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3
제 613화
이윽고 총군사 독고선이 와서 진천희에게 땅문서와 상단의 어음을 건넸다.
“마지막 한 톨까지 다 뜯어 가시는군요.”
“하하하, 뭘요. 저야말로 어쩔 수 없이 무림맹의 사정을 봐드려야 했으니 힘들었지요.”
아주 그냥 얄상 맞게 웃는 폼이 사람의 화를 자극한다.
하지만 독고 군사는 한숨 한 번 쉬고 말았다.
“백린의각 소각주님은 아군도 많지만 적도 참 많으시겠습니다.”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무림맹 총군사와 진천희는 앉아서 차를 마셨다.
그녀가 말했다.
“어차피 제 재산 떼 가는 것도 아니고 여러 문주님들이 갹출해서 드리는 거니 별생각은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북해빙궁에서 저희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보신 모양이군요.”
방금 했던 발표 중에 숨기는 게 있지 않느냐는 뜻.
넌지시 떠보는 그녀를 향해 진천희는 히죽 웃었다.
“많이 봤지요. 깨달은 것도 많고. 그나저나 사도련에도 마교의 흔적이 포착되었는데 그럼에도 정사대전은 계속 할 겁니까?”
물증은 없기에 누가 첩자인지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허나 간자가 있다는 것 정도는 분명히 밝혔을 뿐.
“……마교의 간자가 있는 게 아니라 마교와 손을 잡았다 하더라도 정사대전은 이루어질 겁니다.”
총군사 독고선의 말에 진천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진천희를 독고선은 기이하게 보았다.
“막지 못하였는데도 괜찮으신가요?”
“제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보죠.”
삐걱-
진천희는 의자를 기울이고는 목을 쭉 뻗어 천장을 보았다.
비록 천장에 막혀 있어 보이지 않으나, 저 너머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느끼지 않았던가.
그 하늘에 정말로 신선이니 혈선이니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혈선교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강해져야지.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겠지.’
소중한 사람들이 그렇게 죽는 것을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의원은 의외로 쉬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떤 건 죽어야 안다더니. 진짜로 죽으니 알게 되었구나.’
독고선은 그런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절의 노승과도 같은 표정이십니다.”
“그런가요?”
“뭐… 소각주님은 그런 분이시니까요. 범인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하하하, 감사합니다.”
“칭찬 아닙니다.”
독고선은 툴툴거리더니 이렇게 물었다.
“기왕 내려놓으신 것 무림맹을 백린의각에서 도우면 어떠하십니까?”
“차라리 한쪽 편을 들어 빠르게 정사대전을 마무리해 희생자를 줄이는 게 어떠냐는 뜻이군요.”
“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진천희는 작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한번 얽히게 되면 다음 정사대전에도 백린의각이 나서야 할 거야.’
그걸 모를 독고선이 아니다.
얄팍한 술수지만 그래도 꽤 잘 먹히는 수법이긴 하지.
진천희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스승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사실상 거절.
한숨을 쉬는 독고선을 뒤로하고 진천희는 숙소로 향했다.
* * *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늘은 하루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해야겠다.’
그리 생각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었다.
그렇게 나오니 하녀분이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고 있었다.
“저녁 식사입니다.”
“고맙습니다.”
허락도 없이 들어오긴 해서 기분이 묘하지만 황구가 꼬리 치고 있는 걸 보니 별문제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굳이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식사가 맛있어 보이기도 했고.
‘와, 도미 탕수 비싸 보인다.’
이렇게 크고 실한 놈을 직송으로 들고 와서 튀기려면 보통 돈과 품이 드는 게 아니다.
거기다 풍겨 오는 향도 그윽한 게 입에서 침이 절로 고였다.
식사 준비가 끝나고 진천희가 자리에 앉는데 문득 그녀가 다가왔다.
그 순간 손을 내밀어 진천희의 손가락 없는 손을 덥석 붙잡았다.
“정말이네. 진짜로 없는 거였네.”
손을 빼려고 하는데 하녀의 악력이 얼마나 강한지 조금도 꿈쩍하지 않는다.
문득 하녀의 눈에서 눈물이 도로록 흐르는 게 보였다.
‘어, 어억?’
이윽고 떨어지는 눈물은 계속해서 바닥을 적셨다.
“아아……. 가가. 어찌 손가락 하나가…….”
“어…. 현……이니?”
그를 ‘가가’라고 부를 놈은 하나뿐이지 않나.
그제야 진천희가 눈치를 챘고. 하녀는 목 밑에 손을 넣어 얇은 천을 벗었다.
그곳에는 사마현의 얼굴이 있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 환하게 웃고 있다.
‘와…. 웃는 게 더 무섭다.’
어느 게 진짜 표정인 걸까.
“형이 무사한 건 좋은데 사지가 전부 다 무사한 건 아니네~? 이거 누가 물어갔어.”
왜일까.
사근사근 묻는 말이지만 묘하게 칼끝을 목젖에 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은.
진천희는 준비했던 대답을 말했다.
“혈선교 때문에 잃어버렸어.”
“아아, 그 새끼들이 물어갔구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사마현의 주변에 기묘한 살기가 뻗쳐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니, 그건 광기일지도 모르겠다.
진천희가 급히 말했다.
“검수로 살아가는 이상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어. 오히려 몸 건강히 돌아온 것에 감사해야지.”
딱- 우득-
사마현이 자신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를 점검하듯 접어 보는 게 아닌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누군가의 얼굴 가죽을 뜯으려는 모양새.
화가 난 건 알고 있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혈선교주를 잡을 수 없다.
