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95
제 594화
교주가 발출하는 기세만으로 천빙산이 흔들린다.
북해빙궁의 장로들 역시 기세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것이 이치를 벗어나는 힘인가!”
“저런 자가 삼존 외에 있었다니.”
“아니, 어쩌면 이미 삼존을 뛰어넘었을지도…….”
“허면 어찌하여 승천하지 않은 거지?”
존재를 부정하고 인과를 부정하며 선악을 부정하는, 그저 욕망할 뿐인 힘이 천빙산의 진법을 맹렬하게 부수며 나아간다.
공손영이 중얼거렸다.
“왜 혈선교주가 아니라 통천교주지?”
[애초에 혈선십천군이라는 존재가 봉신연의의 금오십천군에서 따온 거거든요. 누나.]모두의 경악 속에서 진천희만이 냉정했다.
때문에 당연히 금오십천군을 이끄는 존재이자, 금오도의 주인이며, 도교 일파인 절교의 교주가 나올 수밖에.
‘금오도는 본디 전설의 장소이지, 종교 그 자체는 아니야. 무당파가 무당교가 아니지만, 그저 도교를 숭상하는 것과 똑같아. 그렇기에 저런 식으로 명칭을 붙인 거지.’
금오도주이자, 금오십천군의 위에 있는 절대자.
통천교주.
혈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삼존 외에 현경에 도달한 자!
물론 이 사실은 혈선교만이 알고 있을 터.
진천희는 지존천마를 봐 왔기에 알고 있는 일이었다.
혈선교의 교주는 지존천마에서 여하륜의 손에 죽는 그 순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로, 원작 소설 내에서도 종잡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마교의 교주인 천마는 추구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천하를 일통하기 위해 마교가 더욱 치열해지고 강해지며, 영악해지길 바랐다.
지금은 깨달음의 끝에서 승천을 준비하나, 직접적으로 교주 일을 할 때에는 철저하게 암세천하를 원했다.
허나, 이 혈선교주는 마지막까지 무엇이 목적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리고.
‘목소리가 이상하게 낯이 익은데?’
이유는 모르겠다.
진천희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현원전단신공을 굴려 보아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기에 그저 혈선교주의 가면을 노려볼 뿐.
장로들이 기함했다.
“네놈은 허가받지 않은 자. 대체 어찌 진법 안에 들어올 수 있던 것이냐!”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본디라면 수호교의 진법으로 인해 혈선교가 이곳에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허나, 궁주께서 스스로 수호교의 성지에 혈선의 은총을 내려 주지 않았습니까?”
“뭣이?!”
교주가 손을 뻗어 궁주의 시신을 가리켰다.
흰 설원 위로 번져 나가는 피가 마치 인주를 묻힌 것 같았다.
시신의 목이 이빨 자국으로 깊게 파여 뼈가 드러났다.
“아들이 아비를 참살하는 패륜! 이보다 본 교의 의식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핫! 덕분에 혈선이 은총을 내려 수호교의 결계를 일부 무시하고 들어올 수 있었지요.”
“노오오오오옴–!!”
“나이가 들수록 먹을 걸 잘 챙겨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저렇게 사람이 날카로워지거든요. 어떠십니까? 본 교에 입교하시면 신선한 육고기를 듬뿍 드리지요.”
교주라고 하기에는 조금 방정맞은 말투.
같은 사이비 교주임에도 마교, 천마와 같은 절제된 위엄 같은 건 전혀 없다.
어찌 보면 현대 영업 사원과도 같아 보일 지경.
혈선교주는 팔랑팔랑 가볍게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장로 같은 노괴들에게는 도발로 느껴졌는지 다섯 모두 크게 분노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
성지는 그들이 평생 지켜 온 공간, 그것을 혈선이 더렵혔으니까!
다섯 장로가 기운을 발출한다.
제아무리 혈선교의 교주가 현경의 경지에 든 숨겨진 초인이라고는 하나, 이쪽도 성지 안에서는 일시적인 현경 상태에 들 수 있다.
한기가 치솟아 오른다.
성지의 한기가 공격하는 존재는 단 하나.
마치 회오리처럼 눈이 치솟는다.
‘이……건 사실상 자연재해인데?’
다섯 장로가 휘두르는 무학은 지금의 진천희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치를 벗어난 것.
한 치 눈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고 찬 냉기가 쏟아져 내렸다.
화이트 아웃.
순백의 세계 속에서 진천희는 보았다.
가면 아래로 보이는 혈선교 교주의 입이 느긋하게 호를 그리는 것을.
“이거 참……. 사람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네?”
그 순간, 교주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소궁주의 시신 밑에 고여 있는 피가 그의 몸 주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순식간에 기로 변하여 흔들거렸다.
“혈선의 은총을 그대들에게 보이리라.”
교주가 뻗은 손을 손가락을 모은 상태로 반장을 한다.
그러자 그 소매 속으로 장로들이 만들어 낸 냉기가 모조리 흡수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맹렬한 냉기, 시야를 가리던 눈발이 그대로 소매 속에 빨려 들어가더니 이윽고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을 뱉어냈다.
“……이게 무슨……!”
“저것이 과연 무공은 맞단 말이냐?”
그 순간, 빙검이 경악하는 장로들을 직선으로 베었다.
스걱!
초식 전의 자세도, 출수하는 모습도 진천희는 보지 못했다.
그저 잔상도 남기지 않고 그의 모습이 조금 옮겨졌을 뿐.
허나, 장로들의 몸은 그대로 사선으로 갈라져 쓰러진다.
“무공은 무공이지요. 하지만 조금 합리성이 부족해서 말입니다.”
“꺼억! 네놈……. 네노오오옴!”
