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07
제 606화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 귀한 무공을 익히고 대장간 일을 하고 있다? 후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같긴 해.’
동변상련인가.
그런 걸로 치면 자신은 귀한 무공 익혀서 그걸로 닭갈비 볶음밥 만들고 있으니까.
‘열양기로 닭갈비 볶음밥을 만들면 밥알 모든 부분이 누룽지처럼 바삭바삭해지지.’
이 위에 김이랑 참기름 두르고.
기호에 따라 치즈까지 쫙 뿌려준다?
그건 못 참지.
못 참는데, 그 맛있는 걸 얻어먹으면서도 진천희를 미친놈 보듯 보지 않던가.
대장장이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지.
절세의 무공만 이어지고 대장 기술은 명맥이 끊어졌을 수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분께서 남긴 전언으로는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거 이상하네요. 보통은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지는 않는다는 걸 미덕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그게 선비의 기개이고요.”
“네. 왜 그런 말을 남겼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
진천희는 빙정검을 한참 바라보았다.
‘부러질 바에는 휜다라.’
그게 말이 되나?
빙정검에 대해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생겼다.
* * *
그렇게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진천희 일행은 돌아갔다.
북해빙궁 무인들과 양민들은 모두 진천희를 아쉽게 배웅했다.
“소의선님! 꼭 다시 오셔야 합니다!”
“일광! 우리 무인들은 자네를 잊지 않겠네!”
“잘 가시오!!”
“의원 선생님, 다음에도 또 오셔야 해요!!”
아이들은 여기서 백린의각까지 얼마나 먼지 알기는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진천희는 기뻤다.
개썰매에도 많은 짐이 실렸다.
처음 가져왔던 비상식량과 의약품들은 사람들을 구하느라 모조리 바닥이 났지만 대신 북해빙궁의 진귀한 약초들과 사람들의 선물, 술들이 잔뜩 들어갔다.
“갈 때도 개썰매고 올 때도 개썰매군요.”
컹컹!
황구는 신이 나서 짖었다.
다른 개들도 영물급 알파가 왔다는 기쁨에 같이 짖었다!
아우우우우!
우우우우우–!
그렇게 떠나는 진천희를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이 땅에서 하던 것들은 영 수확이 없구먼. 손해만 가득이야. 그렇게 아끼던 키메라 육체도 잃어버리고 말이지.”
조천군.
그는 다른 육신으로 몸을 갈아타고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북해빙궁에서 했던 계획이 진천희로 인해 한 방에 날아갔다.
“아니, 대체 왜 천빙산을 안 간 건지 도통 모르겠네. 진짜 그놈의 제갈세가 점 때문인가? 아니, 그놈들이 그렇게 점을 잘 봤으면 혈사가 났겠나.”
조천군은 연신 투덜투덜거리며 지금 상황을 욕했다.
“그나마 혈아룡와 혈룡체 연구를 완성한 것 정도가 이번에 건진 건가.”
그러나 얻은 손해가 역시 속이 쓰리다.
생 제르맹.
그러나 진짜 이름은 나일라드.
중원에서는 조천군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진짜 생 제르맹의 제자인 것은 맞다. 허나, 과도한 실험 때문에 파문을 당하고.
파문 당시 스승이 나일라드의 힘을 직접 봉인해 그를 추방시켰다.
나일라드는 추방당한 김에 동대륙으로 향했다. 불로불사의 힘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스승을 엿 먹이고 싶어 그 이름을 멋대로 사칭하고 있다.
그러다가 교주의 눈에 띄어 혈선교에 입교.
주술을 익히고 이혼대법과 사술, 금술, 마지막으로 마공까지 닥치는 대로 익혀서 강해졌다.
“이혼대법의 고수가 된 건 좋지만. 자꾸 그렇게 갈아타게 되면 자아도 미쳐버리게 될 거다. 조천군.”
“금광성모.”
조천군이 돌아본다. 그곳에는 금광성모가 서 있었다.
