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
제 61화
비록 다리 하나는 쓸 수 없지만, 다른 하나가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어설픈 솜씨였으나 그래도 무공을 배운 게 있어 충분히 위협적이였다.
주왕부의 무사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주군을 위해 검을 뽑았다.
칼날이 바람처럼 그의 목에 날아온다.
‘잘됐다. 고통은 없겠구나.’
그녀가 총애하는 부마가 아닌, 역적 천유랑의 죽음이었다.
사랑만큼 쉽게 식는 건 없다.
반생을 하오문에서 자라 온 그였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식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촤아악!
검이 살을 찢는 소리가 울렸다. 피비린내가 지독하다.
통각은 없었다. 기이했다.
천유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야 한가득, 그곳에는 그녀가 있었다.
“쿨럭!”
그녀는 핏물을 뱉었다.
그의 것에 찔리고, 호위 무사의 검까지 뒤에서 찔린 채로 그녀가 서 있었다.
“왕야!”
그것은 천유랑의 세상이 무너지는 단말마였다.
“랑랑, 다치진 않았느냐. 고운 손이 피로 물들었구나…….”
핏물을 흘리며 그녀는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몸이 쓰러진다.
주군을 지키려다 엉겁결에 주군을 찌른 호위 무사는 충격으로 어쩔 줄 몰랐다. 그녀가 말했다.
“괜찮다. 두 사람의 죄를 묻지 않겠다. 이것은 주왕으로서의 유언이니 폐하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증인이 되어 줄 터이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왜 왕야가 죽습니까! 죽어야 할 사람은 접니다!”
“쉬잇, 아니다. 반려의 마음조차 알지 못하는 이가 어찌 왕이라 할 수 있겠느냐.”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만진다.
붉은 핏자국이 매화처럼 피어났다.
마치 그때, 그녀가 건네주었던 겨울 매화처럼.
“너는 자유다. 랑랑…… 그동안 증오하는 이를 참느라 고생했다. 이제 누구도 그대를 구속하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점점 의식을 잃어 갔다.
“아아,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내가 그대의 마음을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곱구나. 참으로 고와… 겨울 매화보다도 곱구나…….”
천유랑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녀를 찔렀던 것을 다시 뽑아 자신의 목에 겨누려고 했다.
“외롭지 않을 겁니다. 왕야. 함께…….”
그 순간, 진천희의 목소리가 울렸다.
“빨리 상처 눌러요!”
진천희의 일갈에 부마는 저도 모르게 왕야의 상처를 눌렀다.
“더!”
“커억!”
극심한 고통에 왕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출혈로 탈진한 와중에도 소리를 지를 만큼 극심한 고통이었다.
지혈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진천희가 말했다.
“긴급 수술 들어갑니다! 아, 스승님!”
“음?”
“뭐 하고 있었어요! 점혈 안 하시고!”
“아, 나도 놀라서 정신을 놓고 있었단다.”
태연한 목소리로 답하며 제갈린은 그제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죽기에는 장소가 나빴다.
이곳은 백린의각이다.
* * *
‘미친, 하프 핀을 자기 손으로 뽑았네. 고통이 엄청 났을 텐데 돌았나? 아니 그전에, 이걸로 대체 어떻게 사람을 찌른 거지?’
대체 어디서 암기를 조달했나 보니까 외고정 하프 핀이었다.
진천희는 자신이 떨어진 세계가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레이드물도 아니고, 하필 무협지 속이라는 게 눈물이 났다.
‘왜 이리 다들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시는 겁니까… 소설로 읽을 때는 멋있었는데, 의와 협, 은과 원은 목숨보다 더한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말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는데…….’
외과의의 시선으로 보니 이곳은 불지옥이었다.
‘대화를 해. 이 사람들아…… 목숨 던지지 말고 진솔하게 마음과 마음의 대화를 하라고오…… 칼보다 평화가 더 건강에 좋아요. 이 무협지 인간들아.’
환장할 지경이다.
방 안에는 진천희와 제갈린뿐이었다.
스승님이 왕야의 옥체를 보게 될 수 있으니 다른 이들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 진짜 은을 원으로 갚았기로서니 왜 목숨을 던질 생각을 해. 그리고 왕야는 대체 왜 거기서 몸을 던지세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도 그렇지. 내가 그래서 이렇게 진맥을…… 어?’
뭔가 이상했다.
진천희는 다시 진맥을 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입으로 생각이 나왔다.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상처가 겉으로는 심각해 보였으나, 막상 진맥해 보니 혈도도, 내장도, 동맥도 모두 다 멀쩡하기만 하다.
하프 핀이 워낙 가늘어서 생긴 기적인 건가?
진천희는 당황했다.
“아, 아니에요. 피를 많이 흘렸잖아요. 분명 등에 당한 상처 때문이셨을 거예요. 환자를 돌려 눕히죠.”
스승님이 담담히 답했다.
“그래. 그러자꾸나. 왕야, 좀 돌아누우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그 말에 분명 기절한 줄 알았던 왕야가 눈을 슬그머니 뜨더니 미적미적 돌아누웠다.
“이러면 되느냐?”
“감사합니다.”
“…….”
진천희는 잠시 사고가 끊어졌다.
기계처럼 손을 뻗어 등을 진맥했는데 이건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주왕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그쪽보다는 입안을 좀 깨물어서 피가 많이 나왔다. 그것부터 치료하는 게 어떻겠느냐.”
진천희는 그제야 깨달았다.
“여, 연기셨습니까?”
“어허! 연기라니! 내가 너무나도 고수인 것을 어쩌란 말이냐! 맞아 주고 싶어도 맞아 줄 수가 없었느니라!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는 작은 책략 정도는 벌여야 하는 법!”
