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03
제 602화
지금 상황에서는 궁주를 죽이는 것보다 유폐시키는 게 정치적으로 낫다.
그래야 성녀가 권력을 탐하여 아비를 죽였다는 불명예를 쓰지 않아도 될 터.
만약 북해빙궁 쪽에 연수해있는 다른 문파들이 알게 된다면 아비인 군백주를 죽인 잔혹한 패륜아로 그녀를 낙인찍어버릴 수가 있다.
‘재수 없으면 분가에서 정통성을 주장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고.’
이 칼 든 유교 월드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애비까지 죽인 패륜견(犬)은 들어라! 북해빙궁이 그리도 탐이 나더냐! 나는 과거 군백주에게 은혜를 입은 몸. 원한을 갚으러 나! 사돈의 팔촌, 군 아무개가 왔다!
‘허허허, 벌써 읽었던 무협 소설 수십 권은 떠오르네.’
혈선교와 연수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다?
천륜을 거스른 패륜아 변명 따위는 안 들린다 이거예요.
딱히 은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녀를 죽여 북해빙궁주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명분을 들고 와버리면 답이 없다.
이래서 강호는 명분이 무서운 법이다.
‘개 같은 강호 랜드. 아이고. 가급적 생포하자.’
이 바닥, 사지가 박살이 나고 단전을 폐해도 살아 있으면 유폐로 치는 거다.
그때였다.
“역시 혈선교였나. 이 사이한 기운과 시체들을 보고 짐작했지만…….”
“북해빙궁이 혈선교와 결탁한 겁니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게 사실이라면 하루 빨리 사도련에 알려야 하겠지. 그런…… 음! 저기 북해빙궁의 궁주구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선다.
궁주와 싸우는 여하륜과 공손영을 제외한 성녀와 왕자.
마지막으로 진천희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철무문 철무백? 아, 아니 사도련인 척 숨어들어간 마교 간자가 왜 여기 와 있어?!’
사도련의 무리들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 수는 불과 여섯 명뿐이지만, 하나하나가 상당한 고수로 보였다.
‘분명 궁의 초입에서 북해빙궁 무인들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는데… 잠입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만 온 건가? 하지만 왜 이 타이밍에…….’
진천희는 그제야 깨달았다.
‘마교의 또 다른 파벌이 여하륜의 전서구를 훔쳤구나!’
-어찌 되었건. 형이 평화를 원하는 건 알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어. 이미 철무백이 다 처리했더군.
-나에게 내려진 두 번째 임무도 사실상 형식적인 것이었던 게지. 제대로 된 정보가 하달된 게 없다. 미안하다.
그리 말하며 소교주 간의 알력에 대해 짧게 설명했던 기억이 났다.
‘여하륜이 마교에 보낸 전서구를 낚아채 즉석에서 계책을 짠 거 같은데. 의도가 뭐지?’
그 답은 눈 하나 깜빡하기도 전에 나왔다.
‘아! 엮으려는 거군. 혈선교와 북해빙궁이 손을 잡았다고 누명을 씌우기 위…… 아니. 손을 잡은 건 사실이긴 하지.’
그 결과가 저기 미쳐 날뛰는 궁주였다.
사도련… 아니. 마교의 간자인 철무백은 이를 이용하려는 속셈인 것.
그리고 저들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은 하나.
마교의 북해빙궁 장악!
저쪽 소교주도 제법 순발력이 빠르다.
진천희는 생각을 정리했다.
1. 사도련은 정사대전을 앞두고 있으며, 여기까지 오기에는 거리가 멀다.
2. 거기다가… 여기는 사실상 아이샤 왕국의 영지이기도 하니까 사도련이 뭘 어떻게 하기에는 어렵다.
여기까지가 지금의 판세.
다음은 예측.
결론.
3. 그러니 사도련을 이용해서 북해빙궁이 혈선교와 손을 잡았다고 소문을 퍼트리고, 마교가 장악한다.
‘그러면 제국의 강호인들은 세외 쪽의 혼란에 신경을 끄겠지. 정사대전만으로도 바쁘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콰쾅!
궁주가 소궁주가 죽어 쓰러진 바닥 옆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러고서 침묵하는 궁주.