“교주께서는?”
조천군의 말에 금광성모가 피식 웃었다.
“흥미를 잃으셨지요. 천빙산을 못 간 것 때문에 실망하신 것 같은데. 뭐, 또 시간 지나면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우리 중에서 가장 불로불사에 가까운 자는 교주시니.”
“그거야 그렇지. 그분은 시간이 남아도시니까. 그러니 늘 태평하시지.”
그렇게 말하고는 조천군이 되물었다.
“화 안 나신 거 맞나?”
“그거야 모르지요. 그분은 화날수록 웃으시니까.”
“으음…. 골치군. 금광성모. 너야 교주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그렇게 태평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지금 목이 달랑달랑하다고.”
조천군은 핼쑥한 표정으로 목을 쓸었다.
그 순간.
눈바람이 불었다. 희게 번져나가는 풍경 속.
이윽고 두 십천군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037. 삭월에 배꽃 걸리고, 술잔은 이미 만월인데
만나는 것도 과정이 있듯이, 헤어지는 것도 과정이 있기 마련이라.
많은 이들의 송별을 받고 이렇게 아이샤 왕국에 도착해 또 다른 이별을 준비했다.
한빙 왕자.
“내 이번에 소의선 덕에 많을 걸 배웠네. 구양절맥으로 성 밖을 못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이런 모험을 하게 될 줄 몰랐으이.”
그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랬죠.”
“내 인생에 몇 번이나 행상인을 해봤겠나. 아아, 혹시 또 혹세무민(?) 할 일 있으면 불러주게.”
아무래도 공손영 누나와 셋이서 다 같이 약장수 흉내를 냈을 때가 가장 즐거운 추억이었던 모양이었다.
“두 번은 못 하겠습니다. 삭신이 쑤셔서요.”
일부러 어깨를 두드리며 과장된 엄살을 하자 왕자가 웃었다.
“힘든 건 놓고 가고 좋은 건 들고 가게. 참, 아버님이 연회와 함께 또 뭔가 챙겨주려던데 그것만이라도 들고 가게나.”
그렇게까지 말하니 진천희도 못 이기는 척 연회를 즐겼다.
한빙 왕자는 왕에게 그간 있었던 것들을 보고했고, 공식 석상에서는 마교라고 칭했으나.
둘이 독대하는 자리에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어딜 가나 외지인이 문제로구먼. 에잉! 하여간 사파 놈들은 왜 국경까지 넘어와서 활개를 치는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리고 군백주는… 내 오랜 지기였는데 이리 가니 기분이 참 이상하네.”
그는 진천희에게 술을 따랐다.
골골골골-
“음, 자식을 잃을 뻔한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 나라고 그리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는 술병을 들었다.
잔 위로 술이 부드럽게 부풀어 올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진천희는 후룩, 그대로 입 안에 털었다.
‘크으, 쓰다. 그리고 독해!’
그래도 왕이 내리는 술을 거절하는 건 예가 아니지.
남은 한 방울까지 마시자 왕은 허허롭게 웃었다.
“나야 자식 농사에 반쯤 망한 놈이라 뭐라 말할 수 있겠냐마는.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고, 견문을 넓혀 주어 고맙네.”
“아닙니다.”
“군백주는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었는가?”
“…….”
마지막은 결국 이성을 놓고 가지 않았던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진천희가 어물거리자 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유언을 남길 수 있는 것도 복이지. 그 친구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어. 뭐 제대로 된 유언을 남길 수 있겠는가.”
그 말에…… 진천희는 입을 열었다.
“북해빙궁을 잘 부탁한다고 성녀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성녀님이 아닌 현 북해빙궁주가 되었지만요.”
“내 마음 편하라고 굳이 그렇게 말해줄 필요 없네.”
그는 진천희가 예의상 한 소리로 여기는 듯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왕이 자리를 뜬 후, 한빙 왕자가 말했다.