이것은…… 사기였다.
모든 것은 사기였다.
주왕은 자신의 신하들과 사랑하는 그놈의 부마를 감쪽같이 속이고는 여기서 누워 있다.
진천희가 불신의 눈으로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왕야께서 피를 토하시는데 점혈 안 하시고 가만히 계셨던 이유가…… 혹시 처음부터 알고 계셔서 그런 거였어요?”
그 말에 스승님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희야.”
“네, 스승님.”
“신의란 명호는 무수히 많은 실전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법.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꾀병도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지 않겠니.”
‘그래. 소설에서 분명히 주왕은 무공의 고수라고 했지. 그냥 고수도 아니고 절세 고수.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를 감싸 안고… 어어…….’
한마디로 주왕님의 사기극에 그냥 끼지 않고 쳐다보고만 있다가 제자 놈이 비장한 목소리로 긴급 수술을 한다니까 장단을 맞춰 주신 셈이었다.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어허! 이 몸의 계획을 수포로 만들겠다는 것이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진천희는 소설을 떠올렸다.
왕야는 천유랑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천유랑이 아사(餓死)로 임종을 맞자 그녀는 그의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매일 술로 시름을 달래며 시를 읊었다.
훗날 천마와 조우하게 될 때까지 매우…… 건강하셨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다이아몬드처럼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신 역시 다른 의미로 몹시 건강하였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 마시고 홀로 시를 읊는 생활 역시 소설로 봤을 때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는데, 지금 이 상황을 보니 그냥…….
‘은퇴하고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며 살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그녀의 사랑은 진짜다.
늘 그리워했고, 천유랑 외의 새로운 사랑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사랑 방식은 너무나도 건강했고, 또 강인했다…….
범인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스승님이 말했다.
“대단한 기지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몸을 던지는 연출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우리 랑랑이야 진짜 찌를 생각이 아니었으니 느린 건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호위가 문제로군. 기강이 빠졌어. 검 휘두르는 속도가 한 세월이더구나.”
…진천희가 보기에는 눈 한 번 깜빡이면 상황이 끝나 있을 만큼 거의 찰나였다.
주왕이 말했다.
“자, 그러면 적당히 처치하고 붕대를 감아 주겠느냐? 매우 큰 상처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로 몸을 던진 게 아니라 다행이네요.”
“호오, 속았다고 분이라도 삼킬 줄 알았는데.”
“사람이 멀쩡한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는데요. 정말 다행이죠.”
주왕의 꾀병이 싫지가 않았다.
“…….”
주왕은 그런 진천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참, 이렇게 마음에 드는 아해는 오랜만이로구나.”
그때 스승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안 됩니다.”
“흠? 아직 이야기도 시작 안 했는데.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하하하, 안 됩니다.”
부드럽지만 강경한 목소리다.
그 말에 주왕은 입맛을 다셨다.
“백린의선은 눈치 하난 귀신이구만.”
랑랑의 다리를 살릴 만큼의 의술은 기본이고, 그녀를 두려워하면서도 할 이야기는 전부 다 하는 기개까지 있었다.
거기다가 이 와중에도 자신의 감정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올곧은 자세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진천희는 꽤나 탐이 나는 인재였다.
‘할 수 있다면 주왕부로 납치하고 싶은데…….’
그의 스승이 눈치가 귀신인 게 문제다.
말 꺼내기도 전에 뿌리부터 싹둑 잘라낸다.
절대 내어 줄 생각이 없다는 뜻.
‘운룡표국에서 탐을 냈었다는 소문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거기다가 이 아이는 아직 어리다.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었다.
‘주왕부의 수호신으로 만들고 싶은데…….’
주왕이 말했다.
“진천희라 하였느냐? 만약에 돈도 명예도 따라오는 일이 생긴다면 하겠느냐?”
제갈린이 작게 혀를 찼다.
그답지 않게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주왕은 그의 제자를 채 가려고 밑밥을 깔고 있었다.
무림의 기준으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중간에 끼어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이 참은 셈이었다.
진천희가 물었다.
“어… 돈도 명예도요?”
“그래. 엄청난 권세도 따라올 수 있게 될 거란다.”
진천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일이라는 게 저를 천하제일 의원으로 만들어 줄 수 있나요?”
“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저는 천하제일 의원이 되는 게 꿈입니다. 그래야 스승님의 병을 고칠 수 있으니까요.”
너무나도 명백한 거절이었다.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이렇게 차일 줄은…….’
하지만 어째 더 마음에 든다.
황실에서 돈과 명예로 살 수 없는 인재는 귀했다. 거기다가 그 이유가 스승님 때문이라니.
그녀가 말했다.
“허허허, 큰일이군. 갈수록 마음에 드니 말이다.”
그녀가 제갈린을 향해 말했다.
“백린의선은 전생에 무슨 복을 받아 이런 제자를 들였나.”
제갈린이 겸손하게 말했다.
“복이라니요. 아직 부족한 제자입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말을 하니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자랑을 하시게. 백린의선.”
“아닙니다.”
“으이구, 행복해 죽으려는구만, 백린의선. 하여간 주왕부 의원들이 저 아이 반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겠나.”
“과찬이십니다.”
“입 찢어지겠네그려.”
제갈린의 몸에서는 행복과 뿌듯함의 오라가 피어났다.
문득 진천희가 물었다.
“왕야,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쭈어도 될까요?”
“오오, 당연하지. 무엇이 궁금하느냐!”
“왕야께서는 대체 왜 그리 부마를 사랑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급소를 피했다 하더라도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니잖아요. 거기다가 왕야를 속인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