공손영의 말을 막았다.
이것은 스승님인 제갈린부터 이어져 온 사슬이다.
여기에 공손세가까지 끼어들어 손해 볼 필요는 없었다.
눈앞의 한 명의 목숨과 훗날에 위험할 다수의 목숨.
‘여기에 정답이 있긴 한 걸까?’
어찌하여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목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잔인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기에. 진천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것은 무엇을 택해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답이었으니까.
드글드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의원은 오히려 낮고 느리게 답할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리 말하며 쓰러진 무인을 들쳤다.
그가 말했다.
“선택했군.”
“부디 사도련과의 연맹에 대해서는 재고해 주십시오.”
“알겠다. 그러면 이제 물러나라! 답은 열흘 후에 줄 것이니. 그동안은 자유롭게 지내도록!”
진천희는 예를 표하고는 기절한 무인을 데리고 나갔다.
‘내 더럽고 치사해서 때려치운다…….’
의원은 그냥 깽판 치기로 했다.
* * *
방에 돌아갔다.
쓰러진 무사는 귀빈실 객실에 뉘였다.
진천희는 한동안 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애를 썼다.
부술을 쓸 수 없는 동네이기에 반드시 도수 정복이 가능하도록 염두에 두고 때렸는데.
‘다행히 깔끔하게 부러졌다.’
거기다 진천희의 일격에 당하는 순간 내력을 돌려 뇌와 내장을 보호하는 데 썼다.
이게 무의식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이 무인이 오랫동안 같은 기본기를 반복하여 익혔다는 뜻이었다.
그냥 다른 무인들이 말하는 노력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무의식중에도 발현될 수 있도록 연마했다는 뜻이겠지.
다만 선천지기 폭발은 주화입마와 비슷하나 상당히 또 다르다.
‘이 또한 초기에 막아서 다행이야.’
허나 엉망이 된 몸으로 움직이려 한 것은 사실이다 보니 상처가 얕은 건 결코 아니었다.
그저 무공을 익힌 고수이기에 몸이 버티고 치료도 가능한 거고, 양민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거다.
그렇게 날이 새도록 처치를 하고, 또 하고.
치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니 마침 공손영과 한빙 왕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히… 스승님의 성정이 몹시 달라지셨군.”
참담한 표정으로 한빙 왕자가 뇌까렸다.
특히 한빙 왕자는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자이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역시 그런가요?”
“확실히 그렇네. 아무리 비무에서 패했다 할지라도, 생사결이니 처형하라니. 과거의 스승님이 아니시군.”
공손영이 팔짱을 꼈다.
“비무에서 졌다고 죽이는 건 사파도 험한 곳 아니면 잘 안 해. 마교는 다른가?”
“……마교라.”
문득 철무백이 생각났다.
사도련의 사신으로 왔으나, 사실 마교 소속인 자.
‘성격이 바뀐 것에 마교가 어떤 계략을 쓴 걸까? 아니면 혈선교?’
양대 사이비 때문에 돌아버리겠다.
‘으으음…… 하지만 나는 결국 외인이라 어떻게 알아볼 방법이 없는데 말이지.’
진천희는 고민에 잠겼다.
“일단 열흘의 시간이 남긴 했네요. 궁주가 열흘 후에 답을 준다고 했으니까요.”
공손영이 말했다.
“너 들이박을 거지?”
“아……. 네, 네.”
어떻게 안 걸까.
“얼굴에 써있어. 저 눈은 깽판이나 쳐야겠다는 눈이야.”
이 누나는 대체, 사업은 그렇게 호구 잡히면서 이런 직감은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진천희가 솔직하게 답했다.
“맞아요. 깽판 칠 겁니다.”
“어떻게 칠 건데?”
“몇 가지 안은 생각해 놨어요.”
“으음……. 언니가 자주 쓰는 방법 가르쳐줄까?”
그 말에 진천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시면 고맙지요.”
“언니는 보통 이럴 때 혹세무민해.”
“네?”
“저 어디 사이비 낭중 하나 포섭해 놨다가 민심을 개판으로 만들어.”
진천희는 깨달았다.
‘이래서 흑빙독룡 공손현이 지독하다고 다들 학을 떼는구나.’
절대로 공손세가와 척을 져서는 안 되겠다.
그러나 별개로 꽤 편리한 방법이긴 했다.
“그리고 그거. 저도 쓸 수 있겠는데요?”
그 말에 공손영의 눈이 커졌다.
“아, 그러네. 그러네! 너 엄청난 의원이잖아! 길거리에 나가서, 온돌의 창시자 벽안광의가 왔다! 하고 깃발 들고 돌아다니면 되겠다.”
“…….”
그 말에 진천희는 시뻘게진 얼굴로 잠깐 곰처럼 몸을 웅크렸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옛날 흑역사가 떠올라서.”
용봉지회 이후로 이 짓을 또 해야 하는 건가.
공손영이 말했다.
“이걸 네가 생각을 안 했을 리 없잖아. 부끄러워서 지금 망설이는 거야?”
“잠시만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후욱후욱!”
“강호낭중! 진천희!”