“뭐…. 아버님과 군백주는 원래는 같이 북해빙궁에서 수련하던 사이였으니까. 궁주가 되고 왕이 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지기(知己)였을 때의 기억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 말이네.”
“그렇군요.”
“비록 빈말이라고는 하나 그렇게라도 말해 줘서 아버님은 군귀백 궁주를 더 편한 마음으로 도울 수 있을 걸세. 큰 도움이 되었겠지.”
공손영도 마찬가지였다.
“야, 잘했다. 그래도 괜히 가는 사람 비참하게 갔다는 소리 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어차피 죽은 사람.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
그 말에 진천희는 쓰게 웃었다.
‘그래. 그 유언을 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지.’
분명 군백주는 아들에게 물어뜯기며 자신의 딸에게 말했다.
-뒤를 맡기마. 궁주의 자리는 이제 네 것이다.
이제는 없어진 시간선의 이야기.
‘그때는 그 말을 듣자마자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는데. 참…….’
이제는 없었던 이야기가 되고.
왕에게는 약간의 위로성 거짓말을. 그리고 새로 취임하신 우리의 군귀백 궁주에게도 나름대로 도움이 된 모양.
‘꼭 꿈이라도 꾼 것 같네.’
아직도 천빙산의 핏자국이 그리도 기억에 선연한데.
그 모든 것을 묻어버릴 것 같은 한기가 그리도 가슴에 사무치는데.
‘이제 그것은 모두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기억하는 이는 나뿐이구나.’
진천희는 작게 자조하며 다시 술을 입에 머금었다.
‘크……. 역시 써.’
그래도 명치에 박혀 있는 돌이 너무 커서 물로는 내릴 수가 없었다.
진천희는 문득 없어진 새끼손가락을 본다.
‘다행이야. 그래도. 어떤 건 처음부터 일어나지도 않는 게 좋은 일이니까.’
주변에 있던 이들의 잘린 목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술을 삼켰다.
“북해빙궁을 살린 소의선이십니다!”
“풍문은 진즉에 들었지. 북해빙궁 무인들도 소의선의 말에는 한 수 접어 주게 되었다며?”
“새 빙궁주와 그리도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들었네.”
“정말 신수가 훤하구만.”
연회가 무르익자 진천희는 술잔과 술병을 들고 살짝 객실로 돌아갔다.
공손영 누나와 한빙 왕자는 아마 날이 새도록 놀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가 문득.
새카만 고양이가 복숭아 뼈를 스치며 사뿐사뿐 걸어갔다.
오웅-
낯익은 고양이다.
객실 문을 닫자 여하륜이 그제야 나왔다.
“형.”
“그래.”
진천희는 자연스럽게 탁자에 술병을 내려놓았고, 여하륜은 가면을 벗었다.
“내 동생이 주도(酒道)를 배웠던가?”
“술에 피를 타서 마시는 의식이라면 해본 적 있다만.”
“아니, 그거 말고. 음, 아니다. 천살성이라 대작하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보통은 같이 안 마시겠구나. 그리고 너도 맛을 느끼기 어려우니.”
진천희는 장침을 들고 다시 여하륜의 미각을 깨웠다.
“한잔하자.”
“형…. 괜찮나? 술은 잘 안 좋아하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물이나 차로는 힘들어서.”
“음…….”
여하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개의 잔에 술잔을 따랐다.
“이 술을 다 마시면 다시 이별인가?”
“…….”
진천희는 여하륜을 본다.
잘린 목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 불안을 잠재운다고 아우를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네가 죽는다면 나는 다시 시간을 돌리겠지.’
그로 인해 몸의 어딘가를 빼앗기고 기혈이 뒤틀려 죽을 뻔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진천희는 술잔만 내려다본다.
여하륜이 물었다.
“뭘 기원하지? 부? 명예는 이미 차고 넘칠 것 같고. 무병장수?”
그 말에 진천희는 키득이며 웃었다.
“그래. 그거 좋다. 무병장수가 최고지.”
쨍!
