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
제 6화
고독(蠱毒).
소교주로 죽거나 천마가 되어 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게 천마, 여하륜에게 펼쳐질 인생이다.
‘나는 엑스트라였던 거고.’
그것도 첫 페이지에서 머리를 맞고 죽는 이름 없는 엑스트라다.
이 엑스트라가 언감생심 마교의 소교주가 되려는 꿈을 품었는지 어쨌는지는 작가도, 독자도, 나도 알 바가 아니었다.
첨벙-
나는 욕조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마교는 절대 안 간다.’
소교주급으로 찍혀서 가는 경우인지 아니면 뭐, 어디 따까리라도 하러 가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 길은 절대 안 갈 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문득 전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광경이 하나 떠올랐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면 복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를 위해 서 있는 게 아니었다. 수술대에 올라선 가족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불경을 외우기도 했다.
아무리 완고한 무신론자라고 하더라도 그때만은 모두가 신에게 기도를 했다.
‘언젠가 내가 같은 처지가 되었을 때 밖에서 기다려줄 사람이 있을까.’
40대의 진천희에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다른 이들의 가족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그 정도 해 왔으니까…… 나도 이제 가족을 만들 자격이 있지 않을까.’
굳이 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여기서조차 아무것도 없는 천애고아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저 서로가 서로를 염려해 줄 수 있으면 되었다.
‘그러려면 돈이 있는 게 좋겠지.’
어느 세계나 돈은 중요하다. 집을 사든 밥을 먹든, 그것 없이는 안 되지 않나.
‘그리고 힘이 있어야겠다.’
하필 무림이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인 곳이다. 거기다 앞으로 있을 수많은 환란에 휩쓸리게 될 텐데 내 몸도 지키지 못하면 가족도 지킬 자격이 없다.
‘그런데 둘 다 없네.’
하지만 미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의사는 어느 세계나 필요한 법이지. 암.’
* * *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새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원래 입었던 옷은 찢어지고 더러워져서 도저히 옷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새 옷은 뻣뻣한 소재에 청수한 느낌을 주는 차림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은경 앞에 서니 신수가 훤한 소년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야. 내 얼굴이지만 참 잘생겼네.’
진천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되었다.
외모가 좋다는 것은 사람의 신뢰와 호감을 얻기 쉽다는 뜻이다.
또렷한 검은자위에 총기까지 더해지니 절로 부티가 났다.
거기다가 토할 것 같은 역한 악취 대신 은은하고 청량한 향이 맴돌았다.
유호는 그런 진천희를 보고 내심 놀랐다.
‘아까와 같은 놈이 맞나?’
아무리 사람은 차려입기 마련이라지만 거지에서 귀공자로 탈바꿈하는 건 너무하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도 근본도 모르는 아이다. 왜 주인님이 그 수많은 기재와 천재들을 마다하고 저 아이를 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나까지 넘어갈 수는 없지.’
“어흠.”
유호는 헛기침을 했다.
진천희는 화들짝 놀라 유호를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이 영락없는 아이의 얼굴이라 왠지 마음이 약해졌다.
‘이상하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애늙은이의 표정이었는데. 거울을 보고 나서 그제야 아이의 얼굴이라니. 이래서야 마치 늙은이가 아이의 표정을 배워서 하는 것 같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유호는 혀를 찼다.
‘내력도 없고, 무골은 무가의 아이보다 못한 편 아닌가. 주인님은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편이라 하셨지만 내 눈에는 멀었다.’
정말로 이 아이를 제자로 받게 되면 얼마 안 남은 백린의선의 수명은 더욱 줄게 된다.
오랫동안 그를 모셔 온 입장에서 혹시 허튼짓이라도 하면 모조리 고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제자를 삼겠다는 마음을 접는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싶었다.
그게 가신으로서의 그의 충절이었다.
* * *
‘으음, 왠지 꼭 옛날 인턴 때 기분이 드는걸.’
유호의 시선이 따갑기 때문일까, 진천희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대놓고 경계를 하니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다.
그는 귀빈용 다실에 앉아 고사리손으로 차를 삼켰다.
‘저렇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벌모세수 때문인가.’
소설에서 백린의선이 다른 이에게 벌모세수를 해 주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백린의선이 비중이 큰 소설도 아니었고, 초반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쪽도 교수 달고 는 건 넉살뿐이라.’
3차 병원까지 와서 진료를 받을 정도, 그리고 그의 손을 거쳐야 할 정도의 환자라면 꽤 중한 환자들이 많았다.
환자와 가족들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건 꽤 중요한 소양이었다.
생사의 기로 속에서 의사인 자신이 흔들리게 되면 믿을 사람은 없어진다.
겁에 질려 우는 환자를 달래기 위해 일부러 유머를 익히기도 했다.
슬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썰렁한 농담이라도 큰 위안이 될 때가 있으니 그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익혔다.
유호는 유호대로 어이가 없었다.
‘저 애새끼가 미쳤나. 아니면 둔감한 건가.’
대운룡표국의 귀빈석이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상단주도 긴장을 하고 앉는 자리다.
거기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감시하고 있는데 입가에 미소까지 띄우며 당과를 덥석덥석 집어먹었다.