기감으로 보면 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력이 쇠하여 그대로 혼절한 것 같았다.
[점점 힘이 빠지더군. 형을 생각해서 잠시 살려 두었다.]‘잘했다. 하륜아! 그런데 ‘잠시’라는 말이 묘하게 신경 쓰이는데?’
설마 잠깐 유폐시켰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복면인(여하륜)이 나타나 찔려 죽는 사고 같은 거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진 소각주! 그대가 여기에 왜 있는 거요? 그대도 혈선교와 관계가 있는 건가.”
철무백이 질문을 던져 왔다.
“무엄하군요. 이곳은 본 궁의 심처. 초대받은 것도 아닌 당신들은 감히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거죠?”
성녀가 나섰다.
‘성녀… 강하구나. 고향과 아버지가 전부 이 꼴이 되고 있는데도 버티고 있어.’
성녀는 일부러 냉막한 표정으로 철무백을 바라보았다.
“혈선교는 정사를 막론한 공적이오. 우리 사도련은 동맹을 맺은 북해빙궁에 괴변이 일어난 것을 보고 도우러 온 것일 뿐이오.”
“그렇다면 물러가세요. 그대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은 없으니까.”
그 말에 철무백이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 성녀. 당신이 북해빙궁의 대표는 아니잖소? 저쪽에 피투성이가 된 궁주께 답을 들어야겠소만.”
철무백의 말에, 그의 등 뒤에 있던 다섯이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검에서는 강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화경의 절대 고수가 다섯!?
철무백 저자가 우두머리이니, 저자 역시 화경일 터!
말도 안 되는 전력이잖아!
그렇게 경악하다가, 현원전단신공과 초월심무 인의가 이상함을 발견했다.
저들의 진기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근육의 움직임이 기묘하다.
‘아. 화경이 아니야. 초절정의 경지인데… 억지로 강기를 쓰고 있는 거야. 어떤 편법을 쓴 모양이군. 불완전한 화경. 혹은 반쪽짜리 화경이라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지?’
성녀는 지극히 분노한 듯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왕자와 공손영 역시 마찬가지.
그들도 이 상황에 순수하게 분노했다.
혈선교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빙궁의 초입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가까운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곳에 사리사욕을 추구하며 숟가락을 들이미는 자들이 있다.
혈선교라는 명분을 들이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약해진 북해빙궁을 칠 명분을 짜고 있는 게 분명한 상황.
“이런 승냥이 같은 놈들이 다 있나!”
공손영이 소리를 지른다.
한빙 왕자도 외쳤다.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는가! 약자를 악자라 부르며 뒤를 점하는 것은 어디의 도리요!”
그 말에 철무백이 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북해빙궁을 대표하는 북해빙궁주께서 혈선교와 직접 손을 잡았느냐 하는 것이오! 그런 상황에서 사도련과 함께한 것이면 그야말로 우리 사도련은 혈선교 간자를 심어 놓은 셈 아니오!”
그 말에 성녀가 이를 악문다.
북해빙궁은 아버지의 문파.
제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 지도자의 위치일 뿐.
문파로서 대표성이 있는 건 결코 아니었으니까.
공손영이 말했다.
“무슨 헛소리야! 보자 보자 하니까!”
강호 짬밥이 있는 공손영은 일일이 변명하는 대신 그냥 윽박지르고 칼을 들었다.
괜히 말싸움 해 봐야 지는 싸움이다.
쥐어 팬 다음 진천희보고 알아서 중재하라고 하면 되겠지.
그게 강호의 방식이었으니까.
실제로 공손영과 진천희, 거기에 여하륜까지 더한다면 저들이 비록 강기라고 하는 절세의 파괴력을 손에 쥐고 있다 할지라도 처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정작 진천희는 대답하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
머릿속은 안개로 가득한 미로 같았다.
이유는 진천희 스스로도 알고 있다.
혈선교라면 죽이기로 스스로 결심하였으나.
상대는 사도련과 마교 세작.
의원, 그리고 현대인으로서 불필요한 살인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거기다.
‘일개 사파도 아니고 사도련의 사신이다. 이들을 치게 되면 그 부담은 백린의각이 고스란히 지게 될 거야.’
하필 그들이 들고 온 명분이 혈선교라는 게 문제.