두 형제는 잔을 부딪쳤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태선입니다! 즐거운 만우절, 재미있으셨나요?
1. 이번 챕터 제목은 이조년(1269~1343)의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2. 다음 화는 만우절 외전으로 본편과 상관없는 개그 편입니다.
본편에 집중하고 싶으시면 스킵하셔도 무방합니다.
작가도 이걸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만우절 병맛의 가호가 내린 걸까요?
아무튼! 이제 남은 시간은 6시간.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 웹툰 쪽에도 만우절 특별 표지가 세트로 있습니다.
[의원, 치킨 튀기다] [의원 어부]굿 세트군요. -_-)b
의원, 치킨 팔다
하와와와, 안녕하세요. 여러분.
헌터 아카데미 남고생쨩★ 진천희예요.
지금 대한민국에는 게이트라는 게 생기고 몬스터가 나오고.
아카데미가 있어서 걔들이 헌터사관학교 일을 하게 된답니다.
하지만 헌터 아카데미 등록비가 학기당 2,000만 원.
선진화식 교육을 하겠다던데 국영수 교과 배우는 건 똑같고 학비만 선진화되었어요.
시험이 엿같이 어렵다는 건 둘째 치고 학기당 2,000만 원이라는 조실부모한 가격으로 후려치고 있답니다.
진짜로 조실부모한 저는 이 헌터사관학교에 근로소년 장학제도로 입학하여 매점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입구부터 H 모양 슬리퍼 찍찍 끌고 다니는 돈 많은 집 애들 보고 있으니 아주 그냥 천불이 솟는 거예요.
죽창은 어디에 있을까요?
“가가는 진짜로 부모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일하는 거예요?”
눈 밑에 눈물점이 있는 이 귀여운 여중생은…… 사마현입니다.
“현아. 적어도 교복은 바지 입는 게 좋지 않겠니?”
“가가~ 오늘은 빨리 눈치챘네~”
이 새끼는 대체 교칙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다.
선생님들이 얘랑 눈을 안 마주치는 걸 보니 금혈방 길드가 촌지 좀 뿌린 게 틀림없어요.
중딩 때부터 촌지질이라니 아주 그냥 싹수가 샛노라네요.
“가가~ 치킨 반 마리만 주~세요~”
이 세상은 미친 게 틀림없어요.
금혈방은 왜 중딩을 후계자 중의 하나로 지목한 걸까요.
대낮부터 현금 살포로 편안해진 교내에서.
저 새끼 입에 들어갈 치킨을 튀기고 있으니 기분이 참 이상하네요.
치이이익-
오늘도 바삭해져라, 바삭해져라, 주문을 담아 끓는 기름에 팔팔 튀기고 있어요.
“대체 왜 너는 시간도 많으면서 이러고 있는 거니.”
“가가가 튀겨 주는 치킨이 젤 맛있거든요~ 그리고 학비는 제가 대줄 테니까 그냥 매점에서 일 안 하면 안 될까?”
콰앙!
심판의 망치, 아니 정의의 치킨 그릇을 내려놓았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고갱님.”
죽창은 왜 없는 걸까요.
아니, 대체 왜 이놈은 내 알바 생활에 이리 불만이 많아?
그때였어요.
벌컥!
“운명의 대적자여! 치킨을 뜯으러 왔다!”
“초등학교 졸업반 당아구나. 그래. 오늘도 양념?”
“불닭 양념이다! 크하하하하핫!”
“안대가 어울리는구나.”
대체 어디서 안대를 구해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졸업반.
슬슬 피와 어둠에 이끌릴 때가 오긴 했죠.
그렇게 당아에게 치킨을 전달하고 나니, 얼마 후에 다시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답니다.
“여기 치킨 하나! 맥주 하나!”
“……주왕… 아니 풍주하 선생님……. 저희 매점은 호프집이 아닙니다.”
“에이, 풍류가 없구만!”
그리 말하며 안주머니에서 거대한 캔 맥주를 꺼내는 게 아닌가요.
