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19
제 619화
백환후 응시생 합격 축하 연회가 시작되었다.
‘뭐, 전원 채용이지만.’
인원이 보충되고 나면 다음 해부터는 더 기준이 올라가긴 할 거다.
인력이 모자란 터에 의각 사람들을 쓰는 건 본말 전도.
백린현의 현청 주변 객잔들에 의뢰를 했다.
백린현이 워낙 번창하다 보니 이제는 객잔들 규모도 제법 크다.
객잔주들이 나서서 요리사를 데려다 요리를 만들고, 점소이들까지 총동원해 술과 요리를 날랐다.
“소의선님!”
“아앗! 우리 구면이죠?”
오독문 때 만났던 사족 출신 양민.
“여기서는 사월강이라고 부릅니다.”
“무림식이군요.”
“네. 부족식 이름은 다들 까먹어대서 사월강으로 지었습니다.”
진천희도 그래서 페니실린 이름을 바꾸긴 했다.
사업하는 사람이니 특히 이름이 중요하겠지.
그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 오독문에는 이제 돌아가지 않을 거니까요.”
“…….”
오독문에서 사족이 어떤 박해를 받아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마현이 무이자로 객잔을 지어준 거고.
“꽤 멀리까지 와서 장사하게 되었군요.”
“저도, 저희 가족도 이쪽이 더 편합니다. 비록 피부색과 골격이 중원인과 달라 이질적이긴 해도, 같은 오독문끼리 하는 차별보다는 나으니까요.”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문제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중원은 역시 돈이 최고더군요. 여기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돼지 머리를 해도 모십니다.”
“하하하, 그건 그렇죠.”
칭찬인지, 욕인지.
진천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월강이 말했다.
“저희 가족들은 모두 소의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린현으로 자리를 잡았구요.”
“사마현의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겠군요?”
진천희의 말에 그가 답했다.
“당연하지요. 그분은 제 두 번째 은인이니까요.”
오히려 당당하다.
하지만 진천희는 싫지 않았다.
오히려 빤히 보이는데도 숨긴다면 그거야말로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니까.
‘정보 조직도 겸하고 있는 거군. 하긴, 사족들 중에 꽤 많은 수가 독공과 암기를 익혔으니까 이런 일에 제격이지.’
사월강이 말했다.
“오륜회의 결성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차 한잔 받으시겠습니까?”
그리 말하며 차를 따르는 자세를 취한다. 진천희는 엎어져 있는 찻잔을 뒤집다가 문득 찻잔 안에서 무언가 잡히는 것을 깨달았다.
‘서신?’
그것도 밀서.
진천희는 잔을 쥔 채로 자연스럽게 손가락만 튕겨 그것을 소매 안으로 빠르게 넣었다.
‘무당?’
밀서 봉인은 분명 무당의 것이었다.
천우다.
백린의각이 무림맹을 탈퇴한 이상.
개방을 통해 서신을 보내기 좀 그러니 하오문을 통해 보낸 모양이었다.
그게 사월강의 손을 거쳐 온 거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풍악을 올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월강이 신호를 하자 음악이 울렸다. 맛있는 고기와 술이 올라온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중에도 사족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오독문,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미소들.
좋은 일이었다.
진천희는 연회가 무르익자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연회에서 좀 떨어진 전각 위.
‘여기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서신을 열었다.
천우의 필체.
여전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천우는 그저 담담히 지금 무당파의 상황들에 대해 적을 뿐.
‘그렇구나.’
무당파는 처음부터 무당권제의 명에 따라 정사대전은 빠지는 입장이었다.
마교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
오륜회를 처음 만들 때 백린의선.
즉, 스승님께서 이미 권제께 접촉했었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천우가 있었다는 것도.
그때 나누었던 문답을 천우는 상세히 적었다.
-백린의각과 연수한 놈들을 홀랑 빼가려고?
-나쁘지는 않다만 누군가는 무림맹에 남아 있어야 한다. 네가 원하는 건 ‘균형’이지 않느냐.
그랬다.
제갈린이 정녕 원하는 게 평화고 균형이라면 무당파는 무림맹에 남아 맹주에게 무게를 주는 역할로 있어야 한다는 뜻.
남궁세가, 공손세가, 보타문, 마지막으로 백린의각이 무림맹에서 빠졌으니.
그 빈자리를 무당파와 사천당가가 차지하려는 심계였다.
두 문파의 발언권은 이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터.
‘그렇구나. 스승님은 수를 하나만 둔 게 아니었어.’
이미 물밑에서 사천당가와 무당파까지 이야기를 끝내 놓은 것.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아, 나는 역시 전쟁이 끼면 수읽기가 허술해지는구나.’
어쩔 수 없나.
다른 건 몰라도 전쟁에 관해서만큼은 어렵다.
행정이나 새로운 문물을 들여오고, 연구 개발을 하는 건 자신 있지만.
이런 혈사 관련으로는 스승님께 의지할 수밖에.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안부는 거의 배제한 채로 주변 이야기만 쓴 천우가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조만간 천우를 만나 봐야겠다.’
답장을 어찌 쓸지 고민하며 서신은 깨끗하게 태웠다.
연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진천희는 전각에 앉아서 눈감고 연회 소리를 즐겼다.
‘이 정도 거리가 딱 좋지. 인사를 주고받을 것도 없고. 좋은 풍악 소리만 들으면 되고.’
꼭 필요한 상황이면 어쩔 수 없이 가서 인사를 나누어야겠지만 이미 한번 인사를 나누었으니 자기 하나 빠져도 충분하리라.
그렇게 어두운 텅 빈 곳에서 풍악을 듣고 있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저벅-
키가 크고 근육량이 있는 자의 소리.
