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4
제 614화
사마현은 하룻밤 진천희의 귀빈실에서 같이 자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차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사마현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형. 제갈린 그자도 이곳에 올 텐데?”
“어? 스승님이? 자, 잠깐만… 야. 내가 당황해서 까먹었는데 너 사파잖아. 지금 시기에 무림 중추에 와도 되는 거야?”
“당연히 안 되지요. 가가~ 이 상황에서 잡히면 전 뇌옥행입니다.”
‘야, 이 미친놈아! 그걸 알면서도 이 시국에 무림맹 중추까지 변장하고 왔다고?’
진천희가 눈을 크게 떴다.
사마현이 말했다.
“형 손가락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괜찮아. 이 사마현, 변장과 변신의 귀재이고, 은신과 잠입술의 대가이옵니다~”
“그…게 되나?”
“하오문의 진전까지 이어받고 있으니까.”
“뭐?”
“신첩 이제 하오문의 소문주입니다. 가가~”
곧바로 능청을 떠는 이놈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살짝 나갈 것 같다.
“……너 금혈방의 소방주였잖아.”
“겸직이야. 원래 하오문주라는 자리는 하오문의 근원이 되는 다섯 문파 중의 하나가 맡는 게 관례거든.”
“그렇구나. 그래도 금혈방에서 하오문 소문주가 나오는 일은 드물지 않아?”
질문에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리 금혈방은 돈 만지는 건 좋아하지 남하고 병장기 부딪치는 건 별로니까. 그래도 나는 좀……. 강호인스러운 부분이 있으니까?”
금혈방 출신이 남의 얼굴도 뜯고, 살수처럼 변장에도 능하니 이놈 뭐하는 놈일까 싶긴 했을 거다.
“그렇구나. 그래서.”
“응. 그래서 지금의 하오문주가 나를 소문주로 지목했어. 장차 내가 금혈방을 이어받는 날, 하오문 역시 이어받는 거지. 그리고 하오문주가 되는 자는 다른 다섯 문파의 무공도 전수받게 되니까.”
“이건 무림맹보다 낫네.”
지존천마에서는 사마현이 하오문주가 되고 강제로 비급을 빼앗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황금왕은 자취를 감추기도 했고, 그녀가 자금줄을 쥐고 있으니 함부로 하기 어려웠지만 다른 문파들은 멸문을 하든가 사마현에게 비급을 내줘야 했다.
‘평화롭게 넘어가게 되었네.’
문득, 하오문주가 되면 지존천마의 사마현과 같은 길을 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과정이 다르잖아. 그러면 결과도 다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사마현은 진천희의 손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역시 내가 같이 있었어야 했어. 둘째 형이 아니라 내가 같이 있었어야 했어.”
“네가 갔어도 손가락을 잃은 건 변함없지 않았을까?”
“글쎄. 내가 둘째 형보다 나을 거라 보는데?”
오독문 때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사마현의 무서운 점은 무력이 아닌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잔머리에 있다.
상식이나 고정관념에도 얽매이지 않기에 상당한 강적.
허나, 상대하는 사람이 다른데 그리 쉽게 판이 변할까?
진천희는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래. 너는 내 손가락이 날아갔다는 소식에 뇌옥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잠입한 거구나.”
“응.”
아이고, 미친놈.
하지만 사마현은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형. 내일쯤이면 형이 하녀 하나를 밤새 안았다는 풍문이 돌겠지만 뭐, 무사히 잘 돌아갈 테니까.”
“……하…….”
이미 이놈이 조져 버린 평판이다.
‘그래. 네가 무사하면 된 거지.’
진천희는 포기했다.
“어쨌든 스승님이 오신다고? 왜?”
“…….”
사마현은 대답 대신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건 직접 형이 알아내 봐. 형이 걱정되어서 온 게 가장 크지만, 온 김에 겸사겸사 할 일이 있으니까.”
그렇다는 말은 스승님이 여기 오시는 데에 사마현, 즉 금혈방과 어떤 연계될 일이 있다는 건가.
진천희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난 이제 죽었다.’
그리 말하며 이제는 없는 새끼손가락을 한참 바라보았다.
* * *
사마현을 새벽에 보내고 나서야 진천희는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이불을 구겨서 끌어안고 짧게 잠을 자고 있는데 문득 뒷목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살기……?’
그것과는 달랐다.
천천히 눈을 뜨니 그곳에 보인 것은 스승님이신 제갈린.
그가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서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뒤에는 유호가 서서 같이 보고 있다.
“헉?!”
