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2
제 612화
진천희는 온 힘을 다해 달려가 무림맹에 도착했다.
‘후, 스승님께 손가락 걸리기 전에 빨리 중요한 일을 다 처리해야 해.’
멀쩡한 제자 새끼손가락이 날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분노하실까.
아이고.
‘그래. 모르실 때 조금이라도 더 해놔야지.’
그리 생각하며 닭꼬치를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무림맹 주변을 돌아보았다.
‘으음, 확실히 무인들이 다들 날이 서 있군.’
풍겨오는 기도가 마치 칼날과도 같았다.
격한 수련을 겪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착실하게 정사대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
단순히 사파에 대한 은원만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갈고 있는 게 아니지.
검을 들고 적과 싸운다는 그런 기본적인 행위 자체가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수련해온 이유 그 자체니까.
‘현대 지구에서 사람 칼 찌르는 수행을 평생 했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 듣겠지만. 강호는 그런 게 아니니까.’
강호는 이게 정상이다.
지구에서 온 진천희가 비정상이고.
‘검으로써 자신의 무학을 펼친다라.’
그저 용봉지회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인류사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 않나. 그런데 강호라고 뭐 다를 거라고 믿는 쪽이 오만이 아니었을까.
복잡한 생각을 하며 닭꼬치를 다 먹고 무림맹 본관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의선.”
무림맹 무인들은 진천희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직 명패를 안 보여드렸는데.”
“무림맹에 소의선을 모르는 이는 없지 않겠습니까.”
벌써 그 정도의 무명을 쌓았나.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의 인도를 따라 귀빈실로 안내되었다.
진천희가 걷는 내내 무인들이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잃었다더니 사실이군.”
“검수로서 안타깝게 되었군. 예전과 같은 무위를 펼칠 수 있는지 궁금하구만.”
“그건 아마 소의선이 쓰는 검법에 따라 다를 걸세.”
“그나저나 미모가 여전하구만. 북해빙궁까지 다녀왔는데도 시드는 법이 없으니.”
“나도 무슨 전설 속의 천인인가 했으니까.”
“얼굴에 속으면 안 되네. 제갈가 아닌가. 분명 다른 속이 있을 게 뻔하네.”
다 들린다, 이놈들아.
하지만 진천희는 모르는 척 귀빈실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된 온수에 몸을 씻었다.
‘꽃이 예쁘네.’
욕탕 밖에 보이는 배꽃이 무척이나 환했다.
“봄이다. 그치?”
컹!
황구가 낮게 짖으며 진천희와 함께 탕 안에서 첨벙거렸다.
“봄은 놀기 좋은 날이지.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서늘하고.”
삐익!
뇌진이 목욕탕에 물오리처럼 떠서 깃털을 첨벙거렸다.
“나는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고.”
무인들은 진천희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잃은 것에 대한 호기심도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지금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무인도 있을지 모른다.
검수도 외과의랑 비슷하여 새끼손가락 하나.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큰 타격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으니까.
* * *
그리고 다음 날.
무림맹에 현재 체류 중인 각 문파의 대표들이 자리한 가운데 진천희를 불렀다.
진천희는 미리 준비한 비단옷을 꺼내들었다.
‘북해빙궁에서 선물한 학창의.’
사천에서 명주와 비단실을 수입해 그들만의 방법으로 다시 천을 짜는데, 빛을 받으면 눈을 뿌린 것처럼 은은한 광택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추운 지방이라서 그런지 보통 비단보다 두꺼운 것도 특징이고.
진천희는 그렇게 북해빙궁의 선물을 입고 머리 장식도 평소 끼던 것이 아닌 북해빙궁에서 보내준 것으로 찼다.
북해한철로 만들어진 장식으로 가운데에는 청옥이 박혀 있었다.
‘뭐, 몇이나 알아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기분의 문제니까.’
로맨스 판타지 보면 사교장 가기 전에 이렇게 준비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아도.
북해빙궁에서 죽창 들고 레볼루숑 하고 돌아오니까, 인민들이 보내준 옷으로 정신 무장 좀 다시 해야 할 것 같단 말이에요.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니.