그것도 일부러 낸 소리다.
“유호?”
“여기서 뭐 하십니까?”
“동생한테 서신이 와서 보고 있었어.”
“안 돌아가십니까?”
“이 정도면 나 없어도 괜찮으니까.”
그리 말하며 풍악 소리를 흥얼거렸다.
요즘 유행하는 사랑 노래다.
진천희가 물었다.
“유호는?”
“일을 보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유 총관이…….”
그리 말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 갈 길 가세요.”
“벌써 취했습니까?”
평소라면 남는 시간에 연구하자고 거머리처럼 달라붙을 인간이었다.
얼마 전에 장갑을 만들어 줄 때도 그러지 않았나.
하지만 왜인지 지금의 진천희는 달랐다.
마치 몸 안의 모든 열기가 빠진 사람처럼 그저 들리는 풍악을 흥얼거릴 뿐.
“그냥 기분이 좋거든. 그래서. 유 총관 나 싫어하잖아. 오늘은 안 괴롭혀야지.”
“으이구.”
그리 말하며 유호는 가 버렸다.
진천희는 어둠 속에서 푸른 눈을 반짝이며 흥얼거린다.
술은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왠지 분위기에 취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얼마 후.
“어라, 유 총관. 왜 또 왔어?”
“받으십시오.”
그리 말하며 귀한 천일취 술병을 던지는 게 아닌가.
진천희는 잽싸게 받았다.
“혹시 이화주 담근 거 먹어 봤어? 유 총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그리 말하며 술잔을 꺼냈다.
“따르십시오.”
“하여간은.”
골골골-
진천희는 그렇게 술을 따라주었다.
“받으십시오.”
“음, 나 주는 거야?”
“짜증 나니까 이거나 마십시오.”
한 대 칠 것처럼 살기등등하게 말한다.
진천희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담근 천일취를 자기가 따라 자기가 마시게 되었다.
“고마워. 유 총관. 그래도 유통은 유 총관이 했네.”
천일취의 깊은 향이 훅 풍겨 왔다.
“아,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
그도 그랬다.
어찌 되었든 존귀한 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신관에게 내린 술이니까.
유호가 직접 따라 주지는 않았지만, 진천희 말대로 유통은 해줬으니까.
하지만 정작 금호신단을 만들고, 연구당을 성지(聖地)화하고, 사람들이 여우 토용을 만들게 한 이놈은 그냥 술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할 뿐.
고작 백 년도 못 살 필멸자가 이런 것을 알 도리가 없다.
“아까는 기분 좋다더니 표정이 가관이군요.”
“좋은 거 맞아. 그러니까 아까부터 흥얼거리고 있었지.”
“이상한 인간.”
“그냥 기분이 이상해서. 좋은 건 좋은 건데, 그냥. 좀 이상하네.”
진천희는 키득거리며 천일취를 한 모금, 두 모금 삼켰다.
“삶은 좋은 거야.”
진천희는 장갑을 보았다.
장갑으로 보이는 새끼손가락은 진짜로 있는 것만 같아서 잘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곤 한다.
“고마워. 유호.”
술에서는 천 일 동안 못 잊을 맛이 났다.
“다음에는 유자로 담가 봐야겠다. 그것도 술상에 올려줄게.”
분명 햇빛 맛이 나겠지.
* * *
연회가 끝난 후.
이제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갈 때.
이런 소리를 하면 ‘그러면 그동안 한 건 일이 아닙니까?’ 하고 유호가 타박하겠지만 그동안 한 건 일이라기보다는 사전준비였다고 할까?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반년 안에 이걸 다 처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가장 중요한 인력 문제를 일부 처리하지 않았나.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지?’
곧바로 답이 나왔다.
행정 인력 개편.
우선 거대한 백린현을 동백린과 서백린으로 나누는 것을 우선으로.
‘동백린은 현재 백린현 현청이 있는 곳이지. 서백린은 본디 다른 현이었다가 이번에 편입된 지역이고.’
결국 한 구역으로 뭉뚱그려졌지만 사실상 다른 땅이었다.
그러니 행정의 기본은 관할을 나누는 것.
‘일단 서백린은 현청에 서백린 현청이라는 간판을 달고, 그곳에서 일하는 인원은 그대로 두는 게 좋겠어.’
모조리 목을 쳐서 새로운 물갈이를 하겠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결말이지만 일단 한번 황상께서 썰고 가신 후라 남은 애들은 튀는 짓까지는 안 했다.
이 동네 관행이라고 약간의 뒷돈을 받았을 수는 있으나, 적어도 조세의 근간을 흔들 만큼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
‘이다음.’
진천희는 다음 명령서를 작성해 나갔다.
동백린 현청의 건축 공사를 시작하는 한편, 시험을 통과한 백환후의 아이들을 죄다 동백린에 밀어 넣는다!
동백린에 있는 자들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들이다.
심지어 학사의 몸을 이끌고 토목도 해본 양반들.
‘백환후의 삐약이들을 가차 없이 굴려주기 제격이지. 크크크크.’
그리고 이 백환후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완전히 숙달되면 이놈들은 서백린으로 간다.’
동백린에서 아이들이 연수 기간을 거치는 동안 진천희 자신은 뭘 해야 할까?
진천희는 포두와 포졸들을 이끌고 서백린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이놈들을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황상께서 한번 쓸고 간 자리.
살아남은 놈들이 썩었는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한다.
삐약이들이 연수를 받고 서백린에 도착했는데 서백린 선배들이 죄다 부패해 있으면 이 삐약이들도 같이 부정을 저지를 수밖에 없어요.
그게 공무원 생리인 거고.
‘행정 업무 정상화 #가보자고!’
여기까지 예상 기간 한 달.
진천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