반사적으로 손을 뒷짐 지듯 숨기고는 진천희가 말했다.
“스, 스승님, 언제 오셨어요?”
기척도 없이 이렇게 들어오실 줄은 몰랐다.
“…….”
스승님은 답이 없다.
그저 물끄러미 제자 놈을 바라보고 있을 뿐.
뒤에 있는 유호에게 곁눈질을 하니 유호가 엄지를 들어 목을 쓱 긋는 시늉을 했다.
너 뒤졌다.
매우 알기 쉬운 동작에 진천희는 감사하기는 개뿔…….
스릴러 영화도 이보다는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스승님을 본다.
그렇게 시간이 정지한 듯 무겁게 흘러간다.
터질 것 같은 심장 속에서 스승님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희야.”
“네, 네, 네!”
“이 스승에게 또 무언가를 숨기는구나. 못된 버릇이야.”
“어… 숨기다뇨. 스승님. 제자가 숨기는 게 뭐가 있다고요. 하하하핫!”
진천희는 생각했다.
사마현도 진천희 손가락이 잘린 것을 아는데 스승님이 모르실까 하고.
그렇다고 당당하게 손을 꺼낼 용기는 없다.
역시나 스승님이 말했다.
“그러면 왜 손을 보여 주지 않는 게냐?”
“어, 억……. 그…….”
머리가 고장이 난 기분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뻔뻔하게 ‘뭐, 그렇게 되었습지요. 케헤헤헷!’ 하며 뭉갤 수 있겠지만 상대는 스승님이다.
개구리가 뱀을 만나도 이보다는 편안하리라.
“희야.”
“네, 스승님.”
“손.”
“네, 네네.”
결국 덜덜 떨며 왼손을 내놓아야 했다.
스승님은 한참이나 손을, 그리고 이제 없는 새끼손가락 부위를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표정은 내내 인형처럼 무표정했다.
진천희는 달달 떨리는 마음으로 스승님을 바라만 볼 뿐.
유호의 사형 선고 사인이 무섭다.
스승님이 말했다.
“칼에 베이든 권이나 창에 당하든. 네 보옥의 힘이면 다시 접합을 시도해볼 만도 한데. 그조차 포기한 걸 보니 아예 조각이 없는 모양이구나. 현경지독이 들어 있는 손이니 보통이 아닐 텐데 일반적인 전투 상황도 아닌 모양이고.”
거짓을 고했다가는 단박에 눈치채실 터.
“어….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시간을 돌렸다고?
그랬다가는 시간 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거고, 진천희 자신의 혈통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랬다가는 내가 풍씨라는 것까지 설명해야 할 거고.’
황가의 핏줄이라는 것을 스승님 앞에서 인정해야 한다.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죽을 때마다 제자의 사지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스승님이 알게 되었을 때 어찌 반응할지도 걱정이었고.
‘어이고, 복잡하다. 쉽게 가자.’
진천희는 결국 혈선교와 싸우는 와중에 어떠한 알 수 없는 저주를 받아 손가락이 없어졌다고만 말했다.
그러니까 2회차 루트만 설명한 셈.
“…….”
스승님은 제자의 말을 한참이나 듣더니 입을 열었다.
“뭔가 빠졌구나. 그래서 왜 천빙산에 올라가지 않은 것이냐?”
“강한 함정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하도록 조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구나.”
‘……와. 그것만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시네.’
진천희는 섬뜩해지긴 했으나.
그래도 설마하니 시간을 되돌리는 이능으로 판을 엎었다고 누가 감히 생각할까 싶었다.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은 상황인데.
스승님이 말했다.
“혹시 미래 예지와 비슷한 일이 있었느냐? 일전에 네가 대략적으로 미래를 알고 있다 했을 때의 그것 말이다.”
솜털이 곤두섰다.
“……어.”
“그것과 관련하여 손가락을 잃었다거나?”
‘망할.’
사람이 초인이면 과자 부스러기처럼 흩어진 그 미세한 단서만으로도 이렇게까지 추측할 수 있구나.
진천희가 말했다.
“일단 주술입니다.”
“더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구나.”
“그…….”
“너를 제자로 받을 때 이러한 것들은 묻지 않겠다 약조했었지.”
스승님은 두통이 밀려오는지 이마를 꾹꾹 눌렀다.
“그때 그 약조를 하지 말 것을.”
요즘 들어 과거에 했던 말들을 새삼스럽게 후회하고 있는 제갈린이었다.
“어찌 되었든 들으렴, 희야.”
“네, 네!”