‘음, 대표라고는 하나 역시 문주급은 없구만.’
그 말은 다들 문파로 돌아가 정사대전에 앞서 정비 중이라는 뜻.
그것만으로 진천희는 계획이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눈치챘다.
가운데에는 맹주인 악진이 앉아 있었다.
“북해빙궁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네. 사도련과의 동맹이 해체되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을 설명해 주겠나.”
진천희는 무림맹 소속이 아니다.
토지를 대가로 의뢰를 받은 외부인일 뿐. 때문에 무림맹에서는 제대로 된 보고를 받고 싶었기에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사도련의 동맹이 하나 떨어져 나간 것은 큰 사건이니 당연한 일.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준비한 것들이 있으니 봐 주시지요.”
진천희는 미리 부탁한 서책을 꺼내들었다.
시종들이 진천희가 꺼낸 서책을 문파의 대표로 온 자들과 맹주에게 전달한다.
“1장을 보시면…….”
그리고 시작되었다.
진천희의 프레젠테이션이!
“북해빙궁을 둘러싸고 혈선교가 수작. 그것은 4장의 자료를 보시면…….”
팔락-
“마교가 혈선교와 북해빙궁주를… 그것은 6장의 지도 첨부한 [진천희 동선2]를 확인해 주십시오…….”
다들 기묘한 표정으로 진천희의 설명을 듣는다.
공적에 흠집을 내고 싶어서 따지려고 들면, 그것은 서책 어디어디에 적혀 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소리를 듣고 침몰하게 된다.
‘이래서야 트집 잡기도 어렵군그래.’
‘아마 이럴 줄 알고 저쪽도 미리 대비를 한 게지.’
‘역시 그리 가는가.’
각 문파의 대표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궁주가 혈선교와 손을 잡고 백성들을 인체실험해서 아들을 되살리려고 했다는 내용은 보고에서 뺐다.
대신 혈선교가 전염병을 퍼트리던 것을 진천희 자신이 처리하고.
그사이에 마교가 쳐들어 와서 궁주가 죽었다로 내용을 슬쩍 바꾸었다.
그런 공로로 북해빙궁은 사도련과 동맹을 해제했다는 내용의 보고.
다들 그 보고에 ‘허어……. 어찌 그런.’ 하고 감탄을 하고 만다.
물론 트집을 잡고 싶은 몇몇 문파 대표들을 제외하고.
‘이러면 이번 정사대전에서 백린의각 공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닌가?’
‘애초에 백린의각은 이번 정사대전을 반대하고 있는 쪽일세.’
‘크음. 간악한 사파들을 놔두려 하다니.’
그건 어디까지나 켜켜이 쌓여 왔던 명분들과 은원들의 이야기.
실익을 위해서 정사대전을 일으키려 함을 모르는 이들이 아니다.
그런 자들 입장에서 진천희는 손끝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속 모르는 몇몇 대표들만 진천희의 일에 감탄했다.
“그걸 성공해 내다니 대단하오!”
“북해빙궁이 사도련에 붙였을 때 정사대전의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는데 손을 떼게 되었으니 이리 반가울 데가!”
“과연 혈린… 아니 백린의선의 수제자인 소의선이오!”
말실수를 하는 척하고 일부러 긁은 느낌이 들지만 진천희는 개의치 않았다.
맹주 악진이 입을 열었다.
“수고했네. 진 소각주. 이제 우리 무림맹이 답할 차례이지. 처음 약속대로 각 문파에서 그들이 가진 토지 중 약초 재배에 적합한 곳들을 준비해 두었네. 하지만……. 본 맹주로서는 다른 제안을 하고 싶군.”
“다른 제안이라고 하시면 무엇입니까?”
“하남성 천중산(天中山)에 토지를 마련해 두었네. 천중산 일대 거의 전부를 포함한 것으로 아주 넓은 지역이지. 사람이 없을 뿐 현(縣)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고도 남을 곳일세.”
현(縣)만 한 크기라!