‘뒷조사를 해 봤지만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백린의선의 인맥을 이용해 수소문을 해 봤지만 이 아이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고아라는 것 정도.
그것도 확실한 정보인 건지 유호로서는 판단하기 힘들었다.
당과 하나를 앉은 자리에서 해치운 아이는 이번에는 곶감에 손을 뻗었다. 흰 가루를 털지도 않고 한입에 집어넣었다.
‘벌모세수가 끝나고 나면 원래 배가 고프긴 한데…….’
지나가던 가솔이 그런 진천희를 보고 혹시 더 먹겠냐고 물었다.
진천희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너무 많이 먹었죠?”
그 모습에 가솔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꼭 우리 아들 같네.”
“애가 배가 고플 수도 있지. 거기다 우리 표국주님의 귀한 손님이시라며. 그…… 백린의선보다 먼저 처치를 했다는…….”
“정말? 이런 꼬마 손님이라면 얼마든지 더 줘야지.”
차라리 더 달라고 떼를 썼다면 뒷말이라도 나올 법하건만.
어느새 진천희 앞에 당과며 떡이며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먹는 것도 복스럽다.
그 모습에 가솔들은 다과상이 아니라 밥상이라도 차려올 기세였다.
아무리 봐도 이 소년은 자신의 외모를 이용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렸다.
얼굴을 가린 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삿갓 아래로 보이는 면사의 실루엣으로 그자가 여인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진천희를 보더니 깊게 허리를 숙였다.
‘어?’
그러고는 이쪽에서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영이가 소협이 아니었다면 생을 잇지 못했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이 공손 모(某).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저분이 공손현이겠군. 사촌 동생인 공손영을 보러 온 것일 거고.’
“별말씀을요.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죠.”
진천희 자신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를 구했다. 단지 그뿐이다.
“과연…… 국주님과 의선께서 칭찬하신 분답군요. 공손가는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뭐라도 했을걸요. 아, 맞다! 그것보다 저보다는 가족분께 가 보시는 게 어떠세요? 그게 더 급하잖아요!”
그녀의 극찬에 진천희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말을 돌렸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였다. 그 말에 면사 여인 공손현은 잠시 진천희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결례를 무릅쓰고……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공손현은 다시 크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서 방을 나섰다.
진천희는 천천히 앞으로 있을 일을 떠올렸다.
본가 태생인 공손현은 본가에서 유일한 여식이다. 원래라면 그녀가 공손가의 검맥을 이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나, 검에 대한 자질이 크게 떨어져 본가의 어르신들에게 실망을 안겨 드리고 있는 처지다.
그에 비해 방계 혈족인 공손영은 날 때부터 무골이 뛰어나고, 검에 대한 이해도 빠른 편이었다. 본가의 비전검법을 잇지 못하는 본가의 후계와, 벌써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는 방계의 후계.
사람들은 이를 두고 방계만도 못한 본가, 동생만도 못한 언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공손현에 대해 모르는 게 있지.’
첫째로 그녀가 무재(武才)는 타고나지 못했지만 상재(商才)는 타고났다는 거다.
세상의 절반은 돈이다. 이건 무가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이 배우지 못하면 다른 이를 내세우면 되었다.
영약이든 보검이든, 비급이든.
무가의 절반은 돈으로 이어지니까.
‘또 하나 더 있지. 가장 중요한 것.’
그녀는 동생인 공손영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한 몸처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본가의 부모와 방계의 부모의 첨예한 신경전 때문에 대놓고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두 사촌 자매는 서로를 깊이 염려하고 있었다.
-다 죽이거라. 내 아우의 머리털 하나, 손톱 하나 건드리는 이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거라. 모조리 파헤쳐서 흉수를 찾아라.
-아아, 영아…… 영아. 그 차가운 곳에서 홀로 간 영아. 언니가 보이느냐. 널 이렇게 만든 모든 이들의 피가 드디어 강이 되었다.
친동생처럼 아끼던 공손영이 죽고, 그녀는 독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 상단이 어째서 습격을 받았는지, 그 흉수를 찾아 평생을 헤맨다.
자신을 후대 가주로 앉히고 싶어 하는 본가의 인물이 이 일이 끼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혈겁을 저지르고 만다.
‘공손영은 원래 여기서 죽을 예정이었다.’
그것을 진천희 자신이 살렸다.
미래에 있을 대혈겁 하나를 막은 셈이었다.
‘지금쯤 공손현은 공손영의 손을 붙잡고 한창 울고 있겠군. 공손영은 그런 언니의 통곡 소리에 깨서 언니는 참 걱정도 많다고 투덜거릴 거고.’
-내가 누군데 죽긴 왜 죽어? 언니, 나 못 믿어? 언니 죽을 때까지는 절대 안 죽어. 못 죽어. 바보. 누구보다 똑똑한 언니가 이럴 때는 바보네.
소설 속, 공손영을 잃은 공손현이 꾸었던 꿈 중의 하나다.
그 꿈에서 깬 공손현은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그저 텅 빈 고목나무처럼 천장만 바라보았다.
눈에서 시작된 슬픔은 관자놀이를 타고 귓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공손영의 제사를 누구보다 화려하게 치른 그녀였지만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미래는 바뀌었고, 문제는 이제 이다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