그건 여하륜도 진천희도, 그때 보았던 북해빙궁의 다섯 장로들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더는 누군가가 죽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바닥을 구르며 여하륜의 잘린 목과 눈이 마주쳤다.
그게 사마현의 목일 수도 있었다.
“현아.”
“네, 가가?”
“들어봐 봐.”
“하명하세요. 가가. 신첩, 다 죽여 버릴 테니까.”
“그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진천희는 여하륜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조천군을 죽여도 완전히 죽지 않았던 것과, 금광성모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도망쳤던 것.
그리고 이것은 어쩌다 얻은 정보인데 혈선교주는 최소 현경 이상으로 추측이 되는 강적이라는 것도.
“그러니까 가가는 제가 열 받아서 혈선교에 지랄하다가 뒤지는 게 걱정이신 거네요~?”
“아니……. 그게.”
“신첩이 그렇게 뇌가 없는 건 아니랍니다.”
따닥, 우득, 뚜득.
남은 자기 손가락도 하나하나 점검한다.
사마현의 무공 특성상 자기 손을 점검한다는 건, 무기를 점검하는 것과 다름이 없긴 하다.
“꼭 싸움이라는 게 힘의 차이만으로 결정 나는 게 아닙지요. 굳이 강호인들처럼 일대일로 비무를 벌여야 싸움인 것도 아니고.”
딱, 따닥, 우득.
목소리는 상냥하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지 않았다.
‘오독문 때 악몽이라도 떠오른 걸까.’
그때 진천희가 계절이 바뀌는 내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사마현은 그런 진천희를 계속 기다려야만 했다.
계속, 계속.
진천희는 손을 뻗어 사마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현아.”
“네?”
“이거 하나만 약속해줘라.”
“무슨 말씀이신가요?”
“혈선교를 상대하려면 지금으로는 안 돼. 적어도 더 강해진 후에. 그리고 복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네가 안전한 상황에서 하자.”
“…….”
“나는 널 잃고 싶지 않아.”
“…….”
사마현은 금색 눈을 들어 형의 푸른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형의 눈은 기묘하게도 공포에 젖어 있었다.
대체 이 사내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이번 혈선교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건 형이다.
그리고 형은, 본인 목숨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광인처럼 웃으며 달려가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두려워할 일이라니.
“아아, 선인(善人)의 동생이라는 거 진짜 손해 보는 역할이네.”
“약속할 거지?”
그리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걸려다가 문득 없어졌다는 걸 깨닫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아. 방금 진짜 억장 무너질 거 같았어. 형.”
“습관이라 아직 적응이 안 돼. 어쨌든 약속할 거지?”
사마현이 뭐라고 하든 반드시 약속을 할 모양이었다.
“좋아, 약속…….”
“혜아를 걸고.”
“……진짜 잔인하다. 형.”
사마현은 한참이나 진천희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천희가 말했다.
“대신에 복수할 순간이 온다면 하게 해줄게. 약속해.”
“그놈 손가락은 그러면 내가 가질게요. 가가~”
“그래. 거기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돕는다.”
진천희는 그렇게 기어이 사마현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다행인 일이었다.
‘지금 우리는 혈선교주 팔 한 짝만도 못해.’
비참한 일이지만 현실이었다.
이렇게 강해졌어도 상대는 자연재해에 준하는 자였으니까.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면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비축해야 한다.
그게 바로 정답.
사마현이 말했다.
“돈으로 괴롭히는 건 할 거야. 형~ 그건 무력을 쓰는 게 아니니까.”
“그래. 대체 혈선교를 어떻게 돈으로 괴롭힐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으면 해봐. 그리고 첫째로 네 안전이 중요해. 그것도 잊지 말고.”
“알겠사와요. 가가~”
가난한 사이비라니 상상도 안 간다.
그렇게 약속하고는 사마현은 진천희의 왼손을 붙잡고 한참 단면을 바라보았다.
“의수 만들 거야?”
“응. 재료도 준비했어.”
응룡의 비늘.
신이 직접 내린 조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고작 천일취와 안주 조금을 바쳐 얻어냈다.
장사도 이렇게 남는 장사가 없다.
이 비늘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옥이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쓰는 걸 봐서는 이 응룡의 비늘도 보통 물건은 아닐 터.
“내가 만들어줄까? 황실에도 없는 최고의 장인을 구해줄 테니까.”
“아냐아냐. 이미 정했어.”
그 말에 사마현은 곧바로 형의 의중을 눈치챘다.
“유 총관~?”
“어떻게 안 거야?”
“그런 쪽에 관련해서는 형이 가장 의지하는 작자니까. 물론. 마지못해 해주고 있지만.”
“그래. 돈이 안 통하는 상대라 힘들다. 어떻게든 이번에도 거머리처럼 매달려봐야지.”
사마현은 그런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음. 아니야.”
역시 이상하다. 유호에게는 피떡이 되도록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광인이 형이다.
형은 대체 혈선교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적어도 목숨이나 명예나, 부는 아니겠지.’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사마현은 거기까지 생각했다.
“둘째 형은 대체 거기서 뭐 한 거야? 형 손가락 하나 못 지키고. 역시 의형제에서 축출해야…….”
진천희가 서둘러 사마현을 달랬다.
“하륜이도 어쩔 수 없었어. 저주 관련이잖아. 나 걔 없었으면 거기에서 이미 죽었을 거야.”
그렇게까지 둘째를 비호하니 막내인 사마현은 뚱한 표정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눈치챈 진천희가 물었다.
“너 설마 그것도 질투하냐?”
“와. 너. 무. 하. 십. 니. 다. 둘째 형 이렇게 싸고도는 거 봐라.”
그렇게 진천희는 새벽까지 사마현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