학생 앞에서 맥주 파티라니!
“치킨 두 마리! 프라이드 바짝 튀겨서!”
망할.
매점인데 어째 과자 같은 거 살 생각은 안 하고 손 많이 가는 치킨만 시켜대고 있어!
“유호! 치킨 양념은!”
“죽으십시오. 개 같은 선배 놈 새끼야!”
“오, 다 됐다고? 고마워.”
“접싯물에 코 박고 죽으십시오. 이 선배 놈아.”
들리는 소문으로는 유호가 한 수백 년 유급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진실은 모르겠습니다요.
이 아카데미는 창립 고작 30년이거든.
그 계산대로 하면 이놈은 조선왕조 때부터 유급했다는 뜻이 되는데 그쯤 되면 나보다 나이 많은 후배가 아니라 그냥 조상님 아닌가?
“유호, 나도 사랑해!”
“후, 인간 새끼가 왜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모르겠군요.”
가운뎃손가락을 펴고 욕을 하는 걸 보니 유호도 슬슬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네요.
하지만, 이렇게 화를 낸다는 건 치킨이 그래도 잘 튀겨졌다는 뜻.
진짜 바쁘면 말수가 줄어들거든요.
아닌 것 같아도 유호는 책임감이 강한 녀석이니까.
그리고 다시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슬슬 치킨 곧 매진…….”
“……그럴 리가 있나. 닭 재고 넉넉한 것을 이미 체크했거늘.”
그랬다.
풍하금.
이 화 아카데미 쌍둥이 이사장 중의 하나.
“오셨습니까?”
“오늘도 치킨 냄새가 향긋하군. 과연 진천희 학생이야.”
“뭐 드시고 싶으십니까?”
“치킨 너겟으로.”
그나마 그건 쉽군요.
냉동식품으로 있는 거 에어 프라이어로 튀기면 되니까.
“디핑은 칠리소스로.”
“네입.”
VIP에게 주는 치킨 너겟이라고 해도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그냥 치킨 너겟에 냉장고에 있는 칠리소스를 조그마한 접시에 좀 담아주는 게 전부입니다.
풍하금 이사장님은 그것을 극상의 밥이라도 되는 듯 음미하더니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거기 감자칩도 세 개 집어 주거라.”
“여기 있습니다.”
왜 이 새끼는 살이 안 찌는 걸까요.
로열 블러드 유전자에 살 안 찌는 뭐 그런 거라도 있는 걸까요.
저는 감자칩을 계산하며 하늘에 기원했지요.
‘확, 충치나 생겨버려라!’
그렇게 저주를 날리고는 다음 손님을 받으려고 하니.
“어라, 천우니?”
“네. 형. 저 왔어요. 지금 바쁘죠? 무당 길드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요.”
그리 말하며 매점 유니폼으로 서둘러 갈아입고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천우도 저와 같은 고아 출신이나, 우여곡절 끝에 무당 길드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무당권제님께 직접 사사받고 있다고는 하는데, 바쁠 텐데도 근로 장학생 신분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너는 이제 나처럼 일 안 해도 되잖아. 학비 걱정이 없을 텐데?”
“뭘요. 형 혼자 어떻게 고생시켜요. 의리가 있지.”
“천우야…….”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멥니다.
이런 놈인 줄도 모르고 무당파 들어간다고 할 때 속으로 괜히 질투하고 그랬지요.
형으로서 좀 추한 꼴이긴 했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답니다.
“형은 백린 길드에 원서 넣은 거 어떻게 되었어요?”
“응. 서류 심사는 통과했고 곧 최종 면접이야. 문자로 날짜 알려주신다더라.”
“와! 그거 대단한 거 아니에요?”
“모르지. 이래 놓고 떨어진 사람이 한둘이니…….”