그리고 그 말대로 정말로 군백주가 혈선교와 결탁한 게 또 문제.
스승님을 괴롭혔던 때도 그렇지만.
정말 지긋지긋한 부자(父子)들이다.
‘이 똥을 대체 어떻게 치우라고.’
때문에 고심하고, 고민한다.
현실에서는 눈 한 번 깜박일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진천희의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작은 진천희들이 속닥이며 앞으로를 의논했다.
그때.
“크아아아아아아아아!”
궁주가 일어섰다.
사도련의 무리도 그리고 성녀와 진천희 일행도 서로를 바라보느라 궁주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괴음과 함께 궁주가 일어서는 소리를 듣고서야 궁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궁주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 있고, 그 아래에는 바싹 마르고, 핏기가 조금도 남지 않은 소궁주의 시체가 있었다.
소궁주의 몸에서 흘러나온 생피가, 아비인 궁주의 몸에 스스로 달라붙어 빨려 들어간다.
피 자체가 마치 옛날 판타지 소설에서나 봤던 슬라임처럼 꿈틀거리며 들어가는 게 아닌가!
이런 괴이한 상황에 모두가 경악했고.
저게… 대체?
“내 아들! 내 아드으으을! 혈선교오! 네놈드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구나아아!”
아들을 다시 한번 잃은 궁주의 외침이 궁 내부를 흔든다.
지독한 광기 속에서 그는 시뻘건 눈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크흐흐흐흐. 그래… 그럴 것 같았지이. 그럴 것 같았어……. 흐… 흐하하하. 하하하하. 그렇다며언. 그렇다아며어언.”
궁주의 몸이 변이한다.
진천희는 그런 궁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와, X발. 상황 개 같네. 어째 무협 클리셰는 변하지 않냐. 이단 변신이라고요?’
활인이 이렇게 어렵다. 하륜아.
그런데 여기까지 왔으면 생포는 못 하겠네. 죽여야 끝나겠네.
뒤에는 사도련. 앞에는 폭주하는 궁주.
어느 쪽을 먼저 처리하고 정리해야 하는 걸까.
“마물이로다! 혈선교의 주구를 척살하라!”
강기를 뿜어내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던 사도련의 무리들은 철무백의 외침에 반응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궁주가 더 재빨랐다.
“크르르르르! 죽어라아아아!”
‘빨라!’
단번에 도약해서, 진천희와 성녀 일행을 뛰어넘어 사도련에 도달한다.
사도련의 무인들이 내뿜는 살기에 반응한 것일 터!
그 속도는 여하륜과 진천희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반응할 수 있는 자가 없을 정도!
콰지지직-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실시간으로 얼어붙는 소리가 들렸다.
빙백신공의 가공할 극음지기에 격중당한 사도련의 무인 중 하나가 그대로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가 피워 올리던 강기는 궁주의 빙색신공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역시. 반쪽짜리 화경의 경지는 불안정해.’
냉정하게 그것을 지켜보며, 진천희는 전음을 사용했다.
[성녀님.] [예. 알고 있어요.]성녀는 진천희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 듯.
부르기만 했음에도 안다고 대답했다.
성녀가 두 눈을 감는다.
이윽고 다시 뜬 두 눈에는 냉막한 표정만이 감돌았다.
[아버님을…… 잘 부탁드립니다.]성녀의 말에 진천희는 날뛰고 있는 궁주를 향해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내가 하겠다. 형.] [됐어.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 [형의 계책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이렇게까지 스스로 검을 들고자 하는 건. 형이 업을 지려고 하는 거겠지. 형은 힘든 일은 다 혼자 하려고 하니까.]진천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허나, 여하륜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내가 하는 쪽이 나아. 이미 일전에 참모인 일카나와 상의했다.] [일카나가? 그게 뭐…….]맨날 진천희보고 ‘미친 형제님’이라 부르는 중간 관리직의 빛이자 소금 아닌가?
‘네가 드디어 참모와 상의란 걸 한다고?’
진천희가 되묻기도 전.
두 명을 얼음 조각으로 만들고, 세 명째를 습격하려던 궁주.
그 궁주를 향해 여하륜이 살기를 내뿜는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색의 강기가 불꽃처럼 타오르며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