“이 스승이 제자 걱정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는구나. 이러다 심장의 만년화리 내단이 녹아서 구음절맥이 재발할지도 모르겠다.”
“아, 아니! 스승님!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세요!”
진천희가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제갈린의 시선은 제자의 잃어버린 손가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제자 녀석이 어디 나다니지 못하게 할 생각이란다.”
“예?”
진천희는 퍼뜩 생각했다.
‘설마… 지난번처럼 만년한철 족쇄를 채워서 감금하시는 건 아니겠지?’
제자의 눈이 커진다.
스승은 그런 제자의 눈을 커다란 손으로 덮고는 억지로 자리에 뉘였다.
“일단 더 자거라. 결국 북해빙궁에서 여기 올 때까지 제대로 쉰 일이 없어 보이니.”
“스승님. 하지만…….”
“내일 이야기하자꾸나.”
그렇게 제갈린은 강제로 제자를 재웠다.
진천희가 숨을 완전히 고르게 내쉴 때까지 기다린 후에, 그제야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는 제갈린의 표정은 기이하게도 섬뜩했다.
* * *
다음 날.
‘음……. 일단 스승님이 대충은 눈치를 까셨다고 봐야겠지.’
-혹시 미래 예지와 비슷한 일이 있었느냐? 일전에 네가 대략적으로 미래를 알고 있다 했을 때의 그것 말이다.
-그것과 관련하여 손가락을 잃었다거나?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시간을 돌리는 것까지 도달하진 않았지만 이래서야 큰 차이는 없지 않나.
요점만 보면 틀린 말도 아니고. 과거로 회귀하면 그 시간대가 사라질 뿐.
미래를 ‘아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으아아아악–!’
스승님은 더는 묻지는 않으셨지만 이건 뭐 모르는 척해 준다는 말과 진배없어진 거지.
진천희가 고장 난 로봇처럼 덜컥덜컥 움직이자 스승님이 전음을 보냈다.
[희야. 부산스럽구나.] [네. 스승님.]진정하자. 진정해.
지금 있는 곳은 무림맹의 회의실.
제갈린과 맹주 그리고 문파의 대표들이 모여 있는 곳.
진천희도 제갈린의 뒤에 서서 병풍이 되어 드리고 있다.
여기서 병풍이 할 일은 하나.
진중한 표정으로 가만히 잘 있는 것.
대부분의 문파 소문주들이 하는 일 중의 하나다.
어차피 중요한 일은 문주님이 처리하시고 소문주는 일을 배우기 위해 오는 거니까.
‘그래도 스승님이 오시니까 무림맹의 모든 이들이 긴장했구나.’
진천희 정도면 그래도 어린놈이니 그럭저럭 상대할 만한데, 눈앞의 백린의선은 강호에서 구른 짬이 원투 데이겠는가.
심지어 노괴들은 백린의선이 혈린광살이었던 시절도 기억할 테니 표정이 아주 볼만했다.
반면 스승님은 허허롭게 부채를 펼치며 여유롭게 봄날 햇살을 즐기셨다.
스승님이 진짜 호랑이였으면 저쪽에 통나무처럼 굳어 있는 노괴 하나 잡아다가 거기다 발톱도 긁으셨을 거다.
무림맹주 악진이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각주가 직접 오다니 무슨 일이오?”
“호오, 바로 본론이라? 이렇게 좋은 날에 다들 좀 표정 푸시지요. 왜 이렇게 긴장되어 계십니까. 허허허.”
스승님은 다시 느긋하게 부채를 흔드신다.
‘제자가 사지(死地)에 가서 무사히 돌아오니 아주 그냥 행복한 모양이군. 저 망할 백린 놈이.’
‘분명 그냥 왔을 리는 없는데… 저 교활한 놈이…….’
노회한 강호 노괴들은 눈빛을 서로 교환한다.
허나 제갈린은 다 알면서도 그렇게 부채만 흔들고 있었다.
악진이 말했다.
“놀자고 우리를 부른 게 아니지 않소.”
“당연히 아니지요. 허허허.”
탁.
제갈린은 과장된 모습으로 부채를 접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제갈 모는 강호의 흐름이 수상하고 위협스럽다 생각하여, 한 가지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여 이를 통보하러 온 것이지요.”
“통보?”
차륵-
여전히 다리를 꼰 상태로 편안하게 부채를 펼치고는 부치고 있다.
거구의 사내가 부리는 여유는 묘하게 위압감이 있어서 장내의 공기를 점점 냉각시키고 있었다.
제갈린이 말했다.
“그 전에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들어오시게나.”
“예. 각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