지금의 백린현만 해도 그 인구가 얼마인가?
게다가 이번에 이웃 현과 통합되면서 그 크기는 다른 현들과 비슷하든가 조금 더 커졌다.
그런 크기의 지역을 통으로 준다니?
‘이야… 통 크시네. 그리고 천중산이라… 그러고 보니 거기에 신병이기가 하나 숨겨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존천마의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
소림사의 파계승 편.
소림사 장경각에는 마공 비급도 여럿 보관되어 있는데.
소림사의 어떤 승려가 그걸 몰래 익혀 주화입마에 걸려서는 살인을 저지르다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다른 무협 소설들에도 자주 나오는 단골 클리셰이긴 하나.
왜 소림사는 그 위험한 마공 비급을 불쏘시개로 쓰지 않는 것인지 무협 독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이런 화근이 있으면 그냥 태우고 편해지면 안 되나?
어쨌든 그 파계승이 남긴 신병이기가 그곳에 잠자고 있다.
‘이건 받는 게 이득이겠지?’
천중산 일대가 사유지가 된다.
그곳에 대규모 약초 농장을 세워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천중산의 진짜 가치를 저들은 모르는 거군.’
각 문파의 안 쓰는 쓰레기 같은 땅을 주기가 싫어서 모두 조금씩 힘을 모아 진천희에게 현령급의 토지와 신병이기를 본인들 손으로 건네는 셈.
‘그냥 잔머리 안 굴렸으면 됐을 일을. 나중에 배 좀 아프시겠군.’
하지만 좋은 척하면 절대 안 된다.
진천희는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 그러니 원하면 처음 약속대로 해주겠다고 내 말하는 것이네.”
창왕 악진이 그렇게 답했다.
‘말은 그리해도 쫄리긴 하시겠지.’
다른 문파들이 약조를 따르기 싫어서 힘을 모은 게 뻔하지 않나.
진천희는 팔짱을 끼고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된 거 그러면 은자를 좀 더 받고자 합니다.”
“원한다면 더 얹어 주겠네.”
‘아싸라비야!’
진천희는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인 척 악착같이 뜯어냈다.
마지막 한 푼까지 긁어 갈 때는 각 문파의 대표들이 ‘이 독한 새끼. 아무리 봐도 혈린이 낳은 놈이 맞긴 하오.’라는 눈으로 퀭하게 바라볼 정도.
악진도 기가 질려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지 않나! 뭘 더 얹어 주라는 말인가! 그럴 거면 처음대로 합세!”
‘음, 슬슬 한계이군. 이 정도면 끝까지 다 쥐어짰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내가 북해빙궁에서 무슨 개고생을 했는데.’
진천희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 역시 문파들의! 화합을 위해! 천중산을 받고자 합니다! 이다음 필요한 것은 은자가 아닙니다.”
“허면.”
“씨앗을 받고자 합니다.”
“씨앗?”
다 뜯어가 주리라.
‘내가 북해빙궁에서 무슨 고생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이놈들아!’
빠, 빠, 빨간 맛 좀 봐라.
* * *
이 밖에도 진천희는 목재와 비단, 석재, 그리고 보석과 구리석, 동 광석을 추가로 뜯어갔다.
겸사겸사 북해빙궁에서 대형 목욕탕과 빨래터를 더욱 확장시키기 위함.
그리고 화산 지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약초 씨앗도 좀 뺏어왔다.
북해빙궁 화산 분지에 키워볼 생각이다.
‘크왓하하하하! 인민의 약초 맛 좀 보거라!’
검강 쓰는 카를 마르크스도, 화경의 레닌도 없는 곳이지만 아무튼 사람을 부렸으면 값을 내놔야지.
그렇게 퀭해진 악진과 무림맹 대표들을 뒤로하고 진천희는 회의에서 물러났다.
“고맙습니다. 후우…. 무림맹의 온정이 이토록 따뜻할 줄은.”
“……이제 제발 물러나게나.”
십 년은 늙어 보이는 악진을 뒤로하고 진천희는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