“백린 길드는 최상위 힐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도… 사람 참 안 뽑죠. 힐러는 귀족인데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치유 능력자는 귀한 편이라 어딜 가나 대접받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백린 길드는 그 치유 능력자들 중에서도 최상위권 능력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
그것도 T.O도 잘 안 나고, T.O가 난다고 하더라도 최종 면접에 불러 놓고 한 놈도 안 뽑아가는, 그런 악랄한 길드 중의 하나지요.
그래도 월급이 빵빵하고, 지원도 좋고.
게이트가 열려 지구 인구 절반이 사망하고.
결국 의료보험 민영화가 보편화되고 있는 이 디스토피아 헌터 월드에서.
의료 관련 길드는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는 게 노후를 위한 길입니다.
병원비가 할인되거든.
‘요즘 감기 치료받는 데 10만 원 달라 하더라.’
미쳐 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힐러 능력자가 생기면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가 온대요.
선진화(?) 의료 세상에서 나는 뭐, 없지만★
“길드 마스터가 그 유명한 백린의선이잖아.”
“그 사람은 치료보다 무공 쓸 일이 더 많은데 대체 왜 백린의각 길드를 지었는지 모르겠어요.”
과거에 혈린광살이라고 다른 길드들과 은원이 있다고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옛날 기사는 이제는 다 삭제됐으니까요.
“의각이 돈이 되거든.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백린의선에게 병이 있다더라고. 하지만… 음…. 모르겠다. 나 같은 애를 받아줄까.”
내 말에 천우의 입이 한일자로 굳어졌습니다.
“받아줄 거예요.”
“음?”
“당연히 받아줄 거예요. 안 되면 저희 무당 길드로 오세요. 권제님이…….”
그때 사마현이 큰 소리로 외쳤지요.
“금혈방이 있사옵니다. 가가~”
놀랍게도 이번에는 변장을 풀고 남자 교복을 입고 있네요.
대체 언제 갈아입은 거지?
내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나?
아무튼 그 말에 개띠껍다는 표정으로 천우가 노려보았습니다.
“저 녀석 여동생도 저거 아는지 모르겠네요.”
“하하하하.”
저는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사마혜를 내가 치료한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그때였습니다.
학생들이 죄다 웅성거리는 게 아닙니까.
“일진? 일진 여하륜이 온다고?”
“사이비 마교 교주 양자로 들어간 그놈?”
“그 미친놈이 왜 이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삥 안 뜯기게 조심해라.”
“삥이 문제가 아니야. 마교는 마약 팔고, 사람 잡아다가 세뇌하고 그런다는 소문이 있어.”
“그딴 새끼가 대체 왜 매점에…….”
따랑-
매점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교복을 맨 위 단추까지 단정하게 잠근 여하륜이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하륜이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무슨 모세의 기적마냥 쫙 갈라집니다.
그렇습니다.
인구 절반이 사라진 이 헌터 월드는.
명문 학교 등록금 2,000만 원에.
의료보험 민영화에.
다단계 사채업 길드 후계자가 촌지를 뿌리고.
사람 죽이는 사이비교 양아들이 당당하게 명문교 입학해서 다니는 그런 세상입니다.
참, ㈜일월신교의 기치 아래에서 전기도 민영화했습니다.
헌터 월드는 서민 목숨이 파리 목숨은 아니어도, 서민 통장이 파리 통장이긴 합니다.
“하… 하륜아.”
“……응. 형.”
일단 겁먹은 임팔라처럼 도망 다니는 학우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어요.
“감자튀김에 불닭 가루 입혀서 튀겨 줄까?”
여하륜 입에 뭐라도 물려서 구석에 박아두면 좀 분위기가 낫겠지요.
비록 사람 썰고 다니는 사이비 범죄 집단 양아들이지만. 애는 착하답니다.
그리고 감자튀김에 불닭 가루를 입혀 다시 튀기는 이 음식은 인간의 미각, 그 한계를 시험하는 요리로 전교에서 여하륜과 당아만 먹습니다.
다른 이들은 치즈를 얹은 치즈느님 마라소스 튀김을 애용합니다.