다섯 장로가 그대로 절명한다.
분명 조건적으로 현경급이라 불리던 다섯이 처참하게 사망하자 모두가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렇지 않아도 참살할 생각이었는데, 수고를 덜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좋은 일이지요. 하하핫!”
“이 빌어먹을 새끼가아앗!”
공손영이 소리 지른다.
진천희는 그런 공손영을 막았다.
[누나, 진정해요!]가슴이 끓어오른다. 그 모든 원흉이 저 앞에 있다.
여기서 감정적으로 튀어나갔다가는 전멸뿐이다.
기묘하게 그리운 듯한 목소리가 이상하지만 누구의 것인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고.
“수호자의 힘……. 무척 좋지요. 하핫! 그래도 성지가 오염되고 다섯 수호자가 사망했으니, 이제 그 힘은 더 이상 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되겠군요. 천지가 혼탁해지는 때가 더욱 앞당겨지니. 이 또한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하핫!”
“…….”
진천희는 가면 아래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것은 당신, 반선의 씨앗 덕분이기도 하니 감사를 표하지요.”
그는 손을 모아 진천희에게 예를 표했다.
그 모습만 보면 몹시 예의가 발라서, 어딘가의 서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자, 그러면 조천군? 금광성모? 용린인들과 함께 나머지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저 반선의 씨앗은 되도록 생포해야 합니다. 혈선께서 그것을 원하시니…….”
그 말에 진천희는 억지로 성대를 열어 목소리를 쥐어짰다.
“통천교주. 대체 혈선이 나를 원하는 이유가 뭐죠? 그리고 수호자의 힘이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시간을 끌고자 하는 수작이 가상하군요. 하핫. 뭐 좋습니다. 이런 배역도 재미있으니까요.”
사내는 뒷짐을 지고 한 걸음씩 느리게 앞으로 걸었다.
“수호자는 이 인계를 지키는 자 중의 하나지요. 인과율의 제약이 있어 현세에 제대로 된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천기를 제대로 흘러가게 하는 자들 중 하나. 흐흠, 혈선께서는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
“…….”
진천희는 대답 대신 두꺼운 겨울 피풍의를 벗어서 멀리 던졌다.
그 밑에 있는 건 평소에 즐겨 입는 의원의 옷차림.
춥긴 하지만 상대를 생각하면 벗는 게 상책.
움직임이 둔해지는 순간 죽게 될 터이니.
혈선교주는 그런 진천희를 보고 피식 웃더니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뭐, 그래도 우리의 노력 덕분에 이것으로 수호자는 더는 현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겠지요. 저 북해궁주의 어리석음 때문이랄까요? 하핫, 이래서 인간 노릇을 못 놓겠습니다. 역시 최고는 사람 구경이죠.”
기묘했다.
마치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을 연기하는 것 같은 이질감.
그는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마다 붉은색 발자국이 눈 위에 찍혔다.
“혈선이 나를 원하는 것은?”
“그거야 당연히 당신이 반선의 씨앗이기 때문이죠. 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자. 때문에, 당신의 모든 행동이 천기를 흩어내고 있죠. 그건 이미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벅, 저벅-
그는 마치 상어처럼 진천희의 주변을 둥글게 걸어간다.
진천희가 되물었다.
“그 본질이 궁금해서요. 어차피 저를 내버려두면 천기는 알아서 흩어질 텐데 굳이 납치하려는 이유가 뭔가 해서요.”
“아하! 그거야… 당신이 흔든 천기가 저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고정된 미래를 파괴하고, 불확정의 내일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게 우리가 바라는 방향일까요?”
“그럴 수도?”
진천희는 일부러 맞장구를 치며 시간을 끈다.
여하륜이 내공을 회복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야 하니까.
“글쎄요,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것.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너스레를 떤다.
이 목소리, 역시 익숙하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기묘한 망향(望鄕) 속에서 진천희가 되물었다.
“그렇군요. 단순히 천기의 파괴뿐 아니라, 그 이후를 내다본 포석. 그것을 위해…….”
그 순간. 통천교주의 손이 진천희를 향해 뻗어 나갔다.
“하핫, 그러면 본 교로 갑시다. 반선의 씨앗.”
혈선교주의 손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저 손에 잡히면 어찌 되는지 알고 있다.
진천희의 안광이 타올랐다.
푸른 불꽃.
‘어차피 내가 가진 무학으로는 다섯 장로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면!’
초월심무 생사예지(生死叡智).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쪼갠다.
초 단위의 시간조차 극한까지 벼려낸 인지로 그저 길어진다.
확장된 세계 속에서 진천희는 수 싸움을 한다. 하지만 적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혈선교주는 진천희를 알고 있으나, 이쪽은 혈선교주를 모른다.
‘불공평한 세상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선교주의 손은 빨라서, 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걸음걸이와 움직임, 작은 습관까지도 놓치진 않는다.
진천희는 팔에 봉인된 현경지독을 풀었다.
현경에 이른 극독이 그대로 통천교주를 향해 날아가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여 탄지천통을 섞어 쏜다.
왼팔의 독기와 탄지천통이 동시에 날아가며 통천교주의 팔을 조금 스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순간, 여하륜이 곧바로 형을 지키기 위해 일장을 날린다.
심무절기 진파천장(眞破天掌).
여하륜의 일장이 가공할 파괴력을 만들어 냈다.
허나…….
진천희는 초월심무의 세계 속에서 시간이 한순간 느리게 보이고, 마치 멈추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혈선교주가 출수한다.
어떻게 출수했는지 초월심무로도 좀처럼 보기가 어려웠으나, 시간과 시간의 틈 사이.
붉은 선을 보았다.
그리고 방금.
생 하나가 끊겼다.
“하륜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