강호낭중(江湖郎中).
송나라 때에는 낭중이라는 의원들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그 시초는 이차구(李次口)라는 의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주로 방울을 매달고, 등에는 약재와 의료 도구가 든 상자를 메고 유랑하듯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치료했다.
그 방울 때문에 영의(鈴醫)라고 부르기도 했고, 강호유의(江湖游醫)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즉.
실제 역사에서 이럴진대, 이 무림 별은 어떻겠나?
강호낭중이라고 하면 기공술이나 무공을 조금 익힌 돌팔이가 돌아다니면서 치료를 하는 식이다.
물론 개중에는 은거기인이라고 할 만한 의술과 무공을 갖춘 이도 있었으니.
이백 년 전에는 낭중신의라는 이가 있었는데, 천하 십 대 고수에 들어갈 정도로 고강한 무공에 천하제일의 의술을 가졌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거 보다 더 좋은 수가 있어?”
“그건…….”
“하기 싫은 마음을 제치고 말이지.”
진천희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제가 북해빙궁에 들이받기로 결심하긴 했는데요. 이렇게까지 해서 들이받아야 하나 약간…… 인생에 회의가 들어서요. 누나.”
“…고작 네 나이에 무슨 인생의 회의씩이나…?”
“……아니 그…….”
진천희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가 없어서 잠깐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렸다.
전생 나이와 현생 나이를 합치면 이제 은퇴하고 슬슬 손주나 돌볼 나이 아닌가.
‘왜 수치는 내 몫인가….’
진실을 모르는 공손영이 말했다.
“사람들이라는 게 신묘한 걸 잘 믿잖아? 네가 실력을 보여주고, 예방법을 설파하면 되는 거지. 그러면 너도 나도 달려들걸?”
“그럴 수도 있겠군요.”
“무조건 그럴 거야. 그리고 강호낭중 짓을 한다고 해도 북해빙궁에서 간섭하기도 힘들겠지. 양민을 위해 구호활동을 하는데 방해하는 쪽이 이상하잖아?”
“그렇죠.”
“보니까 너무 꽉 막혔던데, 그렇게 꽉 막히고 체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양반일수록 이런 건 더 못 끼어들 거 아냐.”
그 말에 한빙 왕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부님이 과거 저런 성격은 아니셨는데. 어찌하여 이리 사람이 바뀐 건지.”
차라리 병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 * *
하루 후.
돈을 털어서 종일 재료를 준비했다.
첫째로는 훈연탄. 연기를 피워 벌레를 죽이거나 쫓는 용도.
두 번째가 살충제. 잿물을 이용해 원시적으로 만든 형태다.
짚을 태워서 생긴 잿가루를 헝겊이나 삿갓, 떡시루 등에 올려놓고 물을 부어서 만든다.
그렇게 십여 차례를 반복하다 보면 강알칼리 용액이 되는데 그게 잿물이다.
세탁에 쓰인다. 천연 염색에 쓰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에 약초를 넣고 조합하면 살충제의 재료도 된다.
필요한 약초는 이 지방에서 구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어이…. 이거면 충분해?”
“대체 누나는 어떻게 이걸 다 구해 온 거예요?”
“네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소매 걷어붙이고 구해 오겠다고 하더라고. 여기서도 소의선의 명성은 여전하던데?”
“다행이에요. 그런데 제 명성보다는 누나가 넉살이 좋아서겠죠.”
그랬다.
공손영은 벌써부터 현지 친구를 빨래 개듯 착착 쌓아 놓은 게 아닌가.
백호시 사람들은 아이샤 왕국 사람들처럼 술을 몹시 좋아했는데, 마침 공손영도 엄청난 주당이다 보니 객잔에서 돈 걸고 술 내기 한판 하니까 친구가 와르르 생겼단다.
‘와, 진짜 붙임성 좋다.’
진천희 자신이야 사회생활에 능숙할 뿐이지 붙임성이 좋은 건 아니다.
그러니까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서로 다치지 않게 거리를 두고 배려하는 것은 잘한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바로 친구를 먹는다?
그게 바로 공손영이 가진 저력이었다.
그렇게 진천희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따다 준 약초들을 엄청나게 매입할 수 있었다.
준비가 다 끝나자 깃발을 크게 들고 나갔다.
아이샤 왕국 언어와 중원 언어 두 가지로 쓴 깃발.
[온돌의 창시자, 천하제일 신의 진천희 강림!]시뻘게진 얼굴로 진천희는 생각했다.
‘천하제일 신의는 스승님인데……. 아아아… 누나…….’
황구와 뇌진은 풀 차징 덩치다.
특히 황구는 황소보다 크다. 미국 영화에서 봤던 버팔로 정도는 되지 않을까?
뇌진도 마찬가지. 의식하지 않아도 깃털에 번개가 파직 흘렀다.
그렇게 길거리를 걷자 사람들이 ‘우와아아아!’ 입을 쩍 벌리며 놀란다.
‘죽자. 이 일이 끝나면 명예롭게 죽는 거다.’
수치심으로 죽음마저 각오하고는 광장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