여하륜은 나와 뒤에 있는 천우 그리고 사마현을 쓱 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매점에 있는 감자튀김 전부 산다.”
“뭣?”
그 순간, 사마현이 소리 지르는 게 아니겠어요?
“가가! 저는 치킨 전량 구입하겠습니다!”
여하륜이 그런 사마현을 향해 말했다.
“……하나.”
이 미친놈들. 이래서 죽창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저는 식은 표정으로 말했지요.
“학생은 1인 1치킨, 1인 1감자입니다. 고갱님. 학우들을 생각해 주세요.”
“쳇.”
그때 눈치 없이 다시 문이 열렸습니다.
선글라스에 체육복을 입은 남궁운 선생님이군요.
날 때부터 남궁 길드의 길드 마스터 아들로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양반입니다.
이런 양반이 고작 소일거리나 하고 싶다고 헌터 아카데미 교사 일이나 하고 있습니다.
“여어!”
“네. 선생님. 치킨이랑 맥주요?”
“오오, 아는구나?”
풍주하 선생님이랑 똑같은 소리 하고 있군요.
“저희 매점이라 맥주 안 팔아요.”
“아쉽구나.”
아니, 학생 매점에서 왜 자꾸 술을 찾아.
이 망할 선생들이!
저는 치킨을 튀기며 저주를 걸었습니다.
‘확 요로결석이나 걸려버려라!’
치이이이잌–
그렇습니다.
마치 마녀의 가마솥처럼 끓어오르는 황금 올리브유를 보고 있으니.
저 남궁운 선생이 미래에 요로결석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방금 전에 저주했던 풍하금 선생님처럼.
크하하하학!
내 저주를 받아라! 이 부르주아 놈들아아아!!!!!!!!
그렇게 푸닥거리를 하고는 팔이 빠지도록 치킨과 감자튀김을 튀기고.
에어 프라이어로 너겟도 튀겨서 우리 소중한 고오갱님들에게 한입씩 가져다주었지요.
그러다가 문득 폰에서 진동이 울리지 않겠습니까.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건 번호.
“어…… 야. 백린의각에서 연락 왔다.”
“면접 날짜 나온 거예요?”
“응! 그런 거 같아.”
후욱…….
가슴이 뛰는군요.
뭘 입고 가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잘 보여야 할 텐데.
아, 아닌가. 학생이니까 역시 교복이 좋겠죠?
폰을 슬쩍 여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짧은 한 줄.
[면접 일시 : 지금]“음?”
딸랑-
긴 은발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으으으음?”
색소가 옅은 미남의 등장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군요.
심지어 우리 학교 선생님도 아니야.
그리고…… 유명인이지요.
백린의선 제갈린.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희야. 치킨 먹다 말고 잠이 들면 어떡하니?”
“네?”
* * *
눈을 뜨니 식은 치킨과 함께 백린의각 풍경이 보이는 게 아닙니까.
“어……. 꿈?”
스승님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어…….”
눈앞에 있는 건 백린의각 죽간본과 각종 약재들.
연구 자료들.
‘다 꿈이었나.’
저는 멍하니 말했지요.
“스승님, 진짜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 그래 보이는구나.”
그리 말하며 내 머리를 꾹 눌렀다.
오늘은 4월 1일 삭월.
달이 뜨지 않는 날.
역시나 장지문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손톱만 한 달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은하수만이 들꽃처럼 무성하게 피어날 뿐이었습니다.
“삭월에는 이상한 꿈을 꾼다는 이야기가 강소성에 전해진단다.”
“그래요?”
“달이 뜨지 않는 날에 꾸는 꿈은 사실 다른 별세계에 진짜로 일어난 일이라는 이야기지.”
“어쩌면 정말로 그런 걸 꾸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보통은 그냥 개꿈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스승님이 그리 말하며 살짝 꿀밤을 때렸다.
“또 밤늦게까지 일했구나.”
저는 에고고, 아픈 척 엄살을 부리며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런 세계가 정말로 있을